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날이 갈수록 현대 무기가 발달한다고 하지만, 의외로 보병의 개인화기는 여전히 냉전 수준에 머무르는 것 같습니다. 전차와 항공기, 군함은 과학 발달과 더불어 혁신적으로 변하는데, 개인화기는 그러한 혁신이 최근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죠. 매체에 주로 나오는 총기들, 그러니까 아말라이트, 칼리시니코프, 헤글러&코흐 등의 총기는 과거에서 별로 변한 게 없잖아요. 오죽하면 미군이 아말라이트 시리즈를 대신할 차기 소총을 모집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결국 바뀐 게 없죠. 여전히 전쟁에서 깃발을 꼽는 건 보병이고, 그러니 보병의 개인화기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무기일 텐데, 왜 이리 바뀌는 게 없을까요. 저는 그 이유가 사람이 사람을 상대한다는 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병의 상대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보병입니다. 요즘에는 기계화 보병이 늘어난 관계로 대전차포로 탱크도 잡고, 휴대용 미사일로 전투기도 격추시키지만, 아직까지 보병이 주로 상대하는 병과는 같은 보병이죠. 그런데 보병은 기갑차량, 항공기, 군함 등과는 달리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입니다. 즉, 과학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사람은 그 혜택을 못 받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신형 방탄복을 지급하거나 파워드 슈츠의 파트를 달아줄 수야 있겠죠. 그러나 엔진과 장갑판, 설계 자체를 완전히 바꾸는 기계와 겉에 옷만 입는 인간의 변화가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군견 같은 동물이라면 지속적인 교배로 종을 바꿀 수도라도 있죠. 그래서 요즘엔 독일 셰퍼드보다 벨기에 말리노이즈를 쓰는 추세고요.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바뀌어도 사람만큼은 구식이에요.


zshotgun1.jpg

[게임에서는 XM8 같은 차세대 소총이 잘만 나옵니다만. 현실은 갈 길이 멀죠.]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람을 처치하는 총기 역시 변화가 없는 게 당연합니다. 과거 세계대전이 벌어졌을 때만 해도 개인화기라는 것이 막 발달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니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총기가 계속 등장했죠. 그러나 점차 보병 화기의 개념이 잡혀가자 변화는 슬슬 줄어드는 추세로 접어들고, 기어이 혁신과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뭐, 돌격소총 하나에 돌격, 저격, 유탄, 미사일 등을 다 때려 박는 통합 체계가 나올 거라고들 예측은 합니다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의문입니다. 방탄 파워드 슈츠가 현실이 되지 않는 한 미래형 소총도 나오지 않을 거라고 봐요. 당분간은 화력 증진이나 사격 방식보다 상황에 맞게 부품을 바꾸는 SCAR나 부시 마스터 같은 개념이 대세를 이어가겠죠.

 

그렇다면 여기서 시야를 좀 바꿔 봅시다. 아시다시피 SF에선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미지의 존재를 상대할 때가 많습니다. 좀비든, 외계 괴물이든, 로봇이든, 유전공학 공룡이든 간에 일단 이것들은 사람보다 훨씬 강력한 적수입니다. 좀비만 하더라도 총에 맞으면 어지간해서 죽지 않고, 외계 괴물 역시 피부가 철판이라도 되는 양 버티기 일쑤죠. 로봇은 아예 금속 덩어리니까 소총탄 정도야 씹고 들어오고, 공룡처럼 거대한 동물도 총알 한두 방에 쓰러지진 않습니다. 그러니 이런 놈들을 상대로 소총을 쓰긴 힘들 겁니다. 그렇다고 기관총을 들자니 휴대 문제 때문에 어렵고요. 총 자체의 무기도 그렇거니와 그 많은 탄약을 어떻게 소지할까요. 그래서 답은 하나로 귀결됩니다. 휴대가 용이하면서 다루기도 쉽고 한 방이 강력한 화기, 산탄총으로 가는 거죠.

