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대의 과학상을 보여주는 SF


흔히들 SF는 미래를 예측하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SF물이 있고, 각자 자기만의 미래상을 보여줍니다. 그 중 창작물에서 묘사했던 기술이나 장비가 실제로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이럴 경우 그 작품은 미래를 예견했다며 칭송을 받죠. 이런 사례가 널리 퍼지다 보니 사람들에게 한 가지 오해가 생기는데, 미래를 정확히 예측해야만 좋은 SF’라는 선입견이 불거집니다. 허나 잘 맞아떨어지는 창작물이 많은 만큼,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많습니다. 어쩌면 미래 예측에 실패한 SF물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21세기의 현실은 작가들의 상상과 전혀 달라요. 인공지능은 걸음마 단계이고, 보행 로봇은 겨우 달리기를 시작했고, 유인 우주선은 아직 비싼 산업이고, 자동차들은 매연을 내뿜으며 도로를 달립니다. 인간만큼 지능이 발달하거나 말하는 동물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 복제도 요원합니다. 핸드폰이나 스마트폰의 열풍을 제대로 추측했던 사람도 없었고요.

 

이렇듯 수많은 작품들이 미래 예측에 실패했으니 SF는 가치가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차피 과학의 앞날을 예견하지도 못하는데 과학적 상상력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거죠. SF의 주특기가 미래 예측이라고 알려지다 보니, 그 반작용으로 저런 오해가 생긴다고 할까요. 그런데 이런 주장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합니다. 과학적 상상력의 목표는 미래 예측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SF 작가는 점쟁이나 무당이 아닙니다. 창작가들은 단지 현재 과학력을 기준으로 하여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지 구상해보는 것뿐입니다. 가령, 요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가 대세니까 미래 군인들은 이런 기술을 응용할 수도 있습니다. 손목이나 태블릿 PC를 부착하고 전장 정보를 받으며 싸울 가능성도 있죠. 이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입니다.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어요. 작가를 사칭한 사기꾼이면 모를까, 그 어떤 창작가도 ‘미래에는 반드시 이렇게 된다!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SF물의 핵심인 과학적 상상력은 이름 그대로 상상하는 행위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인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갈지 생각해본 경험이 있을 테고, 저마다 생각한 바가 다르겠죠. 역사에는 수많은 가정이 있고, 그 가정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테니까요. 과학적 상상력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차이점이라면, 현대 과학 기술에 초점을 맞추어 가정해볼 따름입니다. 가정이므로 맞을지, 틀릴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똑같은 과학 기술을 가지고도 서로 다른 상상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작가는 유전자 조작을 소재로 해서 지능이 인간에 필적하는 돌연변이 동물 이야기를 할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작가는 유전자 조작 식물이 환경을 해치고 사람 몸까지 망가뜨리는 작품을 쓸 수도 있겠죠. 두 작가의 상상력은 모두 각자의 가치가 있습니다.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는 게 좋겠지요.

 

무엇보다 SF물 역시 모든 창작물의 기본 소양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창작물은 기본적으로 ‘현실의 거울’입니다. 창작물은 현실이 어떤 형태인지 역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줍니다. SF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SF는 시대의 과학 이슈를 논함으로써 그 당시에 과학 패러다임이 어떠했는지 반영합니다. 사람들이 SF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그때는 사람들이 과학을 이런 식으로 생각했구나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우리는 19세기 고전 SF를 보며, 1950년대 한창 발전하는 SF를 보며, 최근의 21세기 SF를 보며 각 시대에 과학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과거에는 에테르가 실존하며, 공룡은 멍청한 파충류이고, 필트다운인이 진짜라고 믿었습니다. 지금은 빛에게 매질이 필요 없다고 하며, 공룡은 조류의 직계 선조이고, 필트다운인이 사기임이 밝혀졌지요. SF물에는 이런 과학의 시대상이 들어있으며, 그 당시의 과학자와 일반인이 과학을 어떻게 대했는지 말해줍니다. 고전 작가들이 미래 예측을 틀렸다 해도 그 작가들의 SF물이 여전히 가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저는 사실 미래 예측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현실 반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을 기록하고 바꾸는 일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 예측 역시 SF의 매력이긴 합니다만, 현재가 있어야 미래도 있는 법이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무조건 미래 예측에만 매달리는 건 본질을 간과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2. 현실에서 비롯된 가능성을 논하는 SF

 

