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웬리. 그는 개인적으로는 모순된 인간이었으나, 공인으로서는 걸출한 전략가로서 민주주의의 신봉자이기도 했다.

동맹군 제 13함대 기함, 이제르론 요새 주둔 기동함대 기함이자 훗날 메르카츠 원수의 기함이 된 전함 휴페리온. 양은 자신의 기함을 망명한 노장에게 기꺼이 양도하였다.

  자유행성동맹군 최고의 지장. 우주 함대전사에 있어 지휘관으로서 불패의 군력을 지닌 거의 유일한 인물.
  동맹 멸망 후에는 민주주의 군벌의 지도자로서 민주공화제 존속을 위해 노력하였다.

  출생과 성장

  양 웬리는 우주력 767년 무역업자 양 타이론과 그의 두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유년기의 끝 무렵 그의 모친이 사망하면서 생활 무대를 우주로 옮기게 된다.
  별거중이던 부인의 사거 소식을 들었을 때 양 타이론은 들고 있던 미술품을 바닥에 떨어뜨린 채 잠시 아연해 있다가, 이내 그것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깨지지 않아 다행이군."
  그리고 그는 전혀 충격을 받지 않은 듯 일상 생활을 계속했다.
  아무리 부부 관계가 나빴다고는 하나 반려자였던 사람의 죽음에 대한 양 타이론의 이 무심한 태도는 어린 양 웬리의 외가를 격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외가에서는 의논 끝에 소년 양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내자는 데 뜻을 모았다. 그러나 낌새를 알아챘는지 아니면 예정을 세워 실행한 것인지, 양 타이론은 마침 대기중이던 자신의 무역선에 올라 아들을 데리고 떠나 버렸다. 뒤에 남은 사람들이 취할 다른 방법은 없었다. 친아버지가 아들을 유괴해 갔다고 성간 경비함대에 신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이후 몇 년간, 소년 양은 아버지의 무역선에서 생활하게 된다. 훗날 군인이 된 그의 두 가지 특징 - 행성보다는 우주선(인공 천체)에서 더욱 활기있게 생활했던 점,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무심하리만치 냉정한 태도로 일관한 점 - 은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되었으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즉 전자는 환경이요 후자는 부친의 영향이라는 것인데, 이는 양 웬리에 대한 수많은 엇갈리는 평가와 해석 중에서 유일하게 반론이 없었던 부분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의 죽음
  
  소년 양 웬리의 아버지인 양 타이론은 축적한 재산의 일부를 미술품 수집에 투자할 정도의 재력가였다. 무역업자인 그가 신봉하는 것은 오로지 '부' 였다.
  선내에서 생활할 당시의 양 웬리는 이러한 가치관을 가진 아버지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며 자랐다. 이해 관계를 따짐에 있어 거침없던 아버지의 태도에 질린 탓인지 아니면 자연스레 형성된 가치관 때문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어쨌든 소년 양의 장래 희망은 아버지의 뜻과는 많이 다른 직업인 역사학자였다.
  처음 자신의 장래 소망을 밝힌 아들에게, 양 타이론은 언제나처럼 무심한 태도로 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찬성도 반대도 아닌 미적지근한 태도 뒤에 숨은 그의 뜻이 어땠는지 모르나, 그는 자신의 신념과 거리가 먼 아들의 소망을 인정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사망하고 만다. 배의 동력로에서 일어난 사고로, 양 타이론은 아들을 지원해 줄 수도, 성장을 지켜볼 수도 없게 되었다.

