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63
대리 연재입니다.
제로의 사역마 라는 작품과 워해머40k 라는 작품의 세계관을 믹스한 팬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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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일과는 전투로 시작해서 전투로 끝난다.
그들은 태어날 때는 비록 인간이었으나 살아가면서 그저 평범한 하나의 인간이었음을 이제는 잊어버리도록 교육받는다. 그리고 황제폐하에 대한 충의를 다짐받고 그의 의지이자 명예로운 인류의 검으로써 만들어진다. 스페이스 마린, 그들이야말로 진정 지배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자이며 세상에 충성해야 할 대상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성당기사조차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건하며, 그렇게나 경건한 태도로 당장의 전투를 준비하며 내일의 죽음을 기다리는 자들의 모습은 비토리오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비토리오는 그들… 유전적으로 설계된 초인 전사이자 별과 별 사이에 도사리는 공포와 맞서 싸우게끔 목적을 수여받은 자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그는 마텔루스에게 물었다. 누가 당신들의 지배자인지.
마텔루스는 한 마디로 대답했다.
황제.
비교할 대상을 찾아볼 데가 없는, 유래 없는 초인이자 신인류이며 선각자. 전 은하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인류를 인도하는 살아있는 신. 세상의 모든 인류는 그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심지어 이 강력하기 그지없는 스페이스 마린이란 이름의 전사들은 황제의 유전자를 받아들여 신과 인간의 사이에 한 발씩 걸치게 된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비토리오를 매료시켰다.
‘그들의 말을 믿으십니까.’
웨일즈의 물음이었다. 그는 눈앞의 이 강대한 존재가 자신의 백성들, 비록 반란자라고는 하지만 단지 그들이 지닌 죄업이라고는 무지몽매했을 뿐인 자들을 쓸어버리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진정성에 의문을 품었다.
과연 정의로운 이들인가? 이들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그러나 비토리오는 알 수 있었다. 오직 할케기니아의 인간의 평안만을 바라는 자였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그에게 내재한 자비와, 공존하는 광기는 스페이스 마린이라는 존재를 이해한다는 듯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스페이스 마린의 사상에 동조했다.
이 땅에 설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다.
그 목적을 위해서 다른 모든 존재를 지워버릴 각오와 의지…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 바로 스페이스 마린이었다. 비록 그들은 지금 너무나 거대한 적에 맞서서 절망적인 싸움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바로 그렇기에 블러드 레이븐이라는 집단은 비토리오의 앞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누구도 인간을 위해서 이렇게 초개처럼 목숨을 버릴 수 없다.
그들이 설파하는 눈앞에 놓인 가장 거대한 가치.
인간.
사람을 살려낸다는 너무나 이상적인 목적에 대하여 더없이 현실적으로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은 비토리오를 매료시키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인간, 인간이라….
‘그들은 위대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말로는, 아우렐리아 섹터라고 하던가요. 바로 이 할케기니아를 포함하고 있는 이 지역에만 우리 할케기니아 인구의 수백, 수천 배에 달하는 인간이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들은 우리들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저 무도한 괴물들의 손아귀에 떨어져서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지요.’
‘우리는 저들을, 저런 괴물들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위기에 처한 것은 저들의 탓인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런 것은 상관없습니다.’
‘예?’
‘저들의 고귀함을 논하는데 있어서 원인과 결과가 중요하진 않습니다. 저들은 그저 위대합니다. 웨일즈 황태자. 당신도 저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결코 할케기니아라는 인간이 살아가는 한 행성이 괴물들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저 또한 그들에게 설득 당했던 적이 있습니다. 휴전을 말하면서 더 큰 대의를 이야기했지요. 그러나 나는 이제 저들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겠습니다. 어떻게… 하루 만에 몇 명이 죽었는지 아십니까? 화이트 홀에서 죽은 인간의 숫자만 6천 명이 넘습니다! 알비온 전역을 두고 인명 피해를 계산하면….’
‘그들은 반란자였지요.’
‘그러나 누구도 그들에게 여기 알비온의 인간을 죽여 달라고 청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저희들의 일이란 말입니다.’
‘그들은 웨일즈 황태자님, 당신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인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밑거름으로써 말입니다. 그들이라고 평화를 바라지 않았던 것 같습니까?’
‘성하….’
‘그들의 적은 인간의 적입니다. 인간의 적이 걸어야 할 운명은, 죽음으로만 귀결될 뿐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는 스페이스 마린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예전부터 ‘이세계’가 존재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세계의 존재로 인해 자신의 굳건하기 그지없는 신에 대한 믿음이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상황이 변했다. 세상은 멸망을 향해 치닫고 있고 온 세계의 파멸을 막기 위해 찾아온 자들은 실존하는 신을 모시고 있다.
