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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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하는 농담으로 어린이들의 꿈은 과학자, 대통령, 연예인이라고 합니다. 즉, 어린 나이에 보면 이런 직업이 대단해 보인다는 거죠. 특히, 과학자는 장르 작품에 곧잘 등장합니다. 거대 로봇을 만들거나 외계 괴물을 해부하는 등 활약상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위인전에도 과학자가 많이 나오는 편이죠. 과학자 위인의 대표적인 예가 에디슨과 아인슈타인. 그리고 아이들은 이런 위인전을 읽으면서 위대한 과학자가 되겠다고 다짐을 하는데…. 문제는 이러한 위인전이 과학자의 업적만 치하하고 나머지 부분은 그냥 덮어두거나 미화시킨다는 겁니다. 어린이가 읽는 거니까 밝게 꾸미는 것까진 이해를 하겠는데, 어쩔 때 보면 왜곡이라는 생각까지 들어요. 특히, 어릴 때 읽은 위인전과 나이가 들어 읽은 만평, 전기 등을 보면 세상에 속은 것 같은 분한 마음까지 들기도 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한 에디슨은 위인전과 실제 삶의 괴리가 가장 큰 인물일 겁니다. 위인전에서는 에디슨을 희대의 천재로 묘사하며, 전기를 발명해 현대화를 이끈 선구자로 평가합니다. 여기까지는 맞는 말이죠. 천재인 것도 맞고, 전기를 발명해 공업발달을 촉직한 것도 옳습니다. 다만, 이 사람은 과학자인 한편 기업가이기도 합니다. 워낙 직원들을 혹독하게 부려먹어 많은 비판을 받았고, 자기보다 나은 발명품이 있다며 돈으로 매수하기도 했습니다. 니콜라 테슬라와의 불화는 루머인 것도 있겠지만, 에디슨이 인간 쓰레기로 보일 지경. 뭐, 지금이야 현대 사회가 거대 기업들의 전쟁터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러려니 합니다만. 에디슨과 테슬라에 관한 사실을 알았을 때는 진짜 화가 나더군요.
에디슨과 안면이 있는 헨리 포드 역시 자동차 업계의 발명왕이자 기술자였습니다. 포드 T형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죠. 그래서 위인전에는 헨리 포드가 자동차 발명가라고 했고, 어릴 때는 그 말을 철썩같이 믿었습니다. 다만, 위인전은 포드가 철저한 기업인이고, 노동자를 혹독하게 대했다는 말을 쏙 빼놨습니다. 이 사람은 자동차와 함께 컨베이어 벨트도 만들었고, 그래서 노동자를 자동 조립 부품 쯤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대우가 없이 급여만 보상해주면 공장이 잘 돌아갈 거라고 믿었죠. 위인전만 읽었기에 이런 사실을 몰랐는데, 나중에 경제 수업을 듣고 나서야 진상을 알았습니다. 기가 좀 막혔지요.
아이작 뉴턴은 사과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과학자가 아니라 사과 장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뉴턴은 정원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떠올린 것으로 유명합니다만. 이 일화에는 신빙성이 없다고 하죠. 뭐, 에디슨만큼 뒷통수를 치는 일화는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미적분 문제가 좀 골 때렸는데요. 뉴턴은 당시대를 살았던 천재 수학자 라이프니츠와도 불화가 있었죠. 미적분을 누가 먼저 발견했는가로 다투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영국왕립학회에서 이 문제를 공평하게 다루어주길 기대했으나 하필 협회 회장이 뉴턴이었기에 라이프니츠가 권력 싸움에서 밀려났다고도 하더군요. 그리고 이 내용도 위인전에는 안 나오죠.
