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라이터 (창작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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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괴물은 전투기를 쫓아 대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대로는 교차로로 이어졌는데 3면에서 포위 공격을 하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나는 노을빛을 반사하며 대로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던 전차들을 기억해냈다.
폐허가 된 거리로 생존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병사들을 따라 대로로 나왔다. 저 멀리 뛰어가는 괴수와 그보다 더 먼 곳에서 전차의 포신이 불을 뿜는 모습이 보였다. 포위 공격이 시작된 것 같았다.
병사들은 긴장을 풀지 않고 임시 막사로 향했다. 여기저기 널 부러진 시체 조각들과 핏줄기 사이로 소형 괴물이 쓰러져 있었다. 역사로 진입한 괴물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 작은 몸뚱이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기다란 촉수가 있었는데 그 끝에는 낫 모양의 날카로운 것이 달려있었다. 한 병사가 생각 없이 그것에 손을 댔다가 손가락 다섯 개가 모두 날아갈 뻔 했다. 다행히 깊은 상처를 입는 정도로 끝났지만 그것의 예리함은 그저 '예리하다' 라는 형용사로 표현 가능한 정도가 아니었다.
멀리서 위생병이 뛰어와 그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부사관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통신 장비를 집어 들었다. 그는 마이크 건너편의 누군가와 대화를 주고받더니 이내 소리쳤다.
"Y1 집결지로 이동한다! 10분 내로 준비 완료!"
나는 얼떨결에 그들을 도와 막사를 해체하고 장비를 날랐다. 하늘에서 헬기소리가 들렸다. 도보를 통해 험비와 차량들도 도착했다. 뒷정리를 증원 부대에 맡기고 나는 병사들 사이에 끼어 어딘가로 이동되었다.
헬기에 앉아 멀어져가는 광경을 보았다. 괴물과 군대는 아직도 교전 중이었다. 솔직하게 놈을 하루에 두 번이나 눈앞에서 본 입장으로는 그 단단한 껍질을 단순히 포탄만으로 깰 수 있을지 회의가 들었다.
역이 멀어짐에 따라 여기저기 괴물의 발자국과 박살난 포대와 전차,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헬기가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내 생에 지금까지 한강에 그렇게 많은 배가 떠 있는 적을 본 적이 없었다. 여러 대의 배들이 서치라이트로 한강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끊어진 다리가 보였다. 낮에 한강으로 추락한 지하철의 나머지 부분을 인양하는 작업이 실시되고 있었다. 괴물이 뭍으로 올라간 지금에서야 인양 작업을 시작하는 듯 했다.
저 멀리 반 토막 난 63빌딩이 보였다. 번쩍이던 건물은 이제 잔해더미가 되어 고속도로와 한강을 뒤덮고 있었다.
다수의 전투 헬기가 우리를 지나쳐 전투 현장으로 날아갔다. 우리는 강기슭에 설치된 임시 지휘소에 도착했다.
괴물이 강 건너편에서 날뛰고 있어서 그런지 반대편인 이곳은 생각보다 평안했다. 약간의 긴장감은 느껴지지만 불안과는 거리가 먼 기분이었다. 밝은 한강 저 너머로 번쩍이는 불꽃을 볼 때마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막사 안에 설치된 여러 개의 작은 모니터들은 각기 다른 방송사의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괴물과 일본 근해의 대지진과의 연관은 그럴듯했다. 대지진으로 말미암아 생긴 지각의 틈새에서 맨틀 내 마그마에 서식 중이던 괴물이 사출되었다. 마그마의 고온과 지하의 고압에도 견디는 괴물의 외피를 단순한 화력으로의 제압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화염방사차량의 공격에도 끄떡없이 요리조리 움직여대는 괴물의 모습을 담은 영상은 그 이론을 뒷받침 해 주었다.
그 외에는 동해에서 대기중이던 군함들이 갑자기 사라진 뉴스도 있었다.
시민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저기 불이 켜진 아파트와 건물들, 조깅하는 사람들, 모든 것이 몇 시간 전까지 아비규환이었던 곳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겨우 강 하나를 끼고 있는 상태인데도 말이다.
나는 막사에서 나와 산책로를 걸었다. 현장에 파견되어 있던 장교는 현재 한강 남쪽으로의 진입로는 통제되고 있으니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아마 내일은 강의가 없겠지.
한강을 따라 꽤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고 있었다. 조깅하는 사람 몇 명을 빼면 이제 주위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중형 배 한척이 내 옆을 따라 윙 소리를 내며 질주하고 있었다. 나는 배를 보았고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아챘다. 배 뒤편으로 생기는 물살은 중형 배가 만들어 내기에는 턱 없이 컸는데 마치 배가 무언가에 거대한 것에 걸려 끌려가는듯 한 모습이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산책로를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배는 수면을 벗어나 공중으로 부양하더니 그대로 물속으로 사라졌다. 커다란 물보라가 일었고 나는 거대한 무엇인가가 어둠에 덮인 강에서 강변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근처를 배회하던 헬기가 그것을 향해 서치라이트를 비췄다.
