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라이터 (창작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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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쉔 리엔 씨, 증상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 보죠. 잠이 잘 안온다고 하셨지요?"
쉔은 머리를 흔들었다. 의사는 몇번을 설명해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잠은 잘 와요. 그건 문제 없어요 선생님."
"그러면 악몽이라도 꾼다는 것인가요?
듬성듬성한 갈색머리 뭉치가 귓가에 애절히 달라붙은 대머리 의사는 희멀건하게 색이 바란 푸른 눈을 들어 쉔 뒤의 벽을 바라본 뒤 다시 시선을 내렸다. 이번에는 가슴쪽이다. 불편한 기분이 든 쉔은 무릎 위에 올려 두었던 가방을 살짝 들어올렸다. 가슴이 깊게 파인 옷을 괜히 입은 것 같다.
"아니요, 악몽은 아닌거 같아요. 아마 제 생각에는 그런 건 악몽이 아닐거에요. 어떤 의미로는 악몽이긴 한데. 뭐라고 해야할지..."
의사는 코를 긁었다. 코에 눌린 자국이 있는 걸 보니 평소에는 안경을 쓰고 다니나 보다.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인데, 쉔은 하필 이런 의사를 소개해준 남동생이 원망스러웠다.
"계속 설명해 보세요. 정확하게 설명해야 제가 치료를 하던가 말던가 하지 않겠습니까?"
의사가 몰아붙이듯 말하자 쉔은 당황했다. 쉔은 수줍어서 남들과 말하는 걸 겁냈다.
"저, 저기, 그러니까, 제가 꿈을 꾸면 한 가지 꿈만 꿔요. 무슨 내용이 있는 꿈도 아니고, 그냥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 누워있는 꿈이에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요. 그냥 어둠 속에 아무 생각 없이 계속 누워 있는 거에요. 몇년 동안 계속 그랬어요."
그제서야 대머리 의사가 컴퓨터에 무언가를 느릿느릿 입력하기 시작했다.
"다른 특별한 건 없습니까?"
쉔은 자신이 생각하는 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잠깐 고민하다가 빠르게 말을 뱉어 냈다.
"아, 그래요. 저, 저는 제가 이미 잠들어 있다는 걸 알아요. 꿈에서요. 자면서도 제가 잔다는 걸 알고, 또..."
"좀 또박또박 좀 얘기해요. 알아듣지를 못하잖아요."
의사가 짜증을 내자 쉔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 저기, 저, 죄송합니다. 그럼 천천히 말할게요. 저기 있잖아요 선생님. 저는 꿈을 꾸면 그게 꿈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어둠 속에서 계속 가만히 있게되는 거에요. 몇 시간이고 계속 그렇게 꿈속에 있다는 걸 깨달은 채로 잠에서 깨는 거에요."
지나치게 또박또박 말하러 애쓰느라 이상하게 들리는 쉔의 말을 들으며 키보드를 두드리던 의사가 눈을 슬쩍 치켜뜨며 물었다.
"자기가 꿈이란 걸 아는채로 꿈을 꾼다 이거죠?"
"네, 그러다가 잠에서 깨게되요."
정신과 의사가 신경질적으로 손으로 코를 문지르자 쉔도 불안불안한 얼굴로 의사를 바라봤다.
"자각몽이라는 겁니다. 자신이 스스로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면서 꿈을 꾸는 거죠. 자각몽이 이런식으로 오래 지속되는 사례는 본 적이 없습니다. 흠,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오세요. 혹시라도 약물같은 걸 복용하는 게 있습니까?"
쉔이 약물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아, 아뇨. 없어요. 일주일 전에 감기 때문에 두통약을 먹긴 했지만 그게 다에요."
대머리 의사는 잠시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더니 사형선고라도 내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 아래에서 처방전 받아가세요. 수면제인데, 이런거라도 먹으면 괜찮을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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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들었다. 약은 꽤 효과가 훌륭했다. 먹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수면제는 단순히 잠이 들게 만들었을 뿐이지 정작 중요한 일은 하지 못했다. 꿈은 그 어두운 아가리를 벌리고 쉔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꿈이 다시 시작되었다. 마치 어두운 우주 속을 유영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무리 허우적 거려도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쉔은 어둠 속에서 눈을 감았다. 평소처럼 꿈이 깨길 기다릴 뿐이다. 길디 긴 어둠 속에서 다시 세상 속으로 나오길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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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꿈이야?"
