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 게시판 - 영화/애니/만화/소설/드라마/다큐멘터리
슈퍼 로봇 이야기, 괴수/괴인/초인 이야기 외에... 다양한 작품과 장르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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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로드>의 치명적인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예전에 코맥 메카시의 <로드> 열풍이 한창인 적이 있었습니다. 2년 전인가, 그보다 더 오래된 것 같네요. 이 작품에 얽힌 이야기가 꽤 많죠. 심지어 국내 홍보문구는 ‘기독교 성서에 비견할 만큼 구원적인 소설’이라고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홍보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고, 그래서 기대감이 엄청났습니다.
허나 제아무리 대단한 걸작이라도 기대감이 너무 높으면 안 되는 법이더군요. 솔직히 처음 읽었을 때는 왜 그리 호평을 하는지 실감이 안 났습니다. 잘 쓴 작품인 건 맞는데, 미친 듯이 읽을만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한 번 읽은 뒤로 다시 손을 안 댔다가 최근에 우연히 두 번째로 읽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라? 문장 하나하나가 아주 마음 속에 절절히 맺히더라고요. 먼저 읽었을 때랑은 전혀 달랐기에 처음 읽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어요. 이래서 귀가 얇으면 안 되는가 봅니다. (흠, 그래도 성서에 비견된다는 홍보는 뻥이 심했습니다.)
저는 코맥 메카시의 다른 책은 본 적이 없고, 요즘 미국 문학의 추세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로드>와 비슷한지, 아니면 <로드>가 유독 특별한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이 책은 형식이 꽤나 독특합니다. 일단 눈에 뜨이는 점은 문장 부호를 과감하게 생략했다는 겁니다. 특히 인물들의 대화를 아무런 표시 없이 그냥 나열합니다.
다른 소설이라면, 줄을 바꾸고 큰따옴표(“”)나 괄호(「」) 등으로 대화문임을 알려줍니다. 허나 이 작품에서는 따옴표를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서로 대화할 때만 줄바꾸기를 할 뿐입니다. 딱히 표시가 없어도 어디까지가 묘사이고, 어디까지가 대화인지 구분이 가고, 누가 어떤 말을 하는지도 헛갈리지 않더군요. 어차피 등장인물이라고 해 봤자 아버지와 아들 두 명이 전부라서 헛갈릴 것도 없지만, 그래도 신기했어요. 대화와 독백 역시 문맥만 살펴봐도 금방 구분이 갑니다.
따옴표가 없기 때문에 인물들의 대사가 조용하고 차분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대화는 남자와 소년이 나누는 거라서 원래 시끄러울 일이 없긴 합니다. 설사 다른 사람과 이야기해도 여러 명이 대화하는 일도 없고, 소리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요. 하지만 문장부호가 없기에 한층 더 고요하게 보였습니다. 말소리마저 바닥으로 침전하는 듯합니다. 다른 소설에서 대사가 음성이라면, 이 소설에서는 ‘대사까지 상황 묘사의 일부’ 같아요. 대사가 아예 장면 그 자체에 녹아 든다고 하면 될까요. 따옴표를 썼다면 느낌이 훨씬 달랐을 겁니다. 아마 좀 더 생동감이 있고, 말소리가 오간다고 느꼈겠지요.