누가 비토리오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그는 단지 지배자가 누구인지 알아봤을 뿐이다. 그리고 신과 시조의 제일가는 종복으로써 자처하는 자답게 경배했을 뿐이다. 다만… 광기로써. 그것은 황제를 섬기는 모든 이들이 바라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몰이해하고 있었다.
새로이 알려진 신에 대한 경배가 아닌 인간에 대한 광신. 필요에 의한… 웨일즈는 그에게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항구적인 협력은 약속했다. 아무리 입씨름을 해도 자신들이 당면한 상황이 바뀌지는 않는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리고 피와 땀을 흘리며 목숨을 바쳐 노력하더라도 어쩌면 실패할지도 모른다.
당면한 적.
타이라니드란 그런 것이니까.
“이야기할 것이 있습니다.”
그가 마텔루스를 찾아오기까지는 큰 결심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마텔루스는 브리핑 때, 비토리오의 이야기를 전했다.
비토리오는 커맨더와의 일면식 전에 그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야 할 사람들을 지명했다. 루이즈 프랑소와즈 양, 앙리에타 공주. 앙리에타에게는 트리스테인 왕가의 가보로 전해져 내려오는 ‘시조의 기도서’와 ‘물의 루비’를 지참해줄 것을 요구했다. 커맨더는 수락했다.
임페리얼 가드 지상 전역 전개 한 시간 전의 일이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비토리오는 커맨더를 흥미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짧게 자른 머리에 이마에는 한 조각 동그란 쇳덩어리가 박혀있는 심지가 굳어 보이는 강철 같은 인상의 사내…. 그가 바로 블러드 레이븐, 피의 갈가마귀라고 불리는 군대의 지휘관. 모두에게 커맨더라고 불리는 자였고, 초인들이 넘치는 이 아마겟돈이라는 함선 내에서도 가장 강력한 자였다.
하드리안 캠페인에서 챕터 사령부가 불가능으로 평가한 임무를 기적적으로 달성함으로써 블러드 레이븐 역사상 최연소의 포스 커맨더로써 진급한 기적의 사나이. 타이라니드라는 초유의 괴물을 상대로 아우렐리아 섹터의 성전을 벌이면서 결코 끝없는 괴물의 공세에도 꺾이지 않는 초인….
그는 파워 아머를 입지 않더라도 비토리오보다 키가 거의 50cm는 클 것 같았다. 파워 아머까지 입고 있는 지금은 키가 아니라 폭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났다. 그의 어깨 넓이는 웬만한 아인들조차도 배겨내지 못할 정도였다.
“무슨 이야기를?”
커맨더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묵직한 저음이었다.
과연, 어울리는 목소리로군.
비토리오는 말했다.
“괴물들의 수괴로부터 미지의 공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말입니다.”
커맨더는 무표정하게 비토리오를 쳐다봤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커맨더가 눈빛으로 물으며 당신이 건드릴 주제가 아니라고 주의를 줬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보면서 루이즈와 앙리에타는 뭔가 사단이 벌어지지 않을지 긴장했다. 그러나 비토리오는 평화롭게 대답했다.
“할케기니아의 백성을 구해내기 위해서 싸웠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의… 형제들의 죽음에 경의를 표합니다.”
“고맙소. 하지만 그들이 모든 인간의 적과 싸운 것은 의무였기 때문이오. 그들은 자신들의 과업을 수행했고, 당신에게 공치사를 듣기 위해서 표표히 죽어간 것은 더욱 아니었소.”
“제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그건 나야말로 묻고 싶소.”
커맨더는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 그 짐승은, 감히… 불경하게도 내가 보는 눈앞에서 나의 형제들을 찢어 죽였소. 당신이 과연 그 감각을 알 수 있을지 모르겠군. 황제폐하로부터 하사받은 이 강건하기 그지없는 육체조차도 손가락 마디 하나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고, 마치 부유하고 있기라도 한 듯 무력하게 팔다리를 내던져 둔 채로… 형제들은 날 감싸며 표표히 죽어갔소. 나의 만용을 무마하기 위해서 타데우스와 그의 대원들은 몸을 던졌지. 죽음이 가까이 있었소.”
주먹을 쥔다. 그리고 폈다. 한 손으로 인간의 두개골조차 바수어버리는 압도적인 악력이 마치 손바닥을 파고 들 듯이 끼익, 끼익, 움직인다. 파워 아머의 글러브조차도 비명을 지르고 그의 손은 덜덜 떨고 있었다. 커맨더는 분노하고 있었다.
“괴물은 나의 형제를 물어 올렸소. 그리고 그 흉측한 발톱으로 갈기갈기 찢어버렸지. 우리는 꿈을 꾸지 않지만, 만약 형제들이 나의 꿈에 나온다면… 그들의 단말마는 나의 꿈속에서도 울려 퍼질 거요. 그리고 나는 이미 살아서 악몽을 꿈꾸며 걷고 있소.”
커맨더는 루이즈를 보며 말했다.