이건 저만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이순신이 실제 바다거북을 연구해서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위인전도 봤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이 대목에서 '오오, 그러면 거북선은 자연을 모방한 생체 병기겠구나. 역시 충무공은 대단해.' 이렇게 생각했죠. 그래서 이순신은 위대한 군인이며, 동시에 자연 역학을 인지한 위대한 과학자라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철갑선 개념은 그 이전부터 있었고, 이걸 좀 개량한 게 돌격선인 거북선이었습니다. 실제 거북선의 생김새는 아직도 논란이 많고, 고증이 옳다 틀리다 말도 많지요. 하지만 위인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안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확실한 건 이순신은 바다 거북을 연구한 적이 없고, 자연 역학 같은 걸 고려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과학자는 아닙니다. 다만, '지구는 둥글다'는 과학적 사실을 밝히기 위해 탐험했다는 걸로 유명하죠. 당시에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믿음이 널리 퍼졌고, 그래서 계속 항해하면 배가 지구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믿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지구가 둥글다는 콜럼버스와 지구가 평평하다는 선원들의 갈등이 이 위인전의 하이라이트인데…. 실제로는 당시 선원들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문제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이 너무 멀어 항해하기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이죠. 즉, 콜럼버스는 과학적 사실 따위는 관심도 없었고, 어디까지나 식민지 개척과 노예, 향신료를 얻기 위해 떠난 전형적인 정복자였습니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진짜 목적은 미화되었고 위인전에는 이 사람이 위대한 과학적 사실을 증명해낸 탐험가로 나오죠.
예전에도 한 번 했던 이야기인데,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흔히 위인전에 나오는 것처럼 교회와 대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갈릴레이는 어릴 적만 해도 사제가 되려고 했었고, 나이를 먹었어도 교회 권력에 의존하는 듯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위인전에는 사형 직전까지 치닫는 강렬한 드라마를 묘사합니다만. 교회 뜻에 불복종할 생각은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해서 자기도 모르게 교회 심기를 건드렸고, 이게 탄압으로 이어진 거죠.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만큼 진실을 지키기 위해 권력과 맞서는 과학자는 아니었다는 것. 당연히 이런 식으로 서술하는 위인전은 별로 없습니다.
음, "그래도 지구는 돈다."가 과연 갈릴레이 본인이 실제 한 말인지도 확실하지 않다고 하죠. 그냥 후대 사람들이 지어낸 말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동물 학자 다이안 포시는 위인전까지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현대 사회를 산 인물이고, 동물(고릴라)를 연구했기 때문에 사회 발전에 큰 기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어쨌거나 저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종종 다이안 포시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래서 포시가 제인 구달처럼 현지에 정착해 순박하게 동물 연구를 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포시는 상당히 극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콩고는 내전 때문에 치안이 매우 불안했고, 당연히 동물들도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에 격분한 포시는 밀렵꾼을 잡는답시고 현지 마을을 불태우기까지 했답니다. 이런 행동은 현지인들의 불만을 살 수밖에 없었고, 결국 칼에 난자당해 죽고 말았죠. 흔히 포시 이야기를 할 때는 고릴라를 연구했다고만 할 뿐, 저렇게 격한 행동을 했다는 언급은 쏙 뺍니다. 저런 내막을 알았을 때의 충격이란….
아인슈타인은 현대의 대표적인 과학자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수학에 약했다고 하는군요. 언젠가 클럽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간 적이 있었죠. 수학은 동료들이 해줬다, 아내가 해줬다, 논문의 수학 부분은 엉터리였지만 발상이 참신해서 유명해졌다 등등. 위인전에는 아마 이런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긴 신빙성 있는 이야기도 아니니까 안 나오는 게 당연하겠지요.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아이슈타인이 부인인 밀레바를 비참하게 버렸다는 겁니다. 밀레바는 아인슈타인이 못했던 수학을 도와줬을 정도로 대단한 과학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일방적으로 밀레바를 내버렸고, 그래서 밀레바는 남편이 그 유명한 상대성이론의 저자임에도 굶어가며 자식들을 키웠다고 합니다. 물론 그렇게 자란 자식들도 생애가 비참했고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에게 어울리지 않는 추한 사생활이기도 한데, 역시 위인전에는 안 나오죠.