  진로 결정
 
  졸지에 고아가 된 (거기에 더해서 외가로부터의 원조도 기대할 수 없었던) 소년 양 웬리에게 남겨진 것은 유가 증권, 골동품이 대부분인 아버지의 유산이었다. 그러나 동맹 기업들의 피폐로 인해 증권들은 휴지 조각이 되어 있었고, 골동품들은 전부 가짜로 밝혀졌다. 역사학자라는 직업이 본래 얼마간의 재산을 바탕으로 하여 연구를 거듭, 성과와 명성을 쌓아 나가는 직업이고 보면, 양이 민간인으로서 자신의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기회는 영영 막혀 버린 것이다.
  결국, 양은 자유행성동맹 국방사관학교 전사연구과에 입학하게 된다. 제국과의 만성적인 전쟁상태가 150년간 지속됨에 의해 물적, 인적 자원 결핍이 심각했던 당시의 자유행성동맹에 있어, 사관학교에 입학하는 자에게는 무료 학습과 숙식의 혜택이 제공됨을 이용한 것이다. 군인이라는 직업을 마음에 들어하기는커녕 우민 정치가 다음으로 싫어하던 양 웬리였으나, 무일푼인 자신의 처지를 바꿀 다른 대책이 없었다.

  사관학교 생활

  '좋아서 들어온 게 아닌' 사관학교였지만 역사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은 청년 양에게 무엇보다도 매력적이었다. 덕택에 사관후보생 양 웬리는 얼마 후 전사연구과가 폐과되기까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회고하는 학문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정작 그의 재능은 역사가 아닌 함대 전술 시뮬레이션에서 드러났는데, 낙제를 겨우 면한 기계공학 과목을 만회하기 위해 치른 대전시험에서 양은 우등생 맬컴 와이드본을 격파했다).
  하지만 외곬으로 학업에만 파고든 것은 아니어서, 졸업 후에도 변함없이 유지될 사람들과의 사귐 또한 엮어 나갔다. 외출 금지 시각의 월담을 눈감아 준 인연으로 친구가 된 후배 D. 어텐보로, 훗날 제 6함대 참모로 아스타테에서 전몰한 동기생 J. R. 러프와 그의 연인 J. 에드워즈, 사관학교 사무관으로 부임해서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준 선배 A. 카젤느, 강직한 군인이자 교육자였던 교장 S. 시토레 중장 등이 그의 인간 관계를 형성했다.

  엘 파실 전역

  787년. 사관학교 졸업 후 중위로 임관한 양 웬리는 당시 엘 파실 성역 경비함대 사령관이던 A. 린치 소장의 기함 구메이야에 배속되었다. 하필 그 때는 제국군이 동맹 성역 점령에 눈독을 들이던 시기여서, 린치 소장의 경비함대 또한 내습한 제국군 함대와 교전을 벌이게 되었다. 서로간에 3할 정도의 피해를 낸 후 제국군이 물러가자 린치 소장은 전 함 회두를 명령했는데, 이로써 제국군의 함정에 걸려든 린치 휘하 병력은 쫓기듯 흩어졌다. 양이 탄 사령관의 기함은 엘 파실 본성으로 향했다. 패닉에 빠진 주민들이 몰려든 군용 우주항에서, 양은 "누군가 손이 빈 자에게 맡기라"는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탈출 계획을 작성, 입안한다.

  프레데리카 그린힐

  하지만 겨우 20대 초반의 나이에 중위 계급인 그가 탈출 계획의 책임자라는 사실은 행성 주민들을 안심시키지 못했고, 양은 쏟아지는 비난과 무시 속에 묵묵히 일해야만 했다. 피로와 실망에 지쳐 갈 때, 양은 이후 그의 일생의 동반자가 될 사람과 만나게 된다. 당시 14세이던 프레데리카 그린힐이 그였다. 어려움 속에서도 침착을 잃지 않고 어머니를 모시던 이 재기발랄한 소녀는 아무도 믿어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노력하던 젊은 중위의 벗이 되어 주었다. 비록 샌드위치 세트와 커피잔을 비우는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만남은 훗날 부관과 사령관으로 재회하기까지 두 사람을 엮는 끈이 되었다.

  탈출

  양은 사령관이 주민들을 버리고 도망가는 혼란 속에서도 침착을 잃지 않고 탈출 작전을 지휘, 통상적으로 이용되던 은폐 전술에 물든 제국군의 통념을 이용해 엘 파실 성계를 이탈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 그의 지휘 하에 함께 탈출한 민간인은 전부 합해 300만 명에 달했다.

