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과학 포럼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SF에 대한 가벼운 흥미거리에서부터 새로운 창작을 위한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여기는 과학 소식이나 정보를 소개하고, SF 속의 아이디어나 이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상상의 꿈을 키워나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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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많은 동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두뇌의 크기에 비해 그 효율이 매우 우수해서 특히 많은 내용을 기억하고 활용하는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되게 된 것은 결코 다양한 지식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되고 문명을 형성한 것은 수많은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추론해 낼 수 있는 직관력과 상상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들도 도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구와 도구를 합쳐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동물 중에서 동그란 물체를 굴리고 노는 장면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도 둥근 물체가 굴러간다는 것을 알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은 둥근 물체가 굴러간다는 지식에다, "그럼 그 위에 무엇을 얹으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더하여 이동 수단을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인 바퀴가 탄생한 것입니다.
일단 바퀴가 만들어지자 인간들의 삶은 급격하게 바뀌었습니다. 바퀴로 만든 수레는 대량의 짐을 옮길 수 있게 해 주었고, 나무를 이용한 굴림대는 인간의 힘으로 옮기지 못하는 거대한 돌을 날라 피라미드 같은 건축물을 만들게 해 주었습니다. 바퀴와 밧줄을 이용해 낮은 곳의 물체를 손쉽게 올릴 수 있는 도르래가 탄생했고, 급기야 바퀴 그 자체를 돌리는 방법을 만들어내어 자동차나 기차 같은 수송 수단이 탄생했습니다.
[ 인간에 바퀴를 단다(?)는 발상에서 탄생한 세그웨이. 이 역시 둥근 물체가 잘 구른다는 지식에서 탄생했다. ]
이런 모든 것은 "둥근 물체는 잘 구른다."라는 지식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동물도 지식을 쌓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호기심을 갖고 통찰력으로 정리하여 상상력을 더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낳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만이 "창조적인 동물"이라 불리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나옵니다.
다만, 인간이라고 해서 모두 "창조적인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호기심이 없고 통찰력이 없고 상상력이 부족하다면 지식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낳을 수는 없습니다. 지식은 지식으로 남고 단순한 창고 이상의 그 무엇이나 다를 바가 없게 됩니다.
호기심과 통찰력, 그리고 상상력은 모두 지식에서 나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양한 지식을 관련지어 생각하고 이를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식을 쌓을수록 호기심과 통찰력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식을 쌓는 것 그 자체가 이러한 창조력의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쉽게 생겨날 수 있는 것은 호기심입니다. 무언가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은 동물, 그중에서도 인간이 가장 기본적인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호기심이 풍부한 사람은 매사를 의심하고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호기심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개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을 억눌러온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풍부하지만, 어른들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이들이 호기심을 발휘할 때 어른들이 제지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은 왜 파랗지?" 아이들이 흔히 가진 궁금증에 대해 어른들은 "그런 걸 알아서 뭐해, 공부나 해!"라고 말하기 일쑤인데, 그 결과 아이들은 호기심을 억누르게 되고 결국 호기심이 없는 어른이 되어 갑니다.
하지만, 1842년 11월 12일에 영국에서 태어난 한 사람은 하늘이 파란 이유를 계속 궁금해했고 결국 연구 끝에 그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그의 이름은 윌리엄 스트럿 레일 리…. 그리하여 지금 하늘이 파란 이유는 "레일리 산란"이라는 현상으로 설명합니다.
[ 윌리엄 스트럿 레일리. 하늘이 파란 이유를 궁금해한 끝에 원인을 밝혀냈다. ( 참고 : 오늘의 SF 6월 30일 자 ) ]
이처럼 호기심을 갖는 행위는 매우 중요합니다. 무언가를 궁금해하는 것은 창조의 기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의심하지 마라."라고 선언하는 종교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전에 이야기한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호기심만으로는 모든 게 해결되지 않지요. "하늘이 왜 파랗지?"라고 묻는 것은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우리가 "레일리 산란 때문"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윌리엄 스트럿 레일리라는 사람이 호기심을 단순히 질문으로 끝내지 않고 해답으로 연결한 노력 덕분입니다.
호기심을 해답으로 연결하는 노력…. 여기서 통찰력과 상상력이 등장합니다.