“그 날. 타데우스는 죽을 뻔했지.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나는 그에게 빚을 졌다.”
루이즈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새삼스레 숨을 삼키며 그의 말에 전율했다.
커맨더는 다시 비토리오를 돌아봤다. 교황의 얼굴은 평온했지만 그 아래에는 커맨더로썬 불쾌하기 이를 데 없는 의도가 깔려 있을 것이다. 스페이스 마린의 의중을 떠보려고 하지 마라. 우리들은 말없이 봉사하고 또한 근속할 것이다. 우리들의 죽음은 너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 아니, 우리 블러드 레이븐과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는 같은 하늘 아래 살아있을 수 없는 존재요. 우리는 괴물을 죽일 거요. 그리고 나의 형제들은 인간을 위협하는 흉물스러운 짐승을 죽이기 위한 영광의 성전에서 희생되었고, 그들은 이미 영원으로의 여행을 떠났소.”
커맨더가 말했다.
“공치사는 됐소. 더, 실전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어떻겠소? 당신이 나의 형제들의 영전에 뭔가를 바치고 싶다면 오직 괴물을 죽이는데 협조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의미가 있을 거요.”
비토리오는 한숨을 쉬고는 대답했다.
“…예리하신 분이로군요. 그렇다면,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라고 했던가요. 그 괴물이 사용했던 정체불명의 빛….”
이 대목에서 비토리오는 커맨더의 안색을 살폈다.
커맨더의 안색이 굳어졌다. 대체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느냐는 투의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마텔루스가 그때의 기록을 보여주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테크 마린을 돌아봤다. 과연, 커맨더의 예상이 맞았다. 마텔루스가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그러나 힐난할 일은 아니었다.
“만약 그 정체를 해명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비토리오의 말은 대단히 매력적인 것이었다.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 놈을 제거하여 할케기니아의 타이라니드 지상 전력에 심대한 피해를 입힌다는 블러드 레이븐의 계획은, 진행은 순조로웠으나 마지막의 예상치 못한 요소 하나 때문에 완전히 어그러졌다.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가 쏘아낸 미지의 정신 공격은 그들로썬 결코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챕터의 기록을 아무리 조회해도 그런 정신 능력의 예는 없었다. 심지어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가 조안쓰로프나 보여줄 정도의 고도의 정신 능력을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전무했다.
그러나 블러드 레이븐은 실제로 그런 공격을 겪어야 했다
“나의 형제들이 진심으로 기뻐하겠지. 나 또한 그렇소.”
그 말에 비토리오는 루이즈를 쳐다봤다.
“루이즈 프랑소와즈 양.”
“아, 예. 교황 성하.”
루이즈는 이런 상황에서 얼빠진 대답을 늘어놓는 자신이 너무 싫었다.
사실, 자신이 어째서 이 자리에 참석해야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블러드 레이븐에게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다. 그들이 말하는 ‘등대’로써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인간이 자신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허무’를 언급했다.
하지만… 모두에게 ‘제로’라고 불리는,
마법의 재능이라고는 전혀 보잘 것 없는 내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고 믿지도 않는다.
하지만 비토리오는 선언한 것이다.
“당신과 나는 형제입니다.”
루이즈는 대답했다.
“저… 저는 발리에르 가의 삼녀입니다…?”
엄숙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얼빠진 대답이었다. 비토리오는 루이즈의 대답에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커맨더조차도 무슨 말인지 짐작하고 있었기에 쓴웃음을 지었다. 앙리에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비토리오는 입가에 웃음을 띤 채 친절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우리들이 시조의 피를 이어받은 허무의 사용자라는 말입니다.”
커맨더는 눈앞의… 진실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자에게 주목했다.
“앙리에타 공주님. 제가 부탁했던 것은 준비하셨습니까?”
“네.”
앙리에타는 완전히 빚이 바래버린 다 낡아빠진 양피지로 된 책을 한 권. 그리고 푸른 보석이 박혀 있는 반지를 꺼내들었다.
“시조의 기도서와 물의 루비… 트리스테인 왕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시조의 유품입니다.”
“하지만 시조의 기도서는 어디에서나 자신들의 것이 진품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저 또한 트리스테인 왕가의 후손으로써 이… 시조의 기도서가 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에는 한 점의 의심도 없지만….”
앙리에타는 말했다.
“시조의 기도서에는 무엇 하나 적혀있지 않습니다.”
그런 책이 과연 진짜 시조의 기도서가 맞느냐.
앙리에타의 의문에 비토리오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먼 옛날 시조께서는 자신의 힘을 담은 네 가지 보물과 네 가지 반지를 자신의 세 아들과 제자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트리스테인, 로말리아, 알비온, 갈리아의 시초가 아닙니까. 이것은 틀림없는 시조의 기도서입니다.”
비토리오는 의문을 일축하고는 루이즈에게 반지를 내밀었다.