  엘 파실의 영웅

  엘 파실 탈출의 성공으로 양 웬리는 영웅으로 불리고, 퇴역을 원하는 마음과는 상관없이 2계급 특진의 대상자가 되고 말아 원하지 않는 군인 생활을 계속했다(그는 중위에서 대위로, 다시 소령으로 진급했는데, 그의 대위 재임 기간은 불과 2시간 남짓이었다). 이 시기에 그는 옛 동맹군의 명장 브루스 아슈비 원수의 죽음에 관한 비사를 캐고, 행성 에코니아의 포로 수용소에 부임하여 수용소장의 음모에 휘말리는 등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경험을 쌓아 나갔다. 에코니아에서는 훗날 참모장으로 함대를 함께 이끈 무라이 대령, 부참모장이 되어 죽음으로써 양을 지킨 F. 파트리체프 대위 등과의 첫 만남이 이어졌다.

  율리안 민츠

  대령으로 진급했을 때, 양은 사관학교 시절의 선배이자 상관이었던 A. 카젤느 준장의 주선으로 소년 율리안 민츠를 만나게 된다. 카젤느는 나이가 차도록 혼자 지내는 양을 딱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마침 전몰 군인의 자녀를 군인의 피보호자로 입적시키는 동맹의 '트래버스 법' 이 카젤느로 하여금 양 웬리와 율리안 민츠를 맺어주게 한 것이다.
  어린 피보호자는 후견인과 위치가 바뀐 듯 한 태도로 양의 집안을 보살폈다. 며칠 동안 씻지 않은 식기, 먼지덩이가 굴러다니는 방바닥, 헝클어진 이부자리, 때묻은 채 여기저기 버려진 내의 등이 말끔히 자취를 감추었고, 영상통화 중 이 모습을 본 카젤느는 독설가답게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회복했군"이라 비꼬며 축하 아닌 축하를 보냈다. 그러나 사실 양이 가장 반긴 소년 율리안의 재능은 입맛에 딱 맞는 홍차를 끓여 내오는 솜씨였다.

  함대 참모 - 눈에 보이지 않는 공헌

  대령이던 양 웬리는 동맹군 총기함 아이아스에 탑승하여 794년 제 6차 이젤론 요새 공방전에 참가했다. 이 때 그는 함대 병력 배치에 관한 수완을 처음으로 드러냈는데, 동맹군 총참모장 D. 그린힐 대장의 명령으로 작성한 작전안이 그것이다. 이 때 이미 함대 지휘관으로서 명장의 실력을 과시하던 R. v. 뮈젤 소장의 공격은 양의 작전안에 따라 투입된 동맹군 예비 병력에 의해 막혀 버렸다. 이때 뮈젤은 "동맹군에도 뛰어난 녀석이 있을는지 모른다"는 말로 알 수 없는 강적의 존재를 인정했다.
  이 때의 공훈으로 양은 준장으로 진급, 역시 중령으로 진급한 후배이자 친구 어텐보로와 함께 제 2함대 참모로 보직을 옮긴다. 제 2함대 사령관 파에타 중장은 역전의 용병가로 이름이 높았으나 완고하여 참모들의 의견을 잘 수용하지 않았는데, 이 탓에 양과 어텐보로는 레그니처 조우전, 제 4차 티어맷 회전에 참전했으면서도 이렇다 할 활약상을 보이지 못했다.

  함대 지휘 - 아스타테 전투

  아스타테 성역 전투는 동맹군이 입은 큰 피해로도 유명하지만, 불패의 군력을 지닌 양 웬리의 첫 함대 지휘라는 점에서 더욱 후세 역사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다곤 성역 회전을 재현한다'는 목표 아래 의기양양하게 진발한 동맹군 제 2, 4, 6함대는 제국군의 젊은 명장 R. v. 로엔그람 상급대장의 빠른 공격에 농락당해, 채 포위진을 형성하기도 전에 각개격파의 먹이가 된다. 제국군의 마지막 목표인 제 2함대가 공격당하여 기함 파트로클로스가 피탄되자 부상당한 사령관 파에타 중장은 양에게 함대 지휘권을 넘겼다.
  양은 생애 처음으로 대함대를 통솔해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함과 동시에, 미리 입력한 전술안에 따른 과감한 기동으로 전투를 소모전으로 이끌어 적군의 완승을 저지하였다. 그의 수완에 감탄한 로엔그람은 얼굴도 모르는 한참 아랫 계급의 적장에게 통신문을 보냈다-'귀관의 용전 분투에 경의를 표한다. 다시 만날 날까지 건재하라.'

