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기대작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개봉하면서 말들이 많습니다. 대체적인 평가는재미있고 볼만 하지만, 특별한 것이 없고 무난하다고 하는군요. 고등학생 청춘남녀의 풋풋함을 강조하면서 현란한 거미줄 액션을 접합한 건 좋았으나, 충격적인 이야기 전개나 기발한 아이디어는 없다는 뜻입니다. 안정적인 비평이긴 한데, 워낙 기대치가 높았던 터라 상대적으로 실망하는 팬들이 늘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에 개봉했던 마블 캐릭터 영화인 <어벤저스>가 엄청난 흥행을 거두기도 했고, 오랜만의 스파이더맨 영화라서 잔뜩 기다렸던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한편으로는 이게 1편이기 때문에 이야기 전개가 평이한 게 당연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주인공의 탄생 과정을 설명해야하므로 어느 정도 전형적인 구조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저 역시 1편인 점을 감안하고 관람해야 한다는 주의입니다. 말이 난 김에 다른 초인물 리부트 1편이 어땠는지 기억을 되돌려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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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 이른바리부트의 개념을 사람들 머릿속에 심은 작품입니다. 우리는 요즘 리부트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곤 하지만, <배트맨 비긴즈>가 나올 당시만 하더라도 꽤나 신선한 발상이었죠. 덕분에 이 영화를 팀 버튼, 조엘 슈마허 작품에서 이어지는 5번째 이야기로 오해하기도 했고, 왜 잭 네이피어가 아닌 조 칠이 브루스의 부모를 죽이지 않느냐고 따지기도 했습니다. 이전작과는 완벽히 담을 쌓고 새로 시작하는 작품이란 걸 몰랐던 탓이죠. 이야기만 새로웠던 게 아니라 분위기 자체도 (좋은 의미로) 평론가와 관객의 안면을 강타했습니다.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은 새로운 배트맨 시리즈를 시작하면서현실성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전의 팀 버튼과 조엘 슈마허가 과장되고 만화적인 색체에 의지했건 것과 정반대의 시도였죠. 아니, 이전까지는 초인물 자체가 만화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는데, 이 영화는 그걸 해냈습니다.

 

신선한 분위기 전환과 달리 내용은 심심한 감이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우직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별로 튀는 구석이 없었죠. 놀란 감독이 자기 할 말을 우격다짐으로 다 집어넣기는 하는데, 너무 솔직하고 담백해서 큰 여운이 없어요. 특히 팀 버튼 감독의 1편을 기억하는 관객은 독특한 캐릭터 해석과 음울한 전개를 그리워하며, 크리스토퍼 놀란의 무난함을 비판했습니다. 게다가 초반 그림자 군단은 아무리 잘 봐줘도 동양(일본) 신비주의 냄새가 너무 강해서 비판의 불길에 부채질을 했습니다.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조엘 슈마허가 망친 배트맨 시리즈를 그나마 되살렸다는 것에 의의를 둘 뿐, 작품 자체적인 완성도로 칭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요. 텀블러 추격씬이 아니었다면 아예 안 봤을 거란 말까지 있었으니, . 분위기만 새롭지 특별히 강렬할 게 없는 시작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있었기에 그토록 칭송 받는 <다크 나이트>가 나왔음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확립했던 느와르, 범죄물, 현실적 연출을 절정까지 끌어올린 속편이 바로 <다크 나이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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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리턴즈: , . <슈퍼맨 리턴즈>는 위치가 좀 애매합니다. 일단 리처드 도너가 만든 설정을 따라가긴 합니다. 슈퍼맨과 로이스가 하룻밤 관계를 맺었다든가, 슈퍼맨의 활약으로 땅투기하던 렉스 루터가 감옥에 갔다든가, 가발을 자주 쓰고 고함을 질러대는 렉스 캐릭터라든가 등등. 그도 그럴 것이 감독인 브라이언 싱어가 리처드 도너 영화 팬이기도 하고, 영화 제작에 앞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지요. 허나 단순한 속편이라고 보기엔 설정이 여러 모로 엇갈리기 때문에 팬들은속편인 척하지만, 사실은 리부트라고 봅니다. 따라서 이 영화도 엄연히 따지면 (일부분이라도) 리부트 계열에 속한다고 봐요. 브라이언 싱어는 비록 설정을 새롭게 꾸미긴 했으나, 리처드 도너의 방식을 최대한 존중하고 그 분위기를 지속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오프닝과 테마 음악, 말론 브란도의 조엘을 그대로 가져왔을 뿐 아니라 전체적인 색감과 분위기마저 리처드 도너 영화를 연상케 합니다. 80년대 슈퍼맨에 향수가 있던 관객이라면 추억을 되새기기 딱 좋습니다.