통찰력이란 현상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는 것을 뜻합니다. 매우 쉬워 보이지만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현상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며, 매우 많은 요소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통찰력은 현상과 관련된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서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능력이라는 말이며 그만큼 굉장한 힘이기도 합니다.
통찰력은 호기심과는 달리 나면서부터 갖춘 능력은 아닙니다. 호기심을 갈고 닦고 수많은 지식을 쌓고 연결한 끝에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통찰력을 가진 이들은 하나의 현상이라고 해서 쉽게 보지 않습니다. 그것을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주변과 연결하여 살펴볼 수 있게 됩니다.
가령, 하늘이 구름이 짙게 깔리고 비가 내립니다. 여기서 통찰력을 가진 이들은 구름과 비가 무언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구름이 짙게 깔리면 오래지 않아 비가 내리리라고 추측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아가 구름이 끼는 시기를 떠올리고 비가 자주 내리는 시기를 깨닫게 됩니다.
[ 하늘에 낀 구름을 보고비가 올 거로 추측하기는 쉬운 일이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맞추려면 통찰력이 필요하다. ]
하지만, 이만한 통찰력을 가지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찍이 이런 통찰력을 가진 이들이 날씨를 예측하는 점쟁이로, 또는 비의 신을 부르는 샤먼으로 숭배되곤 했던 것은 그만큼 통찰력을 지니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통찰력은 다양한 지식을 배우고 그것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지식을 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쌓고 그들을 분석하며 해체하고 관련된 것을 찾아 연결하는 과정에서 얻는 힘이지요. 이를 위해서는 지식 간의 관계를 알아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고, 다시금 서로 연결할 수 있는 노력이…. 아쉽게도 우리네 교육은 그런 체제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약간의 통찰력과 글솜씨만 있으면 충분히 쓸 수 있는 설명문이나 논설문을, 논술 시험이라는 이름으로 일부로 학원에 가서 공부해야 하는 현실은 우리네 교육이 통찰력을 쌓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지 않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통찰력에서 한 발짝 나아가 상상력이 존재합니다. 상상력은 흔히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힘이라 합니다.
하지만, 상상력은 결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에 새로운 가능성을 더해서 만들어내는 힘…. 둥근 것이 굴러가는 것을 보고 그 위에 무언가를 얹을 생각을 해서 결국 수레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상상력입니다.
이러이러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궁금증에서 실제로 어떻게 될지를 떠올리는 힘. 그것이 상상력의 모태이자 특성입니다.
상상력은 통찰력과 마찬가지로 호기심과 지식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고 더욱 나아갈 때만 이룰 수 있습니다. 아는 것을 총동원하여 머릿속에서나마 실현해 보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창조의 가능성은 모두 지식에서 태어납니다. 호기심을 통해 다양한 지식을 쌓으면 여기에서 통찰력도 상상력도 탄생합니다.
하지만, 구슬이 많아도 꿰어야 보배이듯,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연결하고자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책을 보고, 지식인에 물어보고, 블로그를 아무리 많이 돌아다녀도 그것이 단순한 지식으로 남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힘이 되지 못합니다.
호기심과 통찰력, 상상력은 자신의 노력으로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지식을 쌓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고 활용하는 가능성을 활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들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는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책은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상상력을 키우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책을 보는 동안 사람의 머리는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TV처럼 동영상과 소리가 동시에 들리는 매체는 두뇌에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두뇌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에는 한계가 있으며 한 번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들어오면 다른 정보를 무시하고나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두뇌에서 다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책은 정보량은 제한되어 있으며 자신의 능력에 맞게 받아들일 수 있기에 그동안 두뇌는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분석하며 심지어는 딴죽을 거는 작업을 동시에 시행할 수 있습니다. 책을 통해 들어온 정보는 머릿속의 다른 지식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그 과정에서 지식의 연계와 복합 과정이 자연스럽게 벌어집니다. 서로 연계된 지식은 통찰력과 상상력의 기반이 되며 그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어냅니다.
독서를 마친 후에는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읽었다면 전에 소개한 상상 과학 놀이를 통해 이야기의 폭을 넓혀보는 것도 좋습니다. 교양서적이라면 기존의 지식과 연결하거나 비교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어느 쪽이건 그 내용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지식 간의 연결 고리는 탄탄해지고 다채로워집니다.
