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작품 : 엘렉트라 vs 울버린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이후로, 에이버리는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엘렉트라가 이끄는 대로 따라왔다.
엘렉트라는 소녀의 표정에서 그녀의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아마 기억을 되살려 보는 중 일 것이다. 그녀는 이해했다.
왜냐하면 오래전, 그녀도 자주 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엘렉트라는 문득 저렇게 자신의 기억을 떠올려 본 지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소녀였을 무렵, 아직 아버지가 살아계시고 핸드가 나타나기 전.
뉴욕에서 살던 때가 기억에 남았다.
그때의 기억은 슬픔보다 행복이 가득한 때였다.
그들은 사우스 브롱크스 외곽에 있는 물류 창고에 도착했다.
엘렉트라가 감시 카메라들을 무력화 시키는 동안, 에이버리는 길 건너편 창고들 그림자 속에 기다리고 있었다.
쉽고, 단순한 작업이었고, 그녀는 꼼꼼하고 빠르게 안마당으로 통하는 길을 만들었다.
카메라를 처리하면서, 엘렉트라는 소녀였을 적 일을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그녀가 즐겨 들었던 음악, 아꼈던 옷,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
분명 존재하는 기억들이었지만, 마치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유적 속에 파묻힌 상자처럼, 쉽게 꺼내지지가 않았다.
마지막 카메라를 처리하고, 엘렉트라는 철조망 울타리를 잘라서 에이버리와 그녀가 통과할 수 있을 만한 틈을 만들고, 에이버리에게로 돌아갔다.
그녀는 아버지와 런던에 갔을 때, 헤롤드 거리 푸드 코트에서 아버지가 사줬던 밀크 쉐이크를 떠올렸다.
그게 그녀가 처음 마셔본 밀크 쉐이크였다.
블루베리를 으깨서 만든 아주 진한 밀크 쉐이크였는데, 그녀가 너무 급하게 마시는 바람에 나중에 머리가 아팠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짙은 회색빛 정장을 입었었고, 엘렉트라는 그녀가 가장 아끼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가슴 한 가운데 묵직한 먹먹함을 느꼈다.
그녀의 드레스가 도무지 기억에 나질 않았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오래전의 분노가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와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부류들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지 자기 만족을 우선으로 해선 안됐다.
그리고 엘렉트라는 안전보다 개인적 감상에 때문에 시간을 낭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이버리는 아까처럼 길 건너편 골목 입구 안쪽 그림자에 쪼그려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30분 전부터 눈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에이버리가 기다리는 동안, 소녀의 등과 어깨에도 눈이 얇게 쌓여 있었다.
엘렉트라는 소녀가 고요히 있는 법을 알고, 인내할 줄 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녀는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꺼내기 전에, 에이버리가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안전해. 따라와.”
에이버리는 끄덕였고, 둘은 다시 도로를 건넜다.
엘렉트라는 소녀를 먼저 철조망 너머로 보내고, 곧바로 따라 들어가서, 접혔던 철조망을 원상복귀 시켜 놓았다.
그들은 컨테이너들 사이를 재빠르게 이동하였다.
엘렉트라가 번호들을 찾는 동안, 에이버리는 그녀의 팔꿈치 근처에 붙어있었다.
한 열에서 꺾어 들어간 다음, 반쯤 들어가서 다시 꺾었고, 중간 정도 크기의 창고 앞에서 멈춰 섰다. 창고의 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엘렉트라는 자물쇠를 살펴보았다.
금속 뒤쪽에 새겨놓은 가느다란 칼자국을 확인한 후, 그녀는 번호를 입력하였다.
비밀번호만이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그녀가 자물쇠 뒤에 만들어 놓은 자국은 다른 누가 자물쇠를 잘라서 열고 바꿔치기 하지 않았는지 알아내는 수단이었다.
창고는 안전했다.
그녀는 문을 열고, 소녀가 먼저 들어가게 한 후, 따라 들어가면서 문을 닫았다.
창고 안은 완전히 어두워서 밀실공포증이 일어날 정도였지만, 잠깐일 뿐이었다.
엘렉트라가 기억을 더듬어서 백열전구를 켜는 줄을 찾아 잡아당겼다.
