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년과 개>의 가벼운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할란 엘리슨이 쓴 <소년과 개>는 핵전쟁 이후, 황폐화된 세상에서 사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나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엘리슨 작품집인 세상의 심장에서 사랑을 외치는 짐승에 수록했다고 하네요. 휴고상 후보작이고, 네뷸러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인기가 꽤 있었는지 영화도 나오고, 그래픽 노블도 나왔다고 합니다. 국내에도 <최후의 날, 그 후>의 마지막 작품으로 번역되어 나왔죠. <폴아웃>의 도그밋에 영향을 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아마 인간과 동물이 짝을 이루어 황무지를 헤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전반에 영향을 끼친 것도 같네요. 사실 할란 엘리슨은 별로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라 별 관심이 없었는데, 요새 <폴아웃 3>에 관심이 생겨서 좀 찾아봤습니다.

 

배경은 언제나 그렇듯 모든 것이 황량하고, 먹고 살기 힘들고, 사람들은 썩어빠졌고, 돌연변이 괴물도 좀 설쳐주는 미래의 어느 도시 구석. 주인공 소년인 빅은 오늘도 블러드란 이름의 개와 함께 먹을 것과 욕구불만을 풀기 위해 골목을 어슬렁거립니다. 빅은 이런 작품에서 흔하게 나오는 성격 더럽고 개차반인 생존자 중 하나입니다. 이 소년을 특이하게 만들어주는 건 옆에 있는 블러드인데, 보통 개가 아니기 때문이죠. 블러드는 자기 입으로 위대한 전투견의 후손이라고 자랑합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한때 이 세상에 인간만큼 뛰어난 지능을 지닌 전투견이 있었던 건 진실입니다. 우수한 품종을 교배해 만든 이 전투견은 현재 운용하는 군견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거의 초능력 부대에 가까운 이들은 수많은 전투에서 활약했고, 블러드도 핏줄을 이어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처럼 생각하고 텔레파시로 말을 합니다. 사실상 이 세계관의 개들은 전부 이런 식으로 강화되었고, 제각기 주인이 될 생존자와 함께 근근이 살아갑니다. 서로 미국식 농담 따먹기도 하면서요.

 

문제는 이들 사이에 퀼라 준이라는 여자가 끼어들었다는 것. 빅은 항상 그랬듯이 욕구나 해결하려고 지나가는 여자 덮치듯이 퀼라 준을 덮쳤는데,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사랑에 빠졌다고 직접 묘사는 안 나옵니다만. 함부로 건드리지도 못하고, 괜히 말이나 걸고, 계속해서 예쁘다는 소리만 하는 거 보면 사랑에 빠진 거 맞죠, 뭐. 하지만 빅과 퀼라 준이 데이트 하는 선남선녀마냥 조잘거리며 이야기를 하던 무렵, 둘이 있던 건물을 무법자 패거리가 포위합니다. 이들의 개가 퀼라 준의 냄새를 맡았고, 욕구불만인 건 깡패들도 똑같았거든요. 블러드의 기지로 건물을 빠져 나오긴 하나 그 와중에 격투에 휘말린 개는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상처를 입습니다. 블러드가 이름 그대로 핏덩이가 되어 죽어가는 가운데, 기운을 차릴 음식도 없고, 그렇다고 깡패들이 돌아다니는 도시로 함부로 나가지도 못합니다. 소년의 곁에는 부서진 도시와 사랑하는 소녀가 있을 뿐. 그래서 소년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사랑을 선택합니다. 그 사랑의 선택이라는 게 좀 뭣해서 충격과 공포.

