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와 사이보그 글을 보고 든 두어 가지 잡스러운 생각들입니다.



1. 터미네이터도 밥은 먹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사이보그라면, 터미네이터와 로보캅이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국내에서 사이보그라고 하면 이 두 캐릭터를 우선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 같네요. 재미있게도 두 캐릭터는 사이보그의 근본적인 개념은 같으니 설계 결과는 정 반대입니다. 로보캅은 내부(두뇌)가 생물체이며, 외부에 기계를 둘렀습니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로봇 같지만, 속은 인간인 알렉스 머피의 고뇌가 주제죠. 이와 반대로 터미네이터는 엔도 스켈레톤을 골격으로 하여 인간처럼 보이도록 피부를 바른 것에 가깝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보이는 사람인데, 알고 보니 속은 기계더라~ 하는 식의 공포가 이 영화의 밑바탕입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건 똑같습니다만. 속에 뭐가 들었는가에 따라 영화의 주제나 분위기가 달라지는 셈이죠. 그리고 터미네이터보다는 아무래도 로보캅이 더 인간적인 냄새를 풍기고요.


그런데 생물은 기본적으로 뭘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이보그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유기적인 부분이 있으면 외부에서 계속 영양분을 공급해 줘야 활동할 수 있으니까요. 일단 로보캅은 밥을 먹습니다. 소화기관이 다 망가져서 그런지 이유식 같은 것으로 연명하지만요. 작중에서 이유식을 직접 먹는 장면이 나왔는지 기억이 아리송합니다만. 여하튼 OCP 과학자들이 이유식을 갖다 주며 먹어야 한다는 장면이 나옵니다. 알렉스 머피 본인도 이를 알기 때문에 동료 경관인 루이스한테 이유식을 사달라고 하고요. 이유식 먹는 장면이 안 나온 건 로보캅이랑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듬직한 강철 인간이 고작 죽이나 떠먹는 광경은 어색하잖아요. 물론 기계에도 전력을 공급해야 하니까 따로 충전을 받든가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생명체와 기계, 양쪽에 다 밥을 먹여줘야 하는 캐릭터죠.


그러면 터미네이터는 어떨까요. 엔도 스켈레톤 자체는 내장 배터리가 있기 때문에 따로 공급이 필요 없습니다. 그거 하나만 있어도 몇 십 년은 활동하는 데 무리가 없죠. 하지만 내장 배터리가 외피, 그러니까 인간처럼 보이는 피부에도 영양분을 공급하지는 못합니다. 작중에서 그런 언급을 하지 않았으며, 배터리 설명하는 걸 보면 피부를 먹여살릴 에너지원으로는 안 보입니다. 이게 단순한 피부가 아니라 피도 나고, 땀도 흘리고, 냄새도 나는 등 인간 신체와 거의 비슷한 작용을 하므로 영양 공급이 필수일 텐데 말이지요. 물론 T-1000처럼 완전한 기계라면 식사가 필요 없겠습니다만, T-800은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피부가 영양 실조에 걸려서 점점 말라들어가거나 혹은 썩을지도 모릅니다. 마르든 썩든 간에 겉보기에 좋아 보일 리 없고, 그러면 인간으로 위장하는 데 불리하죠. 자칫하면 내부의 기계가 드러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T-800은 밥을 안 먹습니다. 이게 이상해서 관련 정보를 찾아보니 제임스 카메론이 애초에 구상한 시나리오에는 터미네이터가 뭘 먹는 장면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피부를 탄력있고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T-800이 캔티 바 같은 걸 먹는 장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편만 해도 터미네이터는 악역이었고, 무소불위의 괴물이었습니다. 그런 괴물이 밥을 먹는 건 어색할 거라고 생각한 제임스 카메론이 나중에 퇴고를 하면서 뺏다고 합니다. 그래서 촬영조차 안 했죠. 뭐, 인터넷에서 찾은 ~카더라 통신이기 때문에 신빙성은 없습니다만. 제임스 카메론처럼 꼼꼼한 사람이라면 그런 설정을 넘어갔을 리 없을 테죠. 저는 최소한 먹는 장면은 안 보여주더라도 설명은 하고 넘어갔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2편에서는 T-800이 아군이니까 더 그렇죠. 아니면 로보캅처럼 먹는 시늉이라도 보여주든가. 시리즈가 4편이나 나왔는데, 아직도 T-800이 밥을 안 먹는 게 사소한 불만(?)이기도 합니다.


※ 최소한 T-800은 살기 위해서 먹는가, 먹기 위해서 사는가 고민은 안 해도 되겠네요. T-800의 최우선 목표는 입력된 명령 수행이지 자기 존재 유지가 아니니까요. 로보캅은 특정한 에너지원만 공급해야 하므로 살기 위해 먹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살기 위해 먹는다고 하면 알렉스 머피의 인간적인 면모가 너무 불쌍해지는군요.




2. 거대 로봇은 관념적인 사이보그


클럽의 몇몇 게시물에서도 이야기했고 로보캅도 그렇듯이 창작물의 사이보그는 '두뇌가 생명체, 신체는 기계'인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 신체에서 뇌가 가장 중요하다 보니 그런 공식이 만들어졌나 봅니다. 그런데 이런 공식을 거대 로봇으로 적용하면 어떨까요. 슈퍼 로봇의 대명사이자 원조인 마징가 Z 같은 거대 로봇은 일단 신체가 기계입니다. 그러면 두뇌는? 글쎄요, 일단 머리라고 할 만한 곳에는 카부토 코우지라고 하는 조종사가 탑니다. 그리고 마징가 Z의 두뇌는 사실 코우지인 셈입니다. 왜냐하면 코우지가 보고, 느끼고, 명령하는 것에 따라 마징가 Z도 움직이기 때문이죠. 만약 코우지가 없다면 마징가 Z는 활동을 할 수 없고, 코우지도 마징가가 없다면 적 괴수와 싸울 수 없으니 코우지와 마징가는 서로에게 필수적인 요소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구조는 사이보그와 흡사합니다. 사이보그는 두뇌가 생명체, 신체가 기계입니다. 그리고 마징가 Z도 두뇌라고 할 만한 코우지는 생명체고, 신체에 해당하는 마징가는 기계입니다. 아,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구조가 비슷하다는 겁니다. 근본적으로는 다르죠. 사이보그는 애초에 생명체와 기계를 연결한 것이고, 마징가 Z는 기계 속에 인간이 들어가 조종하니까요. 사이보그와 달리 코우지는 언제라도 자유롭게 마징가를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근본을 따지자면 사이보그와 마징가 Z는 다릅니다. 하지만 그 구조만큼은 같습니다. 머리에 유기체가 있다는 것, 몸은 금속이라는 것. 어쩌면 사이보그와 거대 로봇은 비슷한 로망의 구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더 강해지고 싶다는 로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인간 자체의 본성은 유지하고 싶겠죠. 그런 로망을 실현하려면 머리는 생명체(인간)인데 몸은 기계인 사이보그나 거대 로봇이 제격입니다.


거대 로봇은 관념적으로 보면 두뇌가 있는 사이보그와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