 

문제는 브라이언 싱어가 추억을 되살리는 데 너무 과하게 몰입했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는 향수를 자극했다는 점을 빼곤 관객에게 딱히 새로운 뭔가를 제시하지 못합니다. 발달한 시각효과 덕분에 날쌔게 고공 비행하는 슈퍼맨을 볼 수 있긴 합니다만.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엑스맨 3>이나 <판타스틱 4> 등의 영화에서도 그 정도 비행 액션은 나왔기 때문에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수퍼맨이 거대 괴물과 싸우거나, 사회적인 메시지로 고민하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여전히 렉스 루터와 크립토나이트를 가지고 투닥거리기만 할 뿐이죠. 그래서 이 영화는 슈퍼맨이 지구로 귀환해 항공기를 구출하는 부분까지가 딱 절정입니다. 그 이후에 로이스와 알콩달콩 연애하는 부분은 늘어지는 감이 있고, 관객이 기대했던 볼거리에 미치지 못해요. 결과적으로 비평과 흥행이 그냥 그랬고, 새로운 감독이 새 시리즈를 또 리부트하는 중입니다. 슈나이더 감독이 <맨 오브 스틸>이 한창 제작 중인 것으로 아는데, 이 영화는 또 어떻게 나올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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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크레더블 헐크: 이안 감독은 에릭 바나를 기용하여 <헐크>를 만들었습니다. 철학적인 깊이가 있었으나, 헐크 특유의 시원시원한 액션이 부족하여 호평이 갈리던 영화였죠. 마블 스튜디오는 자신에게 판권이 돌아오자 <아이언맨>에 이어 <인크레더블 헐크>를 준비합니다. 이 영화 역시 위치가 애매한데, 브루스 배너가 남미에서 도피 중이란 설정은 이안 감독 <헐크>의 엔딩과 비슷합니다. 허나 브루스가 감마선 사고를 겪는 오프닝을 보면 리부트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설정은 이후 <어벤저스>까지 이어지고요. 마블 스튜디오는 새로 만드는 김에 전편의 철학보다는 원작 코믹스의 재미를 목표로 잡았습니다. 브루스 배너는 보다 왜소하고 가냘픈 에드워드 노튼으로, 악당 역의 비중을 늘려서 중견 배우인 윌리엄 허트로 기용했고, 헐크의 액션을 더 과감하게 보여주는 한편, 어보미네이션이란 맞수도 내보냈죠. 기획만 놓고 보면 꽤 그럴듯한 액션물이 나왔어야 했습니다.

 

문제 아닌 문제라면, 이 영화가 리부트임에도 속편 형식이라는 점입니다. 헐크로 변하는 과정은 오프닝에서 슬쩍 이야기하고 넘어가며, 브루스가 미군을 피해 도주하는 내용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감독인 루이스 리테리어 입장에서는 있지도 않은 전편을 상정하고 속편을 만들어야 했을 겁니다. 원래는 1편을 만들면서 자기 색깔을 확보하고 어느 정도 분위기를 만들어 놓은 후, 2편에서 그 동안 쌓아뒀던 기량을 펼쳐 보이는 게 정석이죠. 가끔 천부적 재능으로 속편 만들기에 진가를 발휘하는 감독도 있습니다만, 이건 드문 경우고요. 리테리어 감독에겐 1편을 준비하며 자기 색깔을 쌓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크레더블 헐크>는 별다른 내용이나 철학 없이 브루스 배너가 도망치고, 도망치고, 막판에 또 도망치는 내용이 전부입니다. 브루스 배너가 헐크 변신을 자유로이 조절하는 것도 중요한 테마인데, 이것도 대충 넘어갔죠.