 

사실 각종 장르에 나오는 것처럼 산탄총이 모든 괴물에게 잘 먹히는 특효약은 아닐 겁니다. 저야 총기 관련 지식은 잘 모르지만, 과장이 많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일단 강선이 없기 때문에 명중률이 그렇게까지 좋은 편은 아닙니다. 소총마냥 조준하고 쏜다고 목표에 탁탁 꽂히지는 않죠. 그리고 탄약을 한 발씩 일일이 장전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실제로는 펌프 액션으로 사격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하나씩 장전하는 게 더 멋있어 보이긴 하지만, 현실과 매체는 다른 법. 거기다 이름 그대로 탄이 퍼지는 특성상 잘못 발사하면 아군도 치명상을 입기 마련입니다. 다른 총기도 오발 사고가 위험하지만, 산탄총은 작은 구슬들이 전부 어디로 튈지 모르는데 함부로 겨냥할 수야 없죠.


zshotgun12.jpg

[이 한 장의 표지가 샷건의 이미지를 말해줍니다. 둠가이부터 들고 다니는데요, 뭐.]

 

하지만 타격 범위가 넓다는 점과 일부 특수한 슬러그 탄을 썼을 때 타격 효과가 집중된다는 점 때문에 오늘도 산탄총은 많은 장르 팬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아마 괴물이 나오는 영화나 게임치고 산탄총이 빠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권총이나 소총, 기관총이 빠지면 모를까 말입니다. 특히, 이게 두드러지는 게 FPS 게임인데, 특성상 주인공 캐릭터 혼자서 수많은 괴물을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병사들이 괴물과 싸운다면, 혼자서 싸우지 않을 테고 부대 작전을 펼치겠죠. 기갑부대나 공군의 지원도 받을 테고요. 어느 정도 개활지에서 싸울 테니 사정거리도 확보할 수 있고요. 그러니 화력 증강을 도모할 수 있고, 굳이 산탄총 안 들어도 됩니다. 소총과 기관총, 대전차포 등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하지만 FPS 게임은 대개 생존기와 미로 찾기라는 두 가지 특징을 포함합니다. 동료는 없거나 있어도 소수입니다. 병과를 나눌 수도, 화기를 보강할 수도 없습니다. 기관총처럼 무겁거나 대전차포처럼 일회성인 물건은 가져가면 손해입니다. 자유로운 행동이 가능하며 화력도 강한 무기를 챙겨야 합니다. 그리고 건물이나 우주선, 정글 등 교전 거리가 상당히 짧은 곳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교전 거리가 몇 십m를 넘어가는 경우는 드물고, 모퉁이만 돌면 괴물이 튀어나온다는 뜻입니다. 거기다 괴물들은 은/엄폐를 하며 총을 쏘는 게 아니라 대개는 내구력으로 버티며 달려와 주인공을 썰어대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굳이 사정거리를 확보하지 않아도 좋고, 은/엄폐를 고려하는 것도 소용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총기가 뭘까요. 네, 산탄총이죠. FPS 게임에서 괴물을 죽이려면 산탄총이 답입니다.

 

게다가 <둠>이 새 장르를 개척한 이래로 하이퍼 FPS는 그 영향 아래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원조 게임에서도 산탄총은 묵직한 한 방으로 유저의 스트레스를 속 시원하게 풀어주었기 때문에 이후의 게임들도 그런 경향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해피 트리거에게는 세심하게 조준하고 컨트롤하는 전술 소총보다 앞뒤 안 가리고 무작정 쏴대는 산탄총이 더 좋을 테죠. 그리고 이 세상에는 복잡한 전술을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단순하게 쏘면서 게임하고 싶은 사람이 더 많을 테고요. 이런 현상도 산탄총이 인기를 누리는 원인 중 하나라고 봅니다. <헤일로> 같은 게임이 판도를 바꾸긴 했습니다만, 하이퍼 FPS가 전부 <헤일로>를 따라가는 건 또 아니니까요.

 

물론 모든 FPS 게임이 다 저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괴물과 싸우는 대다수의 게임은 저런 특성을 포함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결국 유저는 이것저것 고민하다 산탄총을 고르게 됩니다. 굳이 권총이나 소총, 저격소총을 선호하는 유저라면 모르겠지만, 그냥 효율성 높은 화기를 고르는 유저라면 결과는 뻔합니다.


zshotgun13.jpg

[좀비에겐 샷건이 진리입니다. 오죽하면 이런 이미지가 나올까요.]

