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후. 엘리네프 고궤도 섹터. CVR-701 <Colossus> CIC.
  “035-341 제자리 선회! 4, 5번 열 주포도 최대속사 포격으로 적함에게 견제시켜! 부관! 아직 적함대에서 나오는 적기는 없는 건가!? 만약 3분 안으로 계속 저런 전투 대형을 유지한다면 호위 구축함들도 전투에 임하라고 해! 초고속 탄은 이쪽에서 받아낸다고.”
  칼은 적들의 움직임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미 이쪽 전선에선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치고 박고 싸우는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적측에서 봐주고 있다는 느낌, 아니…. 묘하게 시간을 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비장의 카드 하나만을 낼 타이밍을 노리고 있다고 봐야 될까.
  하지만 무엇 때문에?
  적들은 분명 뭔가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을 노린다는 말인가. 행성에 있는 수십억의 강습병력들? 아니면 여기 있는 대규모의 연합 함대? 물론 둘 중 하나가 타격을 입게 되면 이 강습작전은 완벽한 실패가 된다. 하지만 하나라도 그 병력의 규모로 인해 실패할 가능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칼은 잠잠하게 적함대의 움직임을 분석하며 무엇에 대한 것을 노리는지 알려고 했다.
  그러던 도중 칼은 행성 표면과 연결되어 있는 통신 채널에 자연스레 시선이 갔다. 아까부터 내용들이 심각해진 분위기였다. 대충 듣기로는 ‘벌떼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 같았는데 이런 보고는 다른 지역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보고되고 있었다.
  “통신관. 강습기동대 통신 채널 좀 연결해보게. 스크린 4에 문장 나열형식으로 말이야.”
  “전환했습니다.”
  통신관의 말과 동시에 전투정보실 오른편에 있던 스크린 하나의 화면이 바뀌며 각 채널별로 분할된 화면에서 온갖 문장들이 쉴 새 없이 나열되기 시작했다. <콜로수스>의 AI가 통신 채널에서 들리는 모든 음성들을 자동으로 변환하고 있었다. 칼은 문장들을 읽어 내려가면 갈수록 표정이 점차 굳어갔다. 그와 동시에 이그라스 레이더를 담당하고 있던 부관 하나가 소리쳤다.
  “대령님. 행성 표면에서 방해 전파의 대규모 방출이 탐지되고 있습니다! AI에 의하면 앞으로 20초 내로 표면에 있는 강습병력들과 통신이 두절될 것입니다!”
  레이더 스크린과 통신 중개 채널이 하나 둘씩 블랭크 상태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칼은 다급하게 말하였다.
  “함대 사령부는 이미 그런 것도 예상해 뒀던 상황이잖나? 포격지원 함대에 좌표 지원해서 방해 전파 발원지만 쓸어버려! 적함대가 노리는 건 아군 함대의 명령 체계를 흩트려 놓는 걸꺼라고. 우리 쪽에서는 일단 전선만 유지한다! 부관. 항공관제소 연결시켜!”
  분명한건 적들은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이건 아마 이 작전이 끝난 후에 증명 되리라. 직후 메인 스크린의 화면이 분할되며 항공관제소장의 모습이 나왔다.
  “레플린입니다.”
  “편대 현황 보고해.”
  “네. 현재 빌리 웰링턴 소령은 이미 알파 편대를 이끌고 적함대를 견제하고 있고 사일러 렉싱턴 소령이 이끄는 호위 전투 편대는 출격 대기 중입니다. 아까 전 항공갑판에 기술적인 문제로 강습수송편대에 약간의 시간이 지연된 상태이며 현재까지 수송편대는 전체 탑재기의 83% 가량이 이륙했습니다. 이미 수송을 끝마친 기체들은 찰리 포인트로 향했습니다.”
  좌, 우현 항공갑판에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은 다행스럽게도 꽤나 양호한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장님이 10미터 떨어진 과녁에다가 돌을 던지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행성 전체에 반을 뒤덮은 두터운 구름층은 이제 전략적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통상 레이더나 아래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통신 채널은 이제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 블랭크 상태가 되어있었다. 이 말은 이제 어떤 수단으로든 행성 표면과 연락할 수 있는 방도가 없어졌다는 의미가 되기도 했다.
  칼은 처음엔 이 점에 대해서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30초가 지나고, 1분이 지나고, 5분이라는 시간이 더 지나자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시간을 지체하게 되면 밑에 있는 보병들만 피를 보게 된다.
  “레이더 발원지가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표면 전체에서 오차 범위 5킬로미터 이상으로 발원지 개체가 행성 전체에 걸쳐 교란되고 있습니다!”
  이젠 정말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던 것이다. 이건 단순히 레이더 발원지를 찾아 박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차 범위 5킬로미터. 그것은 병력수송대의 강습 좌표를 절묘하게 일치시키는 위치였다. 게다가 행성 전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언제 어떻게까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건 2급 기밀 이상에 해당하는 정보가 호루스의 손에 넘어간 게 확실했다.
