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AW시나리오 Cherbourg 44 후기를 올려봅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돌아가고 코탕탱반도를 유럽대륙과 고립시키는데 성공한 미군이 포위망 속의 적을 소탕하며 펼친 공격전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해변으로 몰려드는 병력과 필요한 물자를 감당하기 위해서 셰르부르항의 개방은 연합군에게 필수적인 일이었고, 그러한 임무를 유타해변에 상륙한 미 제7군단이 맡게됨으로써 코탕탱 전역이 시작되기에 이릅니다.

 역사적으로 미 7군단장은 셰르부르를 점령하기 전 독일군 수비대장에게 정식으로 항복할 것을 제안하지만, 독일군은 거절하며 항구시설을 하나씩 폭파하기 시작합니다. 할 수 없이 미군은 전투를 계속해야 했고, 다소 거센 저항을 무릅쓰고 결국 6월 26일에 도시를 점령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전역에서 미군은 수개소의 V-1 또는 V-2 발사시설도 발견했다고 하네요.

 그리 어렵지 않은 시나리오지만 제가 초보인지라, 역사적 결과를 그대로 달성하지는 못했습니다. 역사보다 하루 늦은 27일에야 셰르부르를 점령했던 것이죠. 그럼 후기를 시작합니다.

미 제7군단의 최종 공격준비가 완료되었다. 오랜 전투로 인해 피로가 쌓인 90사단은 79사단과 교대를 마쳤으며, 90사단은 9사단이 기존에 맡고있던 서쪽해안의 차단임무를 인수하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7군단의 공격정면에는 3개 사단이 병렬로 배치되어 9사단을 좌익으로 시작해서 79사단, 4사단이 각각 공격에 가담하게 되었다. 군단의 주 목표는 26일 정오까지 셰르부르를 점령하고 항구를 개방시키는 것이다. 독일군은 육로와 해상으로부터의 모든 보급이 끊긴 상태로 코탕탱 반도에 포위되어 있으며, 그곳에는 독일 709보병사단을 비롯해서 전력이 크게 소진된 약 3개 사단이 방어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부적인 공격계획은 다음과 같다.

 군단의 좌익인 9사단의 주공은 Barnevile-Les Pieux도로를 따라 지향되어 중앙의 79사단과 협조된 공격을 실시한다.

 79사단은 발로뉴를 점령하고 셰르부르로 직행하는 도로를 따라 공격한다. 이 때 독일군이 도로를 따라 지연전을 펼치는 것을 막기 위해 좌일선과 우일선을 맡은 9사단과 4사단은 79사단의 중앙돌파를 지원한다.

 우측의 4사단은 생 바스트 - 생 피에르 에글리즈 축을 따라 공격하며 79사단과 협조된 공격을 실시하고 독일군의 우측을 압박한다.

 각 사단은 예비로 연대 하나를 확보하고 두 개 연대로 병행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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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공격지점에 모든 화력이 집중되었다. P-47 비행대대와 수상함대의 지원사격이 독일군 방어진지에 퍼부어졌다. 79사단은 제315, 313연대가 전차대대의 지원을 받으며 독 91공수사단의 방어선을 돌파했다. 매우 경미한 저항이 있을 뿐 공격은 순조로웠다.

 우일선을 맡은 4사단도 순조롭게 공격했다. 좌측의 제 8연대는 무리없이 몽테부르를 점령했고, 그곳을 방어하던 독 729연대 1대대는 와해되어 분산철수했다. 해안을 따라 전진하는 12연대도 독 709사단의 제1 후방 병참선을 차단했다. 독일군은 전력이 심하게 소진되어 있었는데, 대대 한 개 병력은 중대급으로 감소되어 있거나, 심지어 그에 미치지도 못하는 수준이었다.

공격이 시작되자, 독일군은 아군과의 접촉을 끊고 후방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후방에서 병력을 수습한 후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할 셈인듯 했다.

