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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링크 : http://news.donga.com/3/all/20091216/24831006/1
동아일보 기사인데 여운형 선생의 친일행각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나왔다고 합니다.
동아일보라는 신문에서 하는 말을 그다지 귀담아 듣지는 않는 편인데 개인적으로 여운형이라는 인물을 존경해 왔던 터라
너무 마음에 걸리네요. .....
이 시대에 과거 사람들을 두고 친일이라고 욕하는 것은 쉬운 일이죠. 당장 자기 몸은 하나도 다치지 않고, 자기 식구들도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게다가 자기 자신이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을 수 밖에 없으니까 아주 편리하죠.
다분히 편가르기에 잘 먹히기 때문에, 정치적인 이유로 남을 찍어 내리기에 편리해서, 국민 감정을 충동질하기 쉬워서, 역사적 과오를 정리한다는 명분으로 친일파 색출이나 빨갱이 색출에 나서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죠. 지금에 와서 그 혹독한 시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서, 그저 속 편하게 손가락질이나 하는 것은...
저도 '하하하'입니다.
여운형의 경우 소비에트식 공산주의 자는 아니었죠. 당시의 주류 공산주의자나 이승만 부류에게 비난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연 조선공산당에서 좋게 봤을리 없죠. 반대 쪽에서는 더할 나위 없을꺼고요.
여운영정도의 위치라면 43년이면 이미 일본의 패망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을텐데요. 30년대나 40년대 초가 아니라 굳이 망해가는 시기에 그런 일을 했다는건 좀 안믿기긴 합니다만, 만약 사실이면 잘못한거죠. 비난의 대상 맞습니다.
동아일보라 안믿기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좀더 확실한 증거가 나오겠죠. 한국인들에게 널리알려진 친일파였다는 미군의 보고서를 왜 대다수 한국인들은 몰랐는지 모르겠지만요...
이러다 김구의 친일행적까지 기사가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_-;;
여운형친일논란과 대동일보란 신문에 대해서 여기 예전 기사가 있네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78534&PAGE_CD=
여운형은 나름대로 굉장히 놀라운 인물이니까요. 일본입장에서도 반일의 아이콘으로 남겨둔 채 회유하려고 했던 거고 여운형은 여운형대로 그 사이에서 일본인을 상대로 민족주의로 줄타기를 했던 분이죠.
솔직히 친일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만 여운형 자체가 굉장히 노회하고 정치적 지략에 밝은 양반이어서 후대인들에게 그가 어떤 모습이라고쉽게 밝히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진심은 대한민국에 있었다고 믿습니다.
친일사전이 애초에 남한쪽 인사만 따진것이라서 북한쪽 인물에 대해서는 적용을 안한것으로 압니다.
[남한쪽 인사라는 기준이 어떤 식으로 적용된것인지 그런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여운형이 어떤 인물이든지 거기 등재될 이유는 없다는 것이죠.
1920년대 후반되면 소련공산당쪽에서(국제공산당회의등에서) 신민회를(신간회인지 갑자기 헷갈리는데) 비롯하여 이런
연합전선을 모두 파기하라고 지령이 나옵니다. 간신히 좌우합작이 이뤄질랑 말랑 하는 시점에서
민족주의자간의 좌우연합을 모두 제국주의 앞잡이, 타협주의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좌우합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두 타협주의, 민족반역자로 만들어 버리죠. 조선공산당에서 여운형같은
사람은 바로 이런것에 대해서 제 1 목표였을테니 조선공산당의 발언은 그런 선상이었다는 정도만은 아시면 됩니다.
다른 증거자료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군요.
다만 3.1운동 당시 민족지도자 33인중에서 당시 종료 경찰서 가서 다시는 이런짓 안한다는 반성문에 사인
안한 사람은 만해 한용운하고 누구 하나 더 있던가 어쨋든 몇 안됩니다. 그래서 서류상으로는 목숨을 잃은
민족투사들만이 진정한 변절안한 애국자일수밖에 없는 현실이 더 슬프죠. 35년이면 짤은 시간이 아닙니다.
3.1운동 이후에 인텔리들중에서 변절 안한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변절을 안하면 현실에서
회피하던가 선택은 몇가지 없었죠..
여운형이라는 인물을 그딱 좋아하지도 않은 사람으로써 한마디 하자면 1940년대 정도쯤 되면 한반도내에 사는 사람들중 상당수는 독립이란 글자는 이미 먼나라애기였습니다. 특히나 상당수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친일로 노선을 변경한 시점입니다. 물론 최후까지 남은 축은 공산주의자들이지만, 여운형 정도 거두면 제1 회유대상이고, 공산주의 기본 개념은 필요에 의해 전술적인 노선 변경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할 수있어야 함으로 그딱 신기한 일도 아닌듯 싶습니다.
뭐 이런 사실 때문에 많은 독립운동을 한다는 분들과 뼈속도 친일이었던 분들이 외양적으로 구분하기 애매모호해진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뭐 애초에 독립했을때 정리했어야 할 문제라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게 있습니다. 저 자료도 결국은 수많은 자료중 일부를 끄집어 낸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여운형이 위대한 인물로 치겨세운 쪽도 결국은 방대한 자료의 일부만 선택한 것에 불과합니다.
1930년대 ~40년대 명망있던 이들의 생활이나 역사 전체를 살펴보면 이런 애기가 나오지 않을까 추정합니다.
그들도 결국은 우리와 별다를 것 없는 사람이란 걸 말입니다. 위인은 무슨 위인입니까?
최소한 친일사전에 등재된 인간들은 단발성이라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가세한 사람들이라고 봐야 합니다. 뭐 그렇다고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겠지요. 그틈을 노리고 난리친듯 하하하 그저 친일사전이 싫어 흠집내기 바쁜 거죠. 저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물어보기 보다는 찾아보길을 권합니다.
정말로 존경하신다면는 말입니다. 도서관이나 문서 기록소같은 자료는 의외로 찾기 쉽습니다. 국회도서관도 나름 훌륭한 자료가 있습니다. 인터넷은 한계가 있기에..
다만 1946년도 발간했다는 대동신문의 정체가 궁금하군요? 이시기에 원체 수많은 신문들이 난발했고, 그중 대부분은 말그대로 양대 진영이 상대방 헐뜯기에 정신 없던 시절입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은 것은 친일과 좌파는 그물은 말그대로 상대방을 올가메는 가장 유효한수단이라는 점입니다. 심지어는 미국, 소련 정보 부서에 넘어가는 정보들조차도 경쟁자를 비방하기 위해 상반된 정보가 넘쳐 났습니다. 이승만이 경쟁자들을 어떻게 미국에서 떼어냈는지 생각해 보면 공산주의 진영도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합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