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프로메테우스>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치명적인 내용 누설 있습니다! 영화 안 보신 분은 주의하세요!


올 여름 가장 기대를 모았던 장르 영화 두 편은 아마 <프로메테우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일 겁니다. 여름 시즌은 대대로 블록버스터가 다수 개봉하기 마련이지만, 이번 여름에 저 두 편만큼 화제가 된 영화도 없었던 듯합니다. 에고편과 스틸 컷을 조금씩 공개할 때마다 영화/장르계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이 두 개씩이나 나올 거라며 다들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었죠. 한 작품은 전설적인 에일리언 관련물이고, 다른 한 작품은 전작이 워낙 걸작이라서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이 기대만큼 관객들을 충족을 시켜줬는가 하면, 글쎄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리들리 스콧이 노망난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혹평이 심했죠. 그나마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사정이 좀 나으나 안 좋은 소리를 들은 건 마찬가지입니다. 8월이 된 지금 돌이켜 보면, 용두사미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두 영화의 단점으로 지목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개연성 부족이나 클리셰 남발 등도 눈에 보이긴 합니다만, 어느 정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준입니다. 저는 가장 큰 원인으로 캐릭터 구성을 꼽고 싶습니다. <프로메테우스> <다크 나이트 라이즈> 모두 등장인물이 여럿 나오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이야기 전개가 산만해지고, 사건 진행에 사실상 별 필요 없는 인물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 머릿수를 절반 가까이 쳐내고, 나머지 인물들에 더 집중했으면 이야기 농도도 깊어지고, 훨씬 짜임새 있었을 겁니다. 개연성이 부족하다거나 상투적인 이야기라고 비판하는 대목도 이런 인물들이 쓸데없이 거치적대서 그러는 것이거든요. 특히 결정적 열쇠를 지닌 인물 한두 명만 제거했어도 작품의 완성도가 전혀 달라졌을 거라고 봅니다. 그 한두 명 때문에 영화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추락했다는 걸 생각하면 참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고요.

 

일단 <프로메테우스>에서 가장 안 좋은 소리를 듣는 인물이 지질학자 파이필드와 생물학자 밀번입니다. 두 사람의 역할은 일종의 희생양에 가깝습니다. 괴물이 나오면 누군가 습격을 받고 죽어야 하는데, 그 희생자로 파이필드와 밀번이 당첨된 거죠. 문제는 희생하기까지의 과정이 어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이 괴물에게 죽는 이유는 유적 안에서 길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 파이필드는 말했다시피 지질학자입니다. 초반부에 탐사기계를 내보내며 쾌활하게 소리까지 질러대던 사람입니다. 정작 유적 지도를 그린 사람이 길을 잃다니요. 게다가 생물학자인 밀번은 처음 보는 외계 생물을 별 경계도 하지 않고 만지려고 합니다. 낯선 것을 꺼려하는 게 사람 심리이고, 더군다나 생태를 알지도 못하는 생물인데도 전혀 주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그 생물체한테 콱 물리고 말죠.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라도 이처럼 무모하게 행동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찌 보면 좀 재미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지질학자가 길을 잃었고, 생물학자가 외계 생명체한테 물려 죽었으니까요. 각각 자기 분야에 해당되는 이유로 죽은 셈입니다. 추리물이나 풍자물이라면 그럴 듯한 장치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작품은 우주 탐사물 아니던가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토록 먼 우주까지 떠난 학자들이라면 진지한 구석이 좀 있어야 하는데, 작중 내내 호들갑이나 떨다가 죽은 것으로밖에 안 보입니다. 괴물의 첫 습격은 강렬하고 인상적이야 합니다. 이 첫 이미지가 영화 끝까지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죽음이 이처럼 김빠지니 영화가 전체적으로 뒷심이 부친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물론 두 사람이 제대로 된 학자가 아니라고 변명할 수도 있습니다. 웨이랜드 회장의 욕심은 수명 연장이었지 인류 기원 탐사가 아니었으니까요. 어차피 탐사 따위 하지도 않을 텐데, 굳이 명망 있는 학자를 모셔올 필요는 없겠죠. 허나 그 점을 감안해도 첫 희생을 너무 가볍게 처리했습니다.

 

탐사대를 관리하고 흑막이 있을 것처럼 나왔던 메레디스도 알고 보면 별 거 아니었습니다. 시종일관 냉정함을 드러내며 거대한 음모라도 꾸미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아버지와 갈등이 있었을 뿐입니다. 아버지를 막기 위해 거사를 실행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편이 있지도 않고, 데이빗을 조종하지도 못합니다. 결국은 탈출선 타고 도망가다가 우주선에 깔려 죽는 전형적인 최후를 맞이합니다. 막판에 허겁지겁 도망가는 모습은 인간적인 면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너무 냉철하게 행동했기에 성격이 갑작스레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자넥 선장과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을 정도.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자넥 선장과 두 조종사는 엔지니어 우주선을 침몰시키는 엄청나게 중요한 인물입니다. 허나 나머지 조종사들은 얼굴 한 번 보기 힘듭니다. 두 사람이 누군지 이름을 아는 관객이 있을까요. 그러니 비장미 넘쳐야 할 마지막 돌격이 뜬금없어 보입니다.

