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치구이 공작소(ROOKI1의 WORKSHOP) - 작가 : rooki1
이미 세상은 소규모 지옥으로 변해있었습니다. 길은 완전히 막혀있고, 운전자들은 뛰쳐나와서 분노와 절규를 토해냅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 드리는데요. 청소부 기지가 있는 곳은 서비구 탈랙 4가 입니다. 사고 현장이 탈랙 6가니 얼마 안 가면 정신 나간 인공수들이 깽판을 벌이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뜻이죠. 더군다나 잠시 후면 정신 나간 청소부도 둘이 늘어나 있을 겁니다. 빌딩에 난 널찍한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았지만 여기서는 현장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애꿎은 보안군을 붙잡고 화내는 사람들은 잔뜩 있죠. 아무래도 저도 나가야만 할 분위기입니다.
미스트레스와 릴은 제가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는 사이에 벌써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따끔거리는 목을 쓰다듬은 뒤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아무래도 영문도 모르는 채 목이 졸려 죽을뻔하긴 했지만, 굉장히 부족한 미스트레스의 설명과 제가 유추한 내용을 합쳐보자면 결론이 병아리모이만큼 정도나마 기어나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에도 제가 독박을 쓸게 뻔하다는 거에요.
“저기 학생, 여긴 민간인은 들어오면 안되거든? 부탁이니까, 저~기 구경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진압하는 거나 보고 있어. 알았지?”
현장에는 이미 도시 보안군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적당히 안으로 들어갈만한 틈을 찾는 저를 보안군 한 명이 밀쳐냅니다. 분노한 운전자들을 포함해 수많은 구경꾼들이 이 사실에 항의하고 있군요. 사람들의 벽 사이에서 본 현장의 모습은 소음과 진동으로 가득합니다. 제 발 아래까지 전해져 오는 소음은 분명 평범한 소음이라 말하기는 상당히 심각했습니다. 마치 건설기초를 다듬을 때 지반을 두들기는 망치처럼 무지막지한 소리와 진동이 전해져 옵니다. 쿵. 쿵. 쿵. 꽤 규칙적인 느린 세 박자로 울려 퍼지는 진동, 아무래도 난동이라 해봐야 상황이 그리 거칠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이건 마치 뭐랄까… 아까 말한 그대로 땅을 다지는 기계소리 같달까요. 물론 그 기계와 땅 사이에 불쌍한 사람 하나가 껴 있으면 일이 심각해지겠습니다만, 보안군들의 얼굴을 보니 끔찍하다기 보다는 난감하다는 표정입니다. 음음, 어쩐지 남 일 같지가 않군요. 저는 한숨을 일발 장전한 뒤 청소부 등록증을 내보이며 조용히 경찰 저지선을 넘어갔습니다.
“릴, 늦었어요.”
비즈는 조용히 웃으며 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차림이 좀 경악스럽습니다. 바로 여자 보안군 차림입니다. 팔면 몇몇 인간들에게는 꽤 비싸게 먹힐 그거입니다. 저 멀리에서는 보안군 높으신 분 같은 사람과 미스트레스가 무언가를 싸바싸바하는 중입니다. 저는 불길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반장, 오늘도 안색이 안 좋네?”
“어제도 알바하다가 사고 터져서. 별거 아냐. 맨날 있는 일이니까.”
앞 자리에 앉아있던 친구 미슈가 고개를 돌려 묻습니다. 지금은 쉬는 시간, 오늘도 학교는 평범합니다. 평범한 친구들에, 사소한 문제, 일상의 평온함. 참으로, 정말 참으로, 제 인생의 유일한 휴식기입니다. 애들이 어서 수업시간이 끝나 집에 돌아갔으면 한다는 건 언제나 불가사의입니다. 저의 경우 수업시간이 끝나면 기다리는 것은 대체적으로 사건과 방긋거리는 비즈의 미소뿐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꿈도 희망도 없습니다.
오랜만의 재충전시간을 가장 슬기롭게 보내는 방법은 일단 최대한 즐겨보는 겁니다. 자신을 평범한 학생이라고 자기최면을 걸면서 앞으로 닥쳐올 슬픔을 최대한 무시해보려는 거죠. 가령 반장이 되어 학급에 충실하며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학업에 열심히 매진하는 좋은 녀석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네, 매우 긍정적인 방법입니다.
“정말 얼굴 색이 좋지 않아 보여요.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에버니군.”
다 너 때문이잖아. 누구 때문이겠냐. 누가 이렇게 무리하고 싶겠냐. 그래요. 저것도 왜인지 모르겠지만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처럼 휴식욕이냐 학구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시간에 저 없이 세계에 파괴와 슬픔이나 흩뿌려도 되겠지만, 왜인지 저를 따라다니며 제 걸레가 된 신경을 괴롭히는 비즈입니다. 담임선생님도 어느 정도 사정을 아는 분이셔서 비즈가 시야에 잡힐 때마다 창백해지십니다. 비즈가 만일 제 유일한 휴식처마저도 뭉개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작두 타는 하루하루를 보내야 합니다. 비즈야 건강이 약해(우웩) 자주 조퇴하는 신비롭고 친절한 여자아이 같은 컨셉을 취하고 있지만요.
