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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 사인! 이 정도면 크리쳐 SF 전략의 대표일 듯…]


새벽에 두서없이 쓰는 주전부리 삼은 잡담입니다. 뭔가 말하고는 싶은데, 정리가 잘 안 되네요. (취중이라서 그런가…)

가만히 보면,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끄는 실시간 전략 게임은 대개 SF 쪽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직도 큰 인기를 끄는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나 한때 최고의 게임으로 기대를 모았던 <슈프림 커맨더>, 생소함이 인기 비결인 것 같았던 <워해머>, 그리고 (성공이든 실패든 간에) 최근에 가장 큰 화제로 올랐던 <적색경보 3>까지 도마에 올랐던 실시간 전략 게임들은 대개 SF에 치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밖에는 밀리터리에 치중한 작품들도 많았지만, 그리 큰 줄기를 이어가진 못하고 금방 사그라든 듯 싶고요. 때로는 <워크래프트 3> 같은 판타지 게임이 게임 중계 등에도 나온 적이 있지만, 사실 게임 자체가 재미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죠. 어디까지나 <스타크래프트>의 제작사인 '블리자드'의 이름값이 작용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보면, 과거 한창 실시간 전략 게임이 태동할 때도 <커맨드 앤 컨쿼>, <KKND>, <듄 2> 등 SF 장르가 주류를 이루었죠. 판타지 게임이라야 <워크래프트 : 오크와 인간> 정도가 기억에 남습니다.

뭐… 사실 저는 실시간 전략 게임을 잘 못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SF 게임들이 단편적으로 기억에 남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클럽에 올라오는 글을 주로 보다 보니 다른 장르의 실시간 전략이 있다는 걸 모르는 걸 수도 있고요. 클럽에는 SF쪽 게임들 이야기가 많으니까요. 예전에는 3대 PC 게임 잡지라고 하던 잡지들도 두루 섭렵(?)하고, 나름대로 견문을 넓힌다고 했었는데, 요즘에는 먹고 사는 데 바빠서 그런지 눈 앞의 게임들 밖에 안 보이네요. 하지만 종종 대형 매장에 들러 게임 패키지를 구경하다 보면 판타지 실시간 전략 게임을 구경한 적이 별로 없는 듯합니다. 개인적인 무지로 치부하기엔 판타지 전략 게임이 너무 안 보였다는 거죠. 판타지 전략 게임이 안 나온 건지, 아니면 나왔는데 별 인기를 못 끈 건지 알 수야 없지만, 여하튼 인구에 오르지 못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외국에서야 사정이 다를 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건 어디까지나 국내 사정입니다) 양산 온라인 게임들이 대개 판타지인 것을 보면, 역시 실시간 전략(과 FPS)는 SF, 롤플레잉은 판타지가 대세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흠, 기실 최초의 실시간 전략이었던 <듄 2>는 SF, 최초의 롤플레잉이었던 <던전스 앤 드래곤스>는 판타지였으니까요.

진짜 전략가들에겐 SF냐, 판타지냐 하는 구분이 별 의미가 없을 겁니다. 사이보그가 레이저를 쏘든, 엘프가 활을 쏘든 중요한 건 효율을 살리는 쪽으로 전략을 짜고 운영해 나가는 것이니까요. 특히나 설정/세계관 문화에 별 관심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게임의 설정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닐 겁니다. 국민 게임이라는 <스타크래프트> 설정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걸요. 유명 게임 해설자라는 사람이 프로토스의 사이언 에너지를 마나 운운하는 걸 보면 속내야 뻔하죠. 게다가 SF를 기반으로 했다고 해서 그 게임이 꼭 대단하란 법도 없습니다. 국내 모 감독이 꾸준히 우기는 것과 달리, 그리고 일부 팬덤에서 경전처럼 믿는 것과 달리 SF라는 장르는 벼슬이 아닙니다. 똑같은 SF 게임이라고 해도 천양지차로 갈릴 수 있습니다. 다만, 유닛을 디자인하거나 스토리를 꾸미는 데 설정을 기가 막히게 잘 반영했다면,  SF 실시간 전략으로서 점수를 줄 여지가 있겠죠. 개인적으로 설정을 전략에 잘 반영한 게임으로 <듄> 시리즈를 꼽는데, '샌드웜'이란 크리쳐를 등장시켜 플레이어가 임의의 변수에 대처하도록 꾸몄기 때문입니다. 플레이어끼리의 대결이 아닌, 이처럼 중립 변수가 등장하는 전략 게임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샌드웜이 나오지 않는 극지방 환경을 중심으로 게임했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옵니다. 음, 로망을 몰라도 너무 몰라요…)