 

그나마 에드워드 노튼이 생명 창조에 관련된 철학을 넣으려고 했으나, 마블 스튜디오가 이를 거절하고 결국 평범한 도주물로 나왔죠. 흥행은 미묘하고, <어벤저스>의 성공에도 <인크레더블 헐크 2>의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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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형식상 프리퀄이지만, 이 영화 역시 단순히 프리퀄이라고 하기엔 브라이언 싱어 시리즈와 어긋난 부분이 꽤 많죠. 따라서 리부트 계열에 속하며, 새롭게 시작하는 1편 작품으로 가장 평가가 좋지 않나 싶습니다. 이 영화는 모든 걸 갈아엎었습니다. 분위기, 캐릭터, 배경, 사건, 주제까지 다릅니다. 사이클롭스나 스톰, 울버린 등 젊은 돌연변이들이 아니라 찰스 교수와 에릭 랜셔가 주축입니다. 그만큼 돌연변이란 게 초기 상황이라 사회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아직 따갑지는 않습니다. 정부 주도하에 사건을 진행하고, 냉전 시기라 마치 첩보물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죠. 기존 영화 시리즈가 돌연변이 생존물에 가까웠다면, 이 영화는 복고풍 대체역사물입니다. 매튜 본 감독은 모든 걸 새롭게 단장하고, 그런 시도가 멋지게 성공했습니다.

 

후속편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미지수입니다. 대체역사물로 시작했으니 아마 속편도 역사적 사건에서 우왕좌왕하는 돌연변이를 묘사하지 않을까 싶어요. 돌연변이 세력이 엑스맨과 브라더후드로 확실히 갈렸으므로 두 세력의 치열한 싸움이 더해질 테고요. 이 프리퀄/리부트 시리즈가 과연 어디까지 성공할지 당장 판단은 무리입니다. 중요한 건 매튜 본이 좋은 리부트란 어떤 것인가를 확실히 보여줬다는 점입니다. 이전 시리즈를 서툴게 따라가거나 반복하지 않았던 점이 참 좋았습니다. 자기 특기를 확실히 알고 그걸로 끝까지 밀어붙였죠. 다만, 이건 대규모 인원이 나오는 엑스맨 시리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엑스맨이야 중심인물이 다양하지만, 배트맨이나 슈퍼맨은 주인공이 오직 한 명뿐이니까요. 엑스맨은 인원이 많아서 그만큼 시리즈화나 리부트가 쉽다는 게 장점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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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에미이지이이이잉 스파이더맨은 어떨까요. 마크 웹 하면 항상 따라붙는 영화가 <500일의 썸머>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코미디 로맨스물이죠. 마크 웹은 자신이 잘 하는 분야를 그대로 초인물에 접목했습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는 감수성이 한창 예민해 심장이 콩닥거리는 10대입니다. 바로 이 꽃다운 청춘의 두근거림이 영화를 지탱하는 힘이며, 관객들이 감정이입하는 매개체입니다. 피터가 벤 삼촌과 메이 숙모에게 반항하며 집을 뛰쳐나갈 때, 대다수의 관객은 자신의 어렸을 적을 떠올렸을 겁니다. 그웬 스테이시가 피터에게 수줍게 말을 걸 때는 다들 자신의 첫사랑을 기억했을 법하고요. 초인물로 전환하는 몇몇 부분을 제외하면, 이 영화는 줄곧 하이틴 로맨스로 달립니다. 피터와 그웬의 관계는 작중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이며, 오히려 피터와 벤 삼촌, 피터와 코너스 박사와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게 다룹니다. 샘 레이미 시리즈가 피터의 고등학생 시절을 그저 초반부에 후딱 넘긴 것과는 큰 차이점입니다. 메리 제인이 그저 전형적인 히로인이었던 것과도 선을 긋고요.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는 스파이더맨보다 피터 파커의 비중이 더 큽니다. 스파이더맨이 제대로 활약하는 건 후반부이며, 중반부는스파이더맨을 가장한 피터 파커의 활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니, 후반부마저 스파이더맨보다 피터 파커가 더 많이 보이기도 해요. 그래서 신나게 때려부수는 블록버스터치곤 슬쩍 늘어지는 부분도 없지 않은데, 피터와 그웬의 로맨스가 이어지기 때문이죠. 워낙 청춘물 향기가 강하기 때문에 로맨스물에서 초인물로 뒤바뀌는 시점이 약간 어색하기도 합니다. 정신 없이 치고 받는 걸 기대한 관객은 아마 실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이틴 로맨스가 65%, 초인물이 35%인 영화라고 할까요. 액션 역시 다른데, 샘 레이미 시리즈에서 자주 나왔던 공중전과 고공 격투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스파이더맨은 여전히 마천루를 누비고 다니지만, 주요 격투는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이루어집니다. 리저드 자체가 공중전에 어울리지 않는 악당이기도 하지만, 샘 레이미 액션과 차별화하려는 마크 웹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간단히 비교하자면 이렇습니다. 샘 레이미 영화를 보고 나오면, 머릿속에 스파이더맨의 액션 장면이 남습니다. 반면, 마크 웹 영화를 보고 나오면, (스파이더맨은 가물가물하고) 피터와 그웬이 깨를 쏟아내는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제목과 달리 피터 파커에게 초점을 맞춰서 관람해야 하지만, 그럴 관객이 얼마나 될지. 이야기 전개가 평이하다고 느끼는 관객들은 아마 피터보다 스파이더맨에 더 집중해서 그런 거 아닌가 싶습니다.