하지만 <로드>는 모든 게 멸망한 세계가 배경이고, 그래서 생동감 있는 대사보다 장면에 녹아 드는 대사가 훨씬 어울립니다. 비단 대사 외에도 의성어나 의태어도 극히 제한해서 쓰더군요. 뭔가 활기차게 움직이거나 소란스럽지가 않아요. 모든 게 죽어있는 듯 보이고, 아마 작가가 의도한 바가 그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특징은 문단이 짤막짤막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여느 소설은 하나의 장(章)에 여러 페이지를 할당합니다. 짧다고 해도 1~2페이지는 넘어가죠. 이와 달리 <로드>는 몇 줄 안 되는 문단으로 각 상황을 나누는 편입니다. 그래서 1페이지 안에 상황 묘사가 여러 개인 경우도 있고, 내용이 후딱후딱 넘어갑니다. 문단 사이마다 공백을 주기 때문에 호흡이 꽤 짧아요. 챕터가 있어서 여러 문단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도 아니라서 병렬식으로 계속 이어질 뿐입니다. 문장도 간결한 편이고, 장황한 묘사나 설명이 없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각 문단마다 배경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문단 한두 개쯤 지나면 배경도 달라져요. 주연인물인 남자는 계속해서 이동하며, 생필품을 구하거나 은신처를 찾으려고 빈집이나 건물, 숲 속을 찾습니다. 같은 곳에 이틀 이상 머무는 적이 거의 없고, 자연히 문단이 짤막하게 나뉘기 마련입니다. 즉, 짧은 문단이 많다는 건 그만큼 남자가 이곳저곳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걸 뜻합니다. 독자도 책을 읽는 호흡이 짧기에 남자와 함께 계속 걷는다는 느낌을 받고요.
길게 이어지는 서사가 아니라 단편적인 장면만 나오다 보니, 꼭 정지사진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소설들이 동영상이라면, <로드>는 각기 다른 사진을 죽 연결한 것에 가까워요. 저는 책을 읽다가 잠시 쉬면서 내용을 되새기곤 하는데, 그럴 때면 책 내용이 강물처럼 머릿속을 흘러갑니다. 그런데 이 책을 돌이켜보면 흐름이라는 게 없었어요. 미술관에 전시한 그림들을 보는 것처럼 그림 한 점씩 따로 기억납니다. (그것도 색감이 칙칙한 흑백 그림이요.) 작가가 의도하고 이렇게 쓴 건지, 아니면 저만 이렇게 느끼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동영상의 활발함보다 정지사진의 정적임이 더 두드러지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던 ‘고요한 대화’와 맞아떨어져 멸망한 세계를 침울하게 묘사하는 데 한몫 합니다. 문장부호 생략, 의성어 제한, 짤막한 단락, 수많은 공백 등의 문학적 기교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더욱 잿빛으로 만들어주는 거죠. 이런 기교가 없었다면, 액션이나 전투 장면은 실감났을지 몰라도 세계가 망했다는 느낌은 덜 묻어났을 테죠.
사족으로 홍보문구에서는 책이 모두 320페이지라고 했는데, 사실 저 공백을 다 빼고 나면 200페이지 조금 넘을 것 같습니다. 하도 공백이 많아서 공백만으로 100페이지는 나올지도 모릅니다. 물론 우스갯소리입니다만, 하여간 공백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페이지가 늘어날수록 원고료도 많이 받는 것으로 아는데, 저렇게 공백을 샤샤샥 집어넣으면 페이지 늘리기에 일조할지도?
이 작품은 단편적인 이야기가 병렬식으로 늘어지는 터라 거창한 내용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내용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우선 남자가 살아남기 위해 길을 걸어가다 뭔가를 먹고 잠자리에 들고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과정을 은근히 디테일하게 설명하더군요. 하기야 따로 등장인물이 없으므로 남자의 행적에 치중하게 되지만요. 이 부분이 남자의 외면적인 모습입니다.