  “대령님! 146 함대에서 전투기 지원 요청입니다.”
  146 함대라면 아까 강습을 모두 끝내고 궤도 폭격에 들어간 함대였다. 아무래도 그들은 짧지 않은 시간동안 연락이 끊어지자 여러모로 당황한 게 분명했다.
  “저놈들 재정신이야?”
  “방위 023 003! 거리 120에서 적 함대의 포격을 감지했습니다. 탄도 추적 AI의 계산 결과 8초 내로 역장에 도달할 것입니다!”
  “아주 기다렸다는 듯이 나오는군! 혹시 모르니까 호위구축함장들한테 공격권에 접어들면 명령 기다리지 말고 발포하라고 전해.”
  칼은 차분하게 말했지만 12억분의 1로 축소된 레이더 스크린을 순식간에 횡단하는 호루스의 초고속 탄에 대해 잠시라도 한눈 팔 틈이 없었다. 매초당 15~20만 킬로미터로 날아온 적탄은 120만 킬로미터의 거리를 단 1분 만에 주파하며 WAMD 시스템에 의해 펼쳐진 역장에 작렬했다.
  직후 <콜로수스>의 외부 관측 카메라에 붉은 색과 푸른색이 불규칙하게 섞인 강렬한 섬광이 잡혔다. 어떤 원리인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많은 수의 포탄들을 막아내는데 완벽하게 저지한 것이었다.
  WAMDS이란 Wide Area Multiplex Defense System의 약자로 이리시스 제국의 기술이 최초로 연방군에게 도입된 것이었다. 본래 방어용 역장 발생기의 개념에서 한층 진화한 것으로 활용하기에 따라 무기가 될 수도 있는 역장이었다. 이 방어 시스템은 기존에 있던 5세대 군함에 탑재되어 있던 역장 발생기 대신 능동반응역장 발생기를 장착시켜서 같은 장비의 군함이 다수 모일 경우 사각이 존재하지 않는 광대한 영역의 역장을 발생시켜 보다 강력한 방탄력을 구현해낼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확실히 이 방어 체계는 기존의 것보다 한세대 앞선 기술이었으나 칼은 이게 <콜로수스>의 방탄력을 뛰어넘지는 못한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도 고작 일개 함선의 방어막이 저런 사기성 무기를 막아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나마 이게 앞선 것을 꼽자면 역장이 방어해낼 수 있는 범위랄까….
  덕분에 칼은 노토르인들의 기술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실감했다. 그는 통신 채널에서 들리는 각종 환호성들에 영향을 받거나 하지 않았다. 자신뿐만이 아니다. 이 배에 타고 있는 거의 모든 승조원들의 태도가 그랬다. 5달 전 호루스 함대의 태양계 침공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추격했을 때 이미 웬만한 상황은 다 겪지 않았었나.
  “146 함대장한테 알아서 해결하라고 해. 일단 총알받이는 우리가 할 테니까. 지들이 전투하나…? 뒤에서 한가하게 놀고 있는 주제에…. 시간 끌고 있는 동안 최대한이라도 폭격을 감행하라고 전해. 출격한 전투 편대들 귀환 명령 내리고 5,6번 공뢰발사관 장전시켜. 한 방에 한 구역씩 쓸어버린다.”
  <콜로수스>의 부함장인 케이스 에비게일 소령은 그리 놀라워하는 기색 없이 차분하게 칼의 명령에 따르기 시작했다.
  “예. 알겠습니다. 각 공뢰 착탄 좌표를….”
  “전탄 N-5 급 신성탄두 탑재시키고 1탄, 2탄 적 함대 대형 후방으로 거리 2천에서 지연폭발 시키고 3탄, 4탄은 밀집 대형에서 직격으로 폭발시켜. 그리고 나머지 공뢰는 대형의 밀집된 곳에서 15-0 킬로미터 정도 앞에서 폭발하게 조절해놔. 준비되는 즉시 발사시키고 빈 발사관들은 바로 장전시켜버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손해 볼 것 같은 상황. N-5 급 신성탄두는 폭발 순간의 파괴 범위만 해도 1000 킬로미터를 거뜬히 넘어갔다. 에비게일 소령은 칼의 의도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슬슬 전면전을 시작할 셈인가. 자신이 아는 그라면 예측하기 쉬운 직선적인 전술들보다는 온갖 트릭들을 동원해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전술들만을 추구했다. 적의 입장에서 상대하기 꺼려지는 지휘관 중에 하나라고나 할까.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무기 관련 부서의 장교들의 대화 량이 늘어나고 함 전체가 미세하게 떨렸다. 관성제어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뢰가 뿜어내는 추진력을 모두 이겨내진 못한 것이었다.
  삐익!