SF의 가치를 미래 예언으로만 보는 것도 문제지만, 아직도 SF를 외계인이나 과학자 나오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문제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문화적 다양성이 부족한 관계로 한 번 생긴 선입견을 타파하기가 참 힘들죠. 며칠 전에 어떤 블로그에 들렸는데,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SF가 아니다. SF라고 부르는 평론가들은 무지를 반성해야 한다.’는 글을 봤습니다. 그 사람의 논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초인나 광선총은 안 나오니까 공상과학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는 거였습니다. 가령, <로드> 같은 작품은 황량하게 멸망한 세상과 생존자들만 나오죠. 딱히 먼 미래라는 언급도 없고, 돌연변이나 유전공학 괴물도 없고, 과학자가 나와서 어려운 소리를 늘어놓지도 않습니다. 그냥 불타버린 세상을 아버지와 아들이 떠돌기만 할 뿐입니다. 따라서 <로드> 같은 작품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이지, SF에 해당하는 요소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는 SF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주장입니다. SF는 인류의 역사와 현재 상태를 바탕으로 가능성을 상상하는 장르입니다.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해서 단순히 자연과학만 연상하기 쉬운데, 사실 이 사이언스란 단어는 논리적이라는 의미도 포괄합니다. 작가들이 상상하는 비일상적 설정이나 줄거리가 우리 현실에서 비롯하는 논리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SF를 가리켜 ‘일상 속의 비일상’이라고 말했던 모 평론가의 비유처럼요. 겉보기에는 별 연관성이 없는 대체역사물이나 사변물까지도 SF의 범주에 들어가는 건 이 때문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모종의 사건으로 멸망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죠. 전쟁이든, 질병이든,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결국 망하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망하고 난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현실에 입각해 가능성을 탐구하죠. 다른 SF의 하위 장르도 기본 골격은 똑같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로드>도 그렇습니다. 세상이 망한 이유가 뭔지 직접 나오지 않지만, 작중 묘사를 보면 아마 전쟁이나 자연재해(화산, 지진)일 것 같습니다. 모든 게 불타거나 재가 끊임없이 날린다는 표현으로 대강 추측할 수 있죠. 무슨 이유가 되었든 아버지와 아들이 살아가는 그 세상도 결국 우리 현실에서 비롯했습니다. 어디 딴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숨 쉬고 사는 이 세상이 전쟁에 휘말리면 그렇게 변할 수도 있다는 걸 전제하죠. <더 로드>뿐만이 아니라 <메트로 2033>, <세계대전 Z>, <폴아웃>, <워킹 데드>, <일라이> 등 다른 포스트 아포칼립스 작품들도 똑같습니다. 좀비, 방사능 돌연변이, 바이러스, 눈부신 태양광 등 상상력의 변주야 각자 다릅니다.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저마다 다른 소재를 쓰니까요. 그러나 저 작품들은 모두 우리 세상의 다른 가능성이고, 현실의 범위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SF 작품들이 진지하게 가능성을 연구하지는 않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나 우주 서부극은 가능성을 논하기보다 상상력을 극단적으로 키워서 화려함을 강조합니다.어느 분야든 진지한 작품이 있으면 볼거리 위주인 작품도 있는 법이죠. 사실 이 문제는 SF 팬들 사이에서도 오래 전부터 뜨거운 떡밥이었습니다. 진지한 걸 좋아하는 팬은 <스타워즈> 따위가 판타지에 불과하지 SF가 아니라고 비판하죠. 볼거리를 좋아하는 팬은 <2001 우주대장정> 같이 딱딱한 작품만 있으면 SF 창작계가 대중성도 잃고 말라 죽을 거라고 일침을 놓습니다. 요즘에는 다행히 취향을 존중하자는 분위기라서 이런 소모적인 논란이 예전만큼 활발하지는 않은 듯하네요. 어쨌든 하드 SF와 스페이스 오페라 모두 가능성과 상상력 두 가지를 포함하는 건 맞습니다. <스타워즈>라고 해서 아예 가능성을 무시하는 건 아니며, <우주대장정>의 상상력 또한 경이롭고요.

 

SF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는 이유라면, 이런 볼거리 위주의 작품들만 편식하기 때문일 겁니다. 이것도 옛날부터 많이들 지적한 문제점이죠. 대중 작품은 으레 크고 신나고 화려해야 하는데, 사이언스 픽션의 상상력은 그런 요건을 만족합니다. 덕분에 SF 블록버스터 어쩌구 운운하는 홍보문구를 접하기 쉽고, 그래서 SF를 요란하기만 한 부류로 오해하죠. 게다가 이런 작품들의 배경은 미래인 경우가 많아 SF는 미래 예언’이라는 오해에 또 한몫 합니다. 진지하고 사색적인 작품도 많습니다만, 그런 작품은 시장성이 떨어져 찾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장르 문학 평론이나 안내서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나라에서 그런 책을 구하기가 꽤 어렵고, 평론이라고 해야 번역자 후기 등에서나 몇 페이지 나오는 게 고작입니다. 해외 팬 커뮤니티를 찾아 지식을 쌓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애초에 장르 매니아가 아닌 이상 그런 데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을 테고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SF는 현실에서 출발해 가능성을 상상하는 장르입니다. 어찌 보면, 뭐 그렇게 거창하거나 대단할 거 없습니다. 툭하면 세상이 뒤집히거나 웬 거대 괴수가 쳐들어오거나 해서 스케일이 넓고, 외적(현실적) 논리성이 있어야 하니까 쓰고 읽기가 좀 까다로울 뿐입니다. 가능성과 상상력으로 현실을 비춘다는 점이 다를 뿐, 사이언스 픽션 역시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창작물일 따름입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SF를 SFX와 혼동하거나, 광선총이 나와야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아쉬운 건 SF에 관해 잘못된 인식을 완전히 뿌리뽑기는 힘들 것 같다는 겁니다. 원래 선입견이라는 게 한 번 틀어박히면 좀처럼 되돌리기가 힘드니까요. 첫머리에서 말했던 것처럼 문화적 다양성이 풍부하지 못해 그런 현상을 부추기기도 하고요. 인터넷이 아무리 정보의 바다니 어쩌니 해도 이런 마이너(?) 문화까지 바꾸지는 못하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