뭘 먹거나 잠을 자지 않을 때는 소년을 바라보며 독백하는데, 이쪽은 내면적인 부분입니다. 소년이 곁에 있어서 희망을 찾고, 자신이 소년을 두고 떠나갈까 봐 두려워하기도 하죠. 소설 시점이 소년은 물론이고 다른 어떤 인물의 속내도 드러내지 않기에 독자는 남자의 심리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저는 외면적인 모습도 궁핍해서 불쌍했지만, 남자가 독백할 때는 마음이 다 저리더라고요. 이 험악한 세상에 소년을 두고 죽는다는 그 절절함이 사무쳤습니다. 누군가의 평가처럼 아버지의 사랑이 아니라 공포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남자의 두려움에 공감하는 이유는 소설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기 때문이겠죠. 위에서 몇 번 이야기한 것처럼 등장인물이라고 해야 어쩌다 마주친 무법자나 약탈자, 지나가던 다른 생존자가 전부입니다. 그것도 오랫동안 함께 지내는 게 아니라 잠깐만 만나고 헤어져요. 게다가 다른 사람과 마주친다고 해도 주변인물과의 관계보다 남자와 소년의 관계를 강조합니다. 약탈자가 혹시 소년을 해치지 않을지, 지나가던 생존자가 소년에게 딴 마음을 품지 않는지 등등 남자는 걱정이 태산이죠.
이러니 기타 등장인물은 오로지 남자와 소년의 관계를 부각시키는 매개체 혹은 들러리 역할입니다. 다른 등장인물이 없을 때는 자나깨나 부자관계를 묘사할 수밖에 없고요. 그냥 아들이 아니라 세상에서 보호해줄 사람이 자기(아버지) 밖에 없는 아들이죠. 등장인물을 극도로 압축한 대신, 등장인물 관계를 치밀하게 우려낸 셈입니다.
여담인데, 역시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외로움을 강조하려면 동행 하나 딸려주는 게 낫겠더군요. 그것도 자신과 다른 동행, 그러니까 어린아이나 동물이면 효과만점. 혼자 다니면 차라리 털털해서 좋습니다. 자기 목숨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거니와, 자기만 죽으면 그만이죠. 허나 동행이 하나 생기면 관계가 그쪽으로 고착됩니다. 어린아이라면 애써서 보살펴주고 보듬어줘야 합니다. 아이는 아직 미성숙한 존재인 만큼 제대로 된 소통이 안 될 테고, 그 바람에 외로움이 더 부각되겠지요. 동물은 더 심한데, 동물이랑은 아예 말이 안 통하잖아요. 동료는 있지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가끔은 어른만큼 똑똑한 아이도 있고, 사람처럼 말도 하는 유전자 조작 동물도 있으나, 이 역시 아이와 동물이라는 태생적 한계는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쪽 케이스의 롤모델로 본받을 만한 건 외로운 방랑자와 도그밋이 아닌가 싶어요. (차후 <라스트 오브 어스>를 기대하는 것도 이런 관계 연출 때문이고요. 조엘과 엘리의 관계는 정말 조화가 잘 되는 듯합니다.)
갖은 생존 지식도 사소한 볼거리인데, 먹거리와 잠자리를 챙기는 남자의 행동을 세세히 묘사합니다. 소설 내용의 절반은 남자가 뭐 하는지 자세히 보여주는 겁니다. 별 말도 없이 묵묵히 일하는 인간상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황폐함을 드러내는 수법이죠. 어둠 속에서 불을 좀 밝히고 싶어도 주유소까지 가서 기름 구해야지, 심지도 찾아야지, 부싯돌도 써야지, 기름 먹일 부스러기도 있어야지, 기타 등등 할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만큼 문명이 망해서 인간이 스스로 모든 걸 헤쳐나가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이런 생존물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제 자신은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얼만큼 대처할 수 있는지 자문하게 되더군요. 개인적으로 생존물이나 탐험물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막상 문명이 무너지면 생존 지식을 써보지도 못하고 꽥 죽을 것 같네요.
알고 보면 모호한 점이 꽤 많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인 남자 이름은커녕 뭐 하는 사람인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습니다. 의사나 생물학자인 듯한 암시가 잠깐 나오지만 확신은 금물이죠. 소년도 마찬가지인데, 소년이 진짜 남자의 아들이라는 보장도 없어요. 단지, 작중 표현이 부자처럼 나올 따름이죠. 소년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도 마찬가지고요. 세상이 망한 원인도 끝내 밝히지 않습니다.