개인적으로는 판타지보다 SF 쪽을 좋아하기는 합니다. 뭐랄까, SF가 추구하는 외삽법… 그러니까 외적 설득력이라고 할까요. 판타지가 내적 설득만 하면 그만인 데 반해서 SF는 세계의 기준이 우리 시점과 엇비슷한지라 더 매력이 있거든요. 다만, 공학 쪽에 관계있는 우주선이나 로봇 등은 잘 모르고, 크리쳐나 미지의 동물 쪽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SF 실시간 전략에 등장하는 진영은 대개 최첨단 문명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SF 실시간 전략이 나와도 그리 큰 관심이 안 가더라고요. 때때로 <워해머>에 나오는 타이라니드처럼 생체 병기가 나와서 전차나 로봇 등을 썰어버리는 작품도 있기야 합니다만. 아직까지 실시간 전략에서 유닛으로 등장하는 것들은 기계가 많습니다. 사실 총탄과 폭발물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제아무리 맹수라고 해 봤자 동물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생체 병기가 나온다고 해도 상당히 특수한 임무에만 쓰이거나 혹은 가벼운 정찰/전초전에만 쓰이고요. <적색경보 3>에 나오는 연합군 돌고래나 소비에트 군용 불곰이 좋은 예죠. 그래서 (실시간 전략을 할 만한 실력도 안 되거니와) SF 전략 게임이 나와서 멀찍이서 바라만 보는 때가 많았습니다. 이번에 나온 <적색경보 3>도 구입하려고 했는데, 돌고래나 불곰 같은 정찰용 유닛 몇 개가 마음에 든다고 패키지 하나를 구입하는 것도 우스울 것 같아 망설이는 중입니다.

판타지 전략 게임이 SF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저런 크리쳐들이 주력 병기로서 보다 많이 등장한다는 겁니다. 판타지에 나오는 군대라야 대개 뻔한 수준인 엘프 궁수 부대나 오크 도끼 부대가 전부라서 보다 큰 효과를 주기 위해 크리쳐를 도입하거든요. 공중 타격 부대로 와이번이 나온다든가 크라켄을 잠수함처럼 쓴다든가, 하는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기억하기론 예전에 나온 <토탈 어나힐레이션 : 킹덤즈>가 이런 쪽으로 꽤 유닛 디자인을 잘 했습니다.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도 신화 속의 각종 괴물들을 유닛으로 등장시켜 쏠쏠한 재미를 봤고요. (거대 물고기인 레비아탄이 무려 생체 해상 운송으로 나오기도…) <워크래프트 2>에서도 거대한 거북이 잠수함 격으로 나와 엘프 구축함이나 놈 잠수함을 격침시키는 게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는 동물이기에 침몰시킨 구축함의 선원을 잡아먹는 동영상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실시간은 아니지만, 저 유명한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에서도 드루이드가 각종 동물을 소환해 군대 유닛으로 쓰거나 그리폰이 나와 활약을 하는 등 크리쳐의 비중이 꽤 컸습니다.

만일 저보고 SF 실시간 전략 게임을 하나 만들라고 하면, 크리쳐가 주력으로 등장하는 게임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구체적인 밑그림이야 없지만, <듄>처럼 야생 짐승이 전략에 영향을 주는 식으로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네요. 물론 그 야생 짐승을 다룰 수 있는 (프레멘 같은) 유닛도 한두 개 있으면 좋겠죠. <적색경보 3>의 돌고래도 좋지만, 크리쳐(동물)의 비중이 너무 작아서 크리쳐 SF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너무 많을 것 같거든요. 그렇다고 크리쳐가 꼭 샌드웜처럼 외경스럽고 불가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크기가 어떻든 간에 전략에 영향을 주면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그 크리쳐를 죽여야만 중요한 자원을 얻을 수 있다든가, 크리쳐 서식지를 파괴해야 보급 기지를 건설할 수 있다든가, 하는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거기다 <엠퍼러 : 배틀 포 듄>에 나오는 프레멘 페다이킨처럼 크리쳐를 조종해 적을 기습하는 전략을 펼치면 꽤나 깨지 않겠어요. (이러나 저러나 결국 샌드웜 수준에서 못 벗어나는군요) 여하튼 중요한 건 크리쳐 SF 전략이라는 건데, 자꾸 샌드웜 이야기만 하는 걸 보면 크리쳐 SF 전략이라는 게 그만큼 수가 적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외국에서조차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한 번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홈월드>에서 생체 우주선이 나오는 것도 생각해 본 적 있습니다)

사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SF 전략이라는 것과 크리쳐란 건 쉽게 어울리기 힘든 면이 있지요. SF 전략이라면 대개 기계 병기 위주일 테니까요. 혹시나 크리쳐가 중요 요소로 나오는 SF 전략 게임이 있다면, 어설픈 실력이라도 한 번 해 보고 싶기도 합니다. 드문 만큼 설정도 아마 독특할 테고, SF는 아이디어 위주로 흐르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그런 게임을 한다면, 게임을 하는 즐거움 외에도 설정이나 이야기를 짜는 데도 분명히 도움이 될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