 

이렇듯 게임에 나오는 괴물들 중에서 산탄총과 천적 관계인 괴물 1순위를 꼽자면, 아마 좀비일 겁니다. 도대체 어쩌다 이런 공식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산탄총으로 좀비 머리를 호쾌하게 날려주는 게 요즘 호러물입니다. 메이스, 모닝스타 등 둔기가 언데드에게 강하다는 판타지 속성과 비슷할까요. 여하튼 좀비 게임으로 가장 유명할 <레프트 4 데드>에서도 이건 변하지 않습니다. 생존자들에겐 여러 무기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무기는 오토 액션 샷건. (모델은 아마도 M1014.) 방아쇠 한 번만 당겨도 개떼처럼 몰려오는 좀비 무리를 모두 눕힐 수 있으며, 위력도 괜찮아서 한 방 맞으면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죠. 일반 좀비 말고, 내구력이 악랄한 탱크와 윗치를 상대할 때도 이만한 물건이 없습니다. 사거리가 짧긴 하지만, 어차피 좀비가 순식간에 몰려오므로 사정거리는 별 의미가 없어요. 다만, 장전할 때 탄약을 하나씩 넣는지라 이 순간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사실 이 게임은 도시 전체를 무대로 삼기 때문에 근접전 말고 원거리 전투도 자주 벌어집니다. 그런데도 M1014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좀비의 물량과 속도 때문일 겁니다. 비슷한 수의 적과 싸운다면 소총과 기관총으로 사정거리를 유지한 채 얼마든지 대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존자는 달랑 4명인데, 좀비는 수 십 명이 몰려오고, 더군다나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1열에 있는 좀비를 쓰러뜨리고 나면, 곧이어 2~3열의 좀비가 잽싸게 달려들죠. 결국 광장이든, 공항이든, 공터든 간에 좀비 파도가 밀려오면 사정거리는 의미가 없어지고, 근접전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뭐, 고수들은 사냥 소총(M14) 가지고 잘만 저격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고수에 한정합니다. 평민 유저는 우르르 몰려오는 적을 상대로 어쩔 수 없이 근접전을 펼쳐야 하고, 그러자면 산탄총만한 게 없어요.

 

좀비처럼 개떼로 몰려오는 괴물을 또 따지자면, 에일리언이 있죠. 게임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에서도 산탄총은 좋은 선택입니다. 우르르 몰려오는 에일리언을 피해 도망치면서 쏘기 좋으며, 탄약이 퍼진다는 특징을 이용해 대충 조준한 다음 은폐한 프레데터를 찾을 수도 있거든요. 2편에서는 일반 산탄과 함께 슬러그 탄도 쏘는데, 피부가 두꺼운 프레토리안을 잡을 때 제격이었습니다. 펄스 소총보다 훨씬 나아요. 3편에서는 에일리언 드론의 체력이 더 높아졌기 때문에 막강한 한 방의 ZX-76 산탄총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근접격투를 해서 에일리언을 경직시킨 다음 머리에 대고 두어 방 쏴주면 산성피가 모락모락 피어 오릅니다. 펄스 소총보다 탄약 낭비가 덜하죠. 거기다 더블 배럴이므로 한 번 쏴서 두 번 맞추는 효과까지 있습니다. 다만, 에일리언은 산성피가 튀므로 적당한 거리를 조절하는 게 관건. 영화에서는 산탄 한 번 잘못 쐈다가 살이 탈 뻔하죠.


zshotgun14.jpg

[사실 이 정도까지 접근하면 펄스 소총으로는 부족합니다. 산탄총이 답이에요.]

 

사실 산탄총의 진정한 가치는 2편이 아니라 3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2편은 에일리언 드론의 체력이 비교적 낮고, 해병이 보다 넓은 지역에서 싸웁니다. 그러니 펄스 소총과 유탄을 조합해 갈겨주면 에일리언 파도를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습니다. 문제는 3편인데, 2편에 비해 맵이 한없이 좁습니다. 실내 미션이 많고, 간혹 외부로 나간다 하더라도 맵이 그리 넓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에일리언 드론의 체력은 훨씬 높아져서 펄스 소총만 가지고는 죽이기 힘듭니다. 결국 게임 디자인 때문에 근접전으로 가야 하고, 그러니 펄스 소총보다 산탄총을 드는 게 낫죠. 펄스 소총은 가끔씩 나오는 넓은 필드에서 원거리 전투할 때 써주면 되고요. 똑같이 에일리언을 잡는 게임이라도 맵 디자인과 괴물 체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용 총기가 달라지는 결과입니다.

