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많이들 하는 이야기지만, 한 번쯤 더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클럽은 게임 위주의 이야기를 하지만, 장르 팬 커뮤니티인 만큼 책 이야기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책 이야기를 하면, 흔히 나오는 말이 'SF 소설은 인지도가 낮아서 잘 안 팔린다'라는 거죠. 하지만 이게 꼭 SF 소설에 해당하는 말은 아닌 듯합니다. 출판계에서는 예전부터 문자의 위기가 닥쳤다는 주장을 되풀이했으니까요. 사람들이 서점에서 소요하는 비용은 대개 소설을 비롯한 문학이 아니라 자기경영서, 참고서, 문제집 등에 돌아간다는 조사도 있고요. 심지어 해외에서도 텍스트의 시대가 끝났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 같더군요. 저야 출판계는 잘 모릅니다만, 장르 팬 커뮤니티나 블로그 등을 돌아다니면 저런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아마 클럽 여러분들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정말 텍스트가 위기인가, 궁금해집니다. 사실 알고 보면, 지금도 우리는 텍스트 매체로 많은 유희를 즐깁니다. 각종 팬 사이트나 블로그에 올라오는 수많은 게시물이 그겁니다. 일부는 그림이고, 또 일부는 동영상이지만, 아직도 많은 게시물이 텍스트 위주입니다. 단순히 잡담을 하는 것에서 시작해 논의를 하거나 정보를 올릴 수도 있고, 창작물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팬픽은 이제 인터넷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문화상품이죠. 개 중에서 창작이 뛰어난 사람은 실제 출판으로까지 나가기도 하고요. 이렇듯 사람들은 매일 문자 미디어로 놀이를 즐깁니다. 하루에 쏟아져 나오는 게시물을 조사하면 그 통계량이 엄청날 겁니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글을 쓰고, 누가 쓴 글이든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중학교를 지나 어느 정도의 지성만 발달하면 가능한 일이죠. 어찌 보면, 텍스트 자체는 과거보다 훨씬 더 넘쳐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근대 시절에도, 아니, 현대에 접어들어 정보 매체가 발달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현상은 없었습니다. 중세는 물론이고, 근대에도 고등교육을 받는 이들의 수가 적어서 글 자체를 읽는 이가 많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쓰는 사람은 더욱 없었죠. 문맹률을 개선하고, 현대에 들어서면 인쇄물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만. 이때까지도 글을 퍼뜨릴 수단은 출판사를 통하거나 자체 출판을 해야 했습니다. 허나 지금은 그리 비싸지도 않은 인터넷 사용료만 지불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교육 수준이 높아져 고등학교는 기본이고, 다들 대학을 졸업했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글은 얼마든지 올릴 수 있죠. 물론 그렇게 나온 글이 전부 쓸모 있는 건 아닙니다. 잘못된 정보도 있고, 잡담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절대량이 많아진 상태에서 볼만한 글도 더 많아진 게 사실입니다. 아직까지는 전문 지식을 얻기 위해 책만큼 좋은 게 없지만, 창작물은 다르죠. 인터넷에 올라오는 오리지널 작품 중에는 상업적 가치가 높은 글들도 다수입니다.

 

위에서 한 이야기는 소위 '잡지의 위기'의 한 사례일 겁니다. 인터넷이 발달하여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이제 잡지는 망한다는 뜻이죠. 소설도 이에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차피 인터넷에 볼만한 소설이 많으니 굳이 비용을 지불하고 책을 살 이유가 없는 거죠.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설정이나 이야기가 기발한 작품이라면 돈 주고 사겠지만, 범작이나 평작이면 굳이 자기 지갑을 열지 않아도 됩니다. 그에 준하는 작품들이 웹 서핑만 하면 주르륵 쏟아지거든요. 특히, 장르 문학에서 그게 두드러지는데, 팬들이 끊임없이 재생산을 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SF와 판타지, 추리, 무협, 공포물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야설까지 그렇습니다. 아예 그런 창작물만 모아놓은 사이트도 속속 늘어나는 추세고, 지금 시점에서는 늘어나는 걸 넘어서 완전히 포화 상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거짓말 좀 보태면, 인터넷을 하는 장르 팬 유저라면 누구든지 자기 작품은 하나쯤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처럼 작가라는 단어가 가볍게 쓰이는 때도 없었을 겁니다. 우리 클럽만 해도 작품 한 번 안 써본 회원이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금 사태는 텍스트 매체의 위기라고 하기엔 좀 그렇습니다. 그러면 출판의 위기일까요? 출판의 위기라는 말도 많이 하고, 그게 맞는 것도 같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학 출판사와 전업작가들이 위기인 상황인 거죠. 반대로
 인터넷에 작품을 올리는 예비작가들에겐 오히려 출판의 기회인 셈이고요. 예전 같으면 수도 없이 퇴짜를 맞고 책상 구석에 박혀 있을 원고가 인터넷 때문에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으니까요. 운이 좋으면 진짜 출판도 하고요. 물론 아직까지 흔히 말하는 작가의 기준은 출판사에서 종이책으로 인쇄를 해서 서점에 판매를 해야 하는 선입니다. 인터넷 작가들이 수없이 등단한 지금에서도 이런 기준은 예전과 변함이 없는 듯해요. 종이책의 권위랄까나.

 

개인적으로는 종이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흐름이 좀 안타깝기도 합니다. 똑같은 글이라도 인터넷에서 보는 것과 종이로 보는 것은 달라요. 종이가 더 보기 편하기도 하고, 종이책은 좀 더 많은 사람들(작가부터 편집자까지)이 참여했기에 소설의 질을 검증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렇다고 출판이 곧 작품성과 연결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지독한 상업성 위주의 책도 쏟아져 나오니까요. 이른바 양산형 판타지가 그렇죠. 하지만 그만큼 진짜 제대로 된 작품만 살아남는다는 생각도 들고, 등단이라는 어려운 관문이 없어 저주 받은 걸작도 구제받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래저래 심정이 복잡합니다. 이게 바람직하기만 한 건지, 아니면 아쉬워해야 하는 건지 구분이 안 가요.

 

※ 그나저나 로버트 소여의 공룡 소설 좀 번역 더 안 내주려나요. 이런 건 인터넷에서도 흔히 보기 힘든 작품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