“손가락에 끼우십시오.”
루이즈는 떨면서 반지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웠다. 앙리에타가 끼고 있던 것이었기 때문에 달리 크기를 조절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트리스테인 왕가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보물이 루이즈의 자그마한 손가락에 끼워져 빛을 발하고 있었다….
비토리오는 기도서를 건넸다.
“펼쳐보십시오.”
루이즈는 기도서를 펼쳤다.
앙리에타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책에는 오직 백지밖에 적혀있지 않다. 시조의 기도서라고는 해도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다는 점에서 마치 사기라도 당한 것처럼 역대의 왕실이 보관해 온 물건이다. 각종 룬 문자가 춤추고 시조의 위업을 기록하고 있는 기도서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루이즈가 펼쳤을 때도 백지에 다름 아니었다. 없는 글자가 떠오르진 않았다. 그 모습에 앙리에타는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루이즈는….
“루이즈…?”
루이즈는 앙리에타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다갈색 눈망울은 시조의 기도서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것은….”
루이즈의 입술에서 신음처럼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커맨더가 보기에도 책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백지 뿐이다. 그러나 비토리오는 미소를 띈 채로 루이즈에게 물었다.
“무어라고 적혀 있습니까? 괜찮다면 읽어주시겠습니까?”
그의 말은 청유형이었지만 시조의 기도서라는 6천년의 권위와 할케기니아의 교황이 내뱉는 말이 합쳐졌을 때, 루이즈는 거부하기 힘든 기분이 들었다. 앙리에타는 벅차오르는… 숨이 막혀 갑갑하다는 듯이 가슴을 누르면서 말했다.
“루이즈, 루이즈… 거기에는 백지 뿐이지요? 그런가요?”
루이즈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낭랑한 목소리로 앙리에타와 커맨더에게는 백지로밖에 보이지 않는 기도서를 읽기 시작했다.
“서문.”
낭독이 시작됐다.
“이제부터 내가 깨달은 진리를 이 책에 기록한다.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 사대계통은 그 작은 입자에 간섭하여 영향을 주고 변화를 일으키는 주문이니. 그 네 가지 계통은 ‘불’, ‘물’, ‘바람’, ‘흙’이다.”
그리고 루이즈는 페이지를 넘겼다.
여전히 앙리에타와 커맨더에게는 백지로 남은 페이지를 보면서 루이즈는 그들에겐 보이지도 않는 글자를 읽고 있었다.
“신은 나에게 더욱 큰 힘을 내리셨다. 사대계통이 영향을 주는 작은 입자는 더욱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 신이 내게 내리신 계통은 네 가지 중 그 어느 것에서도 속하지 않는다. 나의 계통은 더욱 작은 입자에 간섭하여 영향을 주고 변화를 일으키는 주문이니. 네 가지에 속하지 않는 것은 영(제로). 영은 곧 ‘허무’. 나는 신이 내게 내리신 영을 ‘허무의 계통’이라 칭한다.”
“루이즈….”
앙리에타가 아연실색하여 쳐다본다. 그리고 커맨더는 드디어 진실이 밝혀지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하고 있었다.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를 공략할 실마리가 드디어 떠오른 것이다….
아직 루이즈의 낭독은 끝나지 않았다.
“이것은 읽는 자는 나의 행위와 이상과 목표를 이어 받은 자, 또한 그를 위한 힘을 지닌 자이니. ‘허무’를 다루는 자는 명심하라. 뜻을 채 이루지 못하고 쓰러진 나와 그 동포를 위해 이교에게 빼앗긴 ‘성지’를 되찾도록 노력하라. ‘허무’는 강력하고, 또한 그 영창은 긴 시간을 요하는 까닭에 막대한 정신력을 소모한다. 영창자는 주의하라. 때로 ‘허무’는 그 강력함으로 인해 생명을 갉아먹는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의 봉독자를 선택한다. 설령 자격이 없는 자가 반지를 낀다고 해도 이 책은 열리지 않을 터. 선택받은 봉독자는 ‘사대계통’의 반지를 끼도록 하라. 그리하면 이 책은 열릴 것이니.”
그리고 루이즈는 시조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브리미르 르 루밀 유르 빌리 베 바르토리.”
“역시 그녀는 봉독자였군요.”
비토리오의 감상이 지나갔다. 그렇게 루이즈는 허무의 사용자로써 모두에게 자신을 드러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루이즈가 시조의 기도서를 들여다보면서 읊은 말은 그녀가 진짜 봉독자임에 쐐기를 박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어서 내가 다루는 ‘허무’의 주문을 기록한다. 초보 중의 초보 중의 초보. ‘익스플로전(폭발)’.”