그건 그냥 검은 덩어리였다. 뒤따라 올라온 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난 거대한 타르 덩어리가 지상을 덮친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둥글고 기다란 그것의 머리 부분은 초코바를 연상시켰다. 그것이 고개를 져었는데 머리로 보이는 부분의 양쪽에 달린 둥그스레한 구멍 같은 곳이 도드라졌다. 찐득찐득한 점액이 그곳을 막고 있었다. 이내 그것은 지상으로 한 발자국 더 움직였다. 침착한 군인들이 괴물에게 발포하기 시작했다.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는데 괴물의 머리 양쪽에 달린 구멍에서 점액이 길게 늘어지더니 공중에서 배회하던 헬기를 잡았다.
"깡-!"
프로펠러가 점액과 맞부딪치더니 쇳소리와 함께 무엇인가가 내 쪽으로 날아왔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그것을 피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것과 함께 나뒹굴었다. 그것은 부러진 프로펠러 조각이었다. 시체들은 깔끔하게 썰린 채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TV에서의 이론대로라면 그것도 고온고압을 견뎌낼 정도의 점액이니 보기보다 강도가 약하진 않을 것이다.
헬기를 저 멀리 던져버린 괴물은 이제 군인들을 향해 점액질을 내뱉었다. 내 앞에 있던 한 병사가 점액에 걸려버렸다.
"으아아악-"
나는 눈앞에서 본 점액의 정체에 기겁했다. 그것은 단순히 타르같은 물질만은 아니었다. 보기만 해도 아주 위험해보였다. 게다가 검고 기괴한 점액질 안에서 무엇인가 허연 것들이 꼬물대고 있었다. 그것들은 병사의 신체가 점액에 파묻히자 피라미처럼 달라붙더니 병사의 신체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허연 것들이 달라붙지 않은 신체도 서서히 녹아들어갔는데 검은 점액질이 신체를 녹여 흡수하는 듯 보였다. 이내 병사는 머리끝까지 파묻힌 채로 끌려갔다. 마지막에 본 병사의 표정이 잊혀 지지 않을 듯 했다. 파먹혀가는 눈으로 애원하는 그의 표정이.
괴물 놈은 정신없이 인간들을 점액으로 끌고 가서는 구멍속으로 박아 넣고는 다시 검은 점액을 내뿜었다. 아마 꾸역꾸역 먹어놓고는 안에서 소화시키는 모양이었다. 저 괴물의 내부는 아마 점액으로 가득 차 있는 듯 했다.
점액이 빠른 속도로 먹이를 낚아 챌 때마다 점액의 경계에 몰려있던 하얀 것들이 관성을 이기지 못해 점액 밖으로 툭툭 떨어져 나왔다. 마치 작은 흰 거미같이 생긴 그것들은 여기저기로 흩어지며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나에게도 한 놈이 튕겨 날아왔다. 내 옷에 묻은 그것은 내 얼굴을 향해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으아악-!"
나는 기겁하며 온몸을 털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 가지 않아 툭하고 터지더니 죽어버렸다. 아마 점액을 벗어나서는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병사들에게 이끌려 주위 사람들과 반대편으로 피하기 시작했다. 이미 하늘에서는 전투기 여러 대가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최전선에 화력을 집중하느라 기갑 병력이 하나도 없던 이곳은 전멸 직전이었다. 몇 시간 전의 데자뷰랄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민간인의 대피가 끝난 직후였지만 지금은 대피고 뭐고 불의의 습격을 당한 것이기에 통제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놀라운 점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는 놈들이 있다는 정도였다.
숨이 가빠졌다. 전투기 편대가 저 멀리서 날아 오는게 보였지만 역시 별 효과는 없을 것 같았다. 더 나쁜 상황은 그 직후 벌어졌다. 한강 속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촉수에 전투기 두 대가 추락했다. 불꽃을 뿜으며 굉음을 내던 전투기들은 다리에 충돌해서 차량들과 날아가거나 민간 아파트를 덮쳤다.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몸에 불이 붙은 사람들이 목숨 걸고 뛰어서는 한강으로 뛰어들었다.
저 멀리서 무엇인가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실루엣만으로 보기에 그것은 땅위에 피어나는 꽃봉오리 같았다. 초고층 빌딩만한 촉수 네 개가 달려있는 것만 뺀다면 말이다. 그것은 분명 반대편 기슭에 접해 있었으나 그것이 휙-하자 무엇인가 훅-하더니 이쪽에 있던 아파트촌이 후두둑-하더니 박살나 버렸다. 실로 크고 단단한 무엇인가가 머리 위를 훔치고 갔다는 느낌이었다. 아마 복싱을 한다면 이런 느낌을 받지 않을까. 물론 복싱은 꽃봉오리 괴물이 휘두르는 거대빌딩만한 촉수에 얻어맞을 일은 없지만 말이다.
"코드-레드! 코드-레드!"
한 무전병이 긴급하게 소리쳤다. 헬기와 전투기들이 속속들이 격추되고 있었다. 이제 제공권까지 뺏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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