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있었어.” 모텔 방 한가운데에서 로건이 말했다.

“내 딸은요?” 코너가 말했다. “에이버리는 무사한가요?”

그는 침대 쪽으로 가다가, 닌자의 체취가 갑자기 짙게 느껴지자 멈춰 섰다.

진하고 순수한, 꾸밈없는 향이었다.

방 구석에는 덮개가 다 찢어지고, 쿠션이 튀어나온, 낡은 안락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는 거기에서 에이버리의 체취를 느꼈고, 적잖이 놀랐다.

체취 속에서 공포나 아드레날린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리무진에 있었을 때와 차이가 전혀 없었다.

“무사한가요?” 코너가 다시 한 번 되물어 봤다.

“피 냄새가 나질 않는 군. 아무 약품 냄새도 않나. 그 아인 무사해.”

그는 문가에 서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심지어 겁에 질리지도 않았어.”

“그걸 어떻게 알아요?”

“공포는 냄새가 나지.” 로건이 말했다.

그는 욕실로 이동해서, 대강 한번 훑어보면서, 앞 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만약 키퍼가 그에게 제대로 알려준 것이었다면 -로건은 이미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닌자는 에이버리를 오직 한 가지 목적; 입막음을 위해 쫓아오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랬다면, 닌자는 과수원에서 에이버리의 목을 따고, 가버렸을 것이다.

그녀라면 절대 굳이 시간을 들여가면서 소녀를 납치하여, 안전한 기착점으로 끌고 다니고, 도피 및 탈출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도피 및 탈출은 아무리 유리한 상황에서라도 힘든 일이었고, 로건도 수많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키퍼의 부하들로부터 도망치려는 상황에서 14살 먹은 인질은 닌자의 발을 느리게 만들 뿐이었다.

그럼 대체 왜 그런거지?

그는 두 여인 둘 다 욕실을 사용 안한 것이 분명해지자, 코너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 욕실을 나오다가 그녀가 더 이상 문가에 서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멈춰 섰다.

그는 한 발짝 더 내딛었고, 그녀가 침대를 지나 맞은편 구석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권총을 양 손으로 쥐고 그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키퍼가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지?” 그녀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와 손은 전혀 떨림이 없었고,

로건은 그녀가 여차하면 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나도 같은 걸 물어보려고 했는데.”그는 한 걸음 내딛었고, 코너가 격철을 당기자 멈춰 섰다.

“움직이지 마.” 코너가 말했다. “뮤턴트일진 몰라도, 총알을 머리에 맞게 되면, 살아날 수 없을 걸.”

“그럴 수도 있지, 그러지 않을 수도 있고.” 로건이 말했다. 하지만 더 움직이지는 않았다.

“내가 손을 머리 위로 올렸으면 좋겠어?”

“난 당신이 진실을 말해줬으면 좋겠어, 젠장!” 그녀가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은 방 안에서 날카롭게 울렸다.

“지금 내 딸의 생사가 걸려 있는데 키퍼랑 당신, 당신들은 수작이나 부리고 있잖아!”

“키퍼는, 맞아. 하지만 내가 재미삼아 닌자녀에게 두 방이나 찔렸다고 생각한다면, 상당히 짖궂군, 박사. 

아니면 내가 당신 딸을 목숨 걸고 지키려고 한 걸 모르는 건가?”

코너는 뭐라고 말하려 하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가 보기엔 그녀도 그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머릿속에 떠올린 것 같았다.

“질문 하나 해도 될까?” 로건이 말했다. “대답해 줄 수 있겠어?”

그녀는 혼란스러운 시선으로 바라 보았다. “예? 아, 그래요.”

“내가 당신을 어떻게 아는 거지?”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잠시 동안 로건은 자기가 차마 못 할 말을 했나 하고 의아해 했다. 

그는 왼편으로 몸을 굴려 피할 준비를 했다. 

그때 그녀의 표정이 누그러지고 격철을 풀고 총을 내려놓았다.

잠시 후, 그녀는 권총을 재킷 주머니에 집어 넣고, 지친 듯 침대 한 편에 걸터 앉았다.

그녀의 표정으로 봤을 때, 로건은 그녀가 울 것 같다고 생각 했다.

그는 제발 그러지 않길 간절히 바랬다. 왜냐하면 그녀가 울기 시작하면, 

그칠 때 까지 기다리는 일 말고는 그가 할 줄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 기분이 어떤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정말 끔찍한 날이었다.

아침에 있었던 사건부터 시작해서 하루 종일 불길함과 먹먹함으로 가득한 날이었다.

