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레인보우 식스>는 언뜻 보면 밀리터리 위주의 테크노 스릴러 같지만, 막판에 SF다운 장비가 하나 나옵니다. DKL 시스템이란 건데, 일종의 심장박동 감지기입니다. , 게임에서 지도에 적 표시해주는 바로 그 물건이죠. 소설을 본 지가 오래 되어서 그런지, 저는 그간 책에 나오는 장비 이름도 심장박동 감지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이름이 다른 것처럼 작동 방식도 다른데, 일단 심장 박동을 잡아내서 삼각 측정으로 위치 알려주는 것까진 똑같습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일단 탐지 범위 내에 수신기를 설치한 다음, 수신기가 받은 신호를 오퍼레이터의 컴퓨터로 전송합니다. 오퍼레이터는 컴퓨터를 보며 각 레인보우 대원에게 적 위치를 구두로 알려주죠. 대원들 무전기 GPS에도 위치가 나오긴 하는데, 오퍼레이터가 직접 알려주는 묘사가 더 자주 등장하네요.

 

당연히 게임은 이렇게 만들 수 없습니다. 오퍼레이터가 일일이 유저한테 말하는 시스템을 구현하기도 힘들고, 그래 봤자 별로 직관적이지도 않죠. 그래서 게임은 그냥 레이더에 위치 뜨는 것마냥 지도에 빨간 점을 떡 박아놨습니다. 희한하게도 인질은 하얀 점으로 나오는데, 무슨 수로 테러리스트와 인질을 구분하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심장 박동이 더 뛰든가 덜 뛰거나 하는 걸까요. 인질은 무섭고 떨리니까 펌프질이 활발할 테고, 이걸로 인질을 구분한다든가 그럴지도 모르죠. 게다가 이 감지기는 인물의 방향, 그러니까 어딜 보는 중인지도 잡아냅니다. 출입문을 보는지, 인질에게서 등을 돌렸는지 이런 것도 알아낼 수 있죠. 글쎄요, 심장 뛰는 소리를 듣고 어느 쪽을 보는지 어떻게 가늠할까요. 심장이 얼굴 쪽으로 더 펌프질을 하는 것도 아닐 테고, 설사 그렇다 해도 미세한 움직임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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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박동 감지기를 사용한 장면. 지도의 빨간 점이 테러리스트입니다.]

 

게임 브리핑을 자세히 안 읽어봐서 알 수야 없습니다만, 여하간 지도에서 빨간 점을 보려면 감지기를 일일이 들고 다녀야 합니다. 소설에서는 양손에 화기를 든 채로 오퍼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면 되었으나, 게임에서는 지도를 직접 보는 대신 화기를 들지 못하죠. 그래서 총보다 감지기 드는 시간이 더 길기도 합니다. 고수 플레이어는 감지기만 들고 뛰어다니다가 코 앞에 적이 있으면 잽싸게 화기로 바꿔서 싸우는 편이죠. 칼이나 그밖의 다른 장비를 들고 다니는 FPS 게임은 많아도, 이처럼 감지기를 더 오래 드는 게임도 드물 듯하군요. 어쨌든 심장박동 감지기는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만의 특징이고, 평범하게만 보이는 밀리터리 장르를 보다 SF에 가깝게 해주었습니다. 이게 시발점이 되었는지 몰라도 이후 시리즈에서도 탐지 장비는 근미래적으로 묘사하려 애쓰는 편입니다.

 

같은 회사(레드 스톰)에서 만든 <고스트 리콘>은 야외 전투를 다룹니다. <레인보우 식스>가 좁은 건물 안에서 싸웠다면, <고스트 리콘>은 광활한 대자연을 무대로 싸우죠. 그런데 맵이 커진 것과는 반대로 탐지 시스템은 훨씬 작아졌습니다. 심장박동 감지기처럼 그럴싸한 장비도 안 나오고, 달랑 화면 하단에 있는 나침반 모양의 센서가 전부입니다. 이 센서는 고스트 부대가 어디로 향하는지 보여주고, 어느 방향에서 적이 공격하는지 붉은 부채꼴로 표시합니다. 적이 상당히 근접했다면 나침반 가운데 붉은 표시가 뜹니다. 허나 나침반에 붉은 경고가 뜬다고 지도에까지 적 위치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따라서 유저는 적이 근처에 있다 싶으면 무조건 포복하고 뚫어져라 주변을 살펴야 합니다. 가끔은 분명히 적군이 부근에 있는데도 찾지 못해 몇 분이나 허송세월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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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지기보다 육안에 의존해야 했던 게임입니다. 광활한 무대를 즐기라는 뜻인 것 같지만, 좀 아쉽기도 하죠.]

