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모 분이 전역했으니까 리뷰 보고 싶다고 하셔서요. 어차피 이전 리뉴얼 때와 달리 클럽 게시판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 중이니까 예에에전에 휴가 나왔을 때 해본 게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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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잘 만든 2D는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타이틀 화면. 게임 전체가 1280 x 720의 와이드스크린 고해상도입니다.

 아무튼, 눈 돌아가는 그래픽이니 수년간의 개발기간이니 수백억 개발비니 하는 수식어들이 따라붙는 게임들이 대작이니 기대주이니 하는 명단에 줄지어 오르는 시대가 온 지도 옛날옛적이지만, 사실 이익추구산업이란 게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제작비를 모으기 위해 타협해야 하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헐리웃 블록버스터를 그렇게도 진부하고 미국만세에 펑펑 터지기만 한다고 욕해대지만, 그리고 홀라당 벗은 처자들이 지겹게도 중독성 노린 반복후렴구 이어캔디를 불러젖히는걸 허구헌날 TV에서 봐야만 하게 되었지만, 언제나 게임이건 영화건 음악이건 인디(Independent)라는 대안은 존재하기 마련이죠. 그나마 다른 물건들에 비하자면야, 게임이란 장르는 영화만큼 배급망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인터넷 플래시 게임 사이트와 엑스박스 라이브 아케이드 등이 나오면서 flOw나 Crayon Physics처럼 인디게임이 완성도나 인기를 인정받는 일이 종종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자유로워서 해결책이 무궁무진해진 덕에 좀 많이 쉽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자유롭게 그림을 그린다는 명제에 아주 충실한 Crayon Physics. 단 한 명이서 만들었고, 마우스로도 잘 됩니다.

 인디게임이라고 하면, 아니 사실 인디라는 것 자체가 소수의 사람들이 빈약한 자원 갖고 시작하는 걸 말하기 때문에 특정한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좀 더 자유롭고 특이하다는 것 이외에도, 뭣보다 시간과 돈이 모자라기 때문에 눈 돌아가는 3차원 최첨단 그래픽과 오케스트라 동원한 값비싼 OST와 우수한 성우연기와 복잡한 퀘스트 따위는 애당초 만들 여력이 없다는 제약이 있지요. 자원적 여유가 없으면 없을수록 한 가지 특징만 집중육성해야 하는 목표가 분명해지고, 독창적이고 빛나는 아이디어 하나는 이런 게임을 먹여살려주는 중요한 밥줄이 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아이디어는 공짜니까요. 아이디어에 치중하게 되면 게임의 장르도 RPG나 전략시뮬 같은 것은 만들기 힘든 법, 상대적으로 컴퓨터와 개발자원이 한정되어 있던 80년대와 90년대 초반에 어드벤처와 퍼즐게임이 유행했던 것처럼 인디 게임도 반짝거리는 아이디어에 의존하기 좋은 특정 장르를 택하는 게 더 쉽긴 할 겁니다. 당연히 아이디어가 게임 전체에 있어서 아주 중요해지게 되는데, 브레이드 또한 예외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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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무지 이해 못할 이유가 없는 직관적인 게임방식 설명.

 본질적으로 브레이드는 슈퍼마리오와 같은 느낌의 2D 횡스크롤 플랫포밍 액션 게임입니다. 뛰어서 적 밟으면 더 높이 뛸 수 있는 거, 다들 아시잖아요. 하지만 적어도 이 게임에서 전통적 의미의 게임오버는 없습니다. 플레이어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뒤로 돌릴 수가 있거든요. 사실 게임 리플레이처럼 그냥 플레이했던 부분을 저장했다가 거꾸로 틀어주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 와중엔 음악까지 꺼꾸로 흐르는 등의 매우 자연스러운 연출 덕에 플레이어는 진짜로 시간을 뒤로 돌리고 있다는 묘한 기분을 겪게 되고 게임의 장르를 단순한 순발력 테스트에 불과한 플랫포밍에서 어떻게 문을 열고 열쇠를 찾을 것인가의 머리 썩이는 퍼즐적 요소를 복합시켜버릴 수 있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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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친절히 시프트를 눌러 시간을 뒤로 돌리라고 메시지가 뜹니다. 그것도 최대 8배속까지 지원하지요.