  기간 전투 함대의 사령관으로

  그 후 양은 옛 은사인 통합작전본부장 시토레 원수에 의해 소장으로 승진해 패잔병과 노후함, 신규함을 모아 만든 제 13함대의 지휘관이 되었다. 제 13함대의 첫 임무는 난공불락의 제국군 요새 이젤론의 점령이었는데, 양은 요새 사령관과 요새 주류함대 사령관이 동격이고 사이가 좋지 않은 점, 우주 최강의 육전 능력을 자랑하는 로젠리터 연대 등을 적절히 활용해 '안에서부터 제압하는' 전술로 이제르론 요새 무혈점령에 성공했다. 이 때부터 양은 '엘 파실의 영웅'이라는 호칭 대신 '기적의 양', '마술사 양'이라는 새로운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혼란 속에서의 고군 분투

  그 이젤론 요새 점령이 도화선이 되어-우민화된 국민의 냄비 근성, 정신박약 수재 야심가의 사적인 작전안 제출 등-폭발하다시피 출진한 동맹군은 로엔그람 원수의 초토 작전 앞에 고전을 면치 못했고, 양 웬리는 켐프 함대의 추격을 막고 슈바르츠 란첸레이터를 거의 괴멸시키는 등 휘하의 1개 함대로 혼자서 분전하였다. 이후 양은 동맹군 유일의 일선 전투 함대 사령관으로 입지를 굳혔고, 그의 밑에는 옛날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참모로서, 혹은 휘하 지휘관으로서 배속되었다.
  또한 양은 동맹에 구국군사회의 주도의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는 도손 본부장의 명령을 받고 4개 장소의 혼란 상태를 수습하는 동시에, 구국군사회의 소속 제 11함대의 루그랑쥬 중장과 일전을 벌여 승리한다. 하이네센에는 무인형 궤도 방어위성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얼음으로 파괴하여 무혈입성하는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존경하는 뷔코크 제독이 구금당하는 고초를 겪고, 아끼는 부관의 아버지인 D. 그린힐 대장이 죽은 현실에서도 오직 정치인들만이 건재한 모습을 보며 한숨지을 수 밖에 없었다.
  798년, 국가를 지킬 생각 대신 보신에만 혈안이 된 트류니히트 정권은 양을 소환했다. 그가 사문회에 불려나가 마음에도 없는 설교를 듣던 중 제국군의 이제르론 요새 공격 속보가 전해졌고, 그로써 그는 사문회에서 풀려나 요새로 향해 일명 '요새 대 요새전'을 대승리로 이끈다.
  로엔그람이 동맹 정복을 목표로 실시한 '라그나로크 작전'시에는, 총병력이 각지로 분산된 점을 이용해 적의 본대를 제압하여 기함 브륀힐트를 사정권 안에 포착하나, 그 순간 떨어진 동맹 정부의 휴전 명령에 따름으로써 손아귀에 움켜쥔 라인하르트의 목숨을 자유롭게 해주고 만다.
  (이때 주위의 부하들은 어이없어하거나 격분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자신은 쇤코프의 강요에 가까운 종용에도 불구하고 "그런 옷은 나한테 맞지 않아."라는 말로 정부의 뜻에 따를 것임을 피력했다.)
  전투 종료 후 로엔그람과 만난 자리에서 우주함대 사령장관과 제국 원수의 자리를 권유받았으나 한 마디로 거절하고, 퇴역 후에는 부관이었던 그린힐 소령과 결혼해 행복한 신혼 살림을 차린다.