그는 그들이 마을을 지나칠 때마다, 조금의 체취라도 찾아보려고, 멈춰 섰던 모텔이 몇 개였는지 다 세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코람에서 여길 찾아낸 것만 하여도 오늘 운은 다 써버린 셈이었다. 오늘밤에는 에이버리를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닌자가 타고 갔던 자동차는 아직도 주차장에 서 있으니, 그녀에겐 또 다른 탈 것이 준비되어 있거나, 하나 훔쳤을 것이다.

여섯 시간 정도 앞서있으니, 에이버리와 납치범은 지금 쯤이라면 어디에라도 있을 수 있었다.

“난 당신이 거짓말 하는 줄 알았어요.” 그녀가 조용하게 말했다.

로건이 가까이 다가갔다. “왜?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지?”

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와 눈을 마주쳤다. “난... 난 키퍼의 또다른 수작인줄 알았어요. 하지만 당신은 정말 기억을 잃었군요. 정말로.”

“난 하나도 못 해. 내가 어떻게 당신을 아는 거지, 박사?”

그녀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천천히 그의 왼쪽 손등을 두드렸다.

“난 당신이 태어날 때 지켜보고 있었어요.”

“당신이...”

“수술실에요.”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 클로와 뼈를 만든 곳. 난 그곳에 있었어요.”

그는 그녀의 손을 움켜쥐고, 비틀었다. 그녀는 비명을 꾹 참고, 팔을 잡아 빼려고 했지만, 로건은 놔주지 않았다.

로건은 거의 그녀의 몸 위에 올라 탔고, 그녀는 침대 위로 쓰러져서, 빠져나가려고 애를 썼다.

“아파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로건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더 세게 흔들었다. 그제야 그는 그녀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정보가 너무 적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는 거칠게 그녀의 손을 놔줬고, 뒤로 물러서다가 기억이 머리를 강타하자 균형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무수한 불빛들과 소독제, 약물, 금속 냄새들이 기억났다. 그리고 아, 그놈들은 약물을 엄청나게 많이 썼다. 

왜냐하면 그를 아주 오랫동안 잠잠히 만들어야 했는데 그의 힐링펙터, 뮤턴트 능력 때문에 그는 어지간한 약물은 통하지도 않았다.

맙소사, 그놈들은 그를 약물로 절여버렸는데도 제압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놓는 게 고작이었다.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에 의해서 사지가 뜯겨 나갔다가 다시 붙는 것 같은 고통이 엄습했다. 

그는 외롭고, 혼란에 빠진데다가 거의 비참할 정도로 겁에 질려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이 여자가 있었다. 지적인 눈동자와 친절함이 배어있는 입술을 가진 미인이었다.

온 몸의 신경이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그녀는 그의 손등을 부드럽게 만져 주었다. 그녀의 피부는 따뜻했었다.

“당신은 강한 사람이에요.” 그녀는 말했었다. “당신은 견뎌낼 수 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믿었었다.

로건은 탁상에 가까스로 몸을 맡긴 채, 기억을 떨쳐내려고 애썼다.

코너는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고, 한 손은 권총을 넣어둔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었다.

“내가 틀렸었고 미안해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난 당신이 키퍼의 수하인줄 알았어요. 당신으로 하여금 에이버리를 경호하게 하면서, 나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줄 알았고 난 당신을 믿을 수 없었어요.”

“당신.... 당신이 그때 집도의였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기술 고문이었어요. 내 남편을 포함한 여러명의 고문 중 하나였죠. 우린 당신 실험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관여한 적은 거의 없어요. 우린 그저 당신의 신경 데이터에만 관심이 있었고 그건 별로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당신이 키퍼를 위해 일하지 않는 것이에요. 그 말인 즉, 당신만이 내 딸을 찾는 걸 도와줄 수 있어요.”

로건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면서, 기억을 제자리에 맞춰 넣고, 생각을 정리 하려고 애썼다.

수많은 조각 중 겨우 하나를 찾은 셈이었고, 그의 과거가 어땠는지 말해 주기엔 한참 부족했다.

“제발 부탁이에요, 로건 씨. 도와주세요.” 코너가 말했다.

“키퍼가 내 남편의 죽음을 사주한게 틀림없어요. 그는 분명 나도 제거하려 할 것이에요. 그는 에이버리를 원하고 있어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는 당신을 이용해서 그녀를 손에 넣으려고 할 거에요.”

“왜지?”

“그 아이의 자질 때문에요.” 그녀는 벽에서 몸을 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손은 주머니에서 나와 있었고, 빈 손이었다. 그녀는 그를 향해 손바닥을 뻗으며 간청했다.

“제발. 더 이상 시간이 없어요.”

“무슨 자질이 있다는 거지?”

“당신이요, 로건 씨.” 베로니카 코너가 말했다.

“그 아이는 당신같이 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