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에서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고, 그러다 보니 창작물에는 아주 다양한 이유로 미쳐버린 과학자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미친 과학자의 원조로 대개 <프랑켄슈타인>에서 나온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꼽더군요. 아시다시피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시체에서 생명(인간)을 창조하려고 했고, 결국 성공합니다. 대학생 시절부터 생명의 위대함을 느끼고 그걸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했죠. 문제는 정작 그렇게 만들어진 크리쳐, 그러니까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책임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괴물은 외모도 볼품없었고 인공적인 생명이라서 구역질을 느꼈다고 하죠. 이후 빅터는 괴물을 그냥 방치해두고 나중에는 아예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생명 창조라는 위험한 시도를 했고, 윤리를 저버렸기에 대표적인 미친 과학자가 되었죠.

 

고전 SF에서 생명 창조를 시도한 건 비단 프랑켄슈타인 박사만이 아니었습니다. <닥터 모로의 섬>에 나오는 모로 박사도 인위적인 생명체를 만들었죠. 특이하게 동물을 인간화시켰는데, 어찌 보자면 생명 창조와는 개념이 약간 다른 실험이기도 합니다. 기존의 생명을 다른 방향으로 발달시킨 거니까요. 허나 역시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행위를 과학이란 미명 아래 도전했습니다. 섬에 사는 동물들은 자연적인 존재가 아니고, 세상과 어울릴 능력이 부족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미친 과학자가 되기엔 충분하죠. 소설은 그 결말이 어찌 났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발 킬머와 말론 브란도가 주연했던 영화에서는 부정적인 최후를 맞이합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달리 자신의 창조물에 아버지 같은 애정을 보였습니다만, 금기를 어긴 건 마찬가지.

 

코즈믹 호러의 선구자 러브크래프트도 희대에 남을 미친 과학자 소설을 썼습니다. 시체를 되살리려는 허버트 웨스트가 그렇죠.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모로 박사가 그나마 좀 정상적인 과학자였다면, 허버트 웨스트는 미치광이라는 말이 딱 어울립니다. 허버트는 그저 생명을 창조하는 걸 떠나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내겠다는 생각이었으니까요. 따라서 실험할 때 항상 시체가 필요했으며, 허버트 웨스트는 시체를 찾아 무덤과 전쟁터를 헤맵니다. 그리고 첫 실험이 실패가 돌아가자 한다는 소리가 시체가 신선하지 않았어!”라니, 이게 미친놈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허버트는 점점 더 신선한 시체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갖가지 방법으로 실험을 거듭하고 결국에는 성공합니다. 허나 다른 미친 과학자들처럼 자신의 창조물에게 죽임을 당하죠. 참고로 러브크래프트는 <냉기> 등의 단편에서도 죽은 자를 살리는 미친 과학자를 다루기도 했습니다.

 

고전 SF에 나오는 미친 과학자가 항상 생명 창조만 시도한 건 아닙니다. 때로는 생명을 다른 식으로 변환하는 작업도 했는데, 이 방면의 대표가 지킬 박사죠. 지킬 박사는 어떤 약물을 만들어 마셨는데, 그게 그만 내면의 추악한 면을 드러내는 식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지킬 박사는 뒤틀린 형태의 하이드로 변합니다. 초기에는 지킬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으나 이후 내면의 추악함이 점점 더 드러나면서 하이드가 더 많이 출몰합니다. 결국에는 영영 하이드로 지내게 되고, 그걸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죠. 다만,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생명 윤리를 이용해 과학자의 도덕을 경계한 소설은 아닙니다. 그보다 내면의 욕망이 어떤 식으로 인간을 잠식하는가가 주제라고 해야겠죠. 여하튼 생명체를 이용해 위험한 일을 꾸몄다는 점에서 고전적인 미친 과학자입니다.

 