 

공룡은 좀비나 에일리언 같은 괴물은 아닙니다만, 역시나 주인공들은 소총보다 산탄총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공룡과 싸우는 게임으로는 <다이노 크라이시스>가 제일 유명할 텐데, 이 게임은 권총, 산탄총, 유탄발사기 등의 무기(파츠)를 기본으로 제공하죠. 이 중에서 유탄발사기는 폭발물이니까 제외하면, 남는 선택은 산탄총. 모델은 SPAS-12. 모든 적들에게 골고루 잘 먹히는 무기이며, 특히 가까이서 쏘면 적을 경직시키기도 좋습니다. 게임은 아니지만,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는 멀둔을 비롯한 공원 레인저들이 전부 산탄총으로 무장했습니다. 역시나 모델은 SPAS-12. 다만, 처음에 사육사를 죽인 랩터나 중반부에 멀둔을 죽인 랩터, 후반부 그랜트에게 덤빈 랩터 등 대부분은 랩터의 승리로 끝났군요. 이 영화의 산탄총은 도대체 제대로 한 일이 없습니다. 감독이 산탄총을 싫어하나.

 

<다이노 크라이시스>는 공룡이 나오는 게임이지만, 배경은 밀림이 아니라 실험실입니다. 좁은 건물 안에서 싸우기 때문에 역시 근접전 위주로 흘러가죠. 복도 모퉁이만 돌면 랩터가 튀어나오고, 도망치고 싶어도 갈 곳이 별로 없습니다. 이 놈의 랩터는 좀비나 에일리언과 행동 패턴이 매우 비슷해서 주인공만 보면 닥치고 돌진입니다. 뭐, 호러 장르의 괴물이라면 좀비든 공룡이든 다를 게 있겠어요. 그러니 결국 근접전 해결사인 SPAS-12 써야죠.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는 왜 죄다 산탄총 드는지 좀 의문입니다. 이들은 군인이 아니라 동물을 상대하는 사냥꾼에 가까우니까 그랬겠지만, 보통은 엽총을 들지 않나요. 랩터란 놈이 엽총 한 방에 쓰러지지는 않을 테니 SPAS-12를 선택했나 봅니다. 참고로 소설에서는 산탄총보다는 로켓이나 마취총을 씁니다.


zshotgun15.jpg

[공룡이 이렇게 코 앞까지 왔으면, 근접전 들어가야죠. 역시 산탄총이 답입니다.]

 

기계류를 상대할 때도 산탄총은 빛을 잃지 않습니다. 게임 <크라이시스>에서는 외계인들이 단단한 강화복으로 무장하고 나옵니다. 여기다 대고 권총이나 소총을 쏘면 골치 좀 아프죠. 소총탄으로도 안 부서지는 건 아닌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게다가 적들의 공격이 북한군 총탄보다 훨씬 매서워 나노 슈트로 버티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에요. 이럴 때 전술 산탄총을 쏘면 3방 안에 적을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소음이 크다는 게 문제지만, 쏘고 나서 은폐하면 되니까 별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두들겨 맞으며 소총으로 싸우는 거보다야 훨씬 나아요. 다만, 이놈들에게 비행능력이 있어서 하늘 높이 뜨면 맞추기 좀 난감하든 게 단점. 거리가 짧다는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합니다. 아, 게임은 아니지만, 기계류와 싸우는 대표적인 작품인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도 산탄총은 유용하죠. 1편의 카일 리즈도, 2편의 T-800도 적 터미네이터를 경직시킬 때 잘 써먹었습니다.

 

<크라이시스>든 <터미네이터>든 근접전 위주인 작품은 아닙니다. 비좁은 항모 안에서 싸우거나 건물 안에서 치고 박는 장면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전체적인 액션은 원거리 전투 위주죠. 그런데도 산탄총이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내구력 때문일 겁니다. 즉, 좀비, 외계 괴물, 공룡과는 달리 맵 디자인보다는 기계류는 내구력 문제라는 겁니다. 장갑판이 금속이라서 총탄이 안 통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이왕 쏘는 거 조금이라도 더 충격을 줄 수 있는 탄약을 골라야 합니다. 그러자면 9mm나 5mm짜리 총탄 말고 스케일이 큰 거 써야겠죠. 실제로 영화에서도 권총이나 소총을 맞은 터미네이터는 별로 경직이 없지만, 산탄총을 맞으면 1~2초간 움직이지 못했으니까요. <크라이시스>는 산탄의 충격을 데미지로 계산해서 소총탄보다 산탄이 더 강한 것으로 설정했고요.


zshotgun16.jpg

[각 게임 사이트의 공략에서도 외계 슈트는 산탄총이 정답이라고 합니다.]