 

캐릭터 성격이 참 특이한 소설인데, 흔히 생각하는 남자의 욕구와 심리를 교묘하게 비껴 나갑니다. 당장 세상이 망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파렴치한이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 우선 그렇습니다. 인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던 소년이 퀼라 준을 보고 첫눈에 빠질 줄은 몰랐네요. 솔직히 둘이서 데이트하는 것마냥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고는 의외로 따스한 구석도 있다며 놀라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진도가 좀 더 잘 나갔다면 아마 훈훈한 감동으로 끝났을지도 모르죠. 퀼라 준도 평범한 여자는 아니라서 어린 나이에도 도시의 미래를 위해 남자를 꼬시러 위험 지역에 나올 정도로 용감하고 대범해요. 거의 천사에 가깝게 예쁘다고 찬미하는 묘사나 용감한 성격 등을 보면 모험물의 여주인공도 할 기세. 중반까지 읽다가 쓰레기 같은 인간이 여자 하나 잘 만나서 갱생하는 플롯인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건 세상이 망하게 된 와중에 남자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입니다. 굳이 남자라고 한 이유는 빅이 여자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니까요. 소년의 선택은 말 그대로 사랑에서 비롯된 거고, 남자의 사랑은 여자와 다를 테니까요.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금기를 깬다는 게 참 충격적이었습니다. 금기를 깨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많습니다. 대개는 주제를 부각하고 흉흉한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터부에 도전하곤 하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남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싶을 여자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루기 때문에 더 놀라웠습니다. 곁에 예쁘고, 순진하고, 자기 말을 잘 따라주는 여자가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대부분의 남자는 자기 여자로 삼으려고 할 겁니다. 인간성이 밑바닥으로 추락한 놈팡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그러나 작가는 여기서 비틀기를 시도합니다. 아무리 천사 같은 여자라고 해도 남자에겐 그 자신의 생존이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요. 그냥 무작정 암울하다기 보다는 이런 비틀기가 차라리 신선하다는 표현에 가까울 정도로 뒤통수를 때렸습니다.

 

우울하다기보다 끔찍할 정도로 충격적인 작품이었네요. 처음 읽었을 때는 그럴 수도 있지. 싶었는데, 결말을 되새기다 보니 사람을 패닉에 빠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소설의 한 축을 차지하는 블러드는 좀 불만이기도 했는데. 아무리 강화한 전투견의 후손이라고 하지만, 하는 짓이 너무나 사람다워서요. 이건 그냥 냄새 좀 잘 맡는 인간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방식도, 행동도 어디까지나 특이한 인간 이상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생명체이기에 나타나는 가치관의 차이도 없습니다. 이왕 묘사를 할 바에야 좀 더 동물다운 차이점을 드러내기를 바랐거든요. 감각이 다르니까 사고 방식이 다르거나 소통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든가 하는 식으로. 하다못해 블러드가 아니라면 선조였다는 전투견이라도 좀 설정이 나왔으면 싶었어요. 그 대단하다는 전투견이 실제 전쟁에서 어떻게 싸웠는지도 나오지 않아요. 텔레파시를 한다 하길래 혹시 상대를 공격하는 사이킥 능력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봅니다. 그냥 머릿속으로 말하는 재주일 뿐이에요. 구강 구조가 다른데도 인간처럼 술술 말하지 않은 게 그나마 제대로 된 묘사라고 할까요.

 

어차피 이 소설의 주제는 남자의 생존 욕구이고, 개는 주제를 강조하는 소품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작가는 단편소설의 주제를 일직선으로 살리는 데 여념이 없고, 그 외 다른 설정은 술렁술렁 넘어갑니다. 소품이 주제만큼이나 비중이 클 수는 없겠죠. 그러니 블러드가 그냥 사람처럼 나왔다고 해서 그게 단점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그저 개인적으로 보는 아쉬움이자 허점일 따름입니다. 이만큼 유명한 작가도 결국 동물을 묘사하는 부분은 미약하구나~ 대충 이런 느낌.

 

여하튼 소설 자체는 강렬하면서도 충격적인 주제의식이 돋보입니다. (충격이란 단어를 몇 번이나 쓰는지 모르겠네요.) 더불어 인간과 동물이 서로를 의지하며 세기말적인 고난을 헤쳐가는 게 상당히 인상적이고요. 주제도 주제지만, 이런 식의 동료 관계를 구축했기에 작품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포스트 아포칼립스처럼 그냥 방랑자 하나를 그렸다면 보다 평범해졌겠죠. <터미네이터> 저작권을 주장했던 터라 별로 안 좋아하는 작가이긴 한데, 할란 엘리슨이 진짜 잘 쓰기는 잘 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