 

제작진은 아무래도 기왕에 무대가 넓어졌으니 탐지기에 의존하지 말고 육안으로 싸우라는 뜻으로 이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하긴 몇 백 미터나 떨어진 적이 지도에 표시되는 것도 비현실적이긴 하죠. 풀숲에 몰래 숨어서 절벽 위와 나무 사이를 훑어보다가 적군을 발견하고 조심스레 저격하는 재미도 상당히 쏠쏠하고요. 그러나 전투 대신 포복과 관측에 더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고, 덕분에 게임이 상당히 정적입니다. 치열한 총격전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자칫 지루해할지도 몰라요. 가끔 건물로 침투하는 미션도 있어서 쉴 틈 없이 총성이 오고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말 그대로 가끔일 뿐이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정적인 진행방식도 좋았으나 빈약한 탐지 방식은 좀 불만이었습니다. 톰 클랜시 FPS 게임이라면 미래적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거든요. 장비빨이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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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을 그리며 파장을 퍼뜨리는 곳이 테러리스트의 위치입니다. 음파 탐지라는 점에서 색다르긴 합니다.]


이후 <레인보우 식스> <레이븐 쉴드>로 넘어가면서 탐지 방식이 달라집니다. 권총처럼 생겼던 물건이 쌍안경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걸 작동시키면, 적이 있는 곳을 음파 감지로 찾아냅니다. 벽 너머에 있는 적도 찾아내므로 건너편에 건물 안에 누가 있는지 대처할 수 있죠. 하지만 음파 탐지는 대강의 위치만 알 수 있으며, 적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지도 못하므로 지도에 빨간 점 찍는 것만큼 직관적이지는 않습니다. 출입문 안쪽으로 테러리스트가 세 명 있다는 건 알아냈는데, 어느 방향을 보는지, 얼만큼 뭉쳐있는지 그냥 직감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죠. 좀 더 현실적인 묘사라는 점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군요. 지도에 점 찍는 건 너무 단순하고 다른 게임에서도 자주 쓰니까요. 하지만 오퍼레이터가 직접 설명해주는 소설 방식을 게임적으로 표현했다고 하긴 좀….

 

그 다음에 나오는 <베가스> 시리즈부터 이런 탐색 방식은 사라졌습니다. 제작사가 유비소프트로 넘어갔는데, 레드 스톰과 달리 전술보다 액션을 더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총기 들고 지속적으로 전투하는 식으로 디자인했고, 탐지기 들고 적 위치 찾느라 왔다 갔다 하는 시스템을 아예 빼버렸죠. 대신 표식 처치(Mark Execute) 방식을 도입했는데, 스네이크캠으로 문 뒤에서 몰래 적 동태를 살핍니다. 이 상태에서 적에게 표식을 찍을 수 있는데, 표식이 찍힌 적은 항상 빨갛게 표시되어 게임 화면과 맵에서 모두 위치를 파악할 수 있죠. 최고 두 명까지 표시할 수 있습니다. 스네이크캠 표식 처지 방법은 꽤 멋지긴 합니다만. 아쉽게도 이건 탐지보다 진압 시스템에 더 가까워서 심장박동 감지기를 계승했다고 하긴 무리입니다. 출입문이 없으면 쓸 수 없다는 단점도 있고요. 골목 뒤에 숨은 적을 스네이크캠으로 찾아내면 편리할 텐데, 그런 기능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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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이크캠을 이용한 표식 처치. 기능이 제한적이지만 않았어도 꽤 괜찮았을 텐데요.]