호기심과 통찰력과 상상력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자신에게 가능성을 심어주는 것이며 자신의 역량을 높여나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흔히 쓰는 말로 스펙이라고 부르고 싶으면 그래도 좋습니다.)
호기심과 통찰력과 상상력은 지식을 살아있게 도와줍니다. 머릿속에 단순히 쌓아두는 게 아니라, 서로 엮고 장식을 하고 아름답게 꾸미는데 도움을 줍니다. 이를 통해 비로써 우리는 “인간”으로서 살아갈 만한 자격을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야 말로 지식을 단순히 쌓아두지 않고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는 창조력을 가진 존재이니까요.
추신) 아래에 지구 자기장과 빙하기의 관계를 고찰하며 떠오른 생각입니다. 사실 지구 자기장이 왜 하전 입자를 막아주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지구 자기장이 태양풍을 막아주기 때문에 지구 자기장이 없으면 태양풍의 방사선이 그대로 지구로 들어온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의 질문과 관련해서 호기심을 갖고 찾다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을 이리 저리 연결하다보니 아래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차후에 외국어 자료 등을 좀 더 뒤진 끝에 이러한 추론이 타당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만.)
사실을 말하자면, 아래 글을 쓸때 딱 3개의 지식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1. 전류는 하전 입자의 흐름이다.
2. 자기력선은 N극과 S극을 연결하듯 형성된다.
3. 자기장 속에 전류가 흐르면 흐르는 방향에 수직으로 힘을 받는다. - 플레밍의 왼손 법칙.
대단한 지식도 아닙니다. 모두 초등학교 때 배우는 기초 과학 지식이니까요. 이를 바탕으로 일어나는 일을 상상하고 난 후에는 그것을 실제 현상과 비교해서 타당한지를 확인하고, 지식을 좀 더 더해서(가령, 베타선과 알파선은 각각 전자와 양자의 흐름이다. 전자와 양자가 합쳐지면 수소 원자가 되며 이때 에너지가 발생한다....) 포장했을 뿐입니다. 알고보면 별게 아니지만, 사실을 모르면 마치 정답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것처럼 여겨집니다.
제가 쓰는 글 중에는 그런게 많습니다. 앞서 '약간의 통찰력과 글솜씨만 있으면 충분히 쓸 수 있는 설명문이나 논설문'이라고 한 대목은 사실 제 글들이 대부분 약간의 통찰력으로 쓰여진 것이니 때문입니다. (다만, 추론으로 만들어낸 글은 검증해 보아야 합니다. 특히 공공 장소에서 대중에게 이야기할 때는 더욱... 단순히 '이렇게 될 것 같다.'라는 생각만으로 글을 쓰면 자신의 신뢰성도 문제지만, 남들에게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고 그게 퍼져나가게 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아래 '랩터의 진실'에서 이야기한 <먼나라 이웃나라> 같은 작품이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동시에 모든 글은 추론이 담겨 있으니 이에 대해서 옳고 그름은 직접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니, 저 만이 아닙니다. 이른바 글을 잘 쓰는 분들은 사실 글솜씨라기보다는 통찰력과 상상력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단순히 지식을 쌓아둔 것 만으로는 흥미로운 글을 쓰지 못합니다. 제 아무리 글솜씨가 좋아도 설득력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어째서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지구 자기장과 빙하기와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단순히 "말이 안 된다."라고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와 관련한 내용이 많이 눈에 띈 다는 것을 알게 되고 스스로 궁금하게 생각한 결과인 것입니다.
덕분에 지구 자기장과 빙하기에 대한 장문의 글을 써서 그 추론의 결과물을 알릴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저는 그러한 탐구와 추론을 통해 저 자신을 단련했을 뿐만 아니라, 제 자신의 창작에 도움이 되는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지금 당장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제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지금은 플레밍의 왼손 법칙이라는 간단한 물리적 지식이 지구 자기장이 지구를 보호하는 원리 같은 분야에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앞으로 제 자신에게 달린 일이겠지요.
