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이의 글터
글 수 472
"이.. 이봐!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책임자 나오라 그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넥타이 차림의 남자가 문을 박차고 들어와 소리를 질렀다. 그 서슬에 상담하러 온 고객들이 깜짝 놀라 시선을 모았다. 암만 봐도 회사원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아무래도 고객임에 틀림 없었다.
고객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책임자를 찾는 건 드문 일은 아니었다. 효행사의 업무는 다양한 고객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고, 고객의 수가 늘어나고 요구가 다양해질수록 불만사례도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단은 이 흥분한 손님을 달래는 것이 우선이었다.
"진정하시고요. 네. 무슨 일이십니까.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데에는 천재적이라 불리는 박팀장이 앞으로 나섰다. 어려울때나 힘들때나 박팀장은 언제나 앞장섰다. 그는 다른 직원들에게는 든든한 방패였고, 믿음직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다만 문제라면 그가 스스로 원해서 나가기보단 언제나 누군가가 등을 떠밀었다는 것 뿐. 그는 언젠가 자기가 하는 일은 사기당해 온 사람들에게 사기가 사기가 아니었다고 설명하는 사기꾼이나 다를 바 없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댁 같으면 진정하겠냐고!"
"그러니까 말입니다. 고객님. 원하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 문제가 뭔지 우선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차근차근 말씀 해 주세요."
박팀장은 능수능란하게 남자를 데리고 밀실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야 싸움을 하든 뭘 하든 밖으로 들리지 않으니 상관 없었다.
"내... 내가.. 댁들에게 우리 아버지 장례랑 효행을 대행했잖아."
"네. 성함이... 아. 네 여기 있네요. 신도린선생님." 박팀장이 재빨리 DB를 검색하더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근데 아버지가! 꿈에 나오신단 말야!"
"아.. 그럴리가요. 뭔가 착오가 있으신 거 같네요. 아버님에 대한 효행은 아주 충실히 이행되고 있는데요."
"이봐! 내가 지금 당신이랑 농담따먹기 하러 온 것 같아! 어젯밤 꿈에도 피를 철철 흘리면서 나오셨다니까!"
"그건 틀림없이 잡귀일 겁니다. 저희 회사에서 무료로 퇴마사를 파견해 드리겠습니다."
"퇴마라니! 퇴마라니! 우리 아버지라니까!"
"아뇨. 아버지의 모습을 한 귀신일 뿐입니다. 아버님은 아주 잘 계신다니까요."
"댁이 어떻게 아는데!"
"저는 몰라도 퇴마사는 알겠죠. 일단 그리고 이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될 겁니다."
박팀장은 씩 미소를 지었다.
남자는 조금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게 자기 아버지가 아닐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많은 고객분들이 그런 잡귀에게 홀리십니다. 사실 효행이라는 것을 택하는 많은 분들이 불안해 하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효행은 완벽하게 검증된 과학적 시스템으로 제대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유족의 꿈에 나오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정말이죠?"
남자의 말투는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잡귀가 나오는 꿈 따위에 쉽게 흔들린 것이 부끄러웠는지 남자는 꾸뻑 고개를 숙이고는 돌아갔다.
"효행 서비스가 잘 되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소란 피워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별말씀을 저희야말로 불안하게 해 드려 죄송하죠."
박팀장은 고객을 보내고는 진한 커피 한잔을 타서 마셨다. 목이 따가웠다. 고객을 상대하고 나면 목이 언제나 따끔거렸다.
"관리소 당직좀 부탁드립니다."
잠시 수화기 너머로 전자음이 이어지다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리소입니다."
"네. 고객관리부의 박팀장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네. A-145에 저장중인 신길동씨 유골 말입니다. 보관상태좀 체크해 주십시오. 자제분 꿈에 나왔다고 하던데요."
"음.. 현재 별다른 이상은 없는데요."
"그동안에도 보관 상태에 아무런 이상은 없었나요?"
"잠시만요.. 이력을 보니 지난번 본사 정전사태때 몇개 구역의 플라즈마 격리창이 내려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빠져나갔나 본데요."
"플라즈마 격리창이 내려간건 약 15초 동안이고, 금방 복구 되었습니다. 그 정도면 빠져나가기 쉽지 않을 텐데요."
"혹시 모르죠. 유체이탈 경력자인지도. 재발 방지를 위해 특별 격리구역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효행하세요."
"네. 효행하세요."
