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이라고 하면, 흔히 거대한 몸집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디노사우르라는 학명 자체가 무섭도록 몸집이 크다는 뜻이니까요. 지금도 가장 큰 공룡 타이틀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논의를 벌이죠. 허나 어디든지 큰 것이 있으면, 작은 것도 있어야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법입니다. 중생대에 살았던 동물들이 죄다 큰 건 아니었고, 공룡 가운데서도 작은 놈들이 있었죠. 다만, 사람들이 하도 커다란 동물만 찾으니까 작은 것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오늘날 아프리카의 국립공원에는 소위 5’라고 하여 사자, 표범, 코끼리, 코뿔소, 물소 등이 주요 관람대상입니다. 여기에 크기가 작은 자칼이나 영양 등은 끼어들 틈이 없어요. 현생동물도 큰 걸 좋아하는데, 고대 동물이라고 오죽하겠습니까. 유명한 부류는 다들 대형종이고, 이 중에서도 크기 경쟁이 벌어지니 작은 개체가 눈에 안 보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작은 공룡, 그것도 그냥 작은 게 아니라 제일 작은 공룡은 뭐가 있을까요. 일단 공룡은 여러 종류가 있으나, 그 가운데서 제일 작은 공룡은 전부 수각류입니다. 수각류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와 알로사우루스로 대표되는 육식동물 집단입니다. 허리가 도마뱀처럼 생겼고, 두 발로 걸으며, 앞발이 손처럼 생겼고, 이빨이 날카롭게 휘어졌으며, 발톱 역시 갈고리 모양입니다. 생긴 모습에서 육식동물이라는 티가 확 나고,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육식 공룡은 전부 수각류입니다. (그렇다고 수각류가 전부 육식공룡인 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수각류 중 일부 종류가 공룡 가운데서 제일 작은 부류입니다. 티-렉스가 이름 그대로 공룡 세계의 왕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같은 수각류 중에서 제일 작은 놈이 나왔다는 게 좀 아이러니하긴 하죠. 흠, 왕과 서민이 같은 계층에 있다고 할까요.

 

‘서민’에 해당하는 일부 수각류를 제외하면, 공룡 가운데 5kg 밑으로 나가는 종은 없다고 합니다. 공룡 중에는 말이나 개, 염소 크기의 종류도 많았으나, 아무리 작아도 고양이보다는 컸다는 뜻이죠. 즉, 아파토사우루스 같은 용각류, 스테고사우루스 같은 검룡류, 트리세라톱스 같은 뿔용류, 안킬로사우루스 같은 갑룡류, 하드로사우루스 같은 조룡류 등에서는 전부 성체 크기가 5kg 이상이었다는 겁니다. 그 원인은 아마 신진대사 때문이었을 거라고 추정합니다. 요즘은 공룡이 온혈 혹은 온혈에 가까운 내온성 동물이었다고 추정하는데요. 온혈 체계는 체열을 유지하는 데 변온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파충류는 먹이를 한 번 먹으면 오래 버틸 수 있으나, 포유류는 자주자주 먹어줘야죠. 공룡이 온혈이나 그와 비슷한 신진대사였다면, 포유류처럼 먹이를 꽤 자주 먹었을 겁니다.

 

그런데 체열을 유지하는 데엔 먹이 말고도 몸집도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작은 동물은 상대적으로 큰 동물보다 표면적이 넓습니다. 넓은 표면적에선 더 많은 열이 사라지고, 그러니 작은 동물은 큰 동물보다 비교적 더 많이 먹어야 합니다. 즉, 작은 몸집은 열 손실이 커지기 때문에 공룡은 이를 막기 위해 필수적으로 몸집을 키웠으리란 주장이 나옵니다. 현대 온혈동물인 포유류와 조류에겐 초소형 종이 있긴 합니다. 5kg 미만의 종도 다양하죠. 문제는 포유류, 조류에겐 열 손실을 막아줄 털과 깃털이 있다는 겁니다. 공룡에겐 열이 빠져나가는 걸 막아줄 대안이 없었고, 체격을 키우는 것으로 타협을 봐야 했습니다. 물론 무조건 이 이유 때문에 공룡이 대형화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몸집과 열 유지에 관한 논지가 그나마 설득력이 있다는 거죠. 이 점은 아직도 논의 중입니다.

 

다만, 공룡 중에도 깃털을 발생시킨 종류가 있습니다. 드로마이오사우루스 부류에 속하는 소형 수각류가 그렇습니다. 학자들은 이와 함께 오비랩터 부류와 테리지노사우루스 부류를 깃털이 달린 것으로 복원했죠. 티라노사우루스 부류의 새끼들도 어느 정도 깃털 혹은 털이 있는데, 크면서 없어졌을 것으로 봅니다. 공룡에게 깃털이라니, 참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긴 하죠. 솔직히 제 기억에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중에게 깃털 공룡 그림은 엽기나 우스개로 쓰였습니다. 도마뱀에 깃털을 달다니, 켓찰코아틀도 아니고 이게 무슨 괴물 딱지란 말입니까. 허나 요즘은 깃털 공룡이 대세이며, 오히려 비늘만 묘사하면 고증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딴지가 걸리죠. 뭐, 게임 같은 데서야 비늘로 그리는 게 더 무섭게 보이니까 깃털을 생략하지만요. 요새는 대중 과학에서도 깃털이 정석으로 인정을 받는 편입니다.