여담) 호기심과 통찰력, 상상력을 기르면 논술 시험 점수를 엄청나게 올릴 수 있습니다. 수험생과 관련된 분들이라면 이 문장 하나로 충분히 눈길이 가지 않을까요? ^^
하지만, 설득력있고 흥미를 끄는 글을 쓰는 재주는 고작 논술 시험에 그치지 않습니다. 평생 큰 도움이 되는 능력이기도 하지요.
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SF&판타지 도서관 : http://www.sflib.com/
블로그 : http://spacelib.tistory.com
트위터 : http://www.twitter.com/pyodogi (한글) http://www.twitter.com/pyodogi_jp (일본어)
얼마 전에 논술 시험도 얼마든지 학원에서 준비해서 대학 가는 데 도움이 되게끔 배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좀 마음이 착잡하더군요.
창의적인 사고가 결코 학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준다고 쉽게 길러지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생각해서 결론을 내리게끔 하는 지도는 일체 없고,
"이런 식으로 논리를 전개해서 글을 쓰면 완벽한 해답이다."라고 가르쳐서, 결국 만점받는 논술 시험에만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닌 지...
논술, 참으로 중요한 능력입니다만, 문제는 논술을 평가해 줄 수 있는 사람의 자질과 능력을 먼저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사람이 면접관이 되어서 정확하게 학생의 자질을 평가해 주어야 앞으로의 논술 시험 제도에도
희망이 생기겠지요. 제대로 평가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 면접관의 자리에 앉아서 있으면 결국 본질적으로 좋은
평가 제도가 효용성이 없는 걸로 저평가되어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됩니다.
참고로, 최근 서울 강남권에서는 "발명왕 에디슨 만들기"라고 해서 새로운 발상과 창의력을 향상시키는
교육이 학부모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는 데,
아무리 보수적이고 기득권 층이라도 세상의 변화와 흐름을 직시하고 있다고 해야 할려나요?
과학 영재 교육이라는게 많습니다만, 실제로 그 과정을 진행해 본 사람으로서는 그다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한 때 과학 영재 강사였습니다.) 대개는 물로켓처럼 보여주기에 치중한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강남 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방과후 수업으로 진행하지만, 그 내용이 판에 박힌데다 기초 과학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그냥, 학부모들의 아이들 스펙 올리기로 활용하는게 현실입니다.
사실은 에디슨을 발명왕으로 숭배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솔직히 에드슨은 발명왕이 아닙니다. 뛰어난 사업가일 뿐입니다. 그의 발명품 대부분은 남의 것을 베낀 것이며(그의 발명품으로 되어 있는 것들 대부분은 그가 아니라 그의 회사 직원이 만든 것입니다.), 그의 발명 스타일은 매우 비효율적입니다.
그야말로 쓸 거 안 쓸 거 다 해보고 실패하지 않으면 성공... 이런 식이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정 반대의 인물이 테슬라입니다.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호기심과 통찰력, 상상력을 갖고 다채로운 발명품을 만들어낸 인물. 에디슨이 그를 제대로 대우해 주었다면, 그리고 쓸데없이 그를 방해하고 힘들게 하지 않았다면 세상은 좀 더 좋아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호기심, 통찰력, 상상력을 기르는 데는 비단 논술 뿐만 아니라 소설 쓰기 같은 문학 작품을 창작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 합니다. 소설은 엄격히 말하면, 허구(Fiction)이지만, 있을 만한 일을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높은 수준의 논리력과 상상력을 필요로 합니다. 아는 게 있어야 글에다 살을 갖다 붙여 독자로 하여금 사실감(Reality)을 전달할 수 있고, 거기에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을 덧붙일 때 억지성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이야기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합니다. 소설 뿐만 아니라, 시, 희극, 각본 같은 장르도 얼마든 지 평가 매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정효 씨의 글 쓰기 만보라는 책 가운데는 이런 말이 있더군요. "한 가지의 거짓말을 하기 위해, 다른 수십 가지의 진실을 말해야 한다."