 

사족인데, 2편의 T-800이 총기를 회전시키는 레버 액션 장전은 겉멋이 나서 패러디도 곧잘 되었죠. 이런 걸 보면 역시 펌프 액션보다 일일이 장전하는 걸 더 선호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막판에 사라 코너가 T-1000을 구석으로 몰아붙일 때 한 손으로만 장전한 펌프 액션도 멋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T-800의 레버 액션을 따라가진 못했죠.

 

방사능 맞고 생겨난 돌연변이에게도 산탄총은 효과를 발휘합니다. 핵 공격 이후의 세계를 그린 <메트로 2033>에서 최고의 무기는 언제나 산탄총이 차지합니다. DLC가 나오기 전에는 오토매틱 샷건이 인기였는데, 리볼버처럼 회전식 탄창이 달린 게 특징입니다. 덕분에 재장전이 비교적 빠르고, 막강한 데미지를 계속 줄 수 있다는 게 장점. 공략 동영상을 보면 대개의 유저들은 강력한 사서를 잡을 때 산탄총을 쓰더군요. 만약 한정판 게임을 구입했다면, 특전으로 헤비 오토매틱 샷건이 풀리는데 산탄을 20발씩이나 연사할 수 있습니다. 단점이라면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탄약을 제공하지 않아 싸우기가 힘들어진다는 것. 물론 이는 난이도 설정 문제고, 총기 자체는 상당히 좋아요.

 

위에서도 계속 이야기하는 맵 디자인을 또 말하자면, <메트로 2033>은 이름 그대로 지하철 탐험입니다. 지상으로 나왔다고 해도 넓은 필드를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목표 건물로 곧바로 들어갑니다. 지하철과 건물이라니, 당연히 근접전 위주가 되겠죠. 때에 따라서는 역이 넓어 저격이 유리할 때도 있습니다만. 전체적인 액션 연출은 근접이 더 많습니다. 그러니 좋은 저격총이 많더라도 샷건을 드는 거고요. 저는 처음에 빈토레즈 같은 좋은 저격총이 있어서 이걸로 밀고 나가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계속 근접전을 치르는 걸 보니까 생각이 바뀌더군요. 교전 거리가 10m도 채 안 되는데, 빈토레즈가 소용이 있을까요.

 

포스트 아포칼립스 주제의 FPS 게임은 <폴아웃 3>가 더 유명하지만, 이 게임은 개활지에서의 전투가 많아 <메트로 2033>을 예로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넓은 지형에서 싸우면 산탄총이 불리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거나 하면 별 거 없다고 하는 산탄총 역시 중요해집니다. 아무리 VAST 턴 방식으로 싸워도 좁은 복도에서 저격소총 들고 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게다가 DLC인 <뉴 베가스>에서는 저격소총을 제치고 단발 사격이 더 강하게 조정되었죠. 좁은 장소에서 싸우는 걸 고려한다면 산탄총도 꽤 훌륭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직접 게임을 해보지 못한지라 수치만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네요. 어쨌든 수치상으로도 결코 나쁘지 않으며, 특기인 근접전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zshotgun17.jpg

[게임 <메트로 2033>의 더블 배럴 샷건. 돌연변이가 눈 앞에 있으면 근접전 해야겠죠?]

 

좀비, 공룡, 외계 괴물, 기계, 돌연변이. 이 정도면 SF에서 맞닥뜨릴만한 괴물은 거진 열거한 것 같네요. 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건 괴물의 종류가 아니라 주인공이 괴물과 싸우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어차피 종류를 막론하고 이런 괴물은 소총탄 몇 방을 견딜 만큼 강하거든요. 그런데 주인공은 사지에 홀로 고립되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고립되는 장소는 넓지도 않고 비좁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그 상대가 좀비든 기계든 간에 들고 다니기 편하고 위력이 센 무기를 챙길 수밖에 없다는 거죠. 이런 식의 생존물이 FPS의 주력으로 남아있는 한 앞으로도 산탄총은 더욱 많은 사랑을 받으면 받았지, 쇠퇴할 일은 없을 겁니다.

 

저보고 게임에 나온 여러 산탄총 중 좋아하는 걸 하나 고르라고 하면. 없습니다. 사실 저는 기관단총이나 단축 소총을 선호하지, 산탄총 별로 안 좋아해요. 제가 섬세한 컨트롤의 소유자라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취향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놈의 하이퍼 FPS 게임들은 괴물을 잡으려면 산탄총 쓰라고 자꾸 강요하는군요. 그래서 좀 뿔이 나 가지고 구시렁거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