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에 관한 가장 흔한 이미지는 ‘멸종한 동물’이라는 겁니다. 일반인에게 공룡의 운명을 물어본다면 6,500만 년 전에 사라졌다고 하겠죠. 허나 고생물학자의 시각은 전혀 다른데, 학자들은 아직 공룡이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현생 조류의 형태로 말입니다. 공룡을 분류할 때는 크게 허리뼈 생김새에 따라 용반목과 조반목으로 나눕니다. 이 중에서 오리주둥이룡, 뿔용, 검룡, 갑룡 등의 익히 알려진 초식공룡들이 조반목에 속합니다. 그리고 알로사우루스 같은 수각룡과 아파토사우루스 같은 용각류가 용반목에 들어가죠. 수각룡은 다시 비조류 수각룡과 조류로 나뉩니다. 즉, 고생물학자가 공룡이라고 하면, 거기에는 중생대에 멸종한 기괴한 동물들만이 아니라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닭, 참새, 까치, 제비 등도 속한다는 뜻입니다. 뒷마당에 노니는 암탉이 공룡이라니, 좀 황당하게 들리는 말이긴 하죠.

 

고생물학자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수각룡의 일부였던 랩터 계통에서 조류가 갈라졌기 때문입니다. 아마 공룡에서 조류로 변모하는 그 순간은 깃털에서부터 시작했을 겁니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작은 랩터에게서 비늘이 변해 깃털이 생겼습니다. 당시 랩터들은 지상에 살았으므로 활공 혹은 비행을 위한 도구는 아니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체온조절을 하거나 경쟁자에게 과시, 짝에게 구애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가능성이 높지요. 그러다 점차 천적을 피하거나 먹이를 먹기 위해 깃털을 활공에 사용했을 테고, 그에 따라 몸 구조도 변했습니다. 그래서 공룡과 새의 과도기 모습을 띠다가, 이빨 대신 부리가 생겨나고, 긴 꼬리는 짧아지고, 앞다리가 길어졌고, 뒷다리는 땅을 디디기보다 나무를 움켜잡기 좋도록 몸 구조 자체가 달라집니다. 마침내 완벽한 조류가 등장하고요.

 

이 정도 이야기는 고교 과학책에도 나오는 이야기일 겁니다. 진화론을 믿는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런 진화 과정을 한 번쯤 들어봤겠죠. 가장 유명한 근거로는 시조새 화석이 있는데, 한때는 시조새란 말도 틀렸고 그냥 아리케오프테릭스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지요. 지금은 다시 조류에 속하는 것으로 판명이 나서 시조새가 맞지만요. 이렇게 의견이 오락가락하는 이유는 분명히 새처럼 보이긴 하는데, 몸 구조가 공룡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근대도 아니고, 현대 과학자들조차 이 생물을 새로 분류할지, 공룡으로 분류할지 혼동합니다. 사실상 공룡과 조류의 구분이 무의미해졌고, 조류는 멸종하지 않은 공룡으로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이었죠. 19세기 학자들은 이런 주장까지 하진 않았으나 역시 화석에 근거하여 새가 공룡의 후계임을 확신했습니다.

 

참고로 시조새 화석은 <종의 기원>이 출판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종의 기원>이 1859년에, 시조새 화석이 1861년에 나왔으니 시기가 참 절묘하다고 할까요. 당시 학자들은 시조새 모습이 공룡과 꽤 흡사하다는 것에 놀라 새가 공룡에서 나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깃털을 제외하면 사실상 두 종을 구분하기가 힘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새가 공룡의 직접적인 후계자라고 여겼고, 이를 주장한 대표적인 과학자가 토마스 헉슬리라고 합니다. 역시 다윈의 불독답다고 할까요.

 

이러한 논의는 시간이 흘러 1970년대에 다시 이루어졌는데, 학자들은 랩터와 조류의 연관성이 수십 가지가 넘는다는 데 의견을 일치했습니다. 그리고 발굴한 공룡 화석 중 압도적인 비율(50%에 이른다고 합니다.)로 수각류가 많고, 그 수각류에서 조류가 나왔다는 점에서 새를 공룡의 직계 후손으로 인정합니다. 요즘 공룡에 관한 서적, 강연, 창작물을 보면, 새가 실질적으로 공룡임을 일말의 의심도 없이 이야기합니다. 대중매체로도 유명한 잭 호너 교수는 TED 강연에 나와서 공룡이 아직 죽지 않고, 새로 살아있다고까지 이야기했죠. 뭐, 고생물학자가 아직 공룡 안 죽었다고 하는데, 누가 반박하겠습니까. 덕분에 학자들은 이런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새를 보는 순간 공룡이 떠오르고, 선사시대 동물이 아직도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최근에 나온 공룡 서적을 뒤적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새를 살펴봐도 저런 실감이 들지 않더군요. 아무리 직계 후손이라 하더라도 결국 공룡은 공룡이고, 조류는 조류 아닌가 싶어서요. 새가 수각룡에서 진화했고, 구조적으로 두 종이 흡사하다는 거야 이해합니다. 허나 그래 봤자 조류는 결국 수각류의 변형된 일부분에 지나지 않잖아요. 공룡이라는 단어가 중생대에 육지 생활을 했던 수많은 종을 두루 가리키는 표현이었음을 상기하면, 조류 하나로 공룡 전체를 회상하기는 좀 부족합니다. 공룡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육상 보행이었고, 오늘날 새는 사실상 비행이 필수적인 생존 전략입니다. 이는 오늘날 고래와 하마, 낙타와의 차이만큼이나 큽니다. 둘 다 포유류지만, 두 동물을 보고 동일한 감상을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에요.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까요. 조류가 곧 공룡이라는 표현은 마치 수각류가 공룡의 전부인 양 오해할 법도 하고요. “새를 볼 때마다 고대에 사라진 일부 랩터류가 살아있다고 실감한다.”고 하면, 차라리 그럴 듯하겠습니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앨런 그랜트 박사는 이런 말을 합니다. (공룡을 보았으니) 이제부터 새를 다시 보게 될 거다.라고 말이죠. 그랜트 같은 가상의 학자만이 아니라 실제 수많은 고생물학자들이 벌새나 닭 등을 보며 공룡과 현대인이 직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머리로만 자각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전율한다고 하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매나 독수리 같은 육식성 맹금을 봐도, 고대의 최고 포식자였던 공포새를 봐도 공룡을 떠올리기는 역부족이더군요. 뭐, 저야 고생물학자도 아니지만요. 아마 덕후심이 부족해서 그러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