  “1~6번 공뢰 사출 완료. 자세제어기능 활성화 전까지 관성항행 유지합니다. 각 기능 모두 정상. 예상대로라면 10초 후 자체추진 시작합니다. 카운트. 10! 9! …4, 3”
  칼은 보고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분명 저 머릿속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낼 엄청난 양의 정보들이 정리되고 있으리라. 행성 표면과의 교신두절부터 지금 막 시작된 전투와 아군 함대간의 모든 교신 내용에 적 함대의 모든 움직임까지. 그리고 이 모든 정보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나중에는 마치 퍼즐조각처럼 맞춰지면서 최상의 조건에 해당하는 전술이 마침내 완성될 것이다. 이것은 에비게일 소령이 지난 몇 년간 그를 보면서 확실하게 느꼈던 점이었다. 다른 면에서 보면 그는 결국 초인이었다. 왜냐면 함대전술에 관해선 칼 어니스트라는 괴물을 능가할 존재가 없었으니까. 심지어는 그의 머리가 전술지원 AI의 그것을 능가했던 때도 종종 있었다.
  “1, 2번 공뢰 폭발까지 앞으로 9초 남았습니다. 3, 4번 공뢰는…. 아!?”
  폭발을 앞두고 있던 3, 4번 공뢰 2기가 레이더 스크린 상에서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다. 불발이라도 되버린 건가? 만약 적탄에 요격돼서 자동으로 폭발했다면 충격완충막에 즉각적으로 감지되었을 것이다. 약 4000 킬로미터 앞서 갔던 1, 2번 공뢰는 정해진 시간이 지나자 청백색 섬광과 함께 가공할만한 충격파를 뿜어냈다.
  “제 2탄 발사….”
  레이더 스크린을 묵묵히 바라보던 칼은 감흥 없는 표정으로 명령했다. 잠시 후 <콜로수스>의 함수 공뢰 발사관에서 차례대로 공뢰가 사출하자 호루스 함대는 <콜로수스>의 전술지원 AI가 예상했던 41개의 진로 중 8개의 코스로 산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32초 후. N-5 신성탄두가 탑재된 공뢰가 정해진 좌표에서 차례대로 대폭발. 적 함대가 있던 좌표에서 심각한 노이즈를 동반한 중력폭풍이 발생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육안으로 관찰할 수는 없었으나 레이더 스크린 상에서 나타나는 폭발의 충격을 대충 가늠해봤을 때 폭발반경 4천 킬로미터는 가뿐히 가루로 만들어버렸을 것이다.
  외부 관찰용 카메라에서는 온통 백색으로 가득찬 상태.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파괴적인 무기 중 하나로 손꼽히는 신성탄은 이론상 폭발 순간의 공간 내의 모든 것을 멸할 뿐만 아니라 동일한 좌표의 모든 평행우주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아직까진 증명할 방법이 없지만, 어찌됐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얘기였다.
  따라서 지금 저 폭발 진원지의 중심엔 이 우주에는 존재하지 않는 전혀 다른 원소들이 노출되어 주변과 극심한 마찰을 일으켜 본래 존재했던 것들은 깨끗하게 사라진다. 아주 오래전 ‘잊혀진 전쟁’ 때에 이리시스 제국군이 운용했던 것과 원리는 같았지만 현재 연방군이 운용하는 것의 위력은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었다. 게다가 한 5년 전쯤인가….
  군과학자들 중 몇몇은 이 신성탄의 원리를 뒤집어버리며 현존하는 최고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무기를 개발하는데 이르렀다. 효과를 증명할 방법은 없었다. 아무리 작은 규모의 실험은 하려고 해도 그 위력을 관측할 수 있는 기술력이 아직 지구인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험을 할 만한 공간 까지도. 예산 관계상 이 탄두는 지난 5년 동안 단 3개만이 제작되었고 그것들은 제작됨과 동시에 알티미리스 항성계의 어느 비밀기지에서 극비리에 건조 중이었던 한 함선에 조용히 탑재되었다.
  그리고 그 무기들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전 인류 중에 단 한명. 칼 어니스트 대령이었다.
  “…….”
  신성탄두의 어마어마한 파괴력에 의해 함대의 모든 통신채널은 발칵 뒤집힌 상태였다. 차례차례 다중광역방어체계를 구축해 나가던 많은 수의 군함들은 신성탄의 충격파가 지나가자 마치 EMP에 직격으로 맞은 컴퓨터 마냥 동력이 나가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다른 함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충격파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방탄막이 단번에 흩어져 버리고 함선의 동력은 예외 없이 나가버렸다.
  “어째 매뉴얼에서 자랑하던 숫자보단 더 과장된 느낌인데….”
  생각 외로 심각한 사태에 칼은 황당한 표정으로 일관하며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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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뭘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
항상 구성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지만 제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거기까진 도저히 손이 가질 않습니다. 전개 도중에 원래 쓰고자 했던 의도는 다 까먹는게 지금의 모습이니...
부족한 소설 읽어주셔 항상 감사드립니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