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차를 좋아합니다.

지금 현재 승용차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또 10년 이내로 살 생각도 없지만...

사실은 아주 어릴 적부터 자동차라는 것을 원래부터 꽤 좋아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기계공학 전공해서 자동차를 만드는 일을 평생 해 볼까 그런 생각도 했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1종 보통 면허를 땄죠 - 왠만한 차를 다 몰아보고 싶었거든요.

 

군대 가서 운전병이 된 것도, 그 덕분에 많은 차를 몰아보고 자동차 정비를 많이 배운 것도 득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대략 10 년 전 400 만원 견적이 나온 큰 사고를 낸 후 트라우마 때문에 운전을 잘 안하려고 들게 되었고,

또 경제적인 여건을 생각하면 지금 차를 사는 것은 무모한 행위라고 판단하여 자제하고 있을 뿐이죠.

 

 

1.

최초로 운전을 배운 차는 포니 엑셀이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아버지께서 몰고 다니시던 차였습니다.

1994년 무렵 한강 고수부지에서 조심스럽게 운전을 배우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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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운전을 배운 포니 엑셀은 택시 회사를 경영하셨던 제 삼촌께서 3년인가 타시다가 저희 아버지께 인계한 것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집 두 채 살 때까지는 하늘이 무너져도 차를 사지 않겠다는 원칙을 관철하시다가,

드디어 두 번째 집을 사게 되자 자신의 동생이 몰던 중고차를 인계받으셨습니다 - 1989년인가 그렇습니다.

저 포니 엑셀은 저희 집에 와서 이후에도 7년 동안 더 노력 봉사한 후 만 10살을 넘기고 결국 폐차되었습니다.

(나중에 IMF 시절 집안이 망할 지경이 되었을 때, 차는 아무 소용이 없었지만 미리 마련해 둔 두 번째 집은 효자 노릇을 합니다.)

 

 

 2.

1994년 늦가을 병역을 다하기 위해 군에 입대합니다.

내심 희망했던 대로 운전병 병과를 받고 운전교육대에 가서 군용 차량 운전을 다시 배우게 되죠.

운전병을 지망했던 것은 자칫 허송세월이 될 수 있는 군대 시절이라도 뭔가 이득이 되는 시간이 되려면

차량 정비나 기계 다루는 법을 손에 익힐 수 있는 운전병이 바람직하다는 큰이모부님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군용 차량이라고 해도 지프의 경우에는 승용차와 별다를 게 없어서 어려울 것이 별로 없었지만,

생전 처음 몰아보는 백미러 보는 법도 중요하고 짐칸이 차 있으면 후진이 쉽지 않은데다가

군용 트럭의 경우 기어 조작 방법이 무척이나 특이해서 처음에는 꽤 애먹었습니다.

게다가 클러치도 무지하게 커서 밤에 누워서도 그것을 밟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 때 운전을 배운 트럭이 2 1/2톤 (두 돈 반) 트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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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 해도 군용 2 1/2톤 차량은 파워 핸들이 아니었습니다.

저 큰 차를 그냥 자기 힘으로 핸들 돌려서 움직이려면 장정이 뼈빠지게 핸들을 돌려야 했습니다.

여름에는 핸들 돌리는 것 하나만으로도 땀 깨나 흘려야 했고 지쳐나갔습니다.

제대할 무렵이 되니까 2 1/2톤 차량에 대해 파워 핸들이 장착되어 신차가 출시되더군요.

 

 

3.

자대에 배치받아서,

제가 담당했던 차량은 5/4톤 방송차량이었습니다.

주로 훈련 나갈 때 방송 설비를 싣고 방송 담당 하사관을 태우곤 했는데,

사단의 대민 방송 담당 하사관은 '여군'이어서.. 이 차량의 운전병은 나름 선망의 보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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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가 담당했던 차량은 그리 자주 운행되지 않았습니다.

훈련이 수시로 있는 것이 아니었고, 실전 상황은 더더욱 드물었거든요.

평상시에는 그래서 주로 유류 운송 차량을 몰고 다니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저 차량을 담당할 때 딱 한 번 실전 상황이 있었습니다.

1996년 봄 강원도 고성 일대에 어마어마하게 큰 산불이 났는데,

산간 지역 주민들이 제대로 대피를 하지 못해서 저 차로 방송하면서 깨우고 다녔습니다.

또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한 분을 어쩔 수 없이 태워서 모시고 내려오기도 했었죠. 

(본래 군용차에는 민간인을 함부로 태워서는 안됩니다 - 잘못하면 영창 갑니다)

그 때는 정말로 7번 국도에서 불붙은 나무가지가 불화살을 마구 쏘는 것처럼 바람에 날려서 무서웠습니다.

 

 

4.

그 밖에 밤에 보초 근무를 나갈 때 지프를 몰고 다녔습니다.

군대에서는 본래 운전병들의 야간 보초 근무가 금지되어 있는데,

부대장이 보초를 서야하는 근무지는 많은데 사람이 모자르다고 운전병도 근무를 서게 했습니다.