그 뒤로는 고대어 주문이 빽빽하게 이어져 있었다. 루이즈는 제로라고 불리는 자신이… 제로라는 이명에 걸맞은 영, 허무의 주문의 사용자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낭독을 끝내고는 그저 멍하니 기도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익스플로전의 스펠은 머릿속에 담는 것만으로도 마치 추억처럼, 먼 옛날 겪었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는 것처럼 간절하고도 아련하게 다가왔다.
“주문이라.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가 사용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텔루스의 냉철한 추론이었다. 그 말에 비토리오가 덧붙였다.
“맞습니다. 그 거대한 빛… 시조의 위업을 비추는 기록에는, 시조가 사용한 빛은 마치 태양처럼 온 세상을 비추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지요.”
“…언급하고 싶지 않군. 불쾌한, 저주스러운 빛이오.”
커맨더는 그 빛을 직접 맞고 형제들을 잃은 당사자였다.
비토리오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힘은 사용하기 나름이지요.”
말은 맞았다. 블러드 레이븐이 그렇게 추앙해 마지않는 지식과도 마찬가지의 일면을 지니고 있었다. 모든 힘은 사용하기 나름이다.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는 블러드 레이븐보다 먼저 허무의 존재를 깨닫고 그것을 이용했을 뿐이다. 칼이 살의를 드러내진 않는다. 칼자루를 쥔 자가 살의를 드러낼 뿐….
결과를 보자.
마텔루스가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커맨더. 우리는 찾아냈습니다.”
블러드 레이븐은 드디어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에 대항할 단서를 찾아낸 것이다.
“드디어….”
커맨더의 가슴이 벅차오른다.
많은 형제가 죽었다. 괴물은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오욕과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할케기니아를 비롯한 아우렐리아 섹터의 모든 행성은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로 인해 지금도 유린당하고 있다. 하이브 마인드의 제일가는 수족이자 가장 강력한 짐승,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 그 괴물을 죽이기 위한 블러드 레이븐의 첫 번째 도전은 미지의 공격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허무’.
미지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블러드 레이븐도 그 힘을 드디어 손아귀에 거머쥐었다.
커맨더는 루이즈를 바라봤다. 루이즈 프랑소와즈. 블러드 레이븐을 이곳으로 이끌었으며… 또한 어쩌면 타이라니드와의 싸움에서 승리의 열쇠가 되어 줄지도 모르는 소녀. 그녀가 짊어질 과업으로는 너무나 거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타이라니드가 그들에게 베풀 것이라곤 어차피 죽음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녀는 블러드 레이븐과 함께,
이 절망으로 가득 찬 세상을 전투와 전투로써 헤쳐 나가게 될 것이다.
“커맨더. 문제가 생겼습니다.”
마텔루스의 말에 커맨더는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결코 블러드 레이븐의 포스 커맨더로써의 얼굴을 잊어버렸던 적이 없건만, 지금만큼은 복수심에 젖어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를 향한 복수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형제들을 해한 극악무도한 괴물에게 스페이스 마린이 정의로써 행하는 체인소드의 톱날을 처박아 줄 기회가 다가 왔음에 순수하게 기뻐했다.
그런 그에게 마텔루스가 전한 말은 뜻밖의 것이었다.
“사이러스로부터의 보고입니다. 그가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렸던 것이기도 했다.
“저 빌어먹을 짐승이….”
메릭은 높이 6미터짜리 괴물의 모습에 이를 갈았다.
지금 같은 추세로 이를 갈았다간 내일이 되면 모든 이빨을 의치로 갈아 끼우고도 남을 만큼 그는 눈앞의 광경에 이를 갈아 붙이고 있었다. 그만큼,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아우렐리아 섹터에서 메릭 상사를 화나게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타이라니드의 준동이라던가.
그리고 눈앞의 괴물은 메릭의 분노를 얼마든지 끌어낼 수 있었다.
사이러스는 아마겟돈을 향해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의 등장을 고했다.
임페리얼 가드의 지상 전역 전개 약 한시간 전….
괴물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어째서 지금 모습을 드러냈는지 알 수 있나?]
커맨더는 차라리 반갑다는 듯이 묻고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놈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괴물의 귀환인가. 알겠네. 사이러스. 첫 번째 지침을 하달한다. 생존을 우선시하라. 현재,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에 대항할 구체적인 ‘수단’을 강구중이다.]
“‘수단’을 확보했습니까?”
그것은 분명 희소식이었다.
[지금으로써는 모른다. 대기하게. 귀환용도의 썬더호크가 곧 출격할 테니.]
그대로 교신은 끊어졌다.
“어째서 지금 시점에 등장한 것일까요.”
메릭의 물음은 커맨더와 똑같은 것이었다.
사이러스는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대답했다.
“광풍을 불러오려고.”
그리고 그는 냉소적으로 덧붙였다.
“타이라니드가 어째서 여태껏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을 것 같나.”
“그게, 가만히 기다린 짓이란 말입니까? 지금 당장도 라 로셸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이 있을 겁니다. 괴물들은 끝없이 몰려오고 우리들의 심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메릭 상사. 자네도 알고 있을 텐데.”
