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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실사 영화에서 SF 잠수함이라면 떠오르는 이미지]

잠수함 영화는 공식을 따로 만들 정도로 이제는 정형화된 영화 장르입니다. <특전 U보트>를 시작으로 <상과 하>, <붉은 10월>, <크림슨 타이드>, <U-571>, <K-19> 등의 수작들이 하나의 영역을 만들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영향을 받아 <유령>을 제작했죠. 그런데 과거 2차 대전이나 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잠수함 영화는 많지만, 그 외에 SF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은가 봅니다. 현대전의 다른 주역들, 그러니까 전투기나 전차 등은 실사 SF 영화에서도 그 모습을 몇 번 드러냈습니다. 전투기는 클럽에서도 곧잘 우주 전투기 논쟁이 벌어질 정도로 자주 나오죠. <스타워즈>에 나오는 X-윙부터 게임을 바탕으로 한 <윙커맨더>와 미니 시리즈 <배틀스타 갤럭티카> 등의 바이퍼까지 그 종류가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영화 <스텔스>에 나온 에디는 우주형은 아닙니다만, 미래형 전투기였고요. <인디펜던스 데이>야 뭐…. 전차는 주력으로 나오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만, <스타워즈> 등의 스페이스 오페라에서는 가끔 모습을 드러냅니다. 저 유명한 AT-AT 등도 사실은 전화 역할을 하는 셈이고, 프리퀄 영화에서도 전차 역할을 하는 병기들이 상당수 나왔죠.

 

하지만 잠수함은 우주전투기는 물론이거니와 보행병기나 미래전차만큼의 비중도 없습니다. 아니, 사실 SF 영화에서 지금껏 미래형 잠수함이 주역으로 나온 적이 있는지 의문이네요. 일본 특촬물 중 미래 잠수함이 나오는 시리즈가 있던 것도 같은데, 확실히 기억은 안 납니다. 중요한 건 우주전투기나 미래전차만큼 위상이 크지 않다는 겁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미래 잠수함 영화라는 건 우주전투기나 미래전차보다도 더 촬영하기 저렴할 텐데 말입니다. 대개 사건은 잠수함 내부에서 벌어질 테니 세트를 그럴 듯하게 하나 만들어 놓으면 더 이상 제작비가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어비스>처럼 외계 생명체가 들어왔다거나, <스피어>처럼 바다 괴물이 쳐들어온다거나 하면 모르지만, 폐쇄 공간엔 대개 인간들만 거주하고, 그들이 벌이는 갈등이야말로 주된 내용입니다. 승무원들만 나오니 괜히 다른 일에 시각효과 제작비를 낭비할 일이 없죠. 잠수함 외관 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우주 전투기처럼 미친 듯이 곡예 비행을 하거나 떼거리로 싸울 일이 (거의) 없습니다. 외관을 조명하는 데 많은 돈이 안 들어간다는 뜻. 거기다 전차처럼 지상에서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시야가 뿌연 바다에서 활동하니 섬세한 묘사도 필요 없고요. 어뢰야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숫자가 많으니 어뢰나 기뢰 묘사가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전투기의 곡예 비행과 어뢰 사출을 비교하자면 어뢰 쪽이 훨씬 쉽죠. 이렇듯 플롯과 연기가 받쳐준다면 미래 잠수함은 찍기 쉬운 장르일 겁니다.

 

그럼에도 미래 잠수함 영화가 드문 건 아마 우주선이 잠수함과 비슷한 구조이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우주선과 잠수함은 외부 환경(우주, 바다)이 극도로 위험하고, 승무원은 배 안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폐쇄성 때문에 영화를 찍게 되면 분위기가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전투 장면을 찍어도 거대한 배 두 척이서 어뢰(혹은 미사일)를 쏘며, 느릿느릿 회피 기동을 하는 것도 다를 바 없고요. 우주선 승무원들은 대개 해군 계급을 그대로 계승하는 식으로 나오니까 조직 구성 역시 마찬가지. 그렇다면 우중충한 바다보다는 광활한 우주가, 시커먼 원통보다는 복잡한 디테일의 우주선을 찍는 게 훨씬 낫겠죠. 어차피 똑같다면, 미래 잠수함보다 우주선이 더 멋지다는 뜻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가끔씩 미래 잠수함 영화를 보고 싶지만,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앞으로도 잠수함이 나오는 SF 영화는 나오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미래 잠수함을 조종하는 게임도 없는 듯합니다. 우주전투기로는 <윙커맨더>, <X-윙> 시리즈 등이 유명하고, 미래 전차는 <맥워리어> 같은 보행병기가 있습니다만. SF 잠수함을 시뮬레이션으로 조종하는 게임은 기억이 안 나는군요. <사일런트 헌터> 같은 시리즈가 SF로 나오지 않고서야 힘들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