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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 그러니까 전차는 육군을 대표하는 지상전 최고의 병기입니다. 현대전 하면 흔히 떠올리는 병기인 잠수함, 전투기와 더불어 육해공군의 아이콘 역할을 하죠. 하지만 이런 위치에도 정작 전차를 소재로 하는 영화 등은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유명한 전차 영화가 있는데 제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전투기나 잠수함 소재 영화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약합니다. 공중전 소재 영화로는 역시나 <탑건>을 꼽을 수 있겠고, <스텔스> 같은 인공지능 전투기도 있으며, <도라! 도라! 도라!>, <진주만>, <인디펜던스 데이> 등에서도 전투기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스타워즈> 전투의 백미는 혁명군 전투기 편대와 제국 함대의 대결이죠. 이를 바탕으로 명작 비행 게임들이 탄생했고요. 잠수함 영화는…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 힘들 정도죠. <특전 U보트>부터 시작해서 <상과 하>, <붉은 10월>, <크림슨 타이드>, <U-571> 등이 나옵니다. 전투기처럼 SF에 나오는 일은 별로 없으나 현대전을 바탕으로 한 작품은 수두룩합니다. 허나 전차는? 글쎄요, 각종 SF 영화에서 외계 병기나 괴물 등에게 무참하게 쓸려나가는 걸 제외하면, 주연으로 나오는 일이 없습니다.

 

전차가 영화의 주역으로 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우선 액션이 부족하기 때문일 겁니다. 비교대상인 전투기나 잠수함의 경우, 3차원 공간에서 이동하기에 보다 화려하고 긴박한 전투를 꾸밀 수 있습니다. 전투기의 화려한 공중 곡예야 말할 필요도 없고, 잠수함 역시 어뢰에 맞지 않기 위해 수압을 버티거나 암초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회피기동하는 일이 자주 있죠. 하지만 전차는 그저 지표면에 딱 붙어서 달릴 뿐, 상하로 움직인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거기다 자동차 추격전처럼 도심에서 온갖 장애물을 헤치는 것도 아니고, 평지나 언덕에서 싸우는 게 대부분이죠. 이러니 멋이 날 리가 없습니다. 또한 전투기와 잠수함은 공격 방식이 눈에 보입니다. 전투기는 미사일을 쏘고, 잠수함은 어뢰를 발사하는데, 이것들은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기에 관객들에게 서로의 공격 양상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적군이 미사일이나 어뢰를 쐈다 하더라도 주인공의 뉴타입 능력이라면 플레어나 회피 기동으로 충분히 피할 수 있죠. 반면, 전차의 주포는 쏘는 즉시 목표에 맞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공격 양상을 보여주거나 도달하기 전에 피하거나 하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전차는 인간에게 너무나 친숙한 지상에서 활동하기에 위급 상황이 비교적 발생하지 않습니다. 창공으로 올라가는 전투기와 심해로 내려가는 잠수함은 인간의 활동 영역을 사실상 벗어났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걸핏하면 비상 사태가 일어나고, 주연 인물을 위기로 몰고 가기 좋습니다. 긴박한 이야기를 만들기 편해요. 연료 탱크에 총알을 맞아 불시착하는 전투기라든가 바다 밑바닥까지 내려와 수압이 장갑판이 떨어져나가는 잠수함이라든가…. 물론 전차도 얼마든지 위기 상황을 만들수야 있지만, 자연 대 인간으로까지 대결 구도가 확장되는 전투기/잠수함에 비하자면 강도가 약합니다. 그리고 전투기, 잠수함과 달리 결전병기라는 느낌을 주기 어려운 것도 이유가 될 겁니다. 전투기의 경우, (전투기라면 공중전용이지만 여하튼) 지형 제약을 받지 않아 적군 심장부로도 침투할 수 있습니다. 만일 심장부에 다다랐다면 중요한 정보를 캐오거나 중요 시설을 파괴할 수 있죠. 핵폭탄을 탑재한 스텔스 폭격기는 꽤 무서운 존재고요. 물론 무수한 대공 화망을 피해야겠지만, 뉴타입 주인공이라면 가능합니다. 핵무기 탑재 잠수함은… 사실상 결전병기 맞죠. <크림슨 타이드>를 보면 핵 탐재 잠수함장의 결정이 세계 평화에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잘 나옵니다.


그렇다면 전차가 영화 등에 폼나게 나올 일은 아예 없는가…, 하면 방법은 있다고 봅니다.
 바로 미래형 보행전차를 등장시키는 거죠. 멕워리어가 좋은 사례일 텐데, 전차와 하는 일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지상에서 기동력을 발휘하고, 강한 화력으로 상대 기갑부대를 제압하며, 방어력이 뛰어나 장시간 생존이 가능하죠. <배틀테크>에서는 메크가 워낙 비싼 관계로 메크와 전차를 동시에 운용하긴 하나 사실상 이렇게 보자면 '메크 = 전차'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물론 메크 자체가 전차와 완전히 동일시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전선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비슷하니까 좋은 대체재가 된다는 겁니다. <배틀테크>가 실사 영화로 나온다는 소문은 예전부터 돌았고, 도대체 언제 나올지 기약은 없습니다만. 만일 진짜 나온다면, 저렇게 전차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반영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감독이 전투 장면을 어떻게 연출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현재 상태로는 절대 영화의 주연 자리를 꿰찰 수 없으니 미래형 보행전차라도 분발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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