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과학 포럼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SF에 대한 가벼운 흥미거리에서부터 새로운 창작을 위한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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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24일.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자연선택의 방법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존 경쟁에 있어서 유리한 종족의 보존에 대하여(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 줄여서 <종의 기원>이라 불리는 책은 출간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장 심한 논쟁이 계속되는 이 책은 과학적으로 매우 획기적이고도 충실한 높은 내용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감동적인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 종의 기원 초판 ( 출처 : 위키피디아 ) ]
이 책이 나온 직후 논쟁은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생명이 자연스럽게 다채로운 형태로 분화되었다."라는 점에서 유럽의 주요 종교인 그리스도교의 반발이 시작된 것입니다.
만일 이 책이 나온 것이 400년만 빨랐다면 다윈은 화형에 처해졌을지도 모릅니다. 300년만 빨랐어도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평생 갇혀 살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19세기 유럽에서는 이러한 일이 불가능한 시대였고, 그래서 속칭 '창조주의자'들은 다윈의 주장을 비난하고 약점을 찾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우선 비난하고 이후에 약점을 찾으려 노력하는게 중요합니다.)
반면 과학계에서는 이 획기적이고도 아름다운 내용을 바로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다윈의 주장은 완벽하게 새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당시 과학계에서는 많은 이가 이와 유사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고 "생물은 변화하여 현재의 생태계를 이루었다."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으니까요.
실제 다윈이 1859년에 책을 낸 것도 다른 학자인 월리스가 비슷한 내용의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월리스는 독자적인 연구로 다윈과 비슷한 이론을 세웠고 이를 다윈에게 상의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다윈은 월레스와 의견을 나누고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서 내기에 이른 것입니다. (<종의 기원> 서문에 월리스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책이 나온 직후부터 과학계와 종교계의 논쟁이 벌어집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860년 6월 30일 옥스포드대에서 벌어진 교리학자 윌버포스와 훗날 '다윈의 불독'이라 불리는 헉슬리의 논쟁입니다.
당시 윌버포스는 "당신이 원숭이의 자손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조상은 할아버지 쪽입니까, 아니면 할머니 쪽입니까?"라는 조롱을 던졌는데, 이에 대해 헉슬리는 당당하게 "중요한 과학 토론을 단지 웃음거리로 만드는 데 자신의 재능을 쓰려는 인간보다는 차라리 원숭이를 할아버지로 삼겠습니다."라고 되받아침으로서 윌버포스를 도리어 웃음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종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은 다윈 지지자들의 압승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의 주장이 '증거'를 기반으로 설득력이 있고 당당했던 반면, 다윈 반대파들은 오직 상대의 주장을 물고늘어지며 딴죽을 거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더욱 놀라운 것은 다윈 반대파들이 진화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윌버포스의 조롱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윌버포스는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이라고 주장하지만, 다윈도, 그리고 물론 헉슬리를 비롯한 그 밖의 지지자들도 그런 얘기를 한 일이 없습니다.
훗날 다윈은 <인간의 유래>를 통해 이를 좀 더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지만, 진화론에서 원숭이는 인간의 조상이 아니라 인간과 공통의 조상을 가진, 정확히는 비교적 근래에 같은 조상에서 분화된, 유전적으로 사촌 정도라고 이야기합니다.
[ 다윈을 원숭이로 묘사한 각종 그림들. 이는 다윈 반대론자들의 무지와 저속함을 보여준다. ]
이러한 내용은 진화론의 기초라고 해도 좋을텐데도 창조주의자들은 이러한 기본조차 모른채 논쟁에 나선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참패를 당할 수 밖에 없었겠지요.
이 상황은 현재도 계속됩니다. 현대의 창조주의자들은 과거의 그들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진화론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 것도 모르며 같은 주장을 반복합니다.
조금 다른 것은 그들이 '과학처럼 보이는 언어'로 그들의 주장을 포장하고 있다는 점이겠지요.
하지만, 그들의 수많은 주장은 <종의 기원> 하나만 읽어도 여지없이 깨지고 맙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이가 이러한 조금의 관심조차 없이 "창조주의자"들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내인다는 것이지요.
여담으로, 찰스 다윈은 '창조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종의 기원>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납니다.
"생명은 최초의 창조자에 의해 소수의 형태로, 또는 하나의 형태로 모든 능력과 함께 불어 넣어졌다고 보는 견해, 그리고 이 행성이 확고한 중력의 법칙에 의해 회전하는 동안 이렇게 단순한 발단에서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경탄스러운 무한의 형태가 태어났고, 지금도 태어나고 있다는 이 견해에서는 장엄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주장한 것은 창조자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창조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소수의 형태에서 무한한 형태로 태어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어나고 있다는(종이 분화하고 있다는) 것이었을 뿐입니다.
만일 창조주의자들이 <종의 기원>을 제대로 읽어보았다면, 이를 바탕으로 주장을 펼쳐내겠지요. 하지만, 그런 이는 극소수입니다. 가령 "지금 종의 분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어 만들어진 시스템이 아니겠는가?"라는 식의 주장을 펼치는 창조주의자는 극소수입니다.
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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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종의 기원>, 갈릴레이의 <천문 대화(=새로운 두 과학, 민음사)> 이 두 책의 공통점은...
물론 과학의 발전에 있어 패러다임의 변화를 선도한 기념비적인 책임에 틀림없지만,
훌륭한 문학 작품으로서도 아주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진정 잘 쓰여진 과학 서적은 심지어 문학의 관점으로도 훌륭하다는 것을 입증한 책이라고 할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