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과학 포럼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SF에 대한 가벼운 흥미거리에서부터 새로운 창작을 위한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여기는 과학 소식이나 정보를 소개하고, SF 속의 아이디어나 이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상상의 꿈을 키워나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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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으로 뒤덮인 아라키스. SF물에는 이처럼 한 가지로만 이루어진 행성이 종종 나옵니다.]
지구는 다양한 모습을 갖춘 행성입니다. 얼음 천지인 극지방부터 저위도의 열대 우림, 황량한 모래사막부터 찌를 듯한 산맥, 그리고 대륙을 둘러싼 광대한 바다까지 지역마다 생김새가 다르죠. 이 중 어느 하나만 지구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SF 창작물에는 오로지 하나의 환경으로만 이루어진 행성이 자주 나옵니다. 별 전체가 썰렁한 겨울이라든가, 극지방까지 모조리 정글이라든가 하는 식입니다. 이런 행성은 지구와 전혀 다른 세계를 구축해 환상을 극대화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행성 환경이 오직 하나로만 고정되었다면 그 곳의 생태나 풍습은 우리와 전혀 다를 것이고, 판타지 세상이 따로 없겠지요. 또한 기후가 혹독한 만큼 각종 사건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사방 천지가 온통 얼음이나 모래라면 인간이 적응하기 힘들 테죠. 자연히 생존물 혹은 모험물이 될 테고, 작가 입장에서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수월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의 경우, 스케일이 넓어지는 특징도 있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주인공이 우주선을 타고 각종 행성을 돌아다닙니다. 따라서 각 행성마다 차별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어요. A 행성은 활활 타오르는 화산, B 행성은 온통 차가운 얼음, C 행성은 대부분이 바다, D 행성은 물결치는 플라즈마 등등. 만약 작품에 나오는 행성이 다 비슷한 기후라면, 우주를 쏘다니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겁니다. 환경에 관심 많은 작가들은 극단적인 가상 실험을 할 수도 있겠지요. 지구와 순환 법칙이 당연히 다를 테고, 그런 행성에서 어떻게 생명이 살아가는지 묘사하니까요. 행성 전체를 사막화시켜서 현재 닥치는 이상 기후를 경고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 드물지만, 거대한 크리쳐를 묘사하기 위해 극단적인 행성을 써먹기도 합니다. 바위로만 된 행성이 알고 보니 커다란 바위 거인이었더라, 하는 거죠. 잘못하면 허풍이 심해져서 자주 나오는 설정은 아닙니다만.
이런 부류의 행성으로 가장 유명한 게 아마 아라키스일 겁니다. 소설 <듄> 연대기에 나오는 무대인데, 별이 전부 모래와 바위입니다. 극지방에 얼음이 좀 있는 것 빼고는 온통 누런 캐러멜 색깔이죠. 이곳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막인 만큼 수분 부족입니다. 식물이고 동물이고 어떻게든 물을 아끼는 쪽으로 진화했고, 원주민들은 작은 물방울이라도 극히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본래 이곳은 초록이 우거진 행성이었다고 하나, 어느 순간부터 정착한 모래송어가 물을 죄다 집어삼켜 모래만 남았다고 합니다. 덕분에 우주에서 유일하게 멜란지 스파이스가 나오는 곳이 되었지만, 여기 사는 삶은 가혹하기 그지없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극지방에서 저위도로 순환하는 수분을 모아 기후를 바꿔보려고 시도합니다. 나중에는 결국 성공하고요. 참, 발 밑이 대부분 모래인지라 위급하면 후다닥 파고 들어가 은신이 쉽다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
[겨울 행성 게센. 설정은 별로 안 나오지만, 냉랭한 분위기가 참 일품입니다.]