다만, 추측할 수 있는 단서는 널렸는데, 불에 탔다는 설명이 자주 나옵니다. 길거리의 시체는 전부 타버리고, 하늘에선 끊임없이 재를 흩날리며, 물은 시커멓게 물들었습니다. 그래서 전반적인 작품 색체가 회색조입니다. 전쟁이 나자 전략 무기를 날려서 모든 게 잿더미가 되었을 수도 있고, 지각 변동으로 가스나 마그마가 넘쳤을 수도 있죠. 아니면 그냥 지옥을 연상하도록 모든 걸 불태워버렸을지도 모르죠. (모 영화마냥 초월적 거대 괴수가 나타나서 다 불태웠을 수도…. 아, 이건 좀 아닌가.)
소설 시점이 남자만 따라다니기에 세상이 얼만큼 망했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남자도 다른 나라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고 나와요. 뭐, 어쩌면 미국만 그 지경이고, 아시아나 아프리카, 유럽 등은 멀쩡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시아나 유럽은 자기네 사정이 바빠서 미국한테 신경을 못 쓰고, 그래서 미국이 그 꼴로 돌아간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죠. 정확히 밝혀진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다만, 남자의 심정을 너무 암담하게 그려내기에 세상이 온통 망했을 거라고 압도당합니다. 설정이 아니라 심리 묘사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풀어나가는 이 방식이 정말 좋더라고요.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화두를 풀 때는 가까운 미래에 핵전쟁이 터져 모두 망했다면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죠. 그런 클리셰를 피하고, 오로지 한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훑어본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결말 부분에 이르러 남자는 결국 죽고 맙니다. 사실 책 첫머리부터 남자가 죽을 거란 암시가 자주 등장해서 죽는다는 것 자체야 그리 놀랍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혼자 남은 소년이 막막하다는 거죠. 소년 역시 이런 순간이 올 거라고 여러 모로 준비했겠지만, 이런 쓸쓸한 세상에서 준비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아무리 운이 좋아도 어린애 혼자서 살아남기도 힘들 테고요. 남자의 죽음은 곧 소년의 죽음이나 마찬가지죠. 저는 동정이나 연민의 여지 없이 곧바로 책이 끝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구원적으로 끝납니다. 음, 소년 홀로 남겨지고 끝났으면 진짜 암울했을 듯하네요. 소년이 만난 그 가족(?)이 진짜 좋은 사람들인지야 모르겠으나, 정황상 무법자는 아닌 것 같으니까요. 남자가 이 가족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편안한 마음으로 눈 감았을 텐데 말입니다.
다 읽고 책장을 덮고 나니, 왜 이 좋은 작품을 예전에는 몰랐을까 싶었습니다.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주변에서 하도 대단한 책이라고 추켜세우니까 너무 기대치가 높았던 것 같아요. 좋은 작품은 나중에 다시 봐도 빛이 바라지 않으니 다행입니다.
※ 중요한 소품으로 코카콜라가 나오기도 합니다. 슈퍼에서 코카 한 캔을 마시며 재난 이전의 삶을 떠올리는 장면이 있죠. 다른 상표는 하나도 안 나오면서 코크만 나오니까 콜라 광고라는 비아냥도 있는가 봅니다. 원문을 안 봐서 이게 그냥 탄산음료를 가리키는 건지, 아니면 코카콜라를 뚜렷이 지칭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추억을 자극하는 먹거리로 코라콜라가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코크의 상징은 빨간색이거든요. <로드>는 시종일관 재, 눈, 비, 검게 탄 흔적들 때문에 분위기가 칙칙합니다. 소설 분위기가 무채색 계열이에요. 그런데 그 와중에 새빨간 코카콜라는 시각적으로 두드러지게 마련입니다. 이런 시커먼 세상에서 코크만큼 두드러지는 것도 드물 걸요. 당장 대중적인 상품 중에 ‘빨간 색’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저거 아니겠습니까.
