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지나가는 칼바람이 곧 다가올 겨울을 예고하던 어느날,

 

평범한 도시의 한 별볼일없는 식당에서는 심심하게 생겨먹은 인간들 4명이

 

그렇게 맛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햄버거를 우적우적 씹으면서 아무 의미없는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 세상은 썩었어! 구역질나는 냄새를 풍기며 썩어 문드러져가고 있는 이 더러운 세상을 당장 갈아엎어야 해!"

 

갑자기 한 사람이 알 수 없는 괴성과 비명을 질러대며 자기 주변에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모든 것들에 대해 저주 한바가지를 퍼붓는다.

 

나머지 3명은 그가 지어내는 오색찬란한 욕의 향연을 만끽하면서 콜라를 빨아댕긴다.

 

"인간은 쓰레기야! 인류는 쓰레기 더미야! 인류는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어! 인간은 결국 멸망을 향해 갈 수 밖에 없는거야!

 

 세상의 모든 것이 파괴되고 더럽혀지고 뭉개지는 이 마당에 무슨 얼어죽을 희망이야!

 

 죽어야 돼! 전부 다 죽어야만 해! 그렇게라도 이 끔찍한 악몽에서 벗어나야 해!"

 

 3명의 관중들은 아주 열정적인 목소리로 울려퍼지는 이 밑도끝도 없는 비관론의 망망대해를 감상하면서

 

'근데 뭐 어쩌라고'의 표정으로 샛노오랗게 튀겨진 감자튀김을 시뻘건 케찹에 찍어 입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렇게 해서 소량의 감자가 희생되었다.

 

"우린 더러운 X에 불과해. 더 이상 살아봤자 이 우주에 폐만 끼칠 뿐이야. 우리는 단지 매일매일 X만 싸는 기계일뿐!

 

 소망? 믿음? 나발 불고 앉아 있네! 이미 수천년 동안 인류는 혼자만 잘살기 위해 서로를 짓밟고 죽이고 학대하고 증오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인간에게 자기파괴적인 본능이 있음을 아직도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어이, 니 말은 잘 알겠는데, 우선 조용히 좀 하지? 응?"

 

인류 멸망의 당위성에 대한 거창한 연설을 장장 5분 동안 듣고 있던 3명의 사람 중 한 명이 마침내 이빨을 으스러트릴 듯 꽉 깨물면서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참느라 썩어 문드러진 인상으로 입을 열었다.

 

"당장 입 안 다물면 지금까지 먹은 거 도로 원위치 시켜주겠다. 어때? 상상만해도 즐거운 일이지?"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일반인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찬란한 용접 불꽃이 발생하여 식당 내부를 환하게 비추었다.

 

나머지 2명은 이에 아랑곳도 않고 투철한 경제관념과 절약정신으로 잔반처리를 하였다.

 

"내가 뭘 잘못 말했는데! 이건 다 사실이야! 부인할 수 없는 진리! 사람은 일생 동안 미친 듯이 아등바등 살다가

 

 결국 죽어서 구더기들과 박테리아의 밥으로 돌아가는 신세에 불과해! 인류가 없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고!"

 

"야, 그만 소리치라고! 지금 내가 그걸 몰라서 하는 소리같냐? 그래, 맞다. 니가 지금까지 한 말은 모두 진리 맞어.

 

 나나 너나 모든 인간은 한 줌의 재만도 못한 찌꺼기들이야. 근데 그게 어때서? 왜 열폭을 하고 X랄하는 건데?

 

그렇게 불만이 있으면 하루빨리 자살해서 사라져 줘야지 여기서 밥 먹는 사람들 소화 안되게 뭐하는 짓거리냐?"

 

우당탕탕.

 

뒷자리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우아앙~"

 

"에구 얘 좀 봐, 그걸 흘리면 어떡하니? 또 옷 빨아야 되잖아!

 

 야, 내가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 안 했어? 어?"

 

"으앙~"

 

...

 

넘버 2의 짜증은 계속 이어진다.

 

"그래, 진짜 이 세상은 X보다도 훨씬 못한 곳이야.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냐? 응? 살아야지. 암, 그렇고 말고. 

 

 나는 말야, 너처럼 아무 것도 안하고 인생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야. 왜냐고?

