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제국군입니다!

도망쳐! 도망쳐라! 우리에게 다른 선택은 없다!

해적왕으로 언제나 맞서 싸우라고 말해왔던 그조차 싸우기를 거부할 만큼 제국의 공세는 압도적이었다. 102척에 이르는 해적의 대함대에 맞서서 싸움을 걸어온 것은 다름 아닌 인간형의 전사들이었다. 문신사람인들과 마찬가지로 우주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그들의 공격에 해적선은 속절없이 뜯겨져 나갔다. 여간한 공격은 피하거나 막아내고 맨 몸으로 부딪혀 함을 파괴하는데에는 대책이 없다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몇 차례의 교전 끝에 그들이 기껏 할 수 있는 건 우주특전대가 타고 왔던 함정을 파괴하고 도주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대형의 항공모함을 배경으로 삼는다면 가능성이 없었다. 해적왕은 진한을 죽이려 했던 자신의 판단이 얼마나 우수한 것이었는가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런 자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만큼 골치 아픈 일은 없었다.

 

전방에 또 나타났습니다!

 

이 놈들!! 아무래도 블랙홀에 쳐 넣기 전까진 계속 따라올 셈인가!

해적왕이 분노하여 소리쳤다. 그 말대로였다. 제국에 산발적인 게릴라성 공격을 가하던 해적선단에 투입된 토벌대는 해적선으로는 파괴할 수 없는 타입의 적이었다.

 

처음 우주특전대를 봤을 때 해적들은 그 모습에 덜덜 떠는 해적왕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저 놈들 인간이 어떻게 우주를 날아다니는 거지!

인간일 리가 있냐! 사이보그나 안드로이드일 것이야!

두목! 맞서 싸우죠!

닥쳐 이녀석들, 너희들은 저것들의 무서움을 몰라.

그도 그럴 것이 해적왕은 라이프란쯔의 국왕으로 재임할 당시 문신사람인의 소녀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전력이 있었다. 일반인을 상대로는 그 누구라 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일개 소녀에게 반항조차 못하고 두드려 맞아야만 했던 그 충격은 아무리 해도 극복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해적들도 우주특전대의 무서움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적왕은 알고 있었다. 이렇게 놀라운 우주특전대도 사실 그 소녀에 비하면 한 수 모자란 감이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들을 물리치기 위한 한 수는 아직 꺼낼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어떻게든 도망쳐서 세력을 재규합 하는 게 급선무였다. 주먹이 운다는 말 그대로 그의 움켜쥔 거대한 주먹에선 눈물처럼 땀이 흘러 내렸다.

해적왕은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분을 감추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해적들은 서로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한편 제국 수도로 날아간 진한과 제국 병사들은 수도의 위용 앞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거대한 기계화 행성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전함과 우주선들은 마치 벌통을 에워싸고 있는 벌떼처럼 보였다.

 

.. 돌아왔다. 저 구린 노이즈. 역시 제국이야.

그런 미개지에서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어.

그중 한 놈은 내게 상대성 이론을 아느냐고 묻더군. 내가 그 따위 것을 알게 뭐야.

나는 워프위상학이 뭔지도 모르는 놈들에게 우주항해 기술을 설명했어야 했다구.

병사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모니터에 나타난 제국 수도를 바라보았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왔다고 알려.

진한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애초에 이런 이들과 싸우는 걸 무서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부수고 힘으로 눌러버리면 될 일이었다. 약해 빠진 인간들에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내부에서 뭔가가 울컥 솟아 올랐다.

 

여기는 갈매기살호. 여기는 갈매기살호, 적에게 나포되었다가 지금 막 귀환했음!

통신병이 감회어린 목소리로 통신을 걸었다.

 

제국 통신망에 상담원이 모두 통화중이오니 잠시 대기하시기 바랍니다. 계속 기다리시려면 5번을 눌러 주십시오.

그러나 그를 맞이하는 건 자동응답이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나타난 상담원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갈매기살호? 살아 있었나! 장하다. 잘 살아돌아왔다. 귀환을 축하한다.

 

고맙다. 교신 끝. 접안하겠다.

통신병이 목메인 소리로 통신을 종료하자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뭔가가 통신병의 뒷통수를 강타했다.

 

아씨! 왜 때려요!

통신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맞을 짓을 하는데!

진한도 벌떡 일어나며 맞서 소리를 질렀다.

함장에게도 맞아본 적 없는데! 때리다니! 뭔데! 무슨 자격으로 때리는 건데!

통신병은 무척 억울했는지 눈물을 흘리며 덤벼 들었다.

내가 왔다고 알려야 할 거 아냐!

진한이 눈을 부라리자 검은 기운이 날개처럼 흩뿌려지며 오싹한 한기를 뿜어 내었다. 잠시 정신줄을 놓고 까불던 통신병도 제정신이 들었는지 냉큼 통신기를 붙잡고 다급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 깜빡했는데, 우리 함에 우주를 날아다니는 초인 진한님이 탑승하고 있다. 다시 알린다. 우리 함에 진한님이 탑승하고 있다.