조선의 위대한 과학자 장영실은 그 죽음에 의문이 많습니다. 눈부신 과학적 성과를 쌓다가 왕이 타는 가마가 무너져서 귀향을 갔다고 하는데…. 위인전에서는 흔히 세종이 눈물을 머금고 장영실에게 벌을 내린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실제 세종은 가마 사건 이후에 장영실을 혹독하게 대했다고 하더군요. 분명히 장영실은 가마 제작 책임자가 아니었음에도 무거운 처벌을 받았고요. 도대체 세종이 왜 장영실을 이렇게 대했는지 아직까지 자료가 없어 밝히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만, 위인전에는 세종이 장영실을 감싸는 것처럼 묘사하곤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성군이므로 음모론의 배후처럼 묘사하기 곤란하기 때문이겠죠. 이건 장영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세종이 수상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음, 안 좋은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것 같으니 이 정도로만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과학자들에게도 저마다 단점은 하나씩 있죠. 저는 저 과학자들, 그리고 과학에 일조한 사람들이 전부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위인전 같은 걸 쓸 때는 최소한 어떤 사람들이 단점은 있다는 걸 밝혔으면 좋겠습니다. 왜곡에 가까운 일대기를 듣고 자란 아이가 나중에 사실을 알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까요. 특히 과학자는 대통령이나 연예인과는 달리 만화 주연으로 정말 자주 나온단 말입니다. 물론 아이들에게 직설적으로 사실을 밝히기는 힘드니 어느 정도 돌려 말해야 하겠습니다만. 다른 건 다 제쳐 두고라도 에디슨이 정말 순수한 과학자가 아니라는 것, 콜럼버스는 과학적인 욕망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건 무슨 뒷통수 때리는 반전도 아니고….
위인전 작가나 번역자, 편집자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진보적인 인물의 평전을 출판한 편집자나 사장이 엄청나게 보수적으로 노동을 착취하는 사람인 경우라던가. 중학교 수학 이후론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과학책을 벌써 여러권 썼다거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세종이 장영실을 혹독하게 대했다는 데 흥미가 생겨서 조선왕조실록을 뒤져봤는데, 야구아님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전개였네요.
1. [세종 95권, 24년(1442 임술 / 명 정통(正統) 7년) 3월 16일(정축) 2번째기사
대호군 장영실이 만든 안여가 견실하지 못하여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다
대호군(大護軍) 장영실(蔣英實)이 안여(安輿)를 감조(監造)하였는데...]
=> 장영실이 감독하여 제조하였으니 장영실이 가마 제작 책임자는 맞는듯 합니다.
2.저도 그랬고, 대개 알고 있기론 장영실은 그 후 귀양을 가 유배지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았다고 하는데...
[세종 96권, 24년(1442 임술 / 명 정통(正統) 7년) 5월 3일(임술) 2번째기사
박강·이순로·이하·장영실·임효돈·최효남을 불경죄로 다스리다
"이 사람들의 죄는 불경(不敬)에 관계되니, 마땅히 직첩(職牒)을 회수하고 곤장을 집행하여 그 나머지 사람들을 징계해야 될 것입니다." 고 하니 그대로 따랐다.]
=>관직이 삭탈되고 엉덩이를 팡팡 맞았다는 이야기인데, 이후의 기록은 없습니다. 귀양을 갔다면 보냈다는 기록이 있을텐데 말이지요. 백과사전에 찾아봐도 귀양을 갔다는 이야기는 없는 걸 보니, 이것도 위인전에서 꾸며낸 이야기인가 봅니다.
3.[세종 96권, 24년(1442 임술 / 명 정통(正統) 7년) 4월 27일(정사) 2번째기사
장영실에게 2등을, 임효돈과 김효남에게 1등을 감형하고 조순생은 처벌하지 않다
하니, 임금이 장영실에게는 2등을 감형(減刑)하고, 임효돈과 최효남에게는 1등을 감형하며, 조순생에게는 처벌하지 않도록 명하였다.]
=>세종이 장영실을 혹독히 대했다는 이야기는 실록에 나오지 않습니다. 곤장 100대 맞을 걸 80대로 줄여주기는 했네요(2등 감형). 다른 이들을 보니 곤장 열대쯤 줄여주는 건 늘상 있는 일인 것 같은데, 그걸로 보아선 세종은 장영실을 특별히 아끼지도, 혹독하게 대하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곤장 80대나 때린 걸 보니 대왕께서 허리가 아프긴 하셨나보네요.
