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저는 <폴아웃> 시리즈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고, 설정도 대략적으로만 안다는 걸 밝혀둡니다. 어쩌면 틀린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세히 아시는 분 계시다면 지적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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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아웃> 시리즈는 핵전쟁 이후의 세계를 그린 만큼, 방사능 돌연변이가 참 많습니다. 그 중에 절지동물도 있는데, 방사능 벌레 시리즈라고 할 만큼 여러 종류가 있죠. 사람만큼이나 큰 바퀴벌레, 개미, 파리, 말벌, 전갈, 사마귀 등이 황무지를 돌아다닙니다. 현대 지구에서 이 정도 크기의 곤충이 효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가 의문이긴 합니다만. 그런 단점을 접어두고 생각하면 꽤 무서우면서도 로망 넘치는 괴물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방사능 벌레 시리즈에는 바퀴벌레만큼이나 사람을 자주 괴롭히는 곤충 하나가 빠졌는데, 그놈(그년?)이 바로 모기입니다. 어느 사이에 몰래 날아와 피를 빨고 질병을 퍼뜨리는 이 해충이 황무지에는 없습니다. <폴아웃> 세계관에 설마 모기가 없진 않겠고, 만약 있다면 방사능 영향을 받아 거대 모기가 날아다녀야 할 텐데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이죠. 도대체 왜 이 작품에는 거대 모기가 안 나오는 걸까요.

개인적인 견해로는, 방사능 모기가 생기긴 했는데 생태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핵전쟁 이후 변화된 생태계는 거대 모기가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란 뜻입니다. 일단, 거대 바퀴벌레나 파리의 사례를 볼 때 거대 모기 역시 비슷한 형태로 변이했을 겁니다. 거대 방사능 모기는 사람만큼 크고, 좀 더 공격적인 기관이 생겼을 테고, 성격도 더 흉포해졌겠지요. 생태 자체는 일반 모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이 놈들은 예전에도 그랬듯 수컷은 꿀이나 수액을 빨아먹고, 암컷은 번식을 위해 다른 동물의 피를 빨겠죠. 번식기가 되면 교미를 하고, 암컷은 알을 낳을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피를 찾아 다녔을 겁니다. 그리고 웅덩이나 물가를 찾아 알을 낳은 다음 거기서 모기 유충이 태어나고 자라서 성체가 되겠지요. 그러면 이 놈들이 또 피를 빨고 알을 낳을 테고요. 이것이 거대 방사능 모기의 일생일 겁니다.

 

다른 방사능 돌연변이에도 우두머리인 유니크 몬스터가 있듯이 유니크 모기도 생겼을 겁니다. 주둥이에서 화염을 방사하는 유니크 파이어 모스키토 뭐, 이런 게 생겼을 가능성도 있죠. 허나 그런 것까지 논하면 너무 복잡해지니까 일단 일반적인 개체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방사능 모기의 문제점 중 하나는 번식을 위해서 피를 빨아야 한다는 겁니다. 일반 모기는 크기가 작기 때문에 들킬 염려도 없고 흡혈이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상대가 눈치챘다 싶으면 잽싸게 튀어서 구석에 숨은 다음, 방심했을 때 다시 접근해 피를 빨면 됩니다. 지금껏 도심지의 모기는 이런 식으로 살아왔죠. 하지만 거대 방사능 모기는 말 그대로 몸집이 큽니다. 사람만큼 크기 때문에 흡혈 대상에게 몰래 접근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어둠을 틈타 접근한다 해도 이만한 놈이 날갯짓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데 눈치 못 챌 동물은 없겠지요. 따라서 피를 빨려면 포식자처럼 먹이를 덮쳐서 쓰러뜨려야 합니다. 하지만 모기는 원래 포식자가 아니고, 그건 방사능 거대 모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집만 커진다고 포식자가 되는 건 아닙니다. 그에 걸맞는 신체구조와 무기가 있어야죠. 하지만 방사능 모기는 몸집이 커져봤자 무기라곤 여전히 침(주둥이) 하나뿐일 테고, 이걸로 황무지의 다른 동물을 습격하기 어려울 겁니다.