 

만약 제가 시나리오를 수정한다고 하면, 파이필드나 밀번, 메레디스 그리고 기타 인물들을 모조리 빼겠습니다. 등장인물은 엘리자베스, 찰스, 데이빗, 웨이랜드, 자넥, 기타 보조인원 두어 명으로 한정하고, 탐사대 관리자(웨이랜드 중역)를 희생양으로 삼겠습니다. 이렇게만 했어도 구성이 훨씬 깔끔하고, 괜히 산만하게 이 인물 저 인물 쫓아다니느라 정신 없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에일리언>이 기껏해야 승무원 몇 명으로 진행했던 것과 비교하면 등장인물이 쓸데없이 많았어요.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도 정신 사납기는 똑같습니다. 전작인 <다크 나이트>에서 중심인물은 배트맨, 조커, 하비 덴트 정도였고, 여기에 짐 고든과 레이첼 도스가 보조였죠. 삼각구도에다가 두어 명의 보조인원이 있었으니 극의 흐름이 안정감 있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배트맨, 캣우먼, 베인, 존 블레이크, 탈리아까지 엮어서 숫자가 훨씬 늘어났습니다. 고든의 비중이 커진 걸 따지면 더 늘어나고요. 이러니 누구 한 명에게 제대로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카메라가 여기저기 방황합니다. 그나마 배트맨, 베인, 존 블레이크의 비중이 높고, 캣우먼과 탈리아는 중요한 역임에도 비중이 은근히 낮습니다. 중심인물이 이렇게 비중이 낮다 보니, 뭔가 아귀가 안 맞는 느낌이 들고 캐릭터를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죠. 영웅과 악당 사이에 잔가지가 너무 많다고 할까요. 그렇다고 주변인물로 소모하기엔 캣우먼, 탈리아가 아까운 캐릭터이기도 하고요.

 

특히 말 많고 탈 많은 탈리아는 역할과 비중, 임팩트가 너무나 미묘합니다. 아버지의 유지를 받드는 것까진 좋은데, 너무 후반부에 갑자기 튀어나왔어요. 따지고 보면 전작에서도 악당이 막판에 튀어나오긴 했습니다. 허수아비와 팔코네를 내세운 라스 알 굴이 그랬고, 조커가 타락시킨 투 페이스가 그랬죠. 허나 라스(듀카드)는 브루스를 인도하고 직접 가르친 스승입니다. 투 페이스는 하비 덴트로서 영화 내내 열심히 활약했고요. 하지만 탈리아의 가면인 미란다 테이트는 듀카드처럼 브루스와 깊은 연관이 있지도 않고, 하비 덴트처럼 주연격으로 활동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보조인물마냥 뒤에서 머무르던 여자가 갑자기 나타나 모든 것이 자기 음모였다니, 관객이 당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죠. 차라리 미란다 테이트가 극중 전면에 나와서 무게감 있게 행동했더라면, 탈리아로서 본 모습을 드러낼 때 훨씬 자연스러웠을 겁니다.

 

탈리아의 가장 큰 단점은 베인을 허무하게 퇴장시켰다는 겁니다. 베인은 후반까지 작품을 책임지는 악역으로 지옥의 사자인양 카리스마를 만방에 뿜어냈습니다. 그러나 탈리아와의 관계가 밝혀지자 지옥의 사자는 졸지에 눈물 흘리는 순정남으로 변모합니다. 사적인 감정 따위 없이 대의를 위해 모든 걸 유린하던 악당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급격한 캐릭터 변화죠. 차라리 탈리아를 아예 빼버리고 메인 악당을 베인으로만 밀고 나갔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물론 1편부터 이어온 라스 알 굴의 그림자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는 용병인 베인보다 친딸인 탈리아가 낫겠습니다만. 라스와의 연결성을 위해 너무 많은 요소를 희생한 것 같아요. 베인을 용병이 아니라 라스의 후계자 정도로 설정했으면 어땠을까 싶고요. 불쌍하게도 베인은 또 다른 여성 캐릭터에게 봉변을 당하는데, 캣우먼에게 엑스트라마냥 죽임을 당하죠. 어이구야.