운전병이 있는 수송소대는 (도저히 걸어다닐 수 없는) 부대에서 가장 먼 곳의 초소를 담당하게 해서,

지프 한 대를 타고 보초 근무를 다녔죠 - 간혹 걸어서 다닐 때도 있었는데 1시간도 더 걸렸습니다.

그 때 몰고 다닌 지프가 구형 1/4톤 표준형 지프입니다.

2년 동안 거의 매일 밤 빠짐없이 몰았다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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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1/4톤 지프 때문에 고생을 했던 것은,

호루를 씌우고 떼고 하는 것이 무지 힘들었습니다.

워낙에 빡빡해서 여름에 작전 나갈 때 호루를 떼내고 나중에 그것을 다시 부착하는 것이 중노동이었습니다.

혼자서 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서 두 사람이 한 두 시간 끙끙 앓아야 간신히 떼고 달고 했었죠.

나중에 신형으로 개선되면 당장 호루부터 쉽게 떼고 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5. 

처음에는 군대 가서 운전은 드물게 하고 정비를 주로 배웠는데 나름 힘들어도 재미있었습니다.

밤마다 구타와 기합이 이어졌지만 그래도 새롭게 배우는 게 있어 그 맛에 살았더랬죠.

하지만 어느 날부터 유류 차량을 담당하게 되어서 매일 운전을 수도 없이 해야 했습니다.

주로 몰았던 것은 5/4톤 카고 트럭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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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은 이미지를 도저히 구할 수 없고... (제가 군생활할 때만 해도 아시아 자동차였죠)

하여간 형태는 똑같은 차량입니다.

저 차량은 운전도 편안하고 백미러 보는 법이나 후진, 주차 등을 익히기에 매우 적합했습니다.

사실 제가 나름 제대로 운전을 배웠다라고 할 수 있는 차는 바로 이 5/4톤 카고 차량이었습니다.

차가 아주 크지도 않아서 제어하기도 편하고, 운전석이 꽤 높아서 시야도 잘 확보되고,

백미러만으로 후진을 하거나 주차를 하는 것을 배워나가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짐칸이 좀 높아서, 기름이 가득찬 드럼통을 싣고 내리는 것이 고생이었습니다.

 

 

6.

유류 담당 운전병에 행정 계원 일을 겸하게 되면서,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어쩌다가 유조차를 몰기도 했습니다.

2 1/2톤 유조차였죠 - 차량을 우회전시키거나 좌회전하거나 또는 급커브길을 돌거나 하면,

탱크로리 안의 기름이 원심력으로 한 쪽으로 확 쏠려서 운전하기 무지 힘들었습니다.

과속하면 차량이 뒤집어지는 수가 있기 때문에 무척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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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유연휘발유(빨간색)의 경우에는 반드시 이 차량으로 기름을 보급받았는데,

무연휘발유(투명한 노란색)의 경우에는 반드시 드럼통으로 기름을 보급받았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 도저히 이해 불가능이었습니다.

구형 1/4톤 지프에만 쓰이던 빨간색의 유연휘발유는 나중에 제대한 후 한 번도 구경해 본 적 없습니다.

제가 군에 있었을 때도 신형 지프는 모두 무연휘발유 전용 엔진으로 나오고 있었으니까,

이제는 군에서도 유연휘발유는 없어졌을런지도 모릅니다.

 

 

7.

기름 배달이 없는 날은 부식 배달을 하곤 했습니다.

주로 장교 식당용 부식을 사다가 식당 취사병에게 전달하는 일이었는데,

처음 1년 정도는 구형 베스타를 몰고 나가서 속초 시장에서 장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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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 차를 꽤 좋아했습니다.

일단 군용차가 아니어서 운전할 때 부드러웠거든요.

다만 제가 담당한 차는 거의 10살이 넘은 물건이었고 군대에서 마구 사용된 것이어서,

하체가 도대체 이게 철판인지 빠다인지 분간이 안갈 지경으로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습니다.

제가 1년 정도 몰고 다닌 후 도저히 회생 불능이어서, 차량 정비대대에서 공식적으로 폐차 판명이 내려졌죠.

 

 

8.

베스타가 폐차된 다음, 이후 부식을 사러 다닌 차는 승용차였습니다.

기름 싣고 다니는 카고 트럭으로 부식을 사서 싣어 나르기는 그렇고,

반드시 식량과 기름은 다른 차를 이용해야 하는데 마땅한 차량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2~3년 동안 거의 방치되어 버려져 있던 차를 부활시키기로 결정했죠.

그렇게 부활시킨 것이 무려 88 올림픽 공식 승용차였던 스텔라 88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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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유감이 많은 차였습니다.

도대체가 명색이 승용차이긴 한데 군용차보다도 운전이 편하지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차체는 크고 실내 공간도 넓은 것이 완전히 중형차 덩치였는데,

몸집은 큰 것에 비해 엔진은 포니 엔진을 달아 놓았는지 도무지 힘이 없었습니다.