하지만, 정말 세상에는 좋은 면도 있는 법입니다. 사람이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이 있어요. 예를 들어볼까요? 가령 이런 거에요. 생일 선물을 주면 진심으로 감사해주는 이성친구요. 그래요.
“릴, 저기 어제 준 선물 있잖아… 정말 고마워. 미안해 릴, 어제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아, 아냐, 잘못한 건 나야. 영화보다가 갑자기 뛰쳐나갔잖아.”
“괜찮아 릴. 일 때문인 걸? 벌써 그렇게 중요한 일을 한다는 게 조금 질투하고 싶다니까?”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조그맣게 쿡쿡 웃는 여자아이. 곱슬거리는 금발 아래에는 안경 뒤에 숨겨진 푸른 눈이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 아이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것 같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야 제가 알 바 아니죠. 비즈라면 상관 있지만, 비즈도 이런 사생활적인 부분은 전혀 신경 안 쓰니까요. 사실 그런 무신경함 때문에 난데없이 데이트 중에 호출 받기도 하지만요.
“시실로, 사용법은 알겠어?”
“응, 얘가 말해줬어. 이름은 쀼다라고 하기로 했어.”
시실로 메이헴. 그래요. 저는 이 아이를 좋아합니다. 쿨하다더니 시크하다는 게 취향인 사람들은 그 쪽으로 가라고 해요. 저는 시실로에게서 절로 나오는 따스한 온기를 좋아합니다. 그저 곁에 있기만 해도 느껴지는 온기를 사랑합니다. 시실로가 제 선물로 받은 모자를 만지작 거리자 모자가 ‘쀼다’ 정도로 들리는 귀여운 소리를 냈습니다. 평범하게 생긴 오렌지색 빵모자입니다만, 귀여운 눈과 입이 달렸죠. 사실 이건 그냥 모자가 아니라 인공수입니다. 머리 위에 얹어두면 건강상태라던가 컨디션 같은 것도 알려주고 네비게이션도 해주는 거죠. 가만히 방바닥에 놔두면 빨빨거리며 이리저리 쓰레기들 먹어치우기도 하고요.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비싼겁니다 저거. 물론 제가 선물이 비싼 거라고 생색낼 멍청이도 아니지만요. 사실 이게 뭔지도 설명하기 전에 끌려갔지만요.
“시실로, 오늘 저녁 시간 있으면 같이 저녁 먹을래?”
“응! 저기 릴, 내가 싸고 맛있는 곳 찾았는데 같이 갈래?”
“하아, 오늘도 뜨거우시네.”
미슈가 멍청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있다가 멍청하게 끼어듭니다. 멍청한 놈은 멍청하게 입이나 다무세요.
어제의 실례를 벌충해야 합니다. 그게 당연한 거죠.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일단 조금이라도 더 시실로와 함께 있는 거에요. 그게 더 중요해요. 제가 그러고 싶어하니까요.
[부웩, 부웨엑, 부웨에에엑]
“뭐야, 아직도 그 역겨운 벨 쓰고 있냐?”
멍청한 미슈, 지는 만화영화 주제가를 벨소리로 쓰면서 저런 소리를 하고 있군요. 그런 생각을 하며 무심코 디지캐스터를 열자 거친 남자 목소리가 쟤 귀를 덮칩니다.
[릴 에버니! 오늘 오후부터 일 있는 거 알지! 오늘 지각하거나 그러면 가만 놔두지 않겠어!]
저도 모르게 디지캐스터를 떨어뜨릴 뻔 했습니다. 서둘러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봅니다. 비즈가 자기 디지캐스터를 열고 맹렬한 속도로 타자를 치고 있습니다. 무심코 눈이 마주치자 비즈가 빙그레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망할 것. 저게 타자를 목소리 변환기에 처넣어서 전송하고 있는 겁니다. 문득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얼굴을 돌리니 시실로가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도 같이 못 있는 거야?”
안돼, 제발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
“할 수 없지 뭐. 그럼 다음에 가면 되니까.”
다행히도 시실로가 웃어주었습니다. 아, 살았습니다. 사실 살아도 산 건 아니지만요. 비즈의 조용한 눈길이 느껴집니다.
한숨을 내쉬어보았습니다.
“바보, 그렇다고 진짜 가냐?”
눈 앞에 있는 깡통을 걷어차본다. 남자라는 건 다 바보가 분명해. 이제 하늘은 어둑어둑하다. 오랜만에 중학교 친구들과 만나서 떠들다 보니 긴 초여름 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친구들끼리 나눈 이야기는 비슷비슷했다. 드라마 이야기, 각자 학교 씹어대기, 기타 등등. 하지만 나만 다르다. 나 혼자 내 남자친구가 얼마나 멍청한지에 대해 구구절절이 늘어놓았으니까. 모두가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항상 헤헤 웃으면서 애들 돌봐주는 순둥이 시실로 메이헴이 화내는 모습은 보기 힘든 모습일거니까. ‘귀한 거니까 사진 찍어야 된다고~.’ 그래, 귀하고 말고.