뜨거운 모래행성과 반대되는 게 죄다 눈뿐인 게센입니다. 소설 <어둠의 왼손>의 주무대인데, 행성 이름 자체가 겨울이었나 그랬을 겁니다. 문자 그대로 항상 눈보라가 몰아치고 폭풍이 불기 일쑤죠. 이렇게 보면 살기 막막할 것 같으나 여기도 엄연히 사람 사는 곳이고, 주인공은 다른 행성에서 동맹을 맺기 위해 찾아옵니다. 허나 이 작품은 겨울 행성의 낯선 생태를 다루기보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게센 거주민은 양성인데, 평소에는 남성으로 지내다 특정 시기가 오면 여성이 되거든요. 주인공이 어느 게센인과 눈보라를 피해 달아나던 때가 하필 성이 바뀌는 시기였죠. 주인공은 남성인데, 성별이 바뀐 게센인과 관계를 맺을 듯 말듯 분위기가 참 말도 못하게 애틋하면서도 애로합니다. 사실 이 소설에서 겨울이란 기후는 이런 애틋함 혹은 단절됨을 강조하는 장치이지, 생태학적으로 그리 이야기할만한 부분은 없어요. 소설 출간 시기가 시기인 만큼 게센이 러시아의 비유라서 춥다는 비평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겨울 행성이라고 하면 무조건 게센부터 생각납니다.
영화 <스타워즈>는 극단적인 행성들이 자주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죠. 사막행성 타투인, 얼음행성 호스, 가스행성 베스핀, 용암행성 무스타파도 있습니다. 이중 무스타파는 영화상에서 제일 늦게 등장했는데, 시커먼 재와 밝고 노란 마그마가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이런 곳에 도대체 누가 사나 싶지만, 의외로 거주민도 있나 봅니다. <시스의 복수>에서는 광물업이 한창인 것으로 나왔는데, 대개 작업은 드로이드가 맡더군요. 오비완 케노비와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여기서 한바탕 싸웠는데, 결국 아나킨이 졌고 마그마에 팔과 다리가 타버리죠. 시디어스는 하는 수 없이 기계 신체를 덧붙여 사이보그인 우리가 아는 다스 베이더가 탄생했습니다. 무스타파처럼 마그마 용솟음치는 곳이 아니라 평범한 환경에서 싸웠다면 아나킨이 어떻게 되었을까 싶습니다. 어차피 팔다리는 잘렸겠지만, 지금만치 홀랑 불에 타버리진 않았을 테니까.
[무스타파 같은 별은 정말 생명이 살기 힘들 듯. 베이더의 탄생지인 것도 그 때문일지도.]
베스핀은 구름 속에서 높다랗게 솟아오른 도시의 첫인상이 굉장했죠. 주변이 온통 넘실거리는 터라 무슨 신선 세계에 온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제국의 역습>을 볼 당시는 자세한 과학지식이 없는지라 ‘목성형(가스) 행성에 살려면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그 몽환적인 외견에 비해 어떤 생명체가 살지는 의문이네요. 아마 랜도 칼리시안이 여기서 가스 자원을 파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주변이 죄다 가스니까 팔만한 자원은 반영구적일 듯. 이건 제 의견입니다만,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베스핀 가스는 요걸 오마쥬한 게 아닐까 싶어요. 여러 SF물을 짬뽕해서 별별 행성이 다 나오는 이 게임에 가스 행성이 없다는 것도 희한하다면 희한한 점. 아마 기체 상태의 행성을 맵 텍스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나 봅니다. 맵 자체가 자원이란 것도 밸런스 깨뜨리는 요인이었을 테고요.
온통 뜨거운 행성만 있을 쏘냐, 물로 뒤덮인 별 또한 있습니다. 만화 <아리아>에 나오는 행성 아리아가 그렇습니다. 원래 붉은 별인 화성이었는데 테라포밍을 거쳐 물이 풍부한 아리아가 되었다고 하네요. 극지방 얼음이 예상을 뒤엎고 너무 많이 녹은 덕분에 표면의 90%가 물이라고 합니다. 지구도 70%가 물이라서 물의 행성으로 불리는데, 그것보다 더하네요. 테라포밍을 했다고 하나 계속 관리가 필요하므로 지금도 기후와 지질을 조정하는 듯합니다. 나머지 10% 섬에는 항구를 만들고 이탈리아 도시를 본떠 네오 베네치아로 이름 지었습니다. 주변 여러 섬이 있는데, 제각기 문화가 다르다는 모양입니다. 이처럼 설정만 보면 독특한 SF인데, 만화 자체는 평범한 일상물 위주로 흘러가서 특별히 설정 위주로 나가진 않습니다. 그래도 물의 행성이 인상 깊은 작품. 흔히 한 가지 환경으로 이루어진 별은 살기 힘들 때가 많은데, 아리아는 배경도 멋지고 관광객도 많고 아름답게 그려진 드문 케이스 같습니다.