남자친구는 양배추 셀러드를 우적우적 씹어먹으면서 쉔에게 말을 걸었다. 쉔은 여기저기 널려있는 남자친구의 옷을 세탁바구니에 집어넣었다.
"응. 또 그거야."
깔끔하게 접시를 비운 남자친구는 쉔의 세탁바구니에서 점퍼를 꺼냈다. 대충 적당히 옷을 골라잡은 남자친구를 배웅했다.
"오늘 운수회사 두 곳이 연대파업한다고 해서 바쁘니까 못돌아와. 내일 올거야."
인사도 없이 그걸로 끝이다. 쉔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오늘은 비번이니 부족한 잠이라도 보충해야 할 모양이었다. 쉔은 좁은 소파에 웅크려 누워 눈을 감았다. 또 꿈이 오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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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끝없는 어둠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평소처럼 어둠으로 시작해서 어둠으로 끝나겠지. 소리없는 한숨을 내쉬어본다. 제발 이번만큼은 빨리 끝나주길 빌어본다. 마음 속으로 시간을 세어보았다. 전혀 의미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 말고는 없었다. 이번에도 꿈은 그렇게 끝날것만 같았다. 갑자기 눈이 아팠다.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눈을 가리게 될 정도로 강한 빛이다. 한참이 지나서야 쉔은 자기가 어디 있는지를 간신히 깨달았다. 이번 꿈은 달랐다. 불안하다. 두렵다. 익숙한 어둠이 아닌 새로운 자극이 정말로 두렵다.
빛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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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일리, 저번에 구해낸 그 여자말이야. 아직도 이상해?"
"응,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어."
"그러니까 의식은 가사상태에 돌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생명유지장치에 들어가버린 거잖아. 30년 동안이나 감각 박탈 상태로 지내야 했다고. 미쳐도 할 말 없지 뭐."
"음, 그게 골떼리는데 말야. 가사장치가 작동하기는 해서 육체적으로는 전혀 늙지 않았거든? 근데 구하고 나니까 아예 정신적으로 다른 인간이 튀어나온거야."
"뭐야 그게."
"그러니까 사람이 바뀌었다 그런말이지. 구조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았는데, 예전에는 매우 차갑고 똑부러지는 사람이었데. 하긴 심우주 탐사선 타는 연구원들이란게 태반은 다 그렇긴 하지만 말야. 그런데 조난당하고 30년만에 구조되고 나니 동료가 전혀 다른 인간이 되었다 이거지. 자기를 시청에서 근무하는 여자 공무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니까."
"우와, 어떻게 그렇게 되냐? 미친거잖아."
"그게 재미있는 건데, 그 여자 구출되니까 처음에는 자기가 지금 자각몽을 꾸고 있다고 착각하더라고."
"뭐? 웃기는 여자네?"
"30년 동안 일상에 있다는 꿈을 꾸던 거야. 잠깐 꿈에서 깨어나면 어둠 밖에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견디려 한거겠지. 꿈을 현실로 생각할 정도로 정교하게 꾸게 된 걸거야. 그 심리학자들이 뭐라고 하더라? 자기 방어 기제?"
"근데 그게 말처럼 쉽냐? 꿈이 그런식으로 꾸게되면 누구나 밤마다 하늘을 날게?"
"생각해보라고. 30년동안 할 수 있는 게 꿈꾸는 것밖에 없던 여자야. 연습하다보면 그렇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
"아무튼 간에 그 여자 지금은 어때?"
"좋지않아. 뭐, 회복되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굉장히 힘들다더라고. 뭐 그렇기도 하겠지. 30년 동안 꾸준히 쌓아올린 게 송두리째 무너졌으니까."
"30년 동안 꿈만 꾼다라..."
"할만한 일은 안되지."
"그러게."
삼치구이
그나저나 30년동안 꿈을 꾸다니, 육체적으로 늙지 않았어도 뇌의 피로가 심대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