 사실 시간을 뒤로 돌린다는 것만으로는 게임은 철길 위 기차처럼 그냥 한 길만 왔다갔다할 뿐, 플레이어 입장에선 그저 죽으면 목숨 하나 잃고 스테이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반 게임들과 별다를 게 없어지죠. 그래서 게임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을 단순히 되돌리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흐르게 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해집니다. 퍼즐의 기본은 논리고,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있다는 것 이외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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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뒤로 돌린 후에는 분신이 저절로 생겨나 플레이어가 시간을 돌리기 전에 했던 것을 행한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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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으로 빛나는 부분은 플레이어의 시간조작의 영향을 받지 않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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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아이템을 써서 주변 시간을 느리게 만들거나, 심지어는 플레이어의 움직임에 따라 시간이 흐르는 등의 '규칙'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잔뜩 머리를 써서 다음 스테이지로 진행하기 위한 논리적 해답을 찾아내야 하지요. 크레딧조차도 시간을 조작해서 봐야 하는 등 시간 조작이란 하나의 아이디어는 견고하며 근사한 핵심이 되어 게임을 훌륭히 짜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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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이드의 공식 공략(Official Walkthrough), 보시면 아시겠지만 ‘공략 보면 재미 없으니 직접 하세요’라고 못박아뒀습니다.
http://braid-game.com/walkthrough/walkthrough.html

 게임이 단순해서 조작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다 싶어도 난이도는 결코, 아니 솔직히 매우 만만치 않죠. 막힐 때마다 원하는 스테이지를 넘겨버릴 수 있는 기능이 있긴 하지만 위에서 나온 공략을 보지 말라는 말을 다 지키긴 만만치 않을 겁니다. 허나 적어도 성취감과 논리적 쾌감이라는 퍼즐의 기본적 재미를 게임의 근사한 분위기와 직관적인 플레이 방식으로 완성도 높게 섞어넣은 제작자의 창조적 능력은 많이 칭찬할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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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프로그래머가 아티스트 고용하기 전후의 화면 비교.

 완성도 좋지요. 보셨다싶이 화면은 식상한 단어지만 ‘동화처럼’ 아름답고, 지저분한 아이콘 따위 없이 더할나위없이 깔끔하며, 가난한 프로그래머 1명이 아티스트 1명 고용해 만든 게임이라 OST는 이런저런 앨범에서 사다 썼지만 게임 분위기에 매우 잘 맞아 떨어지지요. IGN이나 겜스팟에선 찬사가 한가득, 인디게임 잘 만들면 충분히 뜬다는 희망을 안겨줬고요. 길이가 짧다던가 엔딩 보고 나면 다시 할 이유가 없다던가 하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어차피 퍼즐은 퍼즐게임이니만치 어쩔 수 없는 거고요.



-음악은 근사하지만 죄다 라이센스라서, 웹상의 유료 음악 관련 사이트에서 티저 형태로 다 들어볼 수 있습니다. object 태그가 클럽은 막혀 있어서 직접 퍼오진 못하고 일단 유튜브 하나만 겁니다. 다 듣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로.
http://magnatune.com/artists/albums/braid-soundtrack/embed