빛이 창고 안을 가득 채웠고, 그녀는 소녀의 눈이 빛에 적응하고 새로운 풍경에 적응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언닌 진짜 화려하게 사네요.” 에이버리가 은근슬쩍 한마디 했다.
“전부 필요한 것들 뿐이야.”
“비꼰거였어요.”
“알아.”
그녀는 에이버리가 방 안을 천천히 돌아다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컨테이너들은 대부분 비어 있었다.
작업대가 방 옆쪽에 붙어 있었고, 안쪽 벽에는 모포와 야전침상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아이스박스가 냉장고 겸 탁자용으로 위치해 있었다.
그 위에는 전기 랜턴이 있었고, 그녀가 기분 전환할 때 보는 평범한 소설책이 한 권 있었다.
방안에 다른 물건이라고는 싸구려 옷가방 뿐이었고, 열린 채로 바닥에 놓여 있었다.
안에는 엘렉트라의 장비들과 그녀의 일처리 방식 만큼이나 깔끔한 옷 그리고 수류탄 두 개, 슈리켄 두 주머니, 교살용 끈 같은 잡다한 무기들이 들어 있었다.
에이버리는 찬찬이 방을 돌아보았고, 처음 들어왔던 지점에서 멈춰 섰다.
하지만 이제는 엘렉트라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피곤할거야.” 엘렉트라가 말했다.
에이버리는 고개를 흔들고, 질문을 했다. “아까 엄마랑 아빠에 대해서 말 한거요.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죠?”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해봐. 그것 말고는 그분들의 행동이 설명이 되질 않아.”
“아까 도망칠 계획을 세웠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너랑 같이. 그래 맞아.”
에이버리는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엘렉트라는 소녀의 표정이 바뀌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소녀의 감정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의심과 혼란이 점차 줄어들고, 뭔가 깨달은 듯 하다가 의분에 차서 말했다.
“왜 나한텐 아무 말도 안 해줬던 거죠?”
“날 위해... 날 위해 이 모든 걸 꾸몄다면서, 왜 나한텐 알려주지 않았던 거에요?”
엘렉트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왜 소녀의 부모가 에이버리에게는 비밀로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얼마든지 댈 수 있었지만, 소녀는 그중 어느 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을게 분명했다.
소녀의 양친 모두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실제로, 소녀의 아버지는 목숨을 잃게 되었다. 그들은 극도로 조심해야만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들이 에이버리에게 계획을 알려준다 해도, 에이버리가 계획에 따르길 거부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그들의 친딸이 부모를 배신하는 셈이었다.
에이버리는 작업대 쪽으로 가서, 엘렉트라가 작은 장치를 만들 때 쓰는, 가지런히 정렬된 조그마한 도구들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보석 세공용 스크류 드라이버를 검지 손가락으로 만지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들며 말했다. “방금 무슨...”
엘렉트라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고, 다른 한 손으로 불을 꺼서 사방을 깜깜하게 만든 후, 코트를 벗었다.
그녀의 맨팔에 차가운 공기가 닿았고, 감각이 온 몸으로 퍼지면서, 방 안의 공기를 느꼈다.
엘렉트라는 기억에 따라 더듬으면서 가장자리로 이동했다.
그녀는 입구로 빠르게 이동해서, 문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또다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에이버리가 들었던 그 소리였다.
무전기가 지직 거리는 소리였다.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또 들렸다.
그녀는 컨테이너의 금속 벽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누군가가 벽 너머를 지나가면서 미약한 진동이 전해져 왔다.
엘렉트라는 뒤로 물러서서, 밖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를 듣기 위해 집중했다.
에이버리의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숨소리는 고르면서도 약간 빨라졌다, 느려졌다 반복하였다.
엘렉트라는 소녀의 본능에 감탄하였다.
소녀는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바깥 상황이 다르게 흘러가거나 엘렉트라가 무언가 시키기 전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옷가방 앞에 앉아서, 엘렉트라는 전투복으로 갈아 입고, 무기들을 몸에 두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던 간에, 에이버리가 곁에 있건 없건, 엘렉트라는 그녀의 목숨을 걸고 싸울 일이 생길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창고 밖에 있는 놈들이 그녀에게 준비할 시간을 줄 정도로 멍청하다면, 그놈들은 분명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