 

이전 시리즈와 또 다른 차이라면, 스파이더맨 탄생에 관한 크나큰 떡밥이 있다는 점입니다. 샘 레이미 시리즈만이 아니라 이전의 다른 코믹스, 드라마,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도 사실 스파이더맨의 탄생은 우연이었습니다. 피터 파커가 어쩌다 거미에 물렸다 정도로만 나왔죠. 허나 이번 리부트에서는 우연이 아닌 필연 혹은 음모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와 함께 노먼 오스본의 아지트에 가까웠던 오스코프가 비밀을 풀 중요한 실마리이자 사건의 원천으로 등장하네요. 1편이기 때문에 복선만 깔아두고 끝나는지라 관객 입장에서는 좀 감질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번 리부트 시리즈에서 가장 중심적인 내용일 수도 있는데, 알려주지 않으니, 이것 참. 제가 보기엔 아마 3편 정도는 가야 떡밥을 완전히 회수할 것 같더군요. 아마 마크 웹 시리즈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이 의문을 회수한 다음에나 가능할 듯합니다. (코믹스 독자들은 얼티밋 시리즈와 비슷한 전개라고 추측하더군요.)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습니다. 마크 웹 시리즈는 이제 막 첫발걸음을 뗐습니다. 감독의 특기를 살려 초인 액션보다 로맨스와 청소년 성장에 더 주력했고요. 영화 곳곳에 사랑스러운 요소가 포진했으나, 아무래도 강렬하고 치열한 초인물을 기대했던 관객에겐 미적지근할 겁니다. 특히, 초인물로서의 완성도가 정점에 달했던 샘 레이미판 <스파이더맨 2>를 기억하는 관객에겐 더 그러하겠지요.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마크 웹은 이제 시리즈를 시작하기 위해 기반을 다졌을 뿐입니다. 다른 리부트 사례를 봐도 처음부터 자기 색깔을 완벽하게 펼쳐 보일 수는 없으며, 자신만의 분위기를 구축했으므로 속편에서 더욱 상승한 기량으로 승부를 보겠지요. 게다가 영화의 핵심적인 열쇠인거미남 탄생의 비밀은 이제 그 실마리가 막 풀렸을 따름입니다. 피터 파커가 어떤 음모에 휘말릴지, 앞으로 어떤 놀라움을 마주칠지는 장담할 수 없어요. 마크 웹 시리즈를 단정짓기 전에 이 점을 감안했으면 합니다.

 

 

※ 리부트 초인으로는 퍼니셔나 닉 퓨리도 있긴 합니다만. 이들은 별로 화제도 못 되고, 흥행도 안 된 터라 그냥 생략했습니다. 배트맨과 슈퍼맨, 헐크, 엑스맨 정도면 리부트 사례로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