[물의 행성이라는 설정보다 아름다운 풍경에 치중했던 아쿠아. 설정이 살짝 아쉽기도….]
정글로 가득 찬 행성은 상상하기도 쉽고 비교적 살만하게 보입니다. 아무렴 모래나 얼음, 용암, 가스만 가득한 별보다야 낫겠지요. 허나 카타찬에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게임 <워해머 40K>에 나오는 곳인데, 별이 열대 우림 천지이고, 생명체의 밀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문제는 그 생명체들이 죄다 위험한 놈들이라는 것.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정글의 환상과 공포를 과장해서 묘사했다고 보면 됩니다. 기괴한 식물이나 온갖 독충, 기생 생명체, 거대한 짐승들의 집합소. 비경탐험물에도 이런 곳이 자주 나오긴 합니다만, 카타찬은 외딴 섬이나 일부 지역이 아니라 행성이라 괴물들의 종류와 머릿수도 어마어마합니다. 듣자니 타이라니드 부대도 여기 내려왔다가 토착생물이랑 싸워서 패배했다고 하는군요. 이곳에도 임페리얼 가드가 주둔하는데, 환경이 워낙 험난해 각 병사가 람보 못지않은 정예병이라고 합니다.
카타찬 가드맨에게서 알 수 있듯이 얼음이나 모래, 화염, 정글 등 한 가지 환경으로 이루어진 곳은 좋은 훈련소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살아남기엔 물자나 자원이 부족하고 (혹은 너무 넘쳐나서 감당이 안 되고) 덕분에 알아서 생존 훈련이 되거든요. 행성 자체가 교관이라고 할까요. 아마 이런 아이디어의 시초는 <듄>에서 나왔던 살루사 세쿤더스일 겁니다. 지옥 행성이라 불리는 곳인데, 워낙 거칠어서 병사를 그냥 데려다 놓기만 해도 사다우카라는 정예 병사로 업그레이드가 됩니다. 레토 공작은 이에 힌트를 얻어 모래행성 아라키스의 원주민 프레멘을 끌어들이죠. 프레멘은 사막에서 생존하느라 뛰어난 전사들이었고, 우주에서 모두가 두려워하는 사다우카도 손쉽게 상대합니다. 프레멘 전사 하나가 사다우카 서넛을 그냥 썰어버릴 정도.
덧붙여 개인적으로 정글 행성 하면 게임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2>에 나왔던 LV-1201이 떠올라요. 프레데터 1편 영화가 배경이 정글이죠. 이후 ‘프레데터의 고향이나 근원 행성은 정글’이라는 선입견이 생겼고, 외계 사냥꾼이 우림지에서 활약하는 작품이 많이 나왔습니다. <AvP 2> 역시 그런 관념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으로 배경은 정글입니다. 기괴하게 생긴 나무를 타고 다니며 해병대와 싸우던 장면이 눈에 선하네요. 급기야 영화 <AvP 레퀴엠>에서는 프레데터 고향별이 살짝 맛보기로 나옵니다. 역시나 세간의 인식답게 무더운 정글 행성으로 나왔어요. 다만, LV-1201은 별 전체가 우림에 잠식당했다는 묘사가 좀 부족합니다. <AvP 2> 게임에서는 프레데터만 야외 미션이 좀 있고, 그나마도 우주 기지나 땅굴로 들어가니까요. 오픈 월드로 꾸며서 프레데터가 나무를 지속적으로 오르내리며 사냥도 하고 그런 게임이 나오면 재미있을 듯한데, 쩝. (뭐, 유비소프트에서 비슷한 게임이 10월 말에 나오긴 합니다만.)
[프레데터 관련 행성은 대부분 정글 행성이죠. 원시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기 좋습니다.]