그리고 또 장영실이 뇌물을 받아서 형벌이 내려진 경우도 있었군요. 어렸을 적에 장영실 위인전을 참 많이 읽었는데.....
에휴 잠이나 자야겠습니다.
네. 진실은 언제나 쓴맛입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않좋은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리기 전에 이런 진실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 생각해보시는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불편해야 합니다. 불편해야, 자꾸 자꾸 불편한것을 개선하려 노력합니다. 인간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살아 있더라도 죽은것이지요. 않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 이런 이야기 하나 둘씩 모여 기폭제가 되며 우리 사회는 변하게 될겁니다. 한마디로 굿 잡!
덕분에 간신히 유지되던 제 동심이 깨졌군요. 동심따위 몇번이고 깨져도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제 자신에겐 좋은 것이죠.
고위 공무원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가 뇌물을 받은것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편한' 일이지만 그것을 누군가 까발리는것은 그에게 있어서 인생을 말아먹을 스케일의 '불편함' 입니다. 이때 시민의 시각으로 공무원을 바라봅시다. 쳐죽일놈이죠.
그리고 사회는 티끌만큼의 정의를 회복합니다. 이런 티끌이 모여서 사회는 발전하구요.
이 글은 불씨군요. 많은 불씨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불씨가 모여서 큰불이 되고 우리는 그 불빛으로 말미암아 어두운 앞길을
조금더 내다볼 수 있겠습니다. 불씨들이 흥하길 바랍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또, 불편하게 주무시길 바랍니다.
에디슨과 헨리 포드는 그냥 안면이 좀 있는 레벨이 아닙니다. 만년의 에디슨이 파산한 후 살던 집은 헨리 포드가 자기집 옆에 마련해 준 것이었고, 병마와 싸우는 에디슨의 곁에서 약값 다 대고 임종을 지켜 준 것이 바로 헨리 포드입니다. 이렇게 헨리 포드가 에디슨에게 정성을 다한 것은, 그가 10대였을 때 처음으로 취직한 직장이 다음 아닌 에디슨의 회사였고 이후 헨리 포드는 전기 기술자에서 자동차 기술자가 되어 자기 사업을 크게 일구게 되고서도 평생 동안 에디슨에 대한 존경심이 변함없었기 때문입니다.
헨리 포드는 직원들의 사생활에 노골적으로 간섭했다는 것 때문에 두고두고 비판을 받습니다. 그는 직원들이 근무가 끝난 후 술을 마시거나 바람을 피우거나 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헨리 포드는 직원들에게 퇴근 후에는 곧바로 집으로 가서 가족들과 화목한 시간을 보내면서 경건하게 신에게 감사하는 이상적인 기독교적인 삶을 살아갈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그렇게 무리한 요구를 한 이유는 술 마시고 바람 피우고 헛짓거리를 하면 그것이 곧 업무 능률에 큰 지장을 준다고 생각한 것이 한 가지였고, 또 한 가지는 자신이 직원들에게 월급을 동종업계의 경쟁사에 비해 2배로 주기 때문에 그냥 놔두면 직원들이 타락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던 것도 있습니다 - 여유가 있는 만큼 딴 짓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본 것이죠. 딴은 직원들의 가족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쓰여야 할 급여가 가족들에게 돌어가지 않고 오히려 직원들이 술과 바람피우는 데 사용될 경우 가정불화의 비극의 단초가 될 것이고, 헨리 포드는 자신이 2배로 주는 월급 때문에 직원들의 가정이 파괴되는 것은 절대로 싫었던 것입니다. 포드는 일종의 결벽주의자였던 셈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헨리 포드의 결벽주의가 도가 지나쳤다는 겁니다. 하다못해 업무 시간에는 공장 내에서 직원들끼리 서로 말도 주고받지 못하게 해서, 포드 공장에서는 직원들이 의사소통을 할 때 통용되는 복화술이 널리 성행했습니다. 업무 시간에는 공장에서 절대 말 소리가 나면 안되니까, 입모양과 몸동작을 보고 의사소통하는 기법이 포드 공장에서 따로 발달하기도 했을 정도로 강하게 직원들을 통제했죠. 지금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월급은 많이 주어서 포드 공장에서 일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고 합니다. 포드의 마인드는 돈만 많이 주면 직원을 비인간적으로 대해도 된다는 개념이라기 보다, 돈은 2배로 줄 테니까 포드 공장의 강한 통제를 감수할 의향이 있는 사람만 와서 일을 하라는 쪽으로 볼 수 있습니다. 포드가 비인간적으로 직원을 대했다고 하면 말이 안되는 게, 포드는 자기 공장의 직원들이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에 다른 어떤 기업인보다도 관심이 많았거든요. 가족 수당을 만들어서 지급하기 시작한 최초의 기업인도 포드입니다.