부식을 조금 많이 사서 부대로 복귀할라고 치면, 차가 덜덜 거리면서 기어오다시피 했습니다.

하긴 한 차례 망가져서 방치하다시피했던 차량을 억지로 부활시켰으니, 그려러니 해야 하겠죠.

 

 

9.

그 밖에 자주 몰지는 않았지만,

수송부대의 소대장이었던 수송관이 타고 다닌 자신의 승용차가 세피아였습니다.

간혹 정비를 하러 나가거나 할 때 수송관이 운전을 대신 시켜서, 운전할 기회가 꽤 많이 있었던 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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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로 바디 디자인과 차체에 대한 자체 개발을 시도한 차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차량을 개발하는 데 기업이 많은 돈을 퍼부었다고 하지만 잔 고장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웃기는 것이 엔진 부위를 물세차하면 시동이 안걸리고 퍼져버리는 현상이 있었죠.

저 차를 마음먹고 구입한 수송관이 잔고장이 많아서 너무 힘들어 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10.

그리고 매일 아침 간부들을 공관에서 태우고 출근시키는 통근 버스를 몰았습니다.

미니버스였는데, 부대의 상병 이상 운전병들이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통근 버스를 몰았죠.

고참만이 하도록 정해진 운행이었고, 출근 버스를 몰기 전날 밤에는 보초 근무에서 열외였기 때문에 다들 좋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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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드디어 1997년 1월말 군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사회로 복귀했습니다.

군대에 있으면서 2년 내내 매일같이 아침부터 밤까지 거의 8시간 이상씩 온갖 종류의 차를 다 몰고 정비를 했기 때문에,

나름 운전과 차량 정비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집에 오니 아버지께서 10살 먹은 포니 엑셀을 폐차시키고 새로운 차를 뽑으셨더군요.

기아에서 발매된 크레도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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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포니 엑셀을 타시다가 직급도 있고 또 은퇴하시기 전에 중형차 한 번 타보겠다고 구매하셨는데,

주말이면 제가 저 차를 줄기차게 몰고 돌아다녔습니다 - 특별한 일도 없이 괜히 그러고 다녔습니다.

켄 그림우드의 시간 여행(또는 환생)을 다루는 SF <리플레이>에 보면,

주인공이 차량에서 어른이 되었다고 회고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실 저도 예비역이 되어 대학에 복학한 이후 차를 몰고다니는 것을 무지하게 좋아하였습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같은 행동을 했던 것인데... IMF의 파도가 덥쳐 옵니다.

 

IMF는 대략 2년 동안에 걸쳐 모든 것을 파괴했습니다.

사업을 하던 삼촌과 5촌 아저씨들이 줄줄이 망했고, 보증 때문에 저희 집도 날아갈 지경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퇴직금과 전재산을 예금해 둔 N모 종금이 망해서 일거에 완전 빈털터리가 되어버리죠.

부친은 충격으로 쓰러지셔서 거동을 못하게 되셨고, 1999년과 2000년은 제게 있어 생지옥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하루 아침에 가장이 된 저는 대학원 등록금은 물론 집안 생활비까지 벌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한 때 저 크레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이 낙이었습니다 - 과거 영화의 마지막 흔적이었죠.

 

그나마도 2000 년 여름, 논문 쓰느라 밤샘하고 새벽에 사당역 4거리에서 졸음 운전으로 큰 사고를 내고,

엔진까지 뒤로 밀릴 정도로 차량이 박살나고 무려 수리비로만 400 만원짜리 견적이 나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망한 집안에다가 아주 결정타를 날린 것이어서, 저는 부모님 뵐 면목이 없었습니다.

넉넉치도 않은데 차를 몰고 다닌 것에 대한 천벌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이후 그 사고의 트라우마가 계속 남아 있어서 운전을 멀리하게 되었죠.

 

아직도 부모님께서는 14년 째 저 크레도스를 타고 다니십니다.

제가 큰 사고로 박살 낸 이후에도 수리하고 나서 잘 굴러가고는 있지만,

저도 자동차 정비를 해 봤던 지라 겉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아도 사고차는 사고차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부모님께서 모든 것을 정리하시고 시골로 내려가시면서,

이제는 그 크레도스를 구경하기도 쉽지 않게 되었죠.

 

이후 10년 동안... 운전을 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원 선배가 자기 대신 운전을 종종 시켜서 간혹 차를 몰기도 했고,

회사 다닐 때 단체로 놀러 가면서 큰 차를 렌트하면 1종 면허 가진 사람이 저 밖에 없어서 운전을 조금 하기도 했지만...

제 자신이 차를 사지 않고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운전을 거의 하지 않게 되더군요.

결혼 후 현재 경제적 여건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차를 구매하지 않고 있지만,

나중에 제 자식들이 성장하면 다시 운전을 할 날이 오겠죠.

앞으로 많은 시간이 더 흐른 뒤의 이야기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