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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톰크로우, 에가시 번즈-

20대.

SEDA 소속 전투전문요원.

내전이 한창이던 동유럽 모국에서 탄생, 여차저차 세계 이곳저곳으로 전쟁을 피하나 마치 전쟁이 스토킹하듯 따라옴.
결국 현재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전투를 겪어본 전투 스페셜리스트.
무기나 차량 모두에 능하다.

어렸을 때부터 키우던 까마귀 두 마리를 아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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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악!"

 

 닉은 박격포탄의 파편을 피해 뒹굴었다. 이미 배달용 차량은 IED를 맞고 장렬히 사망하셨고, 남은 운송 수단은 두 다리 뿐이다. 예전에는 꽤 훌륭한 모습이었을 시가지는 이미 폐허로 변한지 오래였다. 그나마 배달물이 멀쩡해서 다행이었지만 이걸 과연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이러다가는 닉의 목숨 자체가 좀 심각하게 위험하다.

 

 닉이 다니는 국제택배회사는 철저하고 완벽한 배달이 모토다. 프리미엄만 내면 어디든 배달하는 회사라는 광고가 연일 TV를 때려댔고, 정말로 이 회사는 무엇이든 아무데나 배달하곤 했다. 그게 무기던 폭탄이던 방사능 덩어리던 간에 말이다. 꽤 위험한 곳도 얼마든지 배달할 수 있다고 자랑하던 레인저 출신 특수택배원 닉도 이번 건에서는 슬슬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전쟁터 한가운데라니, 이건 말도 안된다.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와 닉의 귀를 스쳐지났다. 닉은 재빨리 엄폐물을 찾아 건물 폐허 속으로 숨어들었다. '호신용' 소총으로 총성이 난 곳에 위협사격을 해보지만 총성은 끊기지 않았다. 간신히 안전해 보이는 구덩이로 몸을 피한 닉의 네비게이션은 아무 의미 없는 지도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쟁 전에 만들어진 지도는 콩가루가 된 도시에서는 아무런 쓸모도 없다. 30분 만에 거리 하나가 사라지는 판이다. 닉의 생명줄은 오로지 위성 전화기 하나 뿐이었다. 마침 지나가려던 엉성한 다리는 아까 날아온 포격에 고철쪼가리로 변했다.

 

 "길이 또 끊겼는데요. 어떡하죠?"

 

 [지금 어디라고 하셨습니까? 거기 뭔가 위치를 알 수 있는 표식 같은게 없어요?"

 

"그런건 없고요. 무슨 돼지가 맥주를 든 간판이..."

 

 [그럼 거기서 기다리세요.]

 

 그걸로 전화는 끊어졌다. 그나마 지금까지 고객의 안내로 간신히 살아서 다가갈 수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인 모양이다. 저 멀리서 장갑차와 민병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아까 총성을 듣고 위치를 찾은 모양이었다. 닉은 숨을 멈추고 소총을 쥐었다.

 

"이쪽으로 와요."

 

 막 닉이 한 명을 겨눈 참이었다. 뒤에서 누군가 닉의 목을 잡아 끌었다. 갑자기 잡아당기는 통에 뒤로 벌렁 넘어진 닉은 갑자기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보이는 땅굴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사라졌다. 아무래도 의뢰인이 직접 나선 모양이었다. 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땅굴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개를 돌린 닉과 방탄복을 입고 완전무장한 의뢰인의 눈이 마주쳤다. 예상외로 평범하게 생긴 젊은이였다. 옷만 제대로 입으면 길거리에서 농구나 하고 있을 생김새다. 닉 자신도 완전무장 했다는 걸 빼면 그냥 택배원처럼 생기긴 했지만.

 

"에가시 번즈 씨 맞으시죠? 맞으시면 여기 싸인해주세요."

 

 닉은 배달부라는 본업을 잊지않고 볼펜과 전자배송장을 내밀었다. 의뢰인은 재빨리 서명하고 포장을 뜯었다. 사실 닉도 지금까지 자신이 목숨을 걸고 배달한 상자가 무엇인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닉이 아는 건 꽤 묵직한 물건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다. 하지만 프라이버시 원칙에 따라 의뢰인이 배송장에 서명할 때 까지는 이걸 뜯을 수 없었다. 의뢰인은 진지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고 내용물을 꺼냈다. 통조림이다.

 

"왠 통조림입니까?"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닉은 조심스럽게 의뢰인에게 물었다. 의뢰인은 대답대신 통조림을 뜯었다. 어디선가 까마귀 두 마리가 날아와 통조림 안에 들어있던 물고기(아마 꽁치)를 맹렬한 속도로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요즘 얘들이 입맛이 없는 것 같아서요. 인터넷에서 보니까 이걸 주면 잘 먹는다던데 정말이라 다행이네요. 블로그에 추천상품으로 리뷰해야지."

 

 느긋한 의뢰인의 말투에 닉은 울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레인저 훈련을 받으면서도 운 적은 없었는데.

 

 "아, 맞다. 이거 사은품으로 발톱갈이 횃대 준다던데 혹시 안 가져오셨어요?"

 

 닉은 결국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삼치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