 

억울해서. 지금까지 내가 노력한게 얼만데, 지금 와서 죽어버리면 X나 억울한 거 아니냐!

 

뭔 사고를 당해서 X병신이 되더라도 나는 절!대!로! 자살은 안 한다. 희망이 없건 말건, 내가 여태까지

 

 이 X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쏟아부은 땀과 눈물과 피는 곱빼기로 되돌려 받을거다!" 

 

그의 이 희망찬 메세지는 고뇌에 빠진 중생들에게 생의 중요함을 일깨워주기 위한 목적으로 방방곡곡에 퍼져나갔으나,

 

그것은 결국 주위 사람들의 청각 세포에 인식되지 못한 채 공기의 진동으로만 남아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 증가에 일조를 하였다.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한 그는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뻘줌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앞에 앉아서 콜라 컵에 꽂힌 빨대를 물고 멍하니 앞을 쳐다보고 있던(이미 콜라는 동이 난지 오래였다) 애꿎은 인간에게 화살을 날린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내 말이 맞지? 무슨 역경과 고난이 있더라도 꿋꿋이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3초간의 고요함이 흘렀다.

 

"아...응? 뭐?"

 

질문을 받은 그는 화들짝 놀라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웅얼거리며 질문한 사람을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또 그렇게 3초간의 고요함이 흘렀다.

 

"아...그래, 뭐 그렇다고 생각하지."

 

"그래! 너도 공감하지! 그치!"

 

"...근데 말야,  왜 넌 그렇게 피곤하게 인생을 사냐?"

 

판매대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치즈버거 세트 하나요."

 

"예~ ^_^"

 

"...그렇게 억울해하면서 살 필요가 있을까? 사실 따지고 보면, 나도 말야, 지금까지 자살할 수도 있는 기회가 수천번도 더 있었어.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근데 우리는 지금 모두 살아있잖아, 그치? 그게 뭘 뜻하는지 알아? 그건 말야, 우리가 이 세상을 사랑한다는 증거야.

 

 아무리 니들이 세상이 X같다고 X랄을 해도, 니가 실제로 굳게 결심을 해서 낚싯줄에 목을 매달거나 지하철 선로에 뛰어내리지 않는 이상,

 

 우리 모두는 삶을 사랑해. 아니라고? 그럼 증명해봐. 그걸 뭐로 증명할 거냐? 또, 니들이 잘못 생각하는게 뭐냐면, 마치 세상이 반드시

 

 공평해야만 한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거야. 바로 그게 니들의 근본적인 문제야. 바로 그 생각을 버려야 해.

 

 세상이 X같지 않아야만 한다는 법은 그 어디에도 없어. 한 마디로 말해서, 희망을 버려. 그럼 인생이 편해진다고.

 

 그럼 왜 자살을 안하냐고? 뭐, 할 수도 있지.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먹은 밥값은 내고 죽어야 할 거 아니냐. 안 그러면 X팔리잖아.

 

부릉, 부릉, 부아아앙~

 

식당 앞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등장한다.

 

빠라빠라빠라빰 ♪

 

...그리고 곧 거리 저편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왜 인류는 항상 서로 물어뜯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고? 도대체 왜 사람들은 언제나 남을 짓밟고 못살게 구냐고?

 

 이봐, 그런 질문들은 말야, 물어봤자 소용없는 거야. 아, 물론 왜 그랬냐고 물어볼 수는 있겠지. 그런데, 잘 생각해 봐.

 

 답을 들어봤자 어차피 이해 못하는 건 똑같은 거야. 그 사람들에게는 자기 나름대로 나쁜 짓을 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겠지. 안 그래?

 

 그리고 니가 그 이유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냐? 못 해. 왜냐고? 너는 너고 그들은 그들이기 때문이지.

 

 너와 그들은 똑같은 인간이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어. 그래서 남의 행동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건 어떻게 보면 소용없는 짓이야.

 

 하지만, 잘 들어 봐. 연쇄살인범이 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가는 부차적인 문제야.

 

문제는 그 연쇄살인범이 지금 바로 니 등 뒤에 서 있느냐겠지. 우선 그것부터 해결하면 나머지는 나중에 적당히 처리해도 되는 거야. 

 

안 그래?"

 

말이 끝나자마자 테이블에는 무거운 침묵이 드리웠다.