결국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하겠고, 알더라도 정확히, 제대로, 자세히 알아야 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받는 교육은 이런 좋은 수단에 대해서 아무리 논의를 해봐도 무의미하게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한국의 지식 발전의 가장 큰 문제는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위해서 지식을 배우니, 동기 부여가 될 턱이 없습니다. 하늘이 왜 파란지에 대해서 알아야 하냐고 의문을 표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높은 점수를 따기 위해서 공부하고, 실제로 원하는 만큼 점수를 획득했을 때 만족이 있고, 보람이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경우는 아닙니다. 배움의 의미가 전도되어 지식의 발전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정체되었고 죽은 사회라고 할 수 있는 거겠죠.
저에게 강한 동기 부여를 주는 것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일러스트레이션, 영화 정도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보다도 공부하고 싶은 생각을 들게끔 합니다. 재미있는 걸 더 재미있게끔 만들어주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게임의 역사, 등장 인물에 대한 지식, 바탕이 된 기술의 종류 등 이런 걸 알아보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인터넷을 검색하고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가고, 더 필요하면 관련 서적을 구입해 읽고 소장하기도 합니다. 이건 이성의 영역이기 보다는 본능의 영역, 감성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철저히 이성에 의지해 분석, 추론, 비평을 하지만 그 저변에는 '이건 재미있다'는 대뇌 변연계의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겠죠.
저는 한국 교육계가 잃어버린 본질은 "왜 공부를 하는가"에 대한 적절한 답을 내리는 데 실패했다고 봅니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에 앞서서 동물적 본능을 먼저 추구하는 생물입니다. 동기 부여가 안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더 이상 공부하려지 않는 것이지, 학생들이 게으르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무책임하기 때문에 선뜻 공부하려고 하지 않는 게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상황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판단, 결국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은 억지로 공부에 자신을 옭아매고, 자신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피곤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비생산적인 구조가 어디 있을까요?
게임에 미치다시피 사는 학생들은 부모와 친구가 뭐라 하던 피씨 방 가서 미치도록 게임을 합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너무 재밌다고 하죠. 부모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선생들은 그들이 불량하다고 교정하려 듭니다.
발상을 전환해 보면, "왜 그들은 게임에 집착하고 있는가?"라고 조그마한 질문을 먼저 던져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왜 그들이 게임에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쏟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우리 존재의 근간을 이루는 밑바탕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어렸을 때 마음껏 뛰놀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한다는 게 얼마나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
문득 깨닫게 됩니다.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을 해방시키고 그것을 마음껏 충족시키는 경험을 통해서, 아이들은
자기에게 정말로 중요하고 집중해야 할 '놀이'가 무엇인 지 발견할 기회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일생동안 책임지며 살아가야 할 시기가 찾아 왔을 때, 과연 그들은 주저없이 선택할 수 있을까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물론 직업 상 원하는 분야에 가지는 못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고, 많이 있겠죠. 하지만 창의력 또한 분명히 살아있는 인간이 될 겁니다.
제대로 논 사람은 많은 상상을 하고 자라난 사람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배운 것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 이상의 작업은 수행하지 못하겠죠. 그런 사람이 소위 '똑똑한 바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기본에 충실하자'고 한 마디씩 합니다만, 정작 그 누구도 기본이 뭔지 모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결국 먼저 알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자기 혁신을 꾀해 나갈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한가지 거짓말을 위해서는 수많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라는 대목이 인상적이군요.
우리나라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를 제대로 하지 않고 그나마 동기를 가진 학생들을 억압하고 가로막는 교육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책을 보면 "도움(돈)이 될지 안 될지."부터 따지는 현실이 정말로 착찹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모든 것을 공부와 연결시켜서, 심지어 놀이나 독서마저도 공부를 위한 스펙으로 밖에는 생각하는 현실은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얼마나 놀이 문화가 없다면 아이들이 pc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것일까요?
말씀하신 대로 인간의 기본에 충실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과학 논술까지야 잘 모르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한다는 건 중요한 과정이죠. 기발한 아이디어는 누구나 떠올립니다만, 그걸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표현하는 건 쉽지 않으니까요. 창의성이라는 걸 그냥 획기적인 아이디어 하나만 떠올리는 걸로 생각할 때가 많아 아쉽기도 합니다. 그걸 결과물로 내놓고, 모두가 이용할 수 있게끔 하지 않으면 결국 죽은 아이디어가 될 텐데요.