“쀼다~”
머리에 얹혀 있던 쀼다가 걱정스러운 소리를 냈다. 내 뚱한 표정을 본 모양이다. 나는 머리에서 쀼다를 벗어 안았다. 그렇긴 해도. 선물이 귀여우니 봐줄까? 다시 한번 릴의 새빨개진 얼굴을 생각하며 웃어보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확실히 난 릴이 좋은 모양이다. 릴의 향기는 달다. 다른 누구에게도 맡은 적 없는 섬세한 향기, 조금이라도 흔들면 깨져버릴 것처럼 연약한 향기가 간신히 흐르고 있다. 딴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가게 앞이다. 지금 맡을 수 있는 건 뜨거운 국물, 그리고 국물을 앞에 둔 사람들의 삶의 냄새뿐이다.
“엄마, 나 왔어.”
오가는 사람들로 바쁜 뒷문으로 냉큼 부엌으로 들어간다. 엄마는 커다란 솥에서 뜨거운 국을 국자로 퍼 그릇에 담고 있었다.
“시실로, 도나는 지금 막 퇴근했으니까 빨리 옷 갈아입어.”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릇을 올려둔 쟁반을 가리켰다. 나도 블레이저만 벗어 옷걸이에 걸어둔 뒤에 앞치마를 입고 쟁반을 들어 식당으로 날랐다. 엄마가 싱긋 눈웃음을 날린다. 초여름 저녁에 순대국밥을 먹는 심정은 순대 국밥집 딸내미로서도 잘 이해가 안가는 일이긴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 집은 여름에도 손님이 끊기질 않는 편이다.
“와, 공주님 납셨네?”
들어가자 마자 터져 나오는 반가운 목소리들은 단골 손님들의 것이다. 방긋방긋 웃으며 인사에 일일이 대답해준다.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모두가 우리 손님일 뿐이다.
“시실로, 포장한 것 좀 가져가. 저기 주차장에 있는 빨간 트럭이야.”
몇 번 바쁘게 부엌과 식당을 왕복하다 보면 이렇게 포장주문도 온다. 미리 디지캐스터로 주문을 하면 차가 도착한 뒤에 포장한 음식을 재빨리 내어가는 식이다. 국밥이 포장된 비닐 봉투를 들고 잠시 살펴본 뒤에야 엄마가 말한 빨간 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스크림이 그려진 카고트럭이 하필이면 가장 눈에 안 띠는 주차장 구석태기에 콕하고 박혀있다.
“순대국밥 2인분 포장입니다.”
밝게 웃으며 트럭에 다가갔지만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의아해서 잠깐 운전석을 바라보니 뒤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뒤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별 생각 없이 트럭 뒤로 가보니 카고 문이 열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순대국밥 나왔는데요?”
그리고 그것을 봐버렸다. 그것을 앞에 둔 남자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았지만, 내가 훨씬 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놀랐다기 보다는…
“아, 젠장. 아까 먹었던 게 얹혔나 보네. 야, 어때 그건 좀 괜찮…”
굵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등 뒤에 누군가가 서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래도 뒤 쪽에서 들려온 목소리도 놀라버린 듯 하지만, 내 앞에서 굳어있는 남자보다는 훨씬 반응이 빨랐다. 등 뒤에서 커다란 손이 내 목덜미를 붙잡더니 거칠게 트럭으로 집어던졌다. 내가 비명 지를 새도 없이 그 커다란 손은 아직도 얼어있던 조그만 남자를 빼내고는 트럭 문을 잠가버렸다. 머리를 심하게 부딪쳤다.
트럭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린 뒤에야 깨달았다. 아마도 납치당한 모양이다. 깨질 것 같은 아픔이 머리를 엄습한다.
시실로가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디지캐스터도 받지 않았고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수업 시간 내내 그 생각만이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선생님께 여쭈어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업 시간이 끝나자 마자 담임 선생님이 저를 찾아와 인적이 뜸한 학교 뒤편으로 불러내셨습니다. 불길하기 짝이 없게도 비즈도 함께입니다.
“저기 얘들아. 너희에게만 특별히 이야기할게 있어.”
선생님이 신경질적으로 안경을 고쳐 쓰는 모습에 저까지 불안해 집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너희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인데. 어 그러니까 청소부니까 말이야.”
왜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건진 모르겠지만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기분나쁘게 싱글거리는 비즈의 얼굴이 짜증을 가중시킵니다.
“시실로가 실종됐어. 아무래도 납치인 것 같아.”
잠깐 눈을 감아봅니다. 받아들이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런거라면 차라리 짜증나는게 나을듯 합니다.
삼치구이
청소부이야기 끝난겁니까...
절단마공이 절륜하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