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이의 글터
"스승님, 이 길이 맞습니까?"
어린 도제가 바삐 움직이며 탐지봉을 흔들어 댔다. 탐지봉 끝에서는 미약한 마법의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오는 것은 무릎까지 수염이 닿을만큼 허리가 굽어 있는 노인이었다.
"기다리거라 이 녀석아. 그렇게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야."
"하지만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해가 져버립니다."
"해가 지는 것도, 우리가 그 곳에 당도하는 것도 모두 순리에 따르는 것이니라."
도제는 입을 삐쭉 내밀었지만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스승의 저 말은 예언과도 같은 힘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천천히 숲을 따라 걸었다. 요정들의 불빛이 숲 속 여기 저기서 반짝였다. 푸른 수풀 사이로 마력의 불꽃이 넘실거렸다.
"힘 좀 빼거라. 요정들이 놀래잖느냐."
"그래도 말입니다. 오솔로는 위험한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위험이라. 네 녀석이 주워들은 그 어리석은 편견들이 훨씬 더 위험한 게다. 허튼 데 불씨 던질 여유가 있거들랑 마음을 열거라."
"예 스승님."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것이야말로 스승이 닦아온 마법의 정수이리라. 도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스승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머릿속에 새겼다. 가슴을 따스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울림이 얼어있던 심장을 보듬어 주는 것 같았다.
순간 빽빽한 나무들 사이 저 멀리 하늘너머로 져가던 붉은 노을이 보였다.
"아.. 스승님."
도제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태양은 하늘 저 멀리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하늘은 마치 도망치듯 재빨리 움직여 낯선 밤하늘을
던져 주었다. 그들은 어느새 숲을 지나 차가운 모래 바람이 불고 있는 사막 한 가운데에 있었다.
"우와!! 이게 오솔로로군요. 사막이라는 건 벌써 거기 도착한 겁니까?"
"그러길래 내가 뭐랬느냐. 조용히 따라나 오거라."
스승은 별자리를 바라보며 시간과 방위를 가늠하는 도제를 재촉하며 지팡이를 짚었다.
사막의 밤은 푸른 별빛과 그것을 삼켜버릴 듯한 바람소리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마치 별빛을 모아 만든 것 같은 신비로움이 솟아나오는 곳이 있었다.
"가서 내가 왔다고 이르거라. 공손하게 해야 한다."
"예. 스승님."
도제는 쪼르르 달려갔다. 오아시스 한켠에 쳐 있는 천막은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산과 같은 마법의 힘이
뿜어져 나왔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낡고 남루한 가죽천막이었지만 대신 신들이 산다는 천산이 놓여 있다고 해도
믿을만큼 강한 힘이었다.
"아룁니다. 위대한 서쪽 사막의 마법사이신 선인님, 동쪽 하늘의 마법사이신 동룡님께서 뵙기를 청하옵니다."
도제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수백번이고 연습했던 말은 마법의 주문처럼 매끄럽게
입 밖으로 빠져나왔다.
천막문이 열리고 망또를 두른 호리호리한 사람이 걸어나왔을때도 도제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서쪽의 선인을 직접 본 자는
눈이 멀어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도제의 눈에 갸녀리고 창백한 여인의 맨발이 들어왔다. 도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저는 감히 선인님을 쳐다볼 수가 없습니다."
그 목소리는 너무도 달콤했지만 도제는 눈을 꼭 감고 말했다. 이대로 눈을 뜬다면 영혼까지도 빼앗겨 버릴 것만 같았다.
"아이야. 두려워 할 것은 없다. 오아시스는 생명의 근원이다. 목이 마를 테니 두려워 말고 너도 한모금 마시려므나."
"선인이여. 이 아이는 지금 막 오솔로를 나온지라 아직 경황이 없을 것이네. 장난은 그만 두게나."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막 타목성이 천궁을 지났습니다."
"내가 좀 늦은게로군. 미안하네."
"북쪽과 남쪽, 바다의 마법사들도 도착하여 있습니다."
그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어둠속 저편에 하얗고 붉은 옷의 마법사들이 제각기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동룡은 그들에게 가볍게 목례하고는 오아시스 주변에 둘러 앉았다.
도제는 스승을 멀리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손을 들고 지팡이를 내밀고 마법의 가루를 내어 허공에 흩뿌렸다.
그러자 성스러운 오아시스 한 가운데 푸른 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였고 향료처럼 달콤했다.
차갑고, 또한 뜨거운 기운이 세상 여기저기에서 모여들었다. 그것들은 마법사들의 몸을 지나 어느 한 점으로 달려들었다.
그것은 오아시스 한가운데 거대한 조개모양의 돌 위에 위치한 한 점이었다.
푸르고 붉고 노랗고 하얀 빛이 점점 둥글게 뭉치며 물결치더니 마침내 그것은 한 점이 되었다.
마법사들의 주문은 어느새 노래가 되어 신비로운 사막의 밤을 울리고 있었다.
마침내 모든 빛이 한 점에 모이고 그 점은 찬란하게 빛을 뿜는 진주들이 되었다.
마법사들이 손을 하늘로 조심스럽고 경건하게 올리자 그 진주들은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하늘 높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구름한점 없는 사막의 밤에 빛나는 진주들은 하늘 높은 곳까지 올라가 마침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져버린 별들을 대신하기 위해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 별을 만들고 하늘을 채우는 것은
마법사들의 수많은 일들중 하나였다.
도제는 스승에게서 들은 일을 실제로 목격한다는 것에 가슴이 너무 들떠 그만 금기도 잊어버리고
입을 크게 벌린 채 오아시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눈이 멀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오아시스를 지키는 서쪽의 선인은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그는 다른 아무 것도 볼 수 없었고, 무엇을 보아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스승이 지팡이로 그의 머리를 세게 두들긴 후였다.
그는 다시 오솔로를 걸으며 서쪽의 선인의 아름다움을 떠올렸다.
"스승님, 오아시스엔 언제 가시나요."
"지금 막 갔다 왔잖느냐."
"다음엔 또 언제 가시나요."
"글쎄다. 서쪽의 선인이 보고 싶은 게냐? 허허. 내 미혹에 빠질까 근심하여 제일 어린 놈을 데려 왔건만 그도 소용이 없구나."
도제는 부끄러운 기색도 감추지 않고 서쪽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미 먼동이 터오는 숲속의 길은 수천만리나 떨어져 있는
사막과는 너무도 멀었지만 서쪽 선인의 얼굴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아른거렸다.
"그분은 정말 사람이 맞습니까?"
"그럼. 사람이잖고. 귀신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어찌 사람이 그렇게 고울 수 있답니까."
"마음속에 품은 것을 드러내는 것은 마법이 아니라도 누구나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생명을 품고 있는 자가 생명을 드러내고
아름다움을 지키는 자가 그에 물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
도제는 천천히 오솔로를 걸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평생을 걸쳐 추구하게될 마법의 길 그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아름다운 마법사의 얼굴을 그렸다.
그의 머리 위로 새로 떠오른 별들이 새벽빛 속으로 천천히 숨어들었다.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