 

흔히 ~랩터라고 불리는 이들 수각류는 깃털이 있으니 몸집이 작아도 열 손실이 적었을 겁니다. 그래서 작은 몸집으로 생존 경쟁을 벌였습니다. 당시 중생대는 초소형 공룡이 없었으므로 초소형 랩터들은 이러한 생태적 위상을 재빨리 차지했을 테죠. 식성은 여전히 육식이었습니다. 헌데 테리지노사우루스 부류처럼 일부 종류는 깃털도 모자라 에너지 보존을 위해 식성까지 바꾸는 극단적 전략을 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기는 질 좋은 에너지원이지만, 얻기가 힘이 들거든요. 거기다 식물은 생산자입니다. 햇빛을 직접 받아서 양분으로 바꾸기에 에너지가 그득하죠. 이와 달리 1차 소비자는 먹은 식물을 양분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상당량의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그러니까 고기는 그 자체로는 질이 좋지만, 태양 에너지가 두 번이나 가공되어서 효율이 떨어진다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수각류임에도 채식주의자 선언을 하거나 식물도 먹는 종이 생겼을 걸로 추측합니다. (내 이름은 테리지노사우루스. 어제 나의 정체성을 깨달았다. 나는 초식공룡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테리지노사우루스 부류는 몸집이 크고 초소형 축에 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식물을 먹으려고 기를 썼겠죠.) 드로마이오사우루스 부류가 초소형 쪽이고, 이들은 몸집이 대략 1~5kg 사이에 퍼졌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특히 가장 작은 종이 미크로랍토르(마이크로 랩터)입니다. 깃털로 체온을 보존하는 전략이 유효해서 몸집이 이 정도까지 작아졌다고 생각해볼 수 있죠. 마이크로 랩터는 길이가 1m가 채 못 되었습니다. 대략 80cm 정도 되었을 거라고 해요. 게다가 랩터들이 다 그렇듯 꼬리가 길었고, 80cm 정도의 몸 크기 중 꼬리가 절반 가량을 차지했습니다. 실제 몸길이는 기껏해야 40~50cm 정도? 그러니까 살아있는 마이크로 랩터를 품에 안으면 쏙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티-렉스가 공룡 중 왕이었다면, 같은 수각류인 마이크로 랩터는 공룡 중 (크기로 따지면) 최하위 서민이었죠.

 

참고로 중생대를 살았던 포유류 역시 이 정도 몸 크기였을 거라고 합니다. 포유류는 거의 대부분 설치류 정도 되는 크기에다가 먹는 것이라고 해 봤자 식물 아니면 곤충이었습니다. 즉, 초소형 랩터가 생기기 전에 포유류들은 생태계의 초소형 위상에서 머물렀죠. 그리고 공룡이 멸종하자 갑자기 득세하여 다양하게 진화했습니다. 아, 뭐, 잠깐 육식성 거대 조류가 지구를 지배하긴 했죠. 흔히 공포새라고 불리는 놈들 말이죠. 허나 공포새는 육식 포유류와 경쟁했다 패배해 사라졌고, 이후 포유류가 지구 곳곳으로 퍼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공룡 세계의 미니미 타이틀은 마이크로 랩터가 차지합니다.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고생물학자나 공룡 매니아들은 여기에 태클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건 현생 조류를 포함하지 않은 결과거든요. 위에서 설명했듯 일부 수각류는 깃털을 발생시켰습니다. 그리고 이걸 체온 유지에 쓰다가 활공에 이용했고, 결국 비행까지 발전했죠. 그래서 공룡(중 일부 수각류)에 이어 조류가 등장했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따라서 조류를 포함하지 않으면, 공룡 세계의 크기 논쟁은 완전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면 조류 가운데 가장 작은 종은 누구인고 하니, 미친듯한 날갯짓으로 유명한 벌새입니다. 새보다 곤충에 가까워 보이는 벌새는 몸무게가 1kg도 안 나가고, 몸길이는 겨우 10cm에 불과합니다. 공룡 세계의 가장 작은 타이틀은 벌새한테 수여해주면 되겠습니다. 참고로 가장 큰 공룡과 가장 작은 공룡을 비교하면 이렇습니다. 공룡 중에서 가장 큰 종은 용각류 Amphicoelias 부류입니다. 길이가 무려 60m나 나간다고 하죠. 조류가 공룡이라고 하면, 가장 작은 공룡인 벌새는 10cm입니다. 60m와 10cm라면 도대체 차이가 얼마나 나는 겁니까. 몸무게는 더 심해서 저 용각류는 122톤이 나간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벌새는 고작해야 1kg에도 못 미칩니다. 양 극단의 차이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죠. 허허.

 

개인적으로 저는 조류가 공룡의 후예라는 게 별로 실감이 안 납니다. 전에도 한 번 말한 적이 있지만, 공룡의 전형적인 특징하고 조류의 특징은 교집합이 없어요. 다만, 일부 수각류의 후예가 조류라고 하면 그건 그럴 듯합니다. 마이크로 랩터가 지금의 벌새로 진화했다고 하면 설득력 있잖아요. 둘 다 크기도 작고, 깃털투성이에다가 골격도 똑같죠. 그러니 이제부터 벌새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공룡이 날갯짓을 하는구나.’하고 생각해도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