"어릴 때 읽은 위인전과 나이가 들어 읽은 만평, 전기 등을 보면 세상에 속은 것 같은 분한 마음까지 들기도 합니다."
이 부분 공감 만땅 입니다. ㅎㅎ
그런데 나이가 들어 읽은 만평, 전기등도 한쪽으로 치우쳐진 글들이 많더군요.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한다는건 어려운 일이지요. 객관적으로 어떤일이 있었다는 다큐멘터리 식으로 적어주기만 해도 좋은데 제가 어릴때 읽었던 위인전을 상기해보면 어떤일이 있었는데 -> 그다음 번역자나 출판자의 의견이나 결론을 집어넣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방식의 어린이 책은 일종의 브레인 와시가 아닌가 싶어요. 물론 저 분들이 나쁘다는건 아니지만요. 한 사례를 예로 들자면, 두 그룹의 어린이 들에게 똑같은 장난감을 나누어 주고 한 쪽엔 장난감의 기능 한 가지를 설명해주고 다른 쪽엔 장난감의 기능을 아예 설명해주지 않고 놀아라 하는 실험이 있었거든요. 설명을 받은 어린이들은 설명 받은 한가지 기능 때문에 나머지 다른 3가지 기능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설명을 전혀 받지 않는 어린이들은 높은 비율로 장난감의 다른(모든) 기능들을 찾아내서 놀았다고 하더군요.
위 실험의 목적은 효율적인 교육방식 테스트 였지만, 제 입장에선 어른들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생각을 주입할 자격이 있나 하는 고찰을 하게된 실험결과 였지요 - 아동용 위인전기 처럼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보면, 뉴턴이 동료 수학자들과 워낙 마찰을 많이 일으켜서 캠브리지에 사표를 내고는 학계를 떠난 뒤 조폐국에서 공무원 노릇을 할 때의 일화가 실려 있습니다.
스위스의 수학자 베르누이가 오일러와 함께 전 세계 수학자들에게 한 번 같이 풀어보자고 <최단강하곡선> 문제에 대한 공모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유럽 전역의 수학자들이 끙끙거렸지만 거의 문제를 풀지 못했죠. 학계를 떠난 뉴턴에게도 문제 공모가 전해졌는데, 문제를 오후에 받아서 단 하룻밤 사이에 문제를 다 풀어가지고 다음날 아침 정답을 엽서에 적어 익명으로 부치고는 정상적으로 조폐국에 출근했습니다. 베르누이는 수학자들의 풀이를 기다렸지만 마감날까지 도착한 것은 베르누이, 오일러 두 사람이 시도한 풀이와 익명의 한 사람이 보낸 엽서뿐이었는데, 이름은 없었지만 "손톱 자국만 보고도 사자의 솜씨인 것을 알겠다"라고 했습니다. 뉴턴은 학계를 떠나고서도 다른 수학자들이 1년 내내 고민해도 못 푸는 문제를 잠깐 생각해서 하룻밤만에 풀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죠.
뉴턴의 사악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독선적인 성격과 악행은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말미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뉴턴이 라이프니츠를 수학/과학계에서 완전히 매장시켜서 실의 속에 죽게 만들어 놓고 아주 기뻐했다고 소개해 놓았죠. 어린 시절 태어나자마나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가 친정에 뉴턴을 맡긴 후 출가해 버린 것이 그의 성격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제가 어릴 적 언젠가 위인전에는 좋은 말만 적는다는 걸 깨달은 뒤로 위인적은 안 보게 된게 기억나네요.
그리고는 존경하는 사람이 없게 된거는 안 좋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