 4사단 전방에서도 대다수의 독일군은 철수했지만 709사단에서 유일하게 건재했던 AOK7 돌격대대는 남아있었다. 그리고 240mm구경의 열차포가 그곳으로 이동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이 열차포의 사정거리는 38km에 달하며, 7군단 사령부를 비롯한 예하 군단병력의 80퍼센트를 언제든지 타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동해안에서 대기중인 수상함대도 물론 사정권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날 오후에 불행하게도 사격임무를 수행하던 아군 중순양함 USS Tuscaloosa호가 격침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그 원인은 열차포가 아니라 1261해안포대대의 일부 포대였던 것 같다.

아무튼 4사단은 이 열차포를 제압하기 위해 8연대와 12연대가 협조하기로 했다. 우선 열차포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철로를 틀어막아야 했다. 열차포의 동쪽은 12연대 2대대가 이미 장악하고 있었고 서쪽은 8연대 1대대가 오후에 경미한 저항을 뚫고 차단지점을 확보했다. 그리고 강력한 화력지원과 함께 공격을 감행하여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열차포 두 대를 모두 제압했다.

6월 20일

 79사단은 발로뉴를 점령했다. 중앙에서 방어하던 독 91공수사단은 거의 궤멸되었다. 발로뉴 서쪽에 있던 사령부도 이미 철수했다. 하지만 대대 하나가 남아서 결사항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전진이 더뎌지고 있었다. 보카쥬식 지형도 한 몫 거들었다. 9사단 제60연대는 Les Pieux 남쪽 5km 까지 진출했다. 독일군은 계속 철수하고 있었지만 아군과 접촉을 다시 유지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는 공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독일군의 전폭기들이 간헐적으로 육군 부대를 내습하고 있었지만 큰 피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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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

 계속 전진했다. 9사단 제60연대가 Les Pieux를 점령했다. 아무런 접적도 없었다. 사단 우익인 39연대가 철수한 독 243사단의 잔당과 대결하느라 전진이 늦어지고 있었으므로, 60연대는 그곳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동해안쪽의 4사단지역에서는 아직 709사단의 잔당과 해안포진지가 남아있었다. 조직적인 저항은 불가능해 보였지만 4사단의 진출을 늦추고 있었다.

 적 해안포진지가 아군 함대에 사격을 가해왔다. 포격전 끝에 적의 170미리 해안포 4문 중 3문을 파괴하는 대신 경순양함 HMS Black Prince호가 격침되었다. USS Nevada호도 약간의 피해를 입었다. 적의 해안포가 아군 함정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위협이 되고 있었다. 특히 170미리 해안포가 반도의 동해안을 따라 배치되어 있었으므로 섣불리 해안에 접근했다가는 용궁구경을 섭섭지않게 할 판이었다. 때문에 주포 사정거리가 가장 긴 USS Nevada호가 많은 사격임무를 수행해야 했지만 이제는 적재된 탄약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6월 22일

 적의 최종 저항선이 발견되었다. 셰르부르 주변 15킬로미터 반경에 요새진지가 둘러져 있었다. 9사단 지역에서도 746전차대대가 적과 재차 접촉했다. 철수했던 91공수 사령부도 그 근처에 있었지만 아군이 접근해오자 곧바로 철수해버렸다. 적은 셰르부르 부근으로 모든 병력을 끌어모으는 듯 했다.

6월 24일

 적의 공습이 차츰 강도를 더해갔다. 적의 주 저항선은 생각보다 뚫기 힘든 곳이었다. 적 요새진지에는 구경에 따라 105밀리 ~ 240밀리 포대가 한 개 이상씩 배치되어 있어서, 전투력을 한 곳에 집중하여 공격하더라도 주변 요새 여러곳에서 날아오는 지원사격은 매우 큰 골칫거리였다.

 9사단의 공격이 돈좌되어 사단예비인 47연대로 하여금 60연대와 협동하여 방어선을 돌파하고 60연대를 초월하여 공격할 것을 지시했다.

 같은 시기에 독 91사단 예하 902돌격포대대의 역습으로 9사단 우익인 39연대가 타격을 입었다. 연대는 재차 있을 적의 반격에 대비해 급편방어를 준비하고 79사단의 좌측을 엄호하였다. 이어서 독일군의 공습이 시작되어 9사단 지역의 공격은 다시 돈좌되었다.

