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이의 글터
글 수 472
금속으로 만들어진 건물 외벽은 햇빛에 번쩍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게 만들었다. 녹슬지 않는 금속으로 마감된 건물은 신시대의 기술과 힘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낡아 부스러지는 나무도 아니고, 녹이 슬어 가루가 되어버리는 쇳덩어리도 아니고 깨져 부서지는 유리도 아니었다. 이것은 천년을 넘게 가는 변치 않는 금속이었고, 인류의 화려한 진보를 말해주는 이정표 그 자체였다. 그 건물 안에선 고고학의 권위자라고 알려진 위대한 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교환하고 있었다.
"그럼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불포트 대학의 돈 종셔리 교수께서 수많은 유물과 사라진 문화를 남긴 엘프 그 실존과 멸종의 이유에 대해 발표해 주시겠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학자가 연단에 올라와 고개를 숙이자 장내에는 폭포수처럼 박수소리가 쏟아져 내렸다. 존경받는 학자이자 연구가, 탐험가로 유명한 돈 종셔리 교수는 이미 동료들이 현장에서뿐 아니라 교단에서조차 은퇴하여 치매병원을 전전하거나 무덤비석아래 누워있는 동안에도 정력적인 연구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의 말 한마디에 흥분한 청중들이 또 시끄럽게 박수를 쳐댔다. 그들에게 돈 종셔리의 말 한마디는 신도들에게 던지는 신의 육성이나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한 분야의 권위자라고 일컫어지는 학자들이고 남부럽지 않은 업적을 세워온 이들이지만 그들이 엄마 뱃속에 있기 훨씬 전부터 고고학의 전설로 군림해온 거물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정말이지 가슴벅찬 일이었다. 교수가 손수 자제를 당부한 뒤에야 청중들은 터져나온 박수를 멈출 수 있었다.
"저는 평생동안 드래곤의 생태와 어둠의 일족의 문화, 잊혀진 나무종족의 언어의 복원, 죽음의 권속의 사회구성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가지 연구를 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중 상당 부분은 우리 사회의 발전에 나름 작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제가 말씀드리려는 발견은 그 어느 것과도 다른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엘프의 멸망 원인입니다."
역시나 참지 못하고 누군가가 박수를 친 듯 여기 저기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노교수는 조금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박수소리가 사그라 들자 그는 커다랗게 비춰진 화면에 하나의 스크롤을 내 걸었다.
"엘프는 숲의 일족이라고 불렸습니다만, 그것은 사람들의 오해입니다. 엘프는 자연과 더불어 생존해 온 자연의 일족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합당합니다. 그들은 숲, 사막, 바다, 정글, 극지 등 다양한 환경에 거의 완벽할 정도로 적응해 왔습니다. 그들의 생명은 무한하다고 알려졌으며 그들의 피부는 하얀 색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신의 시대에 인류에 선행해서 만들어진 종족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의 문헌에 따르면 엘프들중 일부는 신과 직접 교통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무한한 그들의 수명때문에 엘프들은 신과직접접촉한 자도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추측일 뿐 실제로 믿을만한 문헌에 증거된 바는 없습니다." 노교수는 물을 한잔 들이켰다.
"엘프의 역사는 인간과 교차되며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만, 최근 수백년 사이에 그 맥이 완전히 끊겨 더 이상 남아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여러가지로 추측해 왔습니다만, 최근 신뢰할만한 문헌을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노교수는 옆에 대기중이던 조수를 불렀다. 조수가 들고 온 것은 플라스크에 들어 있는 검은색 덩어리였다. 그것을 보던 학자들은 그것이 일전에 이 노교수에 의해 규명된 암흑사념체, 즉 어둠의 일족의 의식을 구성하는 기억전달체의 일부임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다림이 왕국 시대의 지층에 남아있던 암흑사념체의 조각입니다. 오랫동안 방치된 까닭에 많이 희석되었지만 복원작업을 거쳐 알아볼 수 있는 정도로 복구되었습니다. 그 내용에 대해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다시 조수가 무엇인가를 들고 나왔다. 그것은 행성운행의 궤도가 그려진 천체지도였다.
"애초에 가이아에 존재하는 일족 중 인간은 신의 수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태고에 전해지는 신화적 규모의 사건으로 인해 인간들은 신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그 단절된 부분을 유지하는 관찰자이자 조력자의 역할을 맡은 것은 엘프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반해 인간의 멸망을 바라는 것이 어둠의 일족이 추구하는 정의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멸망하더라도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 목적이라고 알려져 있지요. 마도전쟁의 당시 어둠의 일족은 인간과 엘프등 빛의 연함군의 군세 앞에 거의 멸망했지만, 아주 일부는 살아남아 있었습니다. 사실 마도전쟁 자체가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 그들 스스로 패배하기로 계획되었다는 것이 이 문헌의 주장입니다."
