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묻고 답하고)
여기는 '무엇이든 물어보는 게시판'입니다.
(과학과 SF에 대한 질문은 'SF/과학 포럼'쪽에서 해 주세요.)
( 이 게시판은 최근에 답변이 추가된 순서대로 정렬됩니다. )
일반인과 오타쿠의 인식 정도가 아닙니다.
덕후와 덕후간의 대화에도 이런 현상이 있거든요.
예를들어, 전 용자로봇 시리즈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 이야길 꺼내면 거의 항상 '애들용? 그 유치한게 좋아?'란 말이 나옵니다.
요컨데 '아동/청소년 대상 = 유치함'이란 공식이 한국인 모두의 공통된 인식이란 말이죠.
외국에서도 이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이건 굉장한 편견같습니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애마부인은 성인대상이니 천고의 명작, 어린왕자는 아동대상이니 천하의 졸작]
...같은 논리도 성립하는것 아니겠습니까?
(애마부인의 명예를 위해 말하자면, 애마부인은 한국 영화계의 명작 맞습니다. 수익금액도 상당하고, 한국 영화계에 나름대로 큰 족적을 남긴 훌륭한 영화죠. 단지, (틀림없이 영화를 안본 사람들의 편견과 편협함으로 인해) 저질영화로 각인된 작품이라서 그냥 예로 들었을 뿐입니다. 애마부인 팬들에겐 미리 사과의 말을 올립니다)
꼭 만화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전 동요도 무척 좋아합니다.
그 서정적이고 시적인 음정, 박자와, 특히 노랫가사는 마음 속 깊숙히 스며드는 무엇인가가 있거든요.
언젠가 친척집에 방문해서 아이들과 놀때, 제가 아는 동요를 부르며 놀려고 하자 그집 어르신이 '동요같은 애들같이 유치한건 안된다'며 금지를 때리곤, 바로 텔레비 채널을 대중가요로 돌려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저로선 뭐라 할 말이 좀 있긴 한데...
그 집안 사정에 뭐라 말 할 처지가 못되는 지라 그냥 입을 닫았었죠.
으흠...
애들용이 유치하다라...
어째서 이런 잘못된 인식이 박히게 된 것일까요?
(이런게 한국 한정이 아니라 전세계에도 있다면... 뭐... 제가 잘못된 것 같군요. 큼--;)
[물고기군] 밤이면 언제나 아름다운 인생을 꿈꾼다. 사랑하고픈 사람과 별을 바라다 보고 싶을때 비오는날 우산들이 공허하게 스쳐갈 때 노래부르는 물고기가 되고 싶고 날개달려 하늘을 날고싶다. 아침의 차가운 바닥에서 눈을돌려 회색의 도시라도 사람의 모습을 느껴본다 부디 꿈이여 날 떠나지 마소서... [까마귀양] 고통은 해과 함께 서려가고 한은 갑갑하메 풀 길이 없네 꿈은 해와 함께 즈려가고 삶과 함께 흩어지네 나의 꿈이여 나의 미래여 나의 길을 밝혀 밤의 끝을 보내길....
작품 퀄리티의 Level에 대한 사항과 작품이 생각하는 대상 연령에 대한 타킷 문제는... 일부 관련성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중요한 연계는 없을 수 밖에 없는데요.
<닐스의 신기한 여행> - 무려 노벨문학상을 따낸 작품입니다. 작품 퀄리티는 당연히 최상이죠. 20세기 전반 스웨덴 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죠. <아기사슴 플랙> - 퓰리처 본상 수상작입니다. 성인대상 작품까지 포괄해서 메인 상을 받은 것은 아동용으로 쓰여진 이 책이었죠. 작품 퀄리티는 20세기 초반에 쓰여진 미국 문학 중 최상으로 꼽습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훌륭하면 훌륭한 것이고, 꼬진 것은 꼬진 겁니다. 용자로봇이나 특촬물은 유치하다고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는데, 에바는 용자로봇과 특촬물의 많은 요소를 계승하여 만들었는데 다들 훌륭하다고 (더 나아가 심오하다고) 좋아라 했죠. 대상이 애들이기 때문에 작품 레벨이 떨어진다고 무리하게 일반화시킬 필요는 별로 없습니다. 애들용으로 쓰여진 <한 밤 중 톰의 정원에서>는 어른이 읽어도 감동적입니다. 훌륭한 것은 그냥 훌륭한 것이죠.
애들용은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게 왜 이래야 하는지는 이견의 여지가 없지요.
내용은 평면적이고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뭐 그런 면에선 확실히 수준이 낮습니다.
근데 문학이건 영화건 애니건 뭐가 됐든지간에 그것만으로 평가할 수가 없거든요.
