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확학도이면서 종교인이란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그러나 이 글에 종교적인 주장이나 과학적인 현상같은 것은 다룰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종교의 기원에 대한 생각을 적는 것 뿐이니 의견일 뿐입니다.

 

종교의 기원에 대한 표도기님의 글은 읽은 바가 있고

핵심 내용을 추리자면 종교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생겼고 결국은 종교와 과학은 그 기원과 의도가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다만 그 방식이 믿음이냐?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이냐?에 따라 갈린다고 읽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설명에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종교의 기원: 과연 눈에 보이는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게 말할 때에 인류의 초기 종교들에 대해서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어느정도 이후 생겨난 어느 정도의 체계가 잡혀있는 종교에는 미비한 설명이 좀 있고

요즘들어 과학의 탈을 쓰고 나타난 신생 종교들은

차라리 현재 존재하는 과학지식만 배워도 알수 있을 것을 엉터리로 설명하는 감이 있기 때문이죠.

(이런 신념의 뿌리가 과학이란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그렇다고 이 종교들이 기존 종교에 뿌리를 둔 것은 아니죠.)

 

이러니 조금은 다르게 볼까 합니다

 

어느 다큐인지 모르지만 현재의 인간이란 존재의 특성은 어떻게 보면 매장의식으로 나타난다고 하더군요.

원시 인류의 흔적은 석기같은 기술적인 발전을 남깁니다.

그렇게 보면 현생 인류는 기술적인 발달의 연장선에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이 다큐에는 그런 말을 하더군요.

뇌의 용적은 비슷해도 특별한 매장의식의 흔적이 없다. 네안데르탈인에게 죽은 자에 대한 관념은 없었다고...

 

 

사실 여태까지 모든 생물이 태어났다 죽어왔고 그것에는 의혹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계기인지 모르나 현생 인류는 그런 추상적인 관념이 생겼다는 것이죠.

(이 의문이 먼저였는지 신이란 존재의 접촉이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과연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죽지 않을 수가 있나?

 

 

 

 

 

2. 눈에 보이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이 의문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보면 살아있는 것들은 어떤 짓을 해도 죽는다는 것뿐이나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아무도 알려준 바가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의 결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추리로 이어지게 되죠.

이것은 근거가 없으니 믿음이란 것이 필요하게 됩니다.

(여기서 그 보이지 않는 것을 영계라고 하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꿈이란 것이 종교적으로 중요해지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이성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데

볼 수 없는 세계을 보는 창으로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의식 중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지식이 쌓여 갑니다.

때로는 스스로 무의식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것이 샤먼이란 형태로 나타나죠.)

 

또한 영계가 이미 어떤 형태로든 이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예언이란 것이 지금도 이어지는 게 그 때문이 아닐까 하네요.)

 

그 결과 의문에 대한 답은 죽음이 끝이 아니고 이후의 삶이 있다.

그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였습니다.

(현실에서 부, 명예, 권력을 가진 왕들도 죽을 때는 신관을 찾아가야 할 수 밖에 없었죠. 이건 이후의 삶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3. 어느 순간의 와전

 

그렇게 보면 이 세상의 법칙으로는 영계를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죠.

잘보니 영계의 법칙이 따로 있고 진리라 하겠는데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그게 심리적인 공통점인지 진짜 영계의 법칙인지 제가 판단할 건 아닙니다.) 

 

다만 표현할 길이 없어 차용한 것이 이 세상의 사물입니다.

(예로 신화에 나오는 건널 수 없는 강같은 건 실제로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와 또 다른세계의 벽을 의미하는 사물을 이용한 표현일 뿐이죠.

설총의 이두문처럼 한자를 쓰기는 썼는데 음을 차용해서 쓴 것처럼요. 이걸 과학으로 설명하려는 게 어불성설이죠.)

 

그러니 종교의 모든 기록들을 보게 되면 허무맹랑한 소리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기록들은 현실적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영계에 대한 기록들이니

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이 기록들의 의미를 알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고 신학이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영계를 다스리는 전지전능한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보류해둬도 그 영계에 사는 존재를 찾을 필요가 있어지죠.)

 

religion은 다시 이어지다, 宗敎(종교)는 꼭대기의 가르침, 하늘의 가르침을 말하니 그 영계의 가르침을 말하죠.

신에게 배우든, 돌아가긴 조상에게 배우든, 정령에게 배우든 그건 따질 바가 아닙니다.

 

만약 종교가 이렇게 생겨난 것이면 이 세상에 대한 것을 설명할 필요도 없고

종교란 학문도 이 세상의 삶을 누리려고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을 따르는 자가 많아지고 권력이 되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권력자들은 자기가 사는 세상을 차지하고 싶어하거든요.

인간은 누구나 삶과 죽음에 관심이 있으니 종교를 먹으면 그게 쉽죠.

 

변질의 시작이 이 때부터입니다.

그동안 선지자들이라던가 예언가들의 기록을 현 세상에 대한 기록으로 돌리면 그게 더 쉽습니다.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면 아주 훌륭한 통제수단이 되겠죠.

그건 종교의 목적이 변질되는 순간입니다.

 

순수히 영계를 탐구하는 선각자가 나오기 전까지 더이상 종교의 발전은 없어집니다.

 

 

 

 

 

4. 다른 형태의 종교

 

다른 노선의 종교에 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저는 종교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의문으로 생겼다고 했습니다.

 

1. 죽음 이후의 삶?  => 영계에 대한 탐구

 

그러나 사람들은 어차피 죽음을 두려워 합니다. 생물의 본능이라해도 되겠죠.

그렇다면 한가지 노선이 더 있다는 것이죠. 많은 신생종교가 이런 케이스를 따르기도 합니다.

 

2. 죽지 않을 수가 있을까? => 죽지 않을 수 있는 방법 탐구

 

이전에 진시황이 이런 노선을 따르기도 했습니다. 불로초가 있다고 믿었죠.

약초에 의해 동양 의학이 발달하면서 생긴 신념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비슷한 경우로 종교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다는 말이죠.

이론상 가능성은 있는데 실현은 불가능합니다. 그 부족한 부분을 종교로 때운 것이죠.

결국 과학을 기반으로 과학의 탈을 쓴 종교가 생기는 케이스입니다.

(한 예로 라엘리안같은 경우는 외계인이란 다른 세계의 존재 + 인간복제기술로 영원한 삶을 설명합니다.)

 

 

 

 

 

 

5. 종교가 추구하는 것

 

영계가 진짜있고 그에 대해 설명한 것이 진실인지는 제가 판단해서 말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건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죠.

믿으면 영계에 대해 배울 것이고 믿지 않으면 시작도 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영원히 사는 법을 배우려 한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이 역시 믿음이 필요합니다.

 

다루는 영역이 다른 만큼

종교에 대해 과학적 방법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사실상 말이 안되고

종교의 역설과 비유가 과학적이란 것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종교는 죽음과 삶에 대한 탐구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영계를 인정하고 그 곳의 삶을 준비하거나

영계가 필요치 않게 이승의 삶을 영위하고 싶거나...

 

과학으로 신을 인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듯이

그런게 실제로 있다고 증명할\수 없고, 없다고 해도 증명할 수 없는 것이죠.

 

이렇기에 두 영역은 곂치지않고 종교의 시작은 과학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