세미나장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돈 종쇼리 교수의 세미나임을 잊게 할 정도로 파격적인 이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멸망한 것은 엘프족이잖습니까. 인류는 아직도 잘 살아 있습니다." 한 젊은 학생이 일어나 외쳤다. 주위의 만류에 다시 자리에 앉은 학생을 보고 노교수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습니다. 인류는 사상 최고로 번성하며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습니다. 그 와중에 엘프족이 멸망했지요. 사실 엘프족의 멸망도 역시 암흑사념체에게는 미리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다시 세미나장이 웅성거렸다.
"엘프족은 환경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자연에 동화되는 특성을 가집니다. 그 특성은 태생때문이라고 추측됩니다. 그리고 하얀 피부는 매우 특징적인 특질이죠. 그러나 특유의 자연친화력과 새하얀 피부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습니다. 바로 자외선에 극단적으로 약하다는 것입니다. 가이아에선 잘 발달된 자연 환경과 오존층이 자외선을 아주 효과적으로 차단해 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도전쟁 이후 발달하기 시작한 기계문명의 부산물들은 환경을 심각하게 파괴해 왔습니다. 오존층의 붕괴도 그중 한가지 사례에 속합니다. 오존층의 붕괴 이후 내리쬔 자외선은 암을 유발하여 엘프들을 멸종시킨 것입니다. 이 문헌에 따르면 인간이 획득한 기계문명 그 자체가 암흑 사념체에 기반한 기술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승전후에 가장 발달한 국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어둠의 일족 가장 깊숙한 곳까지 싸워내려간 국가들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서로 앞다투어 환경을 파괴하는 기계문명을 개발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기계문명이란 엘프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정교하게 꾸며진 가장 복잡한 저주였던 것입니다."
더 이상 놀라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은 입을 쩍 벌린 채로 놀라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엘프가 사라진 순간, 가이아는 파멸의 길로 이미 접어들었습니다. 엘프가 구축하고 있는 빛의 정신체계가 붕괴되면 외행성계에 형성되어 있는 소행성군을 규제하는 힘이 느슨해지고, 그 결과로 가이아를 향해 셀수없는 소행성들이 쏟아져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암흑사념체의 예측에 따르면 그 소행성군의 폭격은 드래곤이 시전하는 미티어스웜의 100만배 강도로, 말티스 왕국을 멸망시킨 운석보다 최소 100만배는 강할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암흑 사념체에 기록된 파멸까지는 앞으로 10년도 남지 않았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남은 여생을 즐겁게 보내시길 빕니다."
노 교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연단에서 내려갔다. 그 뒤엔 아무런 박수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럼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불포트 대학의 돈 종셔리 교수께서 수많은 유물과 사라진 문화를 남긴 엘프 그 실존과 멸종의 이유에 대해 발표해 주시겠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학자가 연단에 올라와 고개를 숙이자 장내에는 폭포수처럼 박수소리가 쏟아져 내렸다. 존경받는 학자이자 연구가, 탐험가로 유명한 돈 종셔리 교수는 이미 동료들이 현장에서뿐 아니라 교단에서조차 은퇴하여 치매병원을 전전하거나 무덤비석아래 누워있는 동안에도 정력적인 연구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의 말 한마디에 흥분한 청중들이 또 시끄럽게 박수를 쳐댔다. 그들에게 돈 종셔리의 말 한마디는 신도들에게 던지는 신의 육성이나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한 분야의 권위자라고 일컫어지는 학자들이고 남부럽지 않은 업적을 세워온 이들이지만 그들이 엄마 뱃속에 있기 훨씬 전부터 고고학의 전설로 군림해온 거물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정말이지 가슴벅찬 일이었다. 교수가 손수 자제를 당부한 뒤에야 청중들은 터져나온 박수를 멈출 수 있었다.
"저는 평생동안 드래곤의 생태와 어둠의 일족의 문화, 잊혀진 나무종족의 언어의 복원, 죽음의 권속의 사회구성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가지 연구를 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중 상당 부분은 우리 사회의 발전에 나름 작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제가 말씀드리려는 발견은 그 어느 것과도 다른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엘프의 멸망 원인입니다."
역시나 참지 못하고 누군가가 박수를 친 듯 여기 저기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노교수는 조금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박수소리가 사그라 들자 그는 커다랗게 비춰진 화면에 하나의 스크롤을 내 걸었다.
