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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이해도, 소통도, 관계도 통하지 않는 살아있는 바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스타니스와프 렘이 <솔라리스>를 쓴 이유는 서구권, 특히 미국 SF 작가들에 대한 대체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미국 SF 작가들이 쓰는 작품이란 게 외계인들을 죄다 피부색만 다른 인간으로 묘사한다는 거죠. 외계인은 말 그대로 다른 세계(행성)에 사는 생명체고, 그렇다면 지구인과 비슷한 점이 거의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미국 작품에 나오는 외계인은 그저 생긴 게 좀 특이한 인간 수준이며, 렘은 이에 자극을 받아 '진정한 이계 생명체'인 솔라리스 바다를 주연으로 글을 썼다고 하지요. 외계인의 인간화에서 탈피한 작품이라고 할까요.

 

렘의 의도가 정말 그러했는지 믿거나 말거나지만, 어쨌든 <솔라리스>가 이해할 수 없는 이계 존재를 그리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소설 속에서 켈빈은 끊임없이 솔라리스의 바다를 연구하고, 고심하고, 다가가려 해보지만 결국 실패합니다. 소통은 커녕 이해조차 불가능한 대상이었던 거죠. 소설 속 대사인 "인간조차 서로를 이해 못 하는데, 외계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 이 작품의 핵심을 딱 집어낸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소더버그 영화는 완전히 삼천포…)

렘만큼은 아니더라도 미지의 대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작품은 많습니다. 그 대상이 꼭 외계인인 것도 아니고요. 상상 과학이면 모두 SF 소재가 되니까 다양한 대상이 인간과 미지와의 조우를 하죠. 쉽게 예를 든다면, 아시모프가 주로 쓴 로봇 소설들도 그렇습니다. 아시모프는 로봇을 친구처럼 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로봇의 인간화'를 풍자하는 면이 보입니다. "여보, 우리집 로드니에게 휴가를 줘야겠어요. 벌써 며칠 째 쉬지도 않고 일했잖아요." "여보, 로드니는 휴가가 필요없어. 그건 냉장고나 전자렌지에게 휴가가 필요없는 거랑 똑같다고." 이런 방식이죠. (그런 점에서 영화 <아이 로봇>도 약간 어정쩡하다고 봅니다)

 

반면, 탈인간화를 외치는 듯 보이면서도 사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로 쓴 책도 많은데, 베르나르 베르베르 책들이 그런 식입니다. 본격적인 데뷔작인 <개미>는 개미들의 사고방식을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개미들의 행동이 너무나 인간적입니다. 이 개미들은 거의 우화에 가깝게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이죠. 작가야 개미의 관점에서 쓴답시고 괄호치기도 하고 챕터도 나누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만. 정작 SF 팬들이 베르베르를 비판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고요.

개미가 그러한 것처럼 다른 동물에도 저런 관점을 적용시킬 수 있을 겁니다. 동물이 외계인처럼 이질적인 존재는 아닙니다. 최소한 같은 행성 안에서 같은 생명활동을 하죠. (화성인 헤트의 말을 빌리자면, 그래 봤자 인간은 동물에 비해 민첩하지도 않고 느려 터졌지만.) 그래도 우리 주위에서 제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다른 대상'이죠. 동물은 엄연히 다른 신체기관과 다른 감각으로 자신들의 생존 방식을 터득하며 진화했는데, 사람들은 그걸 그냥 자기 식대로 생각해 버립니다. 제일 접하기 쉬워서 그런지 외계인이나 인공지능 같은 것보다 오해도 더 심한 듯합니다. 그냥 오해만 하면 끝이지만, 그런 오해가 생태에 관한 무지로 이어져 자연 환경에 혼란을 초래하기도 하고요.

 

물론 이런 일은 드물고, 동물을 인간화시키든 어쨌든 당장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한 번씩 생각해 봄직한 문제라고 봅니다. <솔라리스> 속 대화를 모방하자면 인간들끼리도 서로 이해를 잘 못 하는 마당에 어떻게 동물을 그리 쉽게 이해하느냐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