 하지만 개인적으론 조금 아쉽긴 하군요. 어차피 국내에서도 호평은 웹 검색해보시면 아시겠지만 많거든요. 흠, 이래서 난 평생 마이너 인생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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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aid란 단어에는 여러 뜻이 있지만, 땋은 머리라는 뜻도 있습니다. 영문판을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이 게임의 제목은 아마 이 대목에서 따온 것 같습니다. 일전에 성룡 나오는 러시 아워를 보면서 왜 저 영화 제목이 러시 아워인지를 궁금해했던 일이 생각나는군요...게임상에는 꽤 긴 텍스트가 있고, 전체적인 스토리는 주인공을 떠난 공주와 과학과 무언가에 대한 복잡한 요소들이 잔뜩 얽혀 있습니다. 사실 여기서부터 ‘왜’라는 문제가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야 많겠지만, 사실 다른 창작물과 다를 바 없이 명확한 주제야말로 가장 기본이 될 겁니다. 굳이 주제라고 해서 인류는 왜 서로 싸울 수밖에 없냐던가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냐던가 따위를 말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중심이 되는 이야깃거리이자 제작할 때 가장 중점을 두고 핵으로 삼아 드러나도록 하는 부분 말예요. 하긴 이건 어떤 창작물이건 마찬가지죠.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도 그렇듯 하나의 컨셉을 명확히 잡고 이를 따라가야만 훌륭한 결과가 나온다는 건 당연합니다. 아까 했던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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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마다 플레이어가 완성해야 하는 퍼즐들. 의미가 있어 보이긴 한데,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그리고 브레이드의 핵심은 게임 시스템을 소개할 때 누차 이야기했듯 시간입죠. 그럼, 이 게임의 스토리 핵심은 시간에 관한 것일까요? 어울리지 않게 양복입은 주인공과 불타는 도시의 강렬한 이미지, 독특하면서 뭔가 의미 있어 보이는 직소 퍼즐, 귀여워 보이는 괴물들, 특히 어떤 맥락에서 보자면 당연한 엔딩은 처음 보면 가히 충격적이기까지 하기에, 플레이어는 자연히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시켜 보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이런저런 상징이나 은유 비슷한 것들이 게임에 방해되지 않는 수준에서 적당히 분위기 띄우며 등장하기에 더욱 그렇죠. 하지만 명확한 답을 찾기엔 이야기는 지나치게 애매하고 처음 봤을 때는 의미심장해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수렴을 찾지 못하는 근사한 이미지들에 불과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나름의 합리적 설명을 해볼 수는 있겠지만, 결국 제작자조차도 자신은 그럴 능력이 없으며 그럴 생각도 없었다고 말했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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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서 나오는 텍스트 중 하나. 스포일러이므로 그냥은 못 보게 사이즈를 줄여놨습니다. 똑같지는 않지만 한 유명한 사건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고, 그나마 전체적 이야기 중 가장 명확한 게 이것이기에 결국 플레이어는 이야기를 이것에 맞추어 해석하려 들게 되지만...


 물론 아시다시피 전 논리적 이야기를 좋아하고 주인공은 실험 중 사고에 휘말려 시간조절능력을 갖게 되었고 어쩌고 저쩌고 과거의 과오들을 돌이켜 루프가 환상특급 테마게임 어쩌고 하는 통속적 이야기를 더 선호해서, 적당히 신비하고 짧기에 적절한 게임 분위기를 전적으로 개인 취향에 맞추려는 걸수도 있죠. 음, 생각해보니 이 네드리란 녀석은 거의 같은 이유로 배틀스타 갤럭티카도 죽도록 욕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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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대체 주인공이 잡아야 하는 이 괴물들은 왜 나오는 걸까 하는 생각만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게임 스토리는 뽀르노와 다를 바 없다는 모씨의 울펜슈타인 3D조차도 지금 미니건으로 쏴죽이고 있는 것들은 사악한 나찌 괴물들이란 간단명료하면서도 명확한 의미가 있었잖아요. 이 게임에서 대체 주인공은 누구와 싸워야 하는 거죠? 이 모든 것들의 의미는 대체 뭐죠? 이게 더 명확할 수 있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물론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볼 수도 있겠지만, 스포일러가 될 테니...예, 알아요, 마이너 취향. 이런 건 적당히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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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인포서지에 실린, 멀티플레이와 슈팅이 추가된 후속작인 브레이드 2의 티저. 그런데 어째서 스펠링이 game infarcer냐고요?

  아무튼 늘 그렇듯 병 주고 약 주는, 사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까고파 하는 본능에 목이 말라있다는 걸 드러내지 않기 위한 공익광고스런 진부한 결말을 맺자면 브레이드는 제 리뷰에서 뒷부분을 씹어버린 뒤 구성 자체만 놓고도 충분히 칭찬을 잔뜩 받아삼키기 충분한 물건입니다. 아이디어는 공짜고 훌륭한 구성을 거치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는 사실도 잘 알려주는 게임이죠. 전체적인 스토리가 좀 더 괜찮았더라면 싶지만, 어쨌건 엔딩은 플레이어의 뒷통수를 적절히 때리는 반전의 표본을 보여줬으며 강렬한 아이디어와, 그만큼이나 강렬한 이미지로 무장하고 있으니 말예요. 뭐, 제가 하루 이틀 이 짓 하나요.

hourglasscastle.jpg
마지막으로 Hourglass and Sand Castle...이게 David Hellman이 그린 포스터인데, 로고가 박혀있는 큰 버전을 못 찾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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