"엘프는 숲의 일족이라고 불렸습니다만, 그것은 사람들의 오해입니다. 엘프는 자연과 더불어 생존해 온 자연의 일족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합당합니다. 그들은 숲, 사막, 바다, 정글, 극지 등 다양한 환경에 거의 완벽할 정도로 적응해 왔습니다. 그들의 생명은 무한하다고 알려졌으며 그들의 피부는 하얀 색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신의 시대에 인류에 선행해서 만들어진 종족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의 문헌에 따르면 엘프들중 일부는 신과 직접 교통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무한한 그들의 수명때문에 엘프들은 신과직접접촉한 자도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추측일 뿐 실제로 믿을만한 문헌에 증거된 바는 없습니다." 노교수는 물을 한잔 들이켰다.
"엘프의 역사는 인간과 교차되며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만, 최근 수백년 사이에 그 맥이 완전히 끊겨 더 이상 남아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여러가지로 추측해 왔습니다만, 최근 신뢰할만한 문헌을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노교수는 옆에 대기중이던 조수를 불렀다. 조수가 들고 온 것은 플라스크에 들어 있는 검은색 덩어리였다. 그것을 보던 학자들은 그것이 일전에 이 노교수에 의해 규명된 암흑사념체, 즉 어둠의 일족의 의식을 구성하는 기억전달체의 일부임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다림이 왕국 시대의 지층에 남아있던 암흑사념체의 조각입니다. 오랫동안 방치된 까닭에 많이 희석되었지만 복원작업을 거쳐 알아볼 수 있는 정도로 복구되었습니다. 그 내용에 대해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다시 조수가 무엇인가를 들고 나왔다. 그것은 행성운행의 궤도가 그려진 천체지도였다.
"애초에 가이아에 존재하는 일족 중 인간은 신의 수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태고에 전해지는 신화적 규모의 사건으로 인해 인간들은 신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그 단절된 부분을 유지하는 관찰자이자 조력자의 역할을 맡은 것은 엘프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반해 인간의 멸망을 바라는 것이 어둠의 일족이 추구하는 정의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멸망하더라도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 목적이라고 알려져 있지요. 마도전쟁의 당시 어둠의 일족은 인간과 엘프등 빛의 연함군의 군세 앞에 거의 멸망했지만, 아주 일부는 살아남아 있었습니다. 사실 마도전쟁 자체가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 그들 스스로 패배하기로 계획되었다는 것이 이 문헌의 주장입니다."
세미나장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돈 종쇼리 교수의 세미나임을 잊게 할 정도로 파격적인 이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멸망한 것은 엘프족이잖습니까. 인류는 아직도 잘 살아 있습니다." 한 젊은 학생이 일어나 외쳤다. 주위의 만류에 다시 자리에 앉은 학생을 보고 노교수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습니다. 인류는 사상 최고로 번성하며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습니다. 그 와중에 엘프족이 멸망했지요. 사실 엘프족의 멸망도 역시 암흑사념체에게는 미리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다시 세미나장이 웅성거렸다.
"엘프족은 환경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자연에 동화되는 특성을 가집니다. 그 특성은 태생때문이라고 추측됩니다. 그리고 하얀 피부는 매우 특징적인 특질이죠. 그러나 특유의 자연친화력과 새하얀 피부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습니다. 바로 자외선에 극단적으로 약하다는 것입니다. 가이아에선 잘 발달된 자연 환경과 오존층이 자외선을 아주 효과적으로 차단해 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도전쟁 이후 발달하기 시작한 기계문명의 부산물들은 환경을 심각하게 파괴해 왔습니다. 오존층의 붕괴도 그중 한가지 사례에 속합니다. 오존층의 붕괴 이후 내리쬔 자외선은 암을 유발하여 엘프들을 멸종시킨 것입니다. 이 문헌에 따르면 인간이 획득한 기계문명 그 자체가 암흑 사념체에 기반한 기술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승전후에 가장 발달한 국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어둠의 일족 가장 깊숙한 곳까지 싸워내려간 국가들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서로 앞다투어 환경을 파괴하는 기계문명을 개발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기계문명이란 엘프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정교하게 꾸며진 가장 복잡한 저주였던 것입니다."
더 이상 놀라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은 입을 쩍 벌린 채로 놀라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엘프가 사라진 순간, 가이아는 파멸의 길로 이미 접어들었습니다. 엘프가 구축하고 있는 빛의 정신체계가 붕괴되면 외행성계에 형성되어 있는 소행성군을 규제하는 힘이 느슨해지고, 그 결과로 가이아를 향해 셀수없는 소행성들이 쏟아져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암흑사념체의 예측에 따르면 그 소행성군의 폭격은 드래곤이 시전하는 미티어스웜의 100만배 강도로, 말티스 왕국을 멸망시킨 운석보다 최소 100만배는 강할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암흑 사념체에 기록된 파멸까지는 앞으로 10년도 남지 않았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남은 여생을 즐겁게 보내시길 빕니다."
노 교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연단에서 내려갔다. 그 뒤엔 아무런 박수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