사이러스는 마치 내면을 들여다보듯 메릭을 쳐다봤다. 사이러스의 한쪽만이 온전히 남은 눈이 메릭을 쳐다보자, 그는 움찔하면서 뒤로 물러날듯 주춤했다. 그러나 메릭은 사이러스의 앞에서 주춤할 이유라곤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눈앞의 스페이스 마린 베테랑을 향해 말했다.
“무엇을, 말입니까?”
“타이라니드가 어떤 존재인지 몰라서 그런 말을 하나.”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이러스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의 타이라니드 공세는 그저 가소로운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저, 무자비한, 끝없는 숫자의 공포를 모르는 인류의 적이 지금껏 침묵해준 것은 우리가 지닌 유일한 유예기간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유예기간이 끝나버렸지.”
그는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를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어둑어둑해서 실루엣만 비칠 지경이었지만 놈의 거체는 이곳에서도 똑똑히 보였다. 어째서 이곳에 홀로 모습을 드러낸 것인가. 짐승의 왕은 제국 화력의 정수가 모여 있는 바로 이 자리에도, 아퀼레이아 탈환과 생체공장 소각의 임무를 띠고 모여든 죽음의 구렁에도 굴하지 않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괴물을 봤을 때.
사이러스는 저 괴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끔찍함을 더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이러스는 자신이 오산했음을 깨달았다. 놈은 더 흉측하고 흉포해질 수 있었다. 더욱 강력하고 무자비하게 돌아온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는 인간에 대한 무차별적인 증오를 뿜어내고 있었다. 사거리 바깥이었고 오직 실루엣만이 보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의 타오르는… 피부색을 닮은 잿빛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스페이스 마린은 공포를 모른다.
시선을 받으며 사이러스는 그저 놈에 대한 타오르는 증오를 되새겼다. 형제를 죽인 괴물의 뇌리에 죽음을 내려주겠다는 일념으로 사이러스는 살아있었다. 허나. 당장은 광풍이 몰아칠 것이다. 사이러스는 드물게도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동포… 비록 인간을 구하기 위해 인간을 버리고 초인으로 거듭난 사이러스였지만, 이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가드맨들이 닥쳐올 죽음에 어떤 식으로 저항하며 그리고 스러질 것인지. 그것을 떠올렸다.
“전투를 준비하게.”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그리고 사이러스가 말하지 않아도 메릭은 그럴 작정이었다.
“알겠습니다.”
“죽지 말게.”
드물게도, 그런 말을 담았다.
“어째서 지금인가… 아니. 의미 없군.”
커맨더는 자신의 물음이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타이라니드가 언제 상대방의 사정을 봐주고 살해하고 약탈하던가. 놈들은 예고 없이 온 행성에 쳐들어와 모든 생명을 끊어버리고 삶을 박탈하고 해치는 괴물이었다.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의 귀환. 놈이 돌아오지 않기를, 케펠라의 희생이 놈을 제거했길 바랐건만 놈은 죽음으로 떨어지는 무저갱의 나락에서도 돌아온 것이다. 사이러스는 괴물을 두고 이르길 ‘더욱 흉포해져서’ 돌아왔다고 말했다.
“비상 강하를 준비하라.”
커맨더는 마텔루스에게 종심 침투를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지금껏 아우렐리아 섹터의 성전을 이끌어 온 커맨더와 그의 부대원들은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의 생존에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인간의 적은… 오직 스페이스 마린만이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괴물이 돌아왔소.”
커맨더가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들의 안색이 굳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커맨더는 문득 우울한 기분 같은 것을 느꼈다. 그는 루이즈를 바라봤다. 이… 연약하기 그지없는 아이에게도 언젠가 피냄새가 진동하는 전장에 두 다리로 서서, 적을 제거하기 위해서 살의를 불사를 날이 찾아올 것이라고. 그렇게 예상은 했었다. 이렇게 불현듯 찾아오리라고는 짐작도 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연민, 어쭙잖은 동정은 아니었다.
실전적인 걱정이다.
“유감이군요.”
커맨더는 비토리오의 말은 무시하면서 루이즈를 향해 말했다.
“과연, 네가 허무의 사용자라고 하더라도 적의 앞에 서서 정신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 말에 앙리에타가 발끈해서 외쳤다.
“루이즈는 병기가 아닙니다!”
“물론. 그렇소. 그렇기에 걱정하는 거요.”
커맨더의 말이 맞았다.
차라리 병기로써 기능하게끔 만들어진 인간이라면, 예를 들면 그들의 눈앞에 서 있는 검붉은 핏빛 갑옷을 입은 초인들이라면 그들이 적들의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고 싸울 수 있을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적을 제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인류의 전사들이니까. 그러나 이 가련한 소녀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핑크빛 머리카락을 지닌 가느다란 팔 다리의 자그마한 여자아이는 숙명을 타고 났다.