 중앙에서는 79사단 315연대 2대대가 전차와 근접화력지원을 받아 돌파구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이날 오후에 대대는 중대급 병력에 의해 역습을 받았으나 격퇴하였다.

 동해안에서는 4사단 8연대가 셰르부르 동쪽 방어선의 돌파구를 확보, 예비대인 22연대 투입이 고려되고 있었다. 우익인 12연대가 생 바스트지역을 해방하고 부근의 해안포대를 모두 소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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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

9사단이 공격을 재개, 돌파구 확장에 성공했으나, 셰르부르로 직행하는 교량이 폭파되어 셰르부르 서쪽 진출이 하루 정도 지연되었다.

 79사단 지역으로 독 206전차대대가 증원되었다. 주 장비는 프랑스제 차르 dc S-35 43대. 749전차대대와 보전협동으로 파쇄공격 실시, 큰 피해를 입혔다.

 4사단 8연대가 돌파구 확장에 성공, 예비대인 22연대 투입준비가 완료되었다.

315연대 2대대 진지가 전차와 항공기의 지원을 받는 적에게 다시 공격받았다. 2대대는 후방으로 잠깐 철수하고 1대대가 대신 역습하여 원위치를 회복했다. 26일까지 셰르부르를 점령하기는 글러먹은듯 싶었다.

6월 26일

 9사단 지역의 교량은 시간내로 수리할 수 없었지만 용감한 장병들은 페리보트로 도하하여 강을 건넜다. 독일군의 최후 저지선을 돌파한 47연대와 60연대가 셰르부르 외곽에 도착하였다.

 79사단도 성가시게 돌파구 확장을 방해하고 있는 독 206전차대대를 동원가능한 모든 화력과 항공지원을 집중하여 격퇴시켰고, 749전차대대는 그대로 셰르부르 남쪽에 도착할 수 있었다.

 4사단 8연대가 만들어 놓은 돌파구로 사단예비로 있던 22연대가 초월하여 셰르부르 동쪽 외곽에 도착했다.

이리하여 셰르부르는 모든 방향에서 포위되었으며, 그 안에는 포병대대 3개 정도만이 갇혀있었다. 잘하면 26일 내로 셰르부르를 점령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셰르부르 외곽에 있던 독 84군단 사령부의 습격을 시작으로 미 7군단은 포위된 셰르부르를 반나절 동안 공격했으나, 보병전투로 전환한 적 포병대는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불굴의 항전의지를 발휘하여 아쉽게도 미군의 첫 공격을 실패로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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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7일

치열한 공방전 끝에 연합군은 27일 저녁에 셰르부르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6월 28일 ~ 29일

 셰르부르가 함락되자 독일군은 저항의지가 모두 꺾였다. 보급을 받지 못하는 고정포 진지는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막대한 손실을 입은 독일공군의 출격횟수도 크게 떨어졌다. 9사단 47연대는 도망치는 독 84군단 사령부를 추격하여 전멸시켰다. (군단장이 항복했을는지..) 각 사단은 소탕작전을 펼치며 빅토리 포인트를 하나씩 탈취해 나갔다.

6월 30일에 코탕탱 전역이 종료되었다. 독일군은 모두 소탕되었고 미 7군단은 임무를 완수했다. 여기서 독일군은 매우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아군의 피해도 컸다. 특히 항공기의 손실이 컸고, 그 중에서도 근접지원임무를 맡은 P-47기의 손실은 전체 항공기 손실의 46%, A-20은 23%를 차지했다. 지상군의 인명피해와 장비손실은 대부분 적의 최종 저항선을 돌파하면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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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A) 기본적인 사항이지만 사단예비를 하나씩 확보해두었던 것은 분명히 잘한 짓인듯

B) 부대간 협조가 매우 잘 됨. 최종 저항선의 돌파가 각 사단에서 거의 동시에 이루어짐

C) 그리고 예비대의 시기적절한 투입덕분에 적의 잔당들이 집결할 시간을 주지 아니하고 셰르부르를 성공적으로 포위할 수 있었음

D) 적 해안포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없어 순양함 두 척이 격침된 건 안자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