  '양 일당의 준동'에 관한 헛소문을 진실로 믿은 제국의 동맹 고등판무관 H. 렌넨캄프 상급대장의 경거망동으로 이들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연금되어 있으면서 죽음의 위험에 처한 그를 쇤코프와 동행한 프레데리카가 구하는 동시에, 동맹 최고평의회 의장 조안 레벨로와 렌넨캄프를 인질로 삼아 하이네센을 탈출해 다시 '원하지 않는' 군사 행동의 일선에 나선다.

  양 웬리를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군벌은 이제르론 회랑을 근거지 삼아 엘 파실 독립정부와 연합하여, 대(對)제국 전선을 만들어 로엔그람 왕조의 신 제국과 맞섰다.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이 혁명 세력을 없애지 않고는 진정한 우주 통일이 불가능하다 여겨 집요하게 양 군벌을 압박했다. 이젤론 회랑의 대결에서는 다시금 카이저 라인하르트와 자웅을 겨룬다. '회랑의 전투'로 알려진 이 함대전은 전반에서 제국군의 명장 파렌하이트 상급대장, 북스테후데 중장이 전사하고 후반에는 혁명군측의 노련한 지휘관인 '함대 운용의 명인' 피셔 중장이 전사하는 등 격렬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양 웬리가 지휘한 마지막 함대전이 되고 만다.

  모순덩어리 인격체에 대한 요약 시도

  그는 희대의 용병가이자, 전정양면의 천재인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유일한 호적수로 인정한 사람이었다. 전략과 전술 양면에 예술적 능력을 발휘해, 적은 병력을 이끌고 거대한 제국군의 함대를 저지할 수 있었던 지장이었으며, 기라성 같은 제국군의 명장들을 무찌르고, 때로는 라인하르트를 발하라(천국)의 문턱까지 데려다 놓기도 하였다. 제국군의 장수들은 양 웬리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또는 경애와 증오의 대상으로 삼았다.

  '질풍 볼프'로 용명을 떨친 속공의 명전술가 볼프강 미터마이어 상급대장은 제 1차 라그나뢰크 작전시 행성 우르바시에 있는 클럽에서의 회의 중, "1개 함대, 단 1개 함대만으로 우리를 가지고 논다! 놈은 언제 어느 때이든, 마음먹은 곳에 나타날 수 있단 말이다!"라 외치며 그에 대한 모든 감정을 표현했는데, 이는 양에 대한 제국군 명장들의 두려움을 대변하는 언사이기도 했다. 사실 뛰어난 용병술을 자랑하는 제국군의 함대 지휘관들 중 양 함대와 싸워 뚜렷한 승리를 얻어낸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천재'라 불리운 은하제국 황제 라인하르트마저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르론 회랑의 탈환작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전장의 심리학자라고도 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지니며 '마술', '기적'으로 불리는 전술을 선보였는데, 본질은 지에 기울었고 역사학 지식에 기반을 둔 전략가였다.

  그는 다른 제독들처럼 자신의 위용을 나타내는 '기함'의 존재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덕택에 원래도 크게 특별한 모양이 아닌 기함 히페리온을 버밀리온 성계 전투 후에 경애하는 메르카츠 상급대장에게 양도하고, 자신의 기함은 정말로 보통의 전함인 '화장실이 부서진 전함', '강한 운의 전함', 율리시즈 호로 삼았다. 후에 이 전함은 양자이면서 그의 유지를 계승한 율리안 민츠의 기함으로 계속 위명을 떨치게 된다.
  사문회 출석시나 이제르론으로의 귀환, 카이저 라인하르트와의 회견차 떠나는 길에는 순양함 레다 ll를 임시 기함으로 삼았는데, 훗날 이 순양함은 양 웬리의 죽음의 무대가 되고 만다.