박팀장은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고객들은 불효하게 살다가 부모가 돌아가신 뒤엔 그분들이 꿈에 나올까 두려워
효행대행회사에 맡긴다. 효행회사는 고인들의 유골을 안치하고 그 영이 유골에 머물다가 승천할때까지
전자기적 방어구역을 만든다. 명목상은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지만 실상은 거기서 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사후에 영혼이라든가 유령 같은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그 경계가 비교적 명확해지면서
스스로 죽은 뒤에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타나서 자식놈들의 비리나 더러운 꼴을 폭로하는 일이라든가, 남의 집을 엿보다가
걸린 유령에 대해 그 유족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이 몇 번 터지자 부모보기 부끄러운 자식놈들이 앞다투어
죽은 부모의 입을 막겠다고 효행이라는 이름하에 유골을 감방에 갖다 쳐 넣고 있는 것이다.
더러운 일이다. 박팀장은 혼자 중얼거렸다. 이게 잘못인지 잘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산 사람은 산 사람이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었다.
그 사이를 지키는 것은 올바른 일이었다. 하지만 이걸 효행이라 부를 수는 없었다.
박팀장은 한쪽 벽에 붙은 은빛 사막 위에 건설된 효행사 월면 특별관리구역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신설동씨는 달에 유골을 묻게 될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리 가 있었다. 거긴 돌아오지 못할
가장 확실한 격리장소였다.
부모의 혼을 유골에만 머물게 하는 게 옳은지 박팀장은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건 믿음이나 어떤 가치관 때문이 아니라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는 것처럼 삶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남들이 하는 것처럼 누구나 한다. 아마 박팀장이 죽으면 자식놈들도 효행사에 갖다 버릴 것이다.
"유령이 좀 나오면 어때서 그래."
박팀장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괜히 돌아다니다가 출동한 경찰의 이온봉에 갈갈이 찢겨지는 것보다는 승천할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영혼이 물건 취급 당할 날이 올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다.
박팀장은 잠시 그 뒤의 일을 생각 하다가 관심을 끄기로 했다. 확실히 어떤 일들은 모르는 게 약이었다.
"고인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셔드립니다. 승천하실때까지."
효행사의 팜플렛이 바닥에 몇 뒹굴고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넥타이 차림의 남자가 문을 박차고 들어와 소리를 질렀다. 그 서슬에 상담하러 온 고객들이 깜짝 놀라 시선을 모았다. 암만 봐도 회사원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아무래도 고객임에 틀림 없었다.
고객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책임자를 찾는 건 드문 일은 아니었다. 효행사의 업무는 다양한 고객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고, 고객의 수가 늘어나고 요구가 다양해질수록 불만사례도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단은 이 흥분한 손님을 달래는 것이 우선이었다.
"진정하시고요. 네. 무슨 일이십니까.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데에는 천재적이라 불리는 박팀장이 앞으로 나섰다. 어려울때나 힘들때나 박팀장은 언제나 앞장섰다. 그는 다른 직원들에게는 든든한 방패였고, 믿음직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다만 문제라면 그가 스스로 원해서 나가기보단 언제나 누군가가 등을 떠밀었다는 것 뿐. 그는 언젠가 자기가 하는 일은 사기당해 온 사람들에게 사기가 사기가 아니었다고 설명하는 사기꾼이나 다를 바 없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댁 같으면 진정하겠냐고!"
"그러니까 말입니다. 고객님. 원하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 문제가 뭔지 우선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차근차근 말씀 해 주세요."
박팀장은 능수능란하게 남자를 데리고 밀실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야 싸움을 하든 뭘 하든 밖으로 들리지 않으니 상관 없었다.
"내... 내가.. 댁들에게 우리 아버지 장례랑 효행을 대행했잖아."
"네. 성함이... 아. 네 여기 있네요. 신도린선생님." 박팀장이 재빨리 DB를 검색하더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근데 아버지가! 꿈에 나오신단 말야!"
"아.. 그럴리가요. 뭔가 착오가 있으신 거 같네요. 아버님에 대한 효행은 아주 충실히 이행되고 있는데요."
"이봐! 내가 지금 당신이랑 농담따먹기 하러 온 것 같아! 어젯밤 꿈에도 피를 철철 흘리면서 나오셨다니까!"
"그건 틀림없이 잡귀일 겁니다. 저희 회사에서 무료로 퇴마사를 파견해 드리겠습니다."