 

캣우먼 역시 하는 일 없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래도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활약도 못 하고 퇴장한 탈리아보다야 백배 낫습니다. 초반부터 등장하고, 배트맨과 이런저런 인연도 쌓았으니까요. 하지만 캣우먼이 빠졌더라도 이야기 진행에 별 무리는 없었을 겁니다. 배트맨을 함정으로 유인하고, 하수구를 뚫어주고, 탈리아를 막기까지 종횡무진 활약은 많습니다만. 이런 것들은 꼭 캣우먼이 아니라도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브루스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건 탈리아나 베인만으로도 충분했고, 배트맨의 조력자가 되는 건 존 블레이크에게 알맞고요. 캣우먼의 조력자 역할을 존 블레이크가 대신했더라면 블레이크가 나중에 로빈이 되는 것도 더 자연스러웠겠지요. 캣우먼은 브루스와 짝을 맺어 해피 엔딩을 장식했다는 것 말고는 큰 의미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렇듯 <프로메테우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가장 큰 단점은 캐릭터 구성이라 하겠습니다. 전자는 많은 인물을 시시하게 처리한 게 문제고, 후자는 중요한 인물들이 정작 별 역할이 없었다는 게 문제입니다. 더군다나 우주 탐사물과 슈퍼 히어로물이라는 장르 특성상 인원이 그렇게 많았어야 하나 의문도 듭니다. 우주 탐사물은 대개 주연 2~3명에다가 보조로 한두 명만 더하면 충분합니다. 슈퍼 히어로물은 악당과 영웅의 대립이 분명해야 하므로 곁가지가 많으면 곤란하고요.

 

재미있게도 이와 정반대로 흥행한 작품도 있으니 초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어벤저스>가 그렇습니다. 사실상 주연만 해도 캡틴 아메리카부터 블랙 위도우까지 7명에 달하는 데다가 조연에다가 악당까지 합하면 그 수가 더 많습니다. 이 영화의 장점은 주요 등장인물이 그렇게 많음에도 균형을 잃지 않고 모든 인물에게 제각기 역할을 부여했다는 겁니다. 우선 세력균형을 지구 쉴드와 외계 치타우리로 나뉘어 대립구도를 뚜렷이 했습니다. 치타우리 군대는 머릿수가 많은 대신 지휘권은 모두 로키에게 있으므로 악당측은 로키 하나로 정리가 됩니다. 쉴드 쪽은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헐크, 토르를 메인으로, 닉 퓨리, 호크아이, 블랙 위도우 등 보다 평범한 인간을 보조로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캡틴-아이언맨, 헐크-토르, 호크아이-블랙 위도우 등으로 짝을 지어 전개가 산만해지는 걸 방지했죠. 장면 전환을 그만큼 덜해도 되니까요. 저는 이 작품의 플롯이 썩 대단하다고 생각하진 않으나, 캐릭터 비중만큼은 정말 훌륭한 솜씨였습니다. <어벤저스>는 굉장히 희귀한 사례로 이런 작품을 또 보기는 힘들 겁니다.

 

어떤 작품은 캐릭터 구성 때문에 흥하고, 또 어떤 작품은 혹평을 받습니다. 사실 스케일 거대한 작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등장인물이 와르르 몰려나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알고 보면 우리가 스케일 크다고 하는 작품들 중에서도 등장인물이 4~5, 심지어 2~3명에 불과한 작품이 많습니다. 등장인물이 많은 서사물이나 대하물에서도 작가가 캐릭터 숫자를 감당 못해 망하는 사례도 있고요. 소설, 영화, 게임을 통틀어 말이죠. 등장인물이 많으면 물리적인 규모는 커질지언정 이야기는 와해됩니다. 캐릭터를 압축시키고 능력이 스토리텔러에게 얼마나 필요한 능력인지 반증하는 경우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주요 등장인물은 4명 안팎이 딱 적당한 것 같습니다. 작가 필력이나 작품 장르에 따라 다르겠으나, 그보다 더 많으면 낭비인 듯해요. 어지간한 서사물은 등장 캐릭터가 많지만, 워낙 인물이 많으니까 작가마저 까먹거나(!!) 혹은 공기화하는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죠.

 

올 겨울에 등장인물이 떼거지로 나오는 장르 영화가 또 개봉하죠. 13명의 드워프가 모험을 떠나는 <호비트>가 그렇습니다. , 원작에서는 소린 오큰쉴드를 제외한 12명은 죄다 엑스트라 취급이므로 영화에서도 다를 건 없겠지요. <반지원정대> 서비스로 발린이나 글로인을 좀 띄워주긴 할 테지만, 과연 얼마나 비중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기실 <호비트>도 인물 숫자야 많지, 진짜 중심인물은 간달프, 소린, 빌보 배긴스 등 3명 위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