학창 시절...
과학 논술은 잘 쓰고 싶어들 하는 데, 정작 과학 공부는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초 없이 건물을 지으려고 하니 사상누각입니다. 독서도 좋고 통찰력도 좋고 실험을 지켜보거나 만지작 거리면서 해 보는 것도 다 좋은데, 일단 과학에 대해 글을 쓰려면 이론을 공부해야 합니다. 가볍고 쉬운 수준이든 깊고 어려운 수준이든 뭐든 공부를 해야 결과가 나올 수 있지만, 골치아픈 수식이 나오고 복잡해 보이면 봐도 이해가 잘 안되니 그냥 손을 뗍니다. 그리고 말빨 글빨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공부해 가지고서는 겉보기에 말은 번지르 한 데 도대체가 깊이 아는 게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일단 집중적인 훈련으로 겉보기에 맵시있어 보이는 논술을 써내는 기계가 되는 데는 성공해 있습니다.
개중에 그나마 똘똘하다는 사람들이 박사 학위 받고 교수가 되었습니다.
과학 논문을 잘 쓰고 싶어들 하는데, 정작 최신 논문을 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논문을 써야하는 교수는 정작 저널의 아티클을 잘 읽지 않고, 대학원생들에게 저널 아티클을 읽고 발표하게 해서 손쉽게 듣는 것으로만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자가 어영부영 대충 훑은 것을 듣기만 해 놓고, 어처구니 없게도 교수 본인은 그 아티클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믿어버립니다. 교수부터가 수식이 나오면 잘 모르겠고 골치아프니까 쳐다 보지도 않으려고 하므로, 대학원 제자들도 수식은 아예 제끼고 세미나를 진행합니다. 그런 식으로 대학원생들이 백날 논문 읽고 발표해 봐야 핵심을 쏙 빼고 요지 서론 및 결론뿐이고, 교수도 핵심을 파고들려고 하지 않으니 그냥 그렇게 세월 보냅니다. 그런 식으로 10년 가면 이미 과학 논문을 쓸 수 있는 역량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현란해 보이는 용어를 씨부리는 학문 브로커일 뿐이지, 자연 과학을 탐구하고 미지의 세계를 규명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학자는 될 수 없습니다.
논술 백날 준비해 봐야 무용지물입니다. 스스로 파고들어서 이론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이 깨닫지 않으면 말짱 꽝이죠.
겉핥기로 대강대강 훑고 넘어가려는 이런 태도가 심지어 교수라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만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기초 과학 논문을 잘 쓰지 못하고, 노벨상 언저리에도 못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일본에서는 심지어 대기업 떨어져서 그냥 중소기업 다닌다는 회사원도 받는 자연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한국에서는 잘난 학교에서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받는 잘난 교수들마저 꿈도 못꾸고 있으니 원...
전에 조장희 박사와 식사를 같이하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조장희 박사는 물리학자이지만 PET를 개발하면서 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동양사람이다보니 동양의학을 과학적으로 풀어볼 생각을 했습니다.
때문에 한국의 여러 한의학 및 양의학 의사들과 학자들과 공동연구도 하며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나름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에 접근한 과학자로 다섯손가락 안에 꼽는 사람인데 한국에 와서 느낀 답답함(주로 한의학자들과의 교류에서 느낀 느낌)을 이런식으로 표현하더군요. 사람들이 호기심이 없다. 자기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을 수가 없는데... 뛰어난 학자라는 사람들이 전대의 지식을 아무 비판없이 받아들이고 개선하려 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저는 그냥 우리나라에 학문은 양복을 걸친 것처럼 남의 옷을 걸치고 있고 아직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기초가 없다)는 식으로 느낀바를 설명했습니다. 일단 우리나라는 기본적인 학문의 권위조차 대부분 외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자기장 속에 전류가 흐르면 흐르는 방향에 수직으로 힘을 받는다. - 플레밍의 왼손 법칙
음... 이건 초등학교에서 안배우지 말입니다...
이거 배우면 그건 보통 영재라고 하겠죠....
물론 -호기심과 통찰력, 상상력을 기르면 논술 시험 점수를 엄청나게 올릴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은 동의하지만, 예가 조금 맞지 않는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