※ 소설을 새로운 기분으로 읽어보며 동명의 영화와 비교해보니, 영화의 단점 혹은 한계점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의 특징은 문장부호 생략, 의성어 제한, 짤막한 문단과 자잘한 공백 등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소설만의 특징으로 만화나 영화, 연극, 게임 등 다른 매체가 흉내낼 수 없는 부분이죠. 영화 <로드>도 추레한 옷차림과 배우의 연기로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암울함을 논합니다만. 소설에서 시도했던 것만큼 독특한 기법은 없습니다. 물론 영화가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작품성은 수작이지만, 소설처럼 뭔가 색다른 기법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훌륭한 감상평 잘 읽었습니다. 더 로드...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몇 번을 읽어봤습니다만 읽을 때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더군요. 적응하기에 쉽지 않은 형식으로 쓰여져있어서 처음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먹먹해지고 온 몸이 아파오더군요. 보통 그런 책은 힘들어서 다시 못보는데도 불구하고 몇 번을 읽게되었는데 그건 저도 아들을 키우는 아빠이기 때문인거 같습니다. 역시 책은 제가 처한 입장에 비추어서 해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의 지인은 이 책을 보고 아무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하던데... 이제 결혼하고 애기도 있다던데 지금 읽으면 또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역시 아이를 키워보지 않으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거 아니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화는 불가능하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영화가 나왔습니다만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하네요. 야구아님 말씀대로 정적인 그림 같은 원작을 동적인 영화에 녹여내기는 애초부터 한계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도 비고 모텐슨의 열연과 이미지는 주인공에 잘 맞았다고 생각하고 또한 잠깐 등장하는 안소니 홉킨스와 가이 피어스의 모습도 반갑더군요.
저런 상황에 처해진다면 저는 과연 아들을 위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막막하군요. 많은 사람들이 아이의 엄마처럼 차라리 죽음을 택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역시 사랑이라는 감정과 절박함이라는 감정은 묘한 시너지를 일으켜서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걸 극복하게도 해준다는 생각이 드네요.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이런 문장이 있더군요. "그들(외계인들)은 우주를 여행하면서 마음보다 귀한 것을 보지 못했다..." 저도 아서 C. 클라크의 그 말에 동의합니다.
PS. 혹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영화로 보지 않으셨다면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코맥 매카시의 원작을 영화로 제대로 표현한 수작인듯. 소설보다는 호히려 전 영화가 더 좋았습니다. 하비에르 바르뎀의 섬뜩한 연기를 보노라면 소름이...
커트 보네거트가 좀비 소설을 쓰면 <더 로드>같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코맥 매카시는 간결함, 그리고 쿨한 문장 속에 강렬한 심적 동요를 녹여낼 줄 알고, 장르문학을 순문학 기법으로 쓰는 작가죠.
문학적으로 더 높은 평가는 받는다는 [국경 3부작]은 개인적으로 <더 로드>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거 저런 거 다 떠나서... 저는 <더 로드>가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게 잘 이해되지 않더군요.
작품이 좋지 않다는 의미가 절대로 아니고, 한국 독자들에게는 별로 대중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시절 붐을 일으키고 널리 읽힌 것을 보면 유행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애시당초 <더 로드>를 읽고는 이 책을 영화로 만들어 봐야 그렇게 성공적일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커트 보네거트의 대표작 <챔피온들의 아침식사>를 브루스 윌리스를 기용하여 영화로 만들었지만 망한 것과 비슷합니다.
소설 <더 로드>의 정수는 영화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원작 소설이 갖는 매력이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죠.
연기 잘하는 좋은 배우를 아무리 들이대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영화가 딱히 나쁘지는 안았지만 성공작도 아니었습니다.
...매트릭스의 인간들은 대체 뭘 생각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