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라이터 (창작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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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첫날은 쓰라렸다. 조용히 앉아있었다. 대신이 조약에 결국 서명했다. 천년사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저들이 보여준 위협 앞에서, 결국 우리는 왕을 잃었다. 왕을 지키지 못했다. 우리의 하늘이 무너졌다. 이제 하늘 안와 하늘 밖은 본격적인 소통을 시작할 것이다. 그게 하필 새해 첫날이라니, 첫날이라니.
해방동맹이 최후통첩을 보내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연말연시로부터 한달 전이였다.
그들이 요구한 바는 항상 같았다.
왕을 없앨 것, 의회를 설치하고 하늘 밖 고문들을 받아들일 것.
천하의 관리들이 격분했다. 조정의 대신들이 분노했다. 왕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준 위협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매일 낮에는 전국에서 위협을 막아낼 방도를 찾았다. 매일 밤에는 중신과 왕이 모여 대책회의를 열었다. 나는 왕실의 일을 기록하는 의무를 진 서기로서, 모든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의 흐름은 똑같았다. 먼저, 해방동맹에 가담한 불충자와 반도들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 다음 순서는 대책을 고민하는 것이었다. 원자탄을 날리자, 자폭부대를 보내자. 그러다가 한 노신이 한숨을 내쉬며, 이런 사태가 생긴 원인을 짚어나갔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하늘 밖에 있었다. 하늘 밖의 사람들과 교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 삶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었다. 놀라운 장난감과 마술을 부리는 물건들에 매혹되어, 국고에 쌓인 곡식으로 지불하는 것도 모자라, 백성들에게서 세곡을 지나치게 거두게 되었다. 사상공농, 네가지 계급으로 천하를 나누고, 천년을 평안히 다스려왔다. 우리의 공인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농민들은 대금을 지불하느라, 등이 휠 지경이었다.
기름 없이 달리는 차가 도로를 달렸다. 영구전지는 수은 전지를 쫓아내었다.
불황과 실업, 가난이 천하를 가득 덮었다.
그리고 공화주의가 들어왔다. 만민은 평등하다. 이 모든 가난은 모두 왕과 그 신하들 탓이다. 빈자는 폭도로 변하여 관아를 습격했고, 관군과 반도들이 충돌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했다. 상황은 계속 악화되었다. 소위, 해방동맹이라는 멸왕滅王기구가 창설되었다. 해방동맹에는 하늘 밖 사람들이 고문 자격으로 눌러앉았다. 그들은 하늘 밖의 무기를 빌렸다. 관군도 하늘 밖의 무기를 빌렸다. 다행히도, 하늘 밖도 여러 갈래로 대립하는 것이다. 우세한 관군은 결국 해방동맹의 수뇌부를 하늘 밖으로 쫓아내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숨을 돌리며, 빌린 무기를 조금씩 반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왕은 하늘 밖과의 교류를 금지했다. 현명하신 결정이었다. 이 일이 모두 하늘 밖과 소통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 아닌가. 우리에게 무기를 빌려준 하늘 밖 사람들은 화를 내며 모든 무기를 가지고 하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해방동맹이 위협을 계속 보내왔다. 우리는 대부분을 묵살했다. 생각해보지도 않은 것이다. 최후통첩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대한 쓰레기가 하늘 밖에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막을 방도가 없다.
결국 우리는 굴복했다. 왕께서는 사라지셨다. 당신의 땅을 지키려는 것이었으리라.
왕이 사라져 혼란스럽던 우리는 천년사직을 내주고야 말았다. 동맹은 확고부동한 서류를 원했다. 옛 사직의 대표들이 서류를 완성하러 떠났다. 충성된 모든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
나는 왕이 진정으로 사라지는 날은 서류가 완성되는 날이라며 고집을 피웠다. 노신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젊은 나를 데리고 갔다.
신년 초일을 맞은 조인식장에서는 소동이 있었다. 노신 몇몇이 계속 서류를 찢었다. 그들은 억류당했다. 결국 마지막으로 남은 대신이 옥새를 들었다. 그는 눈물을 흘렸다. 저 도장이 마지막으로 효력을 발휘하리라. 나는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배탈을 핑계로 화장실로 향했다. 조용히 변기에 앉아있었다. 두엇이 더 들어왔다. 그들이 떠들었다.
“드디어 공화주의의 세상이 왔군.”
“그래, 드디어 고향에 가는 거야.”
“금의환향이로구만.”
“오늘이 우리 시간으로 언제지?”
“가만 있어봐, 음, 마침 새해 첫날이로구만.”
“이야, 새로운 시대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데?”
나는 조용히 앉아있었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들 말처럼 마침 새해의 초일이었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날 아닌가. 대신이 조약에 결국 서명했다. 천년사직이 무너졌다. 고개를 들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세해 첫날에 왕을 잃었다. 신년 초일에 왕을 지키지 못했다. 새로운 해가 뜰, 우리의 하늘이 무너졌다. 이 무슨 우연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