솔라리스는 행성들 중에서도 기이하기로는 최고일 겁니다. 소설 <솔라리스>에 나오는 주인공(?)이자 별이죠. 온통 플라즈마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소설 묘사로는 어떻게 생긴 곳인지 상상이 쉽지 않기도 합니다. 설명이 좀 몽환적인 데다가 낯선 용어가 많이 나오거든요. 솔라리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성격이 있다는 것. 진짜 성격이 있는지 없는지야 모르지만, 화자인 켈빈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물의 심리 묘사가 곧 행성의 생태 묘사로 이어집니다. 켈빈을 물리학자나 천체학자, 생태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로 설정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겠죠. 켈빈은 그 점에 주목하고 솔라리스 그리고 방문자와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하지만, 도루묵으로 끝납니다. 인간의 접촉이 플라즈마 별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미 자체라는 게 있긴 한지 알 수도 없습니다. 행성을 극단적인 환경이 아니라 낯선 생명체로 설정해 기억에 남는 작품입니다.
극단적인 행성이 꼭 물이나 불, 흙 같은 자연적 요소로만 가득한 건 아닙니다. 행성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기계 덩어리일 수도 있어요.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유니크론이 좋은 예입니다. 사실 유니크론은 행성으로 변신(!)하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커다란 로봇일 따름입니다. 항성계에 속하지도 않고, 공전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돌아다니며 다른 별을 먹어 치웁니다. 허나 대체적으로는 천체 취급을 해주는 편이라 이야기해봤습니다. 비슷한 계열로 프라이머스가 있는데, 이쪽은 사이버트론 안에 스스로를 봉인해두었습니다. 변신하는 모습을 보면 역시나 행성 크기의 로봇. 그나마 사이버트론 위에서는 각종 트랜스포머들이 지지고 볶고 사는 중이므로 거주민이 아예 없는 황량한 곳은 아닙니다.
[이것도 행성이라고 해야 하나…. 행성 취급을 해주자면, 기계로만 이루어진 별이겠군요.]
소설 <스타쉽 트루퍼스>에 나오는 클렌다투 행성도 온통 암석으로만 이루어진 행성이란 말을 들었는데…. 작중에는 기동보병하고 아라크니드하고 쌈박질하는 것만 설명하는지라 행성 이야기는 별로 본 기억이 없네요. 하긴 암석 행성은 흔해서 그리 극단적이란 느낌도 안 듭니다.
뭐,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여기서 든 예시는 말 그대로 예시입니다. SF 창작물에
온갖 행성들이 나오는 만큼 극단적인 행성들의 사례는 더 많겠지요. 개인적으로는 ‘겨울 행성’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딜 가도 온통 눈밭인 별 말입니다. 겨울이 주는 쓸쓸한 이미지와 혹독한 기후가 마음에 든다고
할까요. 그만큼 인간이 살아가기 불리할 테고, 그 와중에서 갖가지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겠지요. 비단 겨울 행성만 아니라 다른 극단적인 행성들도 쓰임새가 참 다양할 것 같습니다.
기억하기로는 지구 옆에 바로 붙어있는 '산화철 때문에 붉은 모래로 뒤덮힌' 화성도
정말 모래로 뒤덮힌 모래 사막 지형, 지평선까지 바위투성이인 바위 사막 지형도 있고,
극지방엔 드라이아이스도 쌓여 있는 등 나름 다양한 환경을 보여준다더군요.
'얼음 행성'(저도 얼음 행성 무지 좋아합니다. 스타워즈의 호스나 페스트 같은 곳...) '물 행성' '화산 행성' 같은 건 그렇다 쳐도,
'정글 행성' '숲 행성'같이 원래는 기온 등의 요인에 따라 생태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지형으로만 이루어진 행성들은
한 행성 전체를 하나의 기후를 가진 '지역'으로 봐서 생기는 '지구적 관점'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닐지...
다만 지구가 그렇듯 제아무리 정글 행성이나 눈밭 행성이라고 해도 위도에 따라 기온이 차이날 수밖에 없다는 문제를 무시하고 있기는 하죠.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지 않다고 가정하면 단위면적당 태양빛을 더 많이 받는 적도 부분은 더 뜨겁고 적게 받는 극지는 더 추울 수밖에 없다는 것.
사실 지옥스런 정도라고 하면 저런 행성들은 양반이고, 바로 코 앞에 있는 수성이나 금성, 해왕성 등을 더 심한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사람이 별 장비 없이 멀쩡히 표면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주 탐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행성이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