원래 모기란 놈들은 실제 생태계에서 다른 동물의 좋은 먹잇감입니다. 잠자리나 박쥐, 거미 등 수많은 천적들이 모기를 노리죠. 모기는 침이 있다곤 하나 제대로 싸움 한 번 못 하고 잡아 먹힙니다. 가끔씩 3 SF에서는 강화 유리도 뚫어버리는 거대 돌연변이 모기가 나오기도 합니다만. 실제 모기가 커지더라도 침이 무기로 쓰일 정도로 단단해질 턱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폴아웃> 시리즈에서는 거대 사마귀라 하더라도 원본에 비해 내구력이 월등히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거대 모기 역시 방어력은 별 볼 일 없을 겁니다. 게다가 이 침은 모기의 입이기도 합니다. 이거 망가지면 모기는 흡혈이 어려워집니다. 따라서 침을 무기로 쓴다는 건 모기 입장에서도 상당히 불리한 싸움일 테고요. 그리고 황무지에는 거대 모기보다 더 흉포한 생물들이 많습니다. 데스클로라든가 구울이라든가 이런 놈들이 사방에 깔렸죠. 작은 모기라면 이런 놈들에게 몰래 접근해 피를 빨 수도 있겠지만, 거대 모기라면 잘못 접근했다가 맞아 죽을 겁니다.


거대 모기가 쉽게 공격할 수 있는 상대도 있긴 합니다. 브라만이나 비무장 인간이라면 좋은 목표겠지요. 하지만 그것도 전쟁 직후의 상황이지,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무장 순찰대가 돌아다니고 목축을 위해 브라만을 관리하면서 흡혈 대상이 점차 줄어들 테죠. 게다가 모기는 피를 빨기 때문에 바퀴벌레나 파리, 개미보다 더 위험한 적으로 간주될 테고, 인간들은 어떻게든 이들을 박멸하려고 할 겁니다. 일반 모기야 워낙 작고 숫자가 많아 처치가 곤란하지만, 이놈들은 큽니다. 게다가 별다른 방어수단도 없습니다. 황무지 무장 세력들은 피를 빨러 오는 모기를 보는 족족 때려잡았을 테고, 한술 더 떠 박멸을 위해 순찰대를 파견했을 수도 있습니다. 모기는 어떻게든 근근이 살아가겠지만 수가 줄어드는 걸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지금도 박멸시키려고 기를 쓰는데, 이놈들이 눈에 훤히 보인다면 더 그렇겠죠.


모기가 항상 물 속에 알을 낳는 것도 문제입니다. <폴아웃> 시리즈에서는 수원이 항상 귀하다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알을 낳을 웅덩이가 별로 없다는 뜻입니다. 깨끗한 물은 얼마 없으며, 호수나 웅덩이를 찾았다고 해도 방사능에 푹 절어있을 확률이 높죠. , 방사능 모기도 어차피 오염된 건 마찬가지니까 방사능 물에서도 살아남는다 칩시다. 하지만 그 물에 어떻게 알을 낳을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이 세계에서 물은 굉장히 중요한 자원이고, 큰 웅덩이나 호수, 강이 있다면 십중팔구 무장세력이 지키는 중일 겁니다. 그런 곳에 거대 모기가 알을 낳을 수 있을까요. 아마 접근하기도 전에 라이플이나 저격 소총 맞고 추락할 걸요. 그렇다고 마른 땅에 알을 낳으면 유충이 살기가 힘들고, 몸집이 커서 어지간한 연못으로는 안 될 겁니다. 어떻게 보면, 피를 못 빠는 문제보다 번식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흡혈이야 작은 동물이라도 습격해서 어떻게 빤다 치더라도 웅덩이를 인간들이 다 점거하면 번식이 아예 안 되니까요.


결국 거대 방사능 모기는 치명적인 약점이 두 개나 있습니다. 하나는 너무 커서 흡혈 상대에게 접근을 못 한다는 것. 또 하나는 인간들이 수원을 다 점령해서 번식이 힘들다는 것. 그러니까 먹지도 못하고, 후손을 남기지도 못합니다. 결국 거대 모기들은 전쟁 직후에 번성했으나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줄어들어 마침내 멸종했을 겁니다. 유니크 모기나 슈퍼 모기는 생존에 유리하겠지만, 이런 놈들은 개체 수가 적어서 종을 유지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되요. 그래서 <폴아웃> 시리즈에는 거대 모기가 안 보이는 것일 테고요.

 

블랙아일이나 베데스다가 이런 설정까지 고려해서 거대 모기를 제외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마 만들기 귀찮아서 혹은 잊어버려서 빼놓은 것이겠지요. 하지만 작중 묘사되는 세계관을 보면, 거대 모기가 없다 하더라도 별로 이상할 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