여담인데 지킬 박사의 모티브를 따온 과학자로 <인크레더블 헐크>에 나온 브루스 배너도 있습니다. 평소에는 평범한 과학자이지만, 화가 나면 폭력성이 극대화되는 헐크로 변하죠. 그런데 지킬 박사의 후예임에도 브루스 배너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취급을 안 하더군요. 태생이 슈퍼 히어로 코믹스라서 그런 것도 있겠고, 악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알기로 헐크 상태에서도 기물 파손이야 했지 살인까지는 안 하거든요. 게다가 브루스를 실험에 이용하려고 쫓아다니는 미군이 워낙 위험한 짓을 많이 한 터라 헐크의 폭력성이 상쇄되기도 합니다. 허나 브루스 배너 자신이 감마선 실험을 한 건 분명하며, 이는 과학자의 윤리에 어긋날 수도 있습니다. 에드워드 노튼이 주연한 영화에서는 이 점을 강조하는데, 노튼이 그런 주제를 전달하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위에서 <닥터 모로의 섬> 이야기를 했는데, 이 소설을 쓴 H.G.웰즈는 <투명인간>도 썼습니다. 이 인물은 과학자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지킬 박사와 비슷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변형된 모습(투명인간)으로 욕구 충족을 이루었다는 것 역시 비슷하고요. 약물을 마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변형 방법도 똑같네요. 투명인간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여러 지역을 떠돌며 범죄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형사의 집요한 추적 끝에 꼬리를 밟히고 비참하게 죽고 말죠. 제 기억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결국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자 원래 그대로의 본 모습이 드러났고요. 이 최후 역시 지킬 박사와 비슷하네요. 소설 주제 또한 생명 윤리보다 인간이 잠재적 욕구를 드러낼 때 어떻게 되나를 다루었습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의외로 <셜록 홈즈>에도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나옵니다. 단편 <기어다니는 남자>에서 나온 교수가 그렇습니다. 이 사람은 의학, 특히 유전학에 능통해서 유인원의 능력을 흡수해 발현합니다. 나이 지긋한 노인인데도 건물을 기어오르는 괴력과 민첩함을 발휘하죠. 허나 정신까지 야수처럼 변해 광기를 드러냅니다. 이 교수는 결국 나중에 자기가 기르던 개한테 물려서 사로잡히는데, 개까지 몰라볼 정도로 신체가 변했다는 소리입니다. 도대체 어떤 유전자 조작을 했길래 이렇게까지 되는 건지 신기하네요. 이 단편은 홈즈 시리즈 중에서도 SF 특성이 두드러집니다. 현대 독자가 보면 유인원의 능력 어쩌구 하는 부분이 좀 깨기도 하죠. 본 바탕이 추리 소설이라 그런지 과학의 위험성이나 과학자의 철학 같은 건 거의 안 나옵니다.

 

허나 이건 다 고전 SF 쪽이고, 현대 사회에서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등장하기란 꽤 어렵습니다. 갈수록 학문이 세분화되고, 한 사람이 모든 지식을 독학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설사 독학한다 하더라도 실험과 작업에 착수할 자금이 엄청납니다. 요즘 슈퍼 컴퓨터나 유전자 조작 장치 같은 건 액수가 어마어마하죠. 그래서 기업가와 과학자의 결탁이 중요해지는데, 대중작가 중에서 마이클 클라이튼이 이런 주제를 곧잘 써먹었죠. 대표작 <쥬라기 공원>에서 유전 공학으로 공룡을 만드는데, 생명 윤리를 가볍게 여길지 몰라서 작중 미친 과학자라 할만한 인물은 없습니다. 존 해먼드가 악랄한 악당이긴 한데, 이 사람은 그냥 기업가고요. 헨리 우는 야망은 있을지언정 미친 짓거리까지 하진 않아요. 어찌 보면 매드 사이언티스트도 로망이겠네요.

 

한 가지 희한한 사실은 고전 SF의 미친 과학자들,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후세의 과학자들도 대부분 생물학 전공이라는 겁니다. 생물학 전공은 아니더라도 여하튼 생명을 만들거나 변화시키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시체에서 생명을 창조했고, 모로 박사는 동물을 인간화시켰죠. 하버트 웨스트는 시체를 되살리려고 했고, 지킬 박사는 자신의 신체를 변형시켰죠. 투명인간도 마찬가지고요. 유인원의 힘을 얻고자 한 교수도 요즘으로 따지면 바이오 산업에 종사한 셈이고요. 물론 SF 작품에 수많은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나오는 만큼 물리학자나 공학자 역시 머릿수가 많습니다. 특히 지구 정복을 노리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는 대부분 생물학보다 물리학이나 공학이 많아요. 다만,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원조는 생물학이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인 듯한데, 우선 생명 창조야말로 신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기독교에서 물고 늘어질 정도로 생명 창조는 미스터리한 부분이고, 밝혀내기 힘듭니다. 그런 걸 인간의 힘으로 해냈다는 점에서 생명 창조는 그 어떤 과학 실험보다 윤리적으로 위험합니다. 미친 과학자들의 주요 대사인 나는 신이 되었다.”라는 것도 그런 골자죠. 더군다나 생명은 유한하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게 보편적인 가치입니다. 그런 소중한 생명을 공장에서 물건 찍듯이 만들어내니 비판 받을 여지가 많죠. 또한 고전 SF가 나오는 19세기는 의학적으로 여러 발견이 있었다고 합니다. <기어다니는 남자> 같은 소설도 요즘 독자가 보면 황당하겠지만, 당시에는 나름대로 학구적인 의사였던 코난 도일이 썼습니다. 그러니 SF물에 쓸 거리가 많았겠지요. 요즘의 바이오 산업 열풍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비단 고전 소설만 그런 게 아니라 지금에도 생명 창조야말로 가장 윤리적인 위험이 두드러지는 부분 같습니다. 저야 학계 사정은 모릅니다만, TED 등을 보면 그렇더라고요. 과학자의 윤리 문제를 거론할 때는 항상 생물학도 같이 나옵니다. 유전 공학이 발달해 필요에 따라 생물을 만들어내는게 가능해졌거든요. 우리 인간이 생물이고, 그래서 생물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이상 이런 풍조는 앞으로도 변할 것 같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