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그녀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공허하다고나 할까. 분명 그녀의 시야에는 넓지도 좁지도 않은 금속성벽으로 둘러 쌓인 실내의 모든 것들이 들어가겠지만 그녀는 아마도 무릎을 끌어안은 채 그 어떤 것도 보고 있지 않은 것이리라.

 

 

“……면 되는데, 너 듣고 있냐?”

 

 

며칠을 세면실과 담을 쌓고 지냈을 것 같은 사내가 고개를 푹 수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리도 아니다 10분 동안이나 떠들어댄 말들이 방금 소귀에 경 읽은 꼴이 되어 버린 참이니까.

 

 

“스피어, 폭스리더로 부터 목표 상공에 접근한다. 투하 30초 전.”

 

 

어딘지 다급한 목소리였지만 소녀에겐 그런 것조차도 상관없다는 듯.

 

 

“알고 있어. 없애버리면 되는 거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머리카락이 걸리지 않도록 헬멧을 쓴다. 강화전투복 초기 타입. 빛 반사를 최소화한 올 블랙. 공기역학 때문인지 슬림하고도 심플한 디자인. 호완이 달려있지만, 아니 오히려 호완이 가장 도드라져 보이는 만큼 그녀의 몸이 얼마나 가늘고 여린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너 말이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가람시티 시계탑 아래에서 파는 것. 바닐라에 딸기를 섞어서 초코 시럽을 두른 것.”

 

 

소녀는 사내의 말을 혼잣말처럼 막아버리고는 160은 고사하고 150도 될까 말까한 작은 몸을 움직여 해치로 다가간다.

 

 

“스피어, 실행여부 확인바람.”

 

 

사내는 소녀를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바라본다. 소녀도 그에 응시해 왔지만 알 수 있다. 헬멧 속에 든 얼굴 표정은 조금 전과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사내는 짧게 혀를 차고는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아, 감도양호. 시작해도 좋다. 스피어로부터 각 전술팀에. 상황 보고 확실히 하고 작전대로 움직여라.”

 

 

해치가 열리고 소녀는 사내를 외면했다. 그녀는 사내쪽을 돌아보는 일 없이 해치 바깥, 5000미터 상공으로 당연한 듯 몸을 날린다.

 

 

“좌표전송. 오차 값 수정, 전송 시작.”

 

 

등에 백팩 형식으로 짊어진 ACS(Attitude Control System)가 화염을 토해낸다.

 

 

투타타타-.

 

 

마이클은 방아쇠를 누른 채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강화전투복의 관성중화기능으로도 중화되지 못한 충격이 팔을 통해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감이 없다.

 

 

전투의지를 상실한 사람들. 그들의 비명소리, 녀석에게 닿지 않고 제멋대로 날아간 탄환의 흔적들. 어쩌다 유류고에 맞기라도 했는지 화염기둥이 치솟고 폭음이 들리는데도, 순백의 신체를 가진 녀석은 기다란 팔을 휘둘러 건물을 부수고 사람을 짓밟았다. 그랬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상황 앞에서 그는 현실감을 느낄 수 없었다.

 

 

“총열이 과열 되었습니다. 사격을 중지해 주십시오.”

 

 

평소에는 지나치게 감정이 없다고 투덜거렸을 마더(mother)의 기계적인 음성에서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마이클만이 느끼는 감각은 아니리라.

 

 

“내부 온도조절을 커트하고 전부 총열 냉각을 서둘러, 로켓을 쓴다.”

“Aye aye Sir. TC(Temperature Controller)퍼지. 로켓발사모드.”

 

 

강화전투복 팔목부분에서 액화질소가 분사되며 빠르게 기화한다. 마이클은 장전 손잡이를 당기고 방아쇠를 당겼다. 온도조절기가 꺼지자 순식간에 후끈해지는 공기. 뻐근하게 전해져 오는 팔의 감각. 꿈이라는 느낌은 더 이상 들지 않을 터였지만 그렇다고 현실감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허벅지에 메달아 놓은 것 같은 슬롯에서 로켓을 꺼내 바주카총열에 밀어 넣고 장전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삐빗 -.

 

 

“경고. 회피기동 해 주십시오.”

 

 

투곽-. 하는 둔탁한 소리.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몸이 떠오른다. ACS가 필사적으로 화염을 뿜어내고 스크린이 붉게 물든다.

 

 

“피격 당했습니다. 전면흉부장갑 대파. 그 외 손상은 경미합니다. 작전속행 가능. 회피기동 해주십시오.”

 

 

자신이 한심하게 뻗어 있다는 걸 깨닫는 것에만 3초가 걸렸다. 가슴장갑을 거의 뚫고 들어온 철제 파이프를 뽑아내는 순간에도 마더의 목소리는 한 없이 차분했다.

 

 

“회피기동 해 주십시오.”

 

 

마이클은 몸을 일으켰다. 조금 아프거나 어디가 둔감해 지는 정도의 감각은 있으면 좋으련만. 마이클은 쓴 웃음을 흘렸다.

 

 

“부소대장 상황 보고하라.”

“브라보에서 경상자 1명을 제외한 대원들의 부상은 없습니다. 민간인 사상자는 쉘터가 파괴된 탓에 아직 파악하지 못했고, 부상자 호송을 겸해 브라보팀을 민간인 피난 임무에…….”

 

 

이스턴우드 사막의 열기는 풍경을 일그러트린다. 하지만 마이클이 보기에는 그것이 기온 때문인지 자신이 현실감 충만한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인지 분별해 내기 어려웠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청명한 코발트블루.

 

 

“알겠다. 작전 속행한다.”

 

 

동시였다. 마이클이 총을 다시 받쳐 든 것과 상공에서 섬광이 쏟아져 내린 것은.

 

 

35mm 성형작약탄과 미사일-소형이긴 했지만-에도 끄떡없던 ‘녀석’의 몸에 강화전투복 주먹이라도 드나들 만큼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또 한번 섬광이 녀석을 물어뜯는다. 이번엔 왼쪽 어깨를 관통한다. 세발, 네발. 수 백 미터밖에 떨어진 동전조차도 식별하는 강화전투복 고글로도 보이지 않는 까마득히 먼 상공에서 섬광은 쉴 새 없이 떨어지고 그때마다 녀석의 몸을 소멸시켜 간다.

 

 

가냘픈 신체 곡선으로 볼 때 여자, 아니 소녀가 분명한 그것은 자신의 키보다도 더 긴 라이플을 손에 든 강화전투복 차림의 병사. 풍경이 일그러지는 이스턴우드의 사막 위에서 녀석이 흩뿌린 푸른색 꽃잎 속에서 자신의 무기를 늘어트린 채 초연히 서 있었다.

 

 

“쌍소멸반응 확인. 목표 파괴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