 

좀 더 탐지 방식에 가까운 시스템은 열 감지기가 있습니다. 이건 오퍼레이터에게 요청하면 쓸 수 있는데, 맵에 열 감지로 아군, 적군, 인질을 표시합니다. 층별과 건물 안팎에 상관없이 모조리 찾아주는 막강한 탐지기입니다. 처치한 적은 시체가 식는다는 걸 반영해서 색이 옅어지므로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손에 탐지기를 들도 다닐 필요도 없으므로 항상 총기를 든 상태로 적에게 대응할 수 있죠. 다만, 열 감지는 일정 시간 밖에 작동하지 않고, 다시 요청하려면 대기 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그 동안에는 동료를 내보내든, 엄폐를 최대한 유지하든 해서 적을 찾아내야 해요. , 대기 시간 돌아올 때까지 엄폐물 뒤에 죽치고 숨어있는 것도 방법이긴 합니다만, 그러면 게임이 너무 재미없죠. 또한 열 감지는 다른 게임에서도 다 써먹는 시스템이라 뭔가 차별성이 없습니다. 그냥 무난하다고 할까요.

 

개인적으로는 참신함과 사실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작품으로 <고스트 리콘: 어드밴드스 워파이터>를 쳐주고 싶습니다. 작중 고스트 리콘은 랜드 워리어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옮긴 듯한 탐지 기능과 통신을 보여줍니다. 게임을 통해 미래 군인의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오프닝 동영상을 보면, 인공위성을 이용해 탑뷰로 도시를 관측하고, 그 안에 돌아다니는 적군을 포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작중에서도 이 기능을 그대로 이용합니다. 골목이나 모퉁이에 숨어있는 적들을 이쪽에서 기습할 수도 있죠. 한 가지 단점은 건물 내부에 숨은 적을 찾지 못한다는 건데, 처마 밑이나 무너진 벽, 경비탑 내부, 벙커에 숨은 적에게 뒤통수를 맞기 쉽습니다. 오프닝 동영상에선 열 감지 장치가 있어 벽 뒤에 숨은 적도 찾는 것으로 나왔는데, 실제 게임에는 구현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오프닝에 저 열 감지 장면은 왜 넣었는지 모르겠어요. 속았다고 생각하는 유저도 있을 듯. 솔직히 저도 낚였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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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컴 무인기를 이용한 카메라 관측. 들키지 않고 적을 관찰하는 요긴한 방법입니다.]

 

여하튼 인공위성 카메라는 수직 방향으로만 본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각 대원들은 시야를 공유합니다. , 현재 자신이 보는 장면을 고글 카메라로 찍어서 대장과 공유하죠. 멀리 떨어졌어도 고스트 리콘 지휘관(미첼)은 눈 앞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시야를 본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 연습이 좀 필요합니다. 게다가 화질도 또렷하지 않고 병사 움직임에 따라 영상이 흔들리기 때문에 어지럽기도 해요. 저는 시야를 이리저리 바꿔보다 속이 쏠리기까지 했습니다. 밀리터리 FPS 게임을 하며 쏠리는 건 처음이네요. 그리고 시야 공유보다 더 편리한 기능도 있는데, 바로 무인기입니다. 무인기는 낮은 고도에서 비행하며 미첼이 원하는 대로 조종하기에 보고 싶은 각도를 볼 수 있죠. 처마 밑에 숨거나 경비탑 안에 있는 적들도 얼마든지 관측이 가능합니다. 게다가 적들은 무인기를 공격 안 하니, 가까이 갔다가 들킬 염려도 없지요.

 

올해 상반기에 나온다는 <고스트 리콘: 퓨처 솔져>는 이보다 한발 더 나갑니다. 이름처럼 미래 군인이니, 당연히 탐지 기능이 더 강화되겠죠. 게임이 아직 안 나온 상태라 어떤 기능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예고편에서는 다양한 장비를 보여줍니다. 열 감지를 보다 향상한 듯한 기능도 있고, 벽을 투시해서 볼 수도 있으며, 적 상태를 문자로 내려받을 수도 있나 봅니다. 무인 로봇은 지상형과 공중형으로도 나오며, 기기를 투척해 해당 지역의 음파를 탐지하는 것도 가능한가 봅니다. 예고편에 나온 장면이 그대로 나올지야 모르겠으나, 흥미진진한 물건이 많네요. 특히, <퓨쳐 솔져>는 은신 장비도 있는데, 마치 프레데터처럼 몸을 숨길 수 있습니다. , 은신한 채로 열 감지하는 장면은 정말 프레데터가 따로 없더군요. 프레데터와의 싸움이 숨느냐, 찾느냐의 싸움이었던 만큼, <퓨처 솔져> 역시 그런 측면을 확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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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너머의 적을 투시해서 탐색하는 장면입니다. 이름 그대로 미래 군인답네요.]