따지고 보면 반지의 제왕도 세계정복을 꿈꾸는 마왕의 파워가 담긴 절대반지를 절대용광로에 갖다 버리려고 떠나는 모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거기에 뻑갔지요.
유치찬란하지만 그걸 단순히 유치하지 않게 만드는 건 그걸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달린 거죠.
예를 들어 저는 토이스토리를 아주 좋아합니다.
쿵푸 팬더도요. 드래곤 길들이기도 괜찮았죠. 월E는 프리뷰랑 트레일러 쓱 본 뒤 '이거 물건이다' 싶어서 개봉 다음 날 영화관 가서 봤습니다. 그리고 직접 가서 본 결과 확실히 그럴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어요.
이것들 죄다 유치합니다.
근데 재미있습니다. 어른이 봐도 재밌을걸요. 아니, 애초에 그렇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을 겁니다.
유치한 내용이지만 그걸 훌륭하게 전달했으니까요.
월E를 보면서 하드SF에 길들여진 모 클럽의 일부 오타쿠들은 '뭐야? 로봇을 애초에 저렇게 감성적으로 만들 이유가 없잖아? 말이 안 된다구.' 라고 생각하겠지만........
(특정인을 의도하고 지칭하는 건 아닙니다........-_-)
필요 없습니다. 그건 훌륭하게 연출됐고 따라서 재미있습니다. 심지어 그게 곰곰히 따져보면 참 말이 안 된다는 걸 알아도 그렇습니다.
아마 최종 요약하자면 이렇게 될 거 같습니다.
어떤 창작물을 표현하는 것은 '무엇을' 과 '어떻게' 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때로는 어느 쪽이 더 중요하느냐 하는 걸로 의견이 분분하기도 했는데.......
최종적으로 제가 생각하기엔 '어떻게' 가 압도적으로 더 중요합니다. 그게 거의 99%입니다.
왜냐고요?
그게 더 재미있습니다. 그걸로 충분하죠.
아동물이 유치한 이유는 그게 담고 있는 것이 (어른 기준으로 볼 때) 너무 단순하고 정직하며 평면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훌륭하게 만들어내면 재미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고 이건 어른이 볼 때도 마찬가집니다.
잘 만든 유아용 애니메이션은 어른이 봐도 재밌습니다. 내용이 어찌 됐든간에 그것 때문에 결국 훌륭한 게 꼬진 게 되는 건 아니죠.
간단하게, 뽀로로와 마이 리틀 포니를 비교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뭐 후자쪽은 초기 기획에 비해 타깃 방향이 기존의 어린 소녀층에서 브로니 계층으로 옮겨탄 것 같습니다만 그 시작은 텔레토비나 뽀로로와 같이 어린 유아들, 그 중에서도 여자 아이들을 위한 물건이었다는것을 보면 그 차이를 알 법 하죠. 우리나라에선 보통 유아용이라 하면 뽀로로 생각하지 포니같은걸 생각하진 않습니다. 어린 영,유아들을 대상으로 만들었던 작품이 어떻게 남여노소를 가리지 않는 팬덤을 전 세계적으로 형성할 수 있었겠는가와, 뽀로로는 왜 아이들만의 뽀통령으로 남아있는가를 대조해보면 그러한 인식이 생겨난 원인도 알 수 있겠죠.
애들용은 유치한 게 당연합니다. 애들용이잖습니까.
가끔 애들용임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작품들이 있긴 하지만 그건 애들용은 유치하단 사람들도 예외라고 인정할 거고요.
헤세의 데미안 지금 읽어보면 이런 미친 중2병 ㅅㄲ소리가 나올 정돕니다. 그래도 헤세니까 넘어가는 거죠.
헤세니까 왜 넘어가냐고요? 그건 그가 중2들을 어른으로 만들어준 중2병 소설을 썼기 때문이죠.
난 안 그런데 애들용이니까 유치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된다는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사실 그게 훨씬 자연스럽고 당연한 겁니다.
처음부터 유치하게 만든 작품들이거든요.
p.s 근데 요즘 조카 돌보면서 느끼는 건, 코코몽이나 뽀로로, 타요 등등, 애들용이 재미있어! 하긴 옛날과 달리 그런 건 훈련받은 작가들이 기승전결 갖춰가며 쓰는 거니. 말하자면 예전의 독학 만화가들과 달리 이젠 미술교육을 받은 만화가들이 그리는 만화라고나 할까요.
수준이 낮다는 속뜻은, 진행과정이 어른들의 논리에 따르지 않다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요.
제가 볼 때는 "아동/청소년 대상 = 유치함"이라는 등식이 잘못된 게 아니고,
특정 종류의 컨텐츠를 무조건적으로 "아동/청소년용"이라고 인식하는게 잘못인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