 

이 참을 수 없는 고요함을 몰아내기 위해서 뭐 먹는 시늉이라도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4명의 마음을 짓눌렀으나,

 

이미 그릇에는 햄버거 빵에서 떨어진 깨 한 알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고,

 

약 8초 동안 관심을 끌 만한 뭔가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그들은,

 

마침내 콜라 컵 속에 얼음 조각들이 들어있음을 깨닫고 곧바로 이를 꺼내 우적우적 씹기 시작했다.

 

오드득 오드득

 

침묵 4초 경과.

 

오독 오독 오독

 

침묵 10초 경과.

 

디드득 디드득 디드득 디드득

 

마침내 3명은 이 상태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간파하고 각기 대책수단을 강구하다가,

 

결국 끝까지 말을 안하고 앉아있었던 4번을 겨냥하는 것으로 암묵적인 합의를 본다.

 

입에 넣은 모든 얼음을 가장 먼저 액화시킨 1번이 말문을 연다.

 

"야, 너는 이 사태에 대해서 뭐 할 말 없냐?"

 

"뭐?"

 

그는 말을 건 상대방을, 마치 '내가 뭘 어쨌는데"라는 눈빛으로 응시한다.

 

"삶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이 빌어먹을 인생에 대해서."

 

"인생이 뭐?"

 

"야 임마, 지금까지 귓구녕으로 뭘 들은 거냐? 이 X같은 세상에서 사는 게 너한텐 어떤 느낌이냐고! 응?"

 

거의 화난 늑대의 울부짖음과 비슷한 비명이 목구멍에서 흘러나와 음식점의 유리창을 진동시킨다.

 

이 분노에 가득 찬 질문을 들은 그는, 갑자기 어느 봄날의 햇빛처럼 흐뭇한 썩소를 지으며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니들의 가장 큰 착각이 뭔지 아냐? 자신들이 살아있고 존재한다고 여기는 거야. 마치 자기에게 생명이 있고 의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하지만 그것은 모두 한 순간의 환상이고 착각에 불과해. 그런 건 없어. 우리는 사실 살아있지 않아. 단순히 그렇게 겉으로만 보일 뿐이야.

 

 자살도 하나의 뻘짓에 불과해. 사람을 믹서기에 넣고 갈아봤자 그 사람이 반드시 죽었다고는 할 수 없어. 왜냐고?

 

 그 사람의 '몸'이란 것은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아. 그것은 단지 우리의 이성과 논리, 그리고 감각이 만들어낸 하나의 껍데기니까.

 

 자아라는 것도 마찬가지지. 너희들은 이런 오타쿠 같은 망상에서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이들을 향해서 욕을 해대는 거야.

 

 잘 들어. 자기라는 게 없어지면, 모든 문제가 사라져."

 

 그가 묘한 미소로 말을 잇는 동안 나머지 3명은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익후! 여기 X신 하나 추가요!'

 

"세상을 향해 화를 내봤자 소용없어. 원래 세상이라는 것은 없다고.  그것은 인간의 생각이 만들어낸 일종의 가공물이야.

 

 인류가 멸망을 향해 가고 있다? 인류가 뭔데? 멸망? 그건 또 뭐야?  도대체 뭐가 인류고 뭐가 멸망인지 누가 규정하지?

 

 관찰자 자신이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일일이 열폭하지 않아도 돼."

 

말을 마친 그는, 팔을 의자 등받이에 걸친 채 뭔가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그대로 앉아 같이 창 밖을 내다본다.

 

"야."

 

"뭐?"

 

"이게 다 환상이라고?"

 

"하하, 뭐 그런 셈이지"

 

"그래...그럼 니가 다 내라"

 

"응?"

 

...

 

...

 

식당 어디선가 소음이 들려온다.

 

와당탕탕

 

후다다다닥

 

그러더니 곧 공포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울려퍼진다. 

 

으히히히히히히

 

켈켈켈켈켈

 

그 이후 전해지는 소문으로는, 어느 음식점에서 3명의 인간들이 세상 남 부러울 것 없다는 표정으로 뛰쳐나와 

 

어디론가 쏜살같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또 다른 한 명이 황급히 나오더니 곧바로 그들의 뒤를 쫒아갔다고 한다.

 

-끝-

 

 

 

...이상 헥사크론의 뻘글이었습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