 

<레인보우 식스> <고스트 리콘>에서 갈수록 탐지 기능이 튀어 보이는 건, 그만큼 발전할 여지가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군인하면 무기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사실 개인화기는 베트남전 이후로 그다지 크게 발전하지 않았죠. 미군은 스카, XM8, 부시마스터 등등 별의별 총기를 다 계획했으나 결국 관두고 아직도 아말라이트 계열을 사용하죠. 러시아군 역시 (이쪽은 비용이 없어서기도 하지만) 여전히 칼리시니코프를 사용하고요. 방어구는 요즘에 와서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하긴 했습니다. AK 74 탄환을 막아낼 방어구도 나왔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현대 보병이 중세 기사처럼 방어구만 믿고 돌격하긴 힘들죠. 그러나 탐지기는 전자장비와 정보화 능력이 해를 거듭할수록 좋아지기 때문에 앞으로도 발전할 여지가 많습니다. (누구 말마따나 요즘은 정보화 시대니까요.) 당장 스마트폰으로 전술을 짜고 통신을 하는 병사들을 보면 진짜 SF가 따로 없죠. <레인보우 식스> <고스트 리콘>은 이 점을 표현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이건 개인적인 바람인데, 탐지견을 이용한 게임도 한 번쯤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탐지견을 데리고 다니면 번거로우니, 단발 이벤트로 나와주는 거죠. 위험 지역을 통과하거나 테러리스트 건물에 들어갈 때 폭발물 탐지를 위해서요. 탐지견에게 카메라와 무전기 달아주고, 탐지견과 시야를 공유하며 맵으로 웨이포인트 찍어주는 겁니다. 폭발물 근처에 다가가면 탐지견이 신호를 보낼 테고, 그러면 거기다 위험 표시해두고. 도주한 적이 있으면 드넓은 맵에서 탐지견으로 추적하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수색 명령을 내리면 탐지견이 움직이고 그 뒤를 쫓아가며 적과 총격전을 벌이거나 할 수도 있겠죠. 특수부대도 탐지견을 대동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고증을 해치는 것도 아니고, 카메라와 무전기로 원격 명령을 내리면 근미래적인 느낌도 들겠죠. 사실 대테러에 탐지견이 어느 정도나마 비중을 차지하는데도 게임 등에서는 별로 구현을 안 해 섭섭합니다. 탐지견도 엄연히 따지자면 (동물이지만) 탐지기에 속하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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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지견도 엄연히 탐지장비인 만큼 게임으로 나와줘도 좋을 텐데요. 이런 피규어, 멋지지 않습니까.]

 

※ 수정사항: 그리고 보니 <고스트 리콘>에는 탐지 센서가 있긴 하군요. 게임 한 지가 너무 오래 되어서 잊어버렸네요…. 적이 근처에 있을 때, 그러니까 나침반에 빨간 불 들어왔을 때 바닥에 깔아두면 좋습니다. 적 위치가 지도에 표시되므로 눈 부라리고 망원경으로 찾을 필요가 없지요. 도대체 무슨 원리로 작동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근미래다운 장비랄까요. 다만, 병사 한 명당 두 개씩 밖에 소지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일회용에다가 센서를 들고 가면 권총이나 폭발물 등 부무장이 없어지죠. 물론 이렇게 편리한 장비를 함부로 쓸 수 있다면 게임이 너무 쉬워지긴 하니, 밸런스를 위해서 저런 제약이 필요하긴 합니다.


<스플린터 셀> 이야기도 할까 하다 말았습니다. 제대로 해 본 적도 없거니와, 부대 전술을 다루는 두 게임에 비해 단독 임무가 더 많은 것 같아서요. 무엇보다 탐지(찾기)보다 침투(숨기)가 주된 액션이라 다른 두 게임과는 방향성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