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 게시판 - 영화/애니/만화/소설/드라마/다큐멘터리
슈퍼 로봇 이야기, 괴수/괴인/초인 이야기 외에... 다양한 작품과 장르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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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영화 때문에 한국에서는 멀쩡한 원작까지 이상한 이미지가 덧씌워졌지만,
하여간 2부 The Gods of Mars가 번역되어 나왔기에 그냥 지나치기는 아까와서 챙겨 읽어 보았습니다.
일단 출판사의 장사속이 별로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 왕년에 1권을 따로 출간해 놓고,
블록버스터 영화 나온다고 1권 2권을 합본으로 출간하는 심보는 도대체 뭔지 잘 모르겠더군요.
예전에 1권을 사 준 독자들을 작정하고 엿먹이겠다는 것인지... SF 독자들이 충성심이 강하긴 하지만,
이렇게 출판사가 노골적으로 독자를 우롱한다는 기분이 들면 제 아무리 착한 독자라도 다 떠나갑니다.
솔직히 왕년에 이 출판사에서 나온 <엔더의 그림자>도 잘 읽고 그래서 나름 호의가 꽤 커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존 카터>를 1부 2부 합본으로 내 놓은 것을 보고 사람 약올리는 것 같아서 상당히 화가 났습니다.
하여간 각설하고 책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1부 화성의 프린세스의 경우에도 주인공이 무적인 무협지와 별 차이없는 활극물이었지만,
속편 2부로 가니까 이제는 존 카터의 아들까지 등장해서 둘이서 더블로 무적의 활극을 벌이더군요.
화성인들이 그들의 믿음에 따라 신들을 찾아 수행의 길을 가거나 모험심이 강해서 신들을 찾아다니거나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뭐 그러면 슬픔에 잠긴 영혼을 달래러 순례 여행을 떠나곤 하는데...
그 신이라는 존재들이 알고 보면 악랄한 사기꾼 집단이어서 이렇게 여행을 떠나 온 사람을 잡아 죽이고,
운 좋게 죽지 않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부리고, 심지어 먹어치우는 잔학한 만행을 벌입니다.
존 카터가 지구에서 간신히 화성으로 돌아오고 보니까 뭣같은 사기꾼 신들의 본거지로 떨어지게 된 것이죠.
존 카터는 분기충전하여 그들과 싸우고, 그러다가 우연히 그들에게 사로잡혀 있었던 아들을 구하고,
이제 아들과 힘을 합쳐 둘이서 죄다가 다 때려 부순다는 얘깁니다.
하필이면 우리의 프린세스 데자소리스는 행방불명된 존 카터와 아들을 찾겠다며 순례 여행을 떠나고,
존 카터와 아들이 적들을 다 때려 잡는 찰라에 골치아프게도 데자소리스가 적들에게 잡혀서
이상한 장치가 되어 있는 감옥에 들어가버리는 바람에 구하기도 힘들게 되어 버리죠.
2편은 마지막 페이지까지도 깔끔하게 결말이 지어지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마는데...
이후 데자소리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무척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그냥 갑자기 끝내버립니다.
너무 심하게 되다 만 결말이어서 책이 파본인 줄 알았습니다 - 갑자기 이야기가 끝나버려서 어이가 없었죠.
아무래도 납득이 잘 안되서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사이트(http://onlinebooks.library.upenn.edu/authors.html)로 가서
Burroughs, Edgar Rice 항목을 검색해서 The Gods of Mars 원서를 다운받아 가지고 2부의 결말부를 확인을 했습니다.
확인해 보니 본래 원작 결말이 그렇더군요. 한국 드라마처럼 그냥 이야기를 하다 말고 끝내버렸습니다.
속편 3편과 연결 짓기 위하여 작가가 일부러 그렇게 결말을 궁금하게 해 놓고 책을 마무리한 셈인데...
불행하게도 <존 카터> 영화가 망하면서 앞으로 한국에서 3부가 번역될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3부는 어쩔 수 없이 원서를 찾아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이라면...
그냥 서효원 무협지를 읽는 것과 별로 차이를 못느끼겠다는 겁니다.
(김용 급까지도 못가고, 그냥 서효원 급이에요)
스토리텔링은 시원시원하지만, 고리짝 이야기를 늘어 놓는 느낌이 당연히 강하고
근본적으로 이 책은 킬링 타임용이지 그 밖에 달리 더 훌륭한 것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버로우즈가 평생 흥미 위주의 액션물만 쓴 것은 아닙니다. <타잔>과 <화성의 존카터> 시리즈 등은 작가로 데뷔한 지 얼마 안되는 초기의 작품이고, 이 시절 작품들은 작가로서 역량이 다듬어지기 전에 쓴 글입니다. 버로우즈는 나이를 먹으면서 더 다양하고 더 깊이 있는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젊은 시절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작가였죠.
문제는... 버로우즈가 중기 이후 쓴 나름 진지한 SF 작품들은, 초기의 <타잔>이나 <화성의 존 카터>에 비해 인기가 없다는 겁니다. 젊은 시절의 글에 비해 재미가 덜하고, 무엇보다 버로우즈라는 작가는 이미 독자들에게 타입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독자들이 그의 책으로부터 바라는 것은 깊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거든요.
버로우즈 장르 소설들이 다 거기서 거기인 듯하군요. <타잔>도 그렇고, <화성의 존 카터>도 그렇고…. 애초에 작가가 특별히 문학적 완성도를 신경쓰지 않고 만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필력만큼은 분명히 뛰어난 작가이긴 하니까요. 듣자하니 잡지 등에 연재하는 장르소설들이 재미가 없는지라 본인이 직접 써보겠다고 창작계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어디까지나 상업적인 재미만을 추구하지, 그 외에 문학적 철학을 집어넣지는 않을 듯해요.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못 하겠습니다만.
어차피 <타잔>이든 <화성의 존 카터>든 우리나라에서 속편이 더 나올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