적을 쓰러뜨려라.
시조의 기도서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커맨더는 운을 떼었다.
“지금은 기다리거라.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미뤄두지 않는다. 제국 해군의 용기 있는 병사들의 크나큰 희생에도 불구하고,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는 생존했다! 그런 초유의 괴물은 오직 스페이스 마린만이 제거할 수 있음이야. 인간의 적을 제거하는 것은 오직 우리들만이 할 수 있는 일. 너 같은 꼬마 계집이, 우리들의 과업을 대신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챕터의 모든 형제들….”
그는 자신의 주인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 황제폐하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커맨더는 전장의 상황을 굽어봤다.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
죽음을 원하는가. 짐승아.
너와 내가, 그리고 여기 있는 모두가 달려갈 궁극적인 파국을 원하는가. 그러나 그것이 너의 의지일까. 하이브 마인드라는 거대한 정신체에 매달려 있는 빈약하기 한량없는 존재로써 너의 몸에 매달려 있는 그 어떠한 일부도 인간 단 하나의 위대함에 비할 바 없는 미천한 짐승이여.
놈은 죽음을 원하여 이리로 찾아왔다.
커맨더는 가소롭다고 생각했다. 그 지역은 현재 제국측이 제공권을 확보한 지역이다.
“마텔루스. 궤도 폭격을….”
그 때였다.
아마겟돈 선내 전체에 비상령이 발령되었다.
온 선내에 비상등이 켜지고 붉은 빛이 감돌면서 각 부서의 대원들을 급하게 찾고 있는 가운데, 마텔루스가 비명을 지르듯 커맨더에게 소리쳤다.
“커맨더! 지근거리에 워프 반응입니다!”
아마겟돈의 반응은 빨랐다. 이 자리에 있는, 스페이스 마린을 제외한 모두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아마겟돈의 승조원들은 미끄러지듯 함을 움직였다. 평소에는 가속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는 아마겟돈이었지만, 지근거리로부터 워프 반응이 감지되었다는 보고에 마치 추락이라도 할 듯이 휘청거리며 움직였다. 무엇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회피기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 거대한 강철 구조물이 집 따위가 아닌 배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절감하는 루이즈 일행이었다. 그리고 워프 반응 후, 공간을 찢어발기며 나타난 것은 그들의 경악과 예상을 뛰어넘은 불가해의 공포였다.
[워프로부터 타이라니드 함선 도약 확인!]
그리고 그들이 조우한 것은 절망의 화신이었다.
거대한… 짐승이었다.
그것을 생물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거대한 짐승이리라. 커맨더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씻어도 눈앞에 자리잡은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짐승의 크기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단단한 껍질 아래로 근육이 맥동하는 것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놈은 분명 ‘배’였지만 그 안에는 용골 대신에 거대한 뼈가, 그리고 윤활유 대신에 피가 돌고 있을 것이다. 타이라니드의 단일 의지를 실고 우주를 누비는 미증유의 재앙은 아마겟돈을 치어버릴 듯 자리 잡은 채로 세상을 부정하듯 자리잡고 있었다.
어느 승조원이 절망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하이브 쉽입니다!]
“커맨더!”
마텔루스가 커맨더를 불렀지만 그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어째서 여기에? 오늘만 세 번째 하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커맨더는 질문이 의미 없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겼다. 타이라니드가 눈앞에 나타났고, 우리는 죽일 뿐이다. 저 굼뜬 제국 해군들도 타이라니드 하이브 쉽의 등장에 전율하며 움직이기 시작했건만. 인류를 지키는 검이자 황제의 의지인 스페이스 마린… 자신들이 눈앞의 괴물에 움츠러들 수는 없었다.
그들은 그럴 수 없는 존재였다.
“총원 전투배치! 하이브 쉽을 향해서 모든 포화를 퍼붓는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하이브 쉽은 모험을 하지 않는다.
화력으로만 놓고 보면 제국 해군의 화력은 그야말로 월등하다. 현재 이 주역에 포진하고 있는 제국 해군은 하이브 함대와 일대 결전을 벌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놀랍게도 현재는 하이브 쉽 홀로 모습을 드러냈다. 커맨더는 전의보다 의구심이 앞섰다. 어째서 여기 있냐고. 네 번째 하는 질문이었다.
포문이 하이브 쉽을 향했다.
“사격!”
빛줄기가 하이브 쉽을 덮친다.
그러나 하이브 쉽은 아마겟돈의 공격이 마치 가소롭다는 듯이 고고히 자리 잡고… 커맨더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타이라니드 하이브 쉽은 제자리에 붙박여서 블러드 레이븐에 대한 보복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놈의 거체가, 세상을 모조리 덮어버릴 듯이 거대한 생물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 초현실적인 광경은 모두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근육과 핏줄로 맥동하는 생물은 할케기니아 행성의 열권으로 접어들면서….