잠시 대기.

그 말과 함께 상대방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그와 동시에 승무원들의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만약 지휘부에서 진한을 배와 함께 날려버리라고 한다면 행성 주포를 발사할지도 모른다. 진한이야 우주공간에서도 유유자적 하지만 이들이야 어찌 그런가. 상부에서 죽으라면 죽어야 하는 입장이니 그저 두 손을 모으고 바들바들 떨 뿐이었다.

 

갈매기살호! 322번 도크로 접안하라.

알았다. 통신 끝.

 

322번 도크라니! 행성 궤도상의 황제궁으로 이어지는 임페리얼 도크 아닌가!

오오. 322번 도크에 접안하는 일은 태어나서 처음이야!

병사들이 놀라 지껄여댔다. 진한의 이마에 힘줄이 하나 솟아 올랐다. 이렇게 황제를 만나게 되는 것일까. 하지만 그의 마음속엔 일말의 불안감도 남아있지 않았다.

도크는 매우 화려하고 웅장했다. 적갈색과 보라색, 하얀색을 교차하여 표현한 황제의 권위는 조금도 알아먹기 힘들었지만 뭔가 웅장한 기세를 전달해 주었다.
                                                                                                                                                                                                                                                                                                                                                                                                                                                                                                                                                                                                                                                                                                                                                                                                                                                                                                                                                                                                                                                                                                                                                                                                                                                                                                                                                                                                                                                                                                                                                                                                                                                                                                                                                                                                                                                                                                                                                                                                                                                                                                                  

잠시 후 전함이 도크에 접안하자 하얀 옷을 입은 일군의 병사들이 다가왔다. 그 제일 앞에 있는 것은 가면을 쓴 다크 페인트였다. 그는 검은 옷을 입어 멀리서도 눈에 확 띄었다.

 

진한, 드디어 왔구나. 이번엔 네 발로 걸어 온 것이다.

다크 페인트가 가볍게 웃었다.

그럼. 황제를 만나게 해 주겠소?

물론. 황제께서도 너를 기다리고 계신다.

다크 페인트의 말에 진한은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황제가 그를 원하다니.

 

그들이 황제궁으로 진한을 데리고 이동하자 진한을 데리고 온 전함은 일반승무원용의 도크로 전함을 옮겨 대느라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지난번의 일을 몹시 마음에 담아두고 있구나. 그러나 그건 상관 없는 일이야. 네가 제국에 투항한 이상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일 뿐이다.

황제께서는 저녁을 드시며 아침 반찬을 되돌아 보지 않는 분이시다. 너의 오래된 허물을 나무라지 않으실 거다.

다크 페인트는 진한과 함께 고속 수송기를 타고가며 연신 떠들어 대고 있었다. 진한은 그저 멀리 황제궁을 바라보며 거리를 잴 뿐이었다.

어떠냐. 제국 수도의 위용이. 네가 알고 있던 세상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

진한은 쿨하게 한마디를 흘릴 뿐이었다. 실제로 이 황제궁은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라이프란쯔의 궁성은 이에 비하면 초가집이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은하제국이라 불리는 이 거대한 집단의 수장이 자리한 곳은 아주 거대하고 화려했다.

 

여기가 황제께서 거처하시는 궁이다. 여기부터는 진한과 나만 가겠다. 너희들은 대기하도록. 다크 페인트의 말에 다른 수행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분의 앞에서 놀라 오줌을 싸지 않도록 주의해라. 크흐흐흐흐.

진한은 다크 페인트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암흑의 기운을 받아들여 몹시 쿨해진 지금의 그로서는 우주의 황제 아니라 그 누구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옭아매던 그 두려움이 싹 사라진 것이었다. 이젠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그의 손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기운을 본 다크 페인트의 눈이 놀라움에 커졌다. 아무 말도 하지는 않았지만 다크 페인트는 가면 아래로 소리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진한과 다크 페인트님이 알현을 청합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은 안으로 안내되었다. 까마득하게 높은 단 위에 누군가가 둥둥 떠 있다가 그 두사람을 보고는 사뿐하게 의자에 내려 앉았다. 그 앞에는 거대한 스크린과 제국 수도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거대한 창이 위치하고 있었다.

 

. 다크 페인트. 진한이라고? 잘 데려와 주었군. 지난번엔 실례가 많았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어디 좀 더 가까이 오게.

진한은 뭔가 마땅치 않은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검은 기운을 받아들인 이후로 이런 기분은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벌레 같은 인간들을 쓰러뜨리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진 후, 그는 자신의 힘을 말 그대로 자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불쾌감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 것 알 수 없었다.

 

이리 오래두. 황제의 손짓 하나에 진한은 거역할 수 없는 강력한 힘에 끌려 올라갔다. 황제의 눈 앞에 속박되어 있는 진한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파리만큼이나 무력한 존재일 뿐이었다.

profile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