"퇴마라니! 퇴마라니! 우리 아버지라니까!"
"아뇨. 아버지의 모습을 한 귀신일 뿐입니다. 아버님은 아주 잘 계신다니까요."
"댁이 어떻게 아는데!"
"저는 몰라도 퇴마사는 알겠죠. 일단 그리고 이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될 겁니다."
박팀장은 씩 미소를 지었다.
남자는 조금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게 자기 아버지가 아닐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많은 고객분들이 그런 잡귀에게 홀리십니다. 사실 효행이라는 것을 택하는 많은 분들이 불안해 하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효행은 완벽하게 검증된 과학적 시스템으로 제대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유족의 꿈에 나오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정말이죠?"
남자의 말투는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잡귀가 나오는 꿈 따위에 쉽게 흔들린 것이 부끄러웠는지 남자는 꾸뻑 고개를 숙이고는 돌아갔다.
"효행 서비스가 잘 되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소란 피워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별말씀을 저희야말로 불안하게 해 드려 죄송하죠."
박팀장은 고객을 보내고는 진한 커피 한잔을 타서 마셨다. 목이 따가웠다. 고객을 상대하고 나면 목이 언제나 따끔거렸다.
"관리소 당직좀 부탁드립니다."
잠시 수화기 너머로 전자음이 이어지다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리소입니다."
"네. 고객관리부의 박팀장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네. A-145에 저장중인 신길동씨 유골 말입니다. 보관상태좀 체크해 주십시오. 자제분 꿈에 나왔다고 하던데요."
"음.. 현재 별다른 이상은 없는데요."
"그동안에도 보관 상태에 아무런 이상은 없었나요?"
"잠시만요.. 이력을 보니 지난번 본사 정전사태때 몇개 구역의 플라즈마 격리창이 내려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빠져나갔나 본데요."
"플라즈마 격리창이 내려간건 약 15초 동안이고, 금방 복구 되었습니다. 그 정도면 빠져나가기 쉽지 않을 텐데요."
"혹시 모르죠. 유체이탈 경력자인지도. 재발 방지를 위해 특별 격리구역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효행하세요."
"네. 효행하세요."
박팀장은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고객들은 불효하게 살다가 부모가 돌아가신 뒤엔 그분들이 꿈에 나올까 두려워
효행대행회사에 맡긴다. 효행회사는 고인들의 유골을 안치하고 그 영이 유골에 머물다가 승천할때까지
전자기적 방어구역을 만든다. 명목상은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지만 실상은 거기서 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사후에 영혼이라든가 유령 같은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그 경계가 비교적 명확해지면서
스스로 죽은 뒤에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타나서 자식놈들의 비리나 더러운 꼴을 폭로하는 일이라든가, 남의 집을 엿보다가
걸린 유령에 대해 그 유족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이 몇 번 터지자 부모보기 부끄러운 자식놈들이 앞다투어
죽은 부모의 입을 막겠다고 효행이라는 이름하에 유골을 감방에 갖다 쳐 넣고 있는 것이다.
더러운 일이다. 박팀장은 혼자 중얼거렸다. 이게 잘못인지 잘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산 사람은 산 사람이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었다.
그 사이를 지키는 것은 올바른 일이었다. 하지만 이걸 효행이라 부를 수는 없었다.
박팀장은 한쪽 벽에 붙은 은빛 사막 위에 건설된 효행사 월면 특별관리구역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신설동씨는 달에 유골을 묻게 될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리 가 있었다. 거긴 돌아오지 못할
가장 확실한 격리장소였다.
부모의 혼을 유골에만 머물게 하는 게 옳은지 박팀장은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건 믿음이나 어떤 가치관 때문이 아니라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는 것처럼 삶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남들이 하는 것처럼 누구나 한다. 아마 박팀장이 죽으면 자식놈들도 효행사에 갖다 버릴 것이다.
"유령이 좀 나오면 어때서 그래."
박팀장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괜히 돌아다니다가 출동한 경찰의 이온봉에 갈갈이 찢겨지는 것보다는 승천할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영혼이 물건 취급 당할 날이 올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다.
박팀장은 잠시 그 뒤의 일을 생각 하다가 관심을 끄기로 했다. 확실히 어떤 일들은 모르는 게 약이었다.
"고인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셔드립니다. 승천하실때까지."
효행사의 팜플렛이 바닥에 몇 뒹굴고 있었다.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