하이브 쉽이 저궤도까지 강하하고 있었다.
“놈이 설마 캐필러리 타워에…!?”
“아직까지 타이라니드가 행성을 흡수할 만큼 오염이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대체 어째서 강하를….”
마텔루스의 말이 옳았다.
하이브 쉽이 대기권까지 강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침공이 어느 정도 진행된 다음의 일이다. 그러나 최근 타이라니드의 활동은 뜸했고, 이는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가 상당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놈의 등장과 더불어 하이브 쉽이 완전한 공세를 펴기 위해서… 말도 안 된다. 그렇다면 타이라니드의 지상 전역을 지휘하기 위해 하이브 마인드의 단일 의지와 연결된 지휘관,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를 두어야 할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현재로써 하이브 쉽의 의도를 알 수는 없었다. 조만간 확인될 것이지만.
그리고 또 다른 사태가 벌어졌다.
[커맨더. 다시 워프 반응이 관측되었습니다.]
“지원병력인가!?”
[아닙니다.]
마텔루스는 패널을 들여다보고는 새로이 나타났다는 워프 반응이 대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루이즈를 바라봤다. 그러나, 루이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커맨더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눈짓으로 마텔루스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테크 마린은 헬멧을 뒤집어 쓴 채로, 울리는 저음으로 침통하게, 커맨더에게 고했다.
“또 다른 워프의 파동입니다. 루이즈 프랑소와즈, 그리고 갈리아 전역의 등대 반응과 동일합니다.”
커맨더는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위치는?”
“이 위치는… 레콩키스타 수괴, 올리버 크롬웰이 사망한 위치와 얼마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알비온 대륙 사우스고타 지방 피난민 수용지역과 북서쪽 10킬로미터 거리입니다.”
그리고 커맨더는 일전의 브리핑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놈들의 소탕은 임페리얼 가드에게 맡긴다.’
놈들. 타이라니드를 의미하는 말. 하이브 쉽은 지근거리에 있고 당연한 말이지만 워프의 진동은 하이브 쉽 가장 깊숙한 곳에서 도사리며 온 세상의 타이라니드를 조종하는 단일 의지, 하이브 마인드도 눈치 챘을 것이다. 눈치 채지 못하길 바라는 것은 너무 많은 기적을 바라는 염치없는 일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많은 일이 한꺼번에 벌어지고 있었다. 인간이 칼날을 갈고 닦고 필사의 반격을 준비하고 있을 때, 타이라니드는 마치 기만하듯이 놈이 감추고 있던 발톱을 꺼내들고 이빨을 들이댔다.
“하이브 쉽이 워프 공간으로 돌아갑니다.”
어째서 여기에 왔던 거냐…!
커맨더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이브 쉽은 워프의 균열을 찢고 일그러뜨리며 그 안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하이브 쉽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놈이 남긴 것은 분명히 있었다. 저궤도까지 강하하면서 밀려난 대기와 워프의 어둠이 묻어있는 축축하기 그지 없는 음습한 악의 기운.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이브 타이런트 알파의 위치.
그리고 임페리얼 가드 주공부대 주둔지로 향하는,
거대한 포자.
그것은 이미 포자라기보다는 하나의 생물로써 온전한 수송선과도 같았다. 대체 무엇을 담고 있기에 그렇게나 거대한 것인가. 스크린에 비쳐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전율을 금치 못할 것이었다. 붉게 타오르는 포자가 대기를 뚫고, 그 아래에 자리 잡은 모든 이에게, 분명한 죽음으로써, 강하하고 있었다.
낙하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드랍 포드의 강하를 준비한다.”
커맨더는 담담하게 지시했다.
“목표 지점은 알비온 대륙, 워프 진동이 계측된 곳이다.”
“알겠습니다.”
“사이러스의 귀환을 준비하라. 썬더호크를 출격시켜.”
드랍 포드의 조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커맨더는 포자로부터 드러난 거대한 장송곡을 눈에 담아두고 있었다. 거대한 먼지구름과 일그러지는 대기, 비명, 죽음….
임페리얼 가드 주공부대의 전열 한 가운데에서 온 할케기니아에 재앙을 가져올 존재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흐릿하고 깨지며 일그러지는 화면 너머로도 그 불길함을 엿볼 수 있다.
가차 없는 죽음.
놈은 경외 받아 마땅할 것이다. 커맨더의 전율을 이끌어냈으니.
거의 산등성이 하나에 육박하는 거체. 크게 굽은 허리. 흙먼지 사이로도 드러나는 거대한 이빨. 찍어 누르면 그 어떤 인간의 전차조차도 일격에 짓뭉개버릴 수 있을 듯한 육중한 발톱.
재앙의 대지에서 일어난 괴물의 이름은,
“히에로펀트….”
타이라니드의 바이오 타이탄이었다.
whatever you 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