  본래 역사학자 지망생이었기 때문인지 군대나 전쟁, 권력이나 강압에 대한 거부감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모순으로 점철된 자신의 직업과 관점, 행동 방식,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괴로워했다.
  마음으로부터 싫어하는 인간과는 타협조차 하지 않았으며, 상관의 고압적인 태도나 이치에 맞지 않는 명령에는 눈꼬리를 치켜세우고 따르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 때문에, 그가 마음으로부터 존경한 선배 지휘관들은 시토레 원수, 뷔코크 원수, 그린힐 대장, 우란푸 중장, 보로딘 중장, 메르카츠 원수, 카젤느 중장 등으로 손에 꼽을 정도이다.
  "온화한 얼굴에서, 상상도 못 한 신랄한 대사들을 토해낸다."라고 말한 사람은 바로 사관학교 시절 그의 스승이었던 통합작전본부장, S. 시토레 원수의 말이었다. 이처럼 그는 괴짜로 여겨지기 쉬웠지만, 부하들에게는 포용력과 인자함, 무난한 인격을 갖추어 무공과 더불어 항상 경애의 대상이 되었다(실제로, 장미의 기사 연대장인 카스퍼 린츠 대령은 버밀리언에서의 어이없는 패전에도 불구하고 "로젠리터는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며 함대 지휘를 계속해 줄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활면에서는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숨쉬기조차 싫다."고 말할 정도로 게으름뱅이인 생활무능력자였으며, 그 때문에 양 일당으로부터는 예의 '잠만 자는 청년 사령관'으로 통한다.
  브랜디를 듬뿍 탄 홍차를 즐기는 중키에 적당히 균형잡힌 체구의 소유자로, 군복을 입지 않았다면 도저히 군인으로 생각할 수 없는 모습. 얼핏 보기에는 전도 유망한 청년 학자 같은 인상을 준다. 특별할 것 없는 용모이지만 보는 사람 (프레데리카 그린힐 등 양의 최측근)에 따라서는 잘 생겼다고도 볼 수 있는 외양이다.

  스스로 어떤 전제정보다도 이상적이라고 여겼던 민주공화정의 세력을 자신이 죽을 때까지 지속시켰고, 그 유지는 가족이었던 프레데리카 그린힐과 율리안 민츠, 그리고 그를 아끼던 다른 사람들이 계승하였다. 그리하여 양 웬리의 이름은 역사 속에 '불패의 명장, 민주주의의 수호신'으로 남을 수 있었다.

  최종계급은 원수.  

[ 관련 이미지 ]

동맹군 제 2함대 기함 파트로클로스. 양은 이 전함에서 처음으로 함대를 지휘했으며, 당시의 적장이자 이후의 최대 적수로부터 건재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 동맹군 제 2함대 기함 파트로클로스. 양은 이 전함에서 처음으로 함대를 지휘했으며, 당시의 적장이자 이후의 최대 적수로부터 건재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

양 웬리의 기함이자, 양 사후 이제르론 공화정부군 사령관 자리에 오른 그의 피후견인 율리안 민츠의 기함 율리시즈. 아마도 동맹과 제국의 전사에서 가장 운 좋은 전투함일 것이다.
[ 양 웬리의 기함이자, 양 사후 이제르론 공화정부군 사령관 자리에 오른 그의 피후견인 율리안 민츠의 기함 율리시즈. 아마도 동맹과 제국의 전사에서 가장 운 좋은 전투함일 것이다. ]

함대 지휘관으로서도 전략가로서도 최고의 실력자로 손꼽혔던 양 웬리. 그러나, 동시에 하나의 인격체가 가질 수 있으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순점들을 지닌 자이기도 했다.
[ 함대 지휘관으로서도 전략가로서도 최고의 실력자로 손꼽혔던 양 웬리. 그러나, 동시에 하나의 인격체가 가질 수 있으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순점들을 지닌 자이기도 했다. ]

동맹 대의원 제시카 에드워즈의 죽음을 안 후 실의에 빠진 양. 절친한 친구이자 민주화 운동가이기도 했던 그의 죽음에, 아마도 양은 이중의 슬픔을 느꼈으리라.
[ 동맹 대의원 제시카 에드워즈의 죽음을 안 후 실의에 빠진 양. 절친한 친구이자 민주화 운동가이기도 했던 그의 죽음에, 아마도 양은 이중의 슬픔을 느꼈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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