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은 방금 전까지 이곳이 드넓은 초원이었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궤도상에서 가한 폭격은 마치 유성우를 연상케 했고 그 막강한 위력보다 더 놀라운 것은 바로 포격의 정밀도였다. 몇 달 전 호루스에 의해 완파되어버린 <발키리>도 이런 정밀도를 가지고 있진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부상당한 소대원들의 통증을 최대한 줄여주며 델은 그동안 알아왔던 군사기밀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X7의 함선 시리즈 중 <발키리>보다 먼저 설계 작업에 들어간 <콜로수스>도 <발키리>와 동형의 포격 통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양산형 모델인 705 프로젝트 구축함에 탑재되는 것은 그보다 한세대 아래의 것을 쓰고 있었다. 제아무리 진보된 사격 통제 시스템과 광역 레이더 기능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이그라스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대기권 내의 불안정한 흐름과 습도를 모두 계산해두며 오차범위를 10미터 이하로 줄이며 폭격할 방법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약 이 존재가 포격 시스템의 자체적인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건 적들에게 아주 커다란 재앙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더라도 이건 좀 아니지 않는가?
  방금 전 지축이 뒤흔들릴만한 거대한 염력의 파동의 정체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몸에서 방출된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들어 있는 사념까지. 매우 익숙한 느낌에 델은 동족이 아닐까 싶어 고개를 들어 그 존재를 찾아봤으나 끝내 하늘에 떠있던 포탄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낙하하자 발생하는 충격파로 인해 그 계획은 무기한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 한방으로 인해 반경 2.5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땅덩어리가 울렁이며 함께 들려오던 사념까지 싸그리 지워졌기 때문이다.
  “소대장님! 방금 누가 폭격을 가한 겁니까?”
  대원 중 하나가 부상당한 전우를 응급조치하며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위생병은 아닌 것 같았지만 손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본대로부턴 아무런 정보도 없다. 일단 부상자 인원 파악해!”
  듣자하니 어째 위쪽에서도 난리가 난 것 같았다. 적군은 아니지만 아군 중 누군가가 함선을 이끌고 사전 경고도 없이 폭격을 가한 것이리라. 델은 부상당한 대원들에게 의도적으로 최면 상태에 빠지게 해서 그들의 고통을 최대한 줄여주었다. 지금 그들이 위치한 구획에서는 자신 말고도 다른 병력들이 잠복하고 있는 듯 했다. 본대에서는 그저 ‘몇 시간 내로 길이 열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곳을 장악하라.’라는 말 뿐이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분명 아까 그 염력의 주인공이 연관되어 있는 게 확실했다.
  “…… 엘런! 부상자들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가. 다른 대원들은 지시가 있을 때까지 분대별로 나뉘어서 매복 포인트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혹시나 대인 지뢰나 자동방어화기가 살아있을지도 모르니까 이 점 반드시 유의하도록!”
  소대장은 그 뒤로 분대장 몇몇을 불러내더니 개별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슬슬 뭔가를 준비하려는 모양이다. 이미 그의 능력 덕분에 델은 모든 계획을 엿들을 수 있었으나, 굳이 티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소대원들은 그의 명령이 끝나자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명령을 수행했다. 본대에서는 여전히 지시를 내리지 않고 있었다. 이 폭격으로 인해 작전에 차질이 생긴 건지 아니면 그쪽도 살짝 위험해진건지…. 그것까진 알 길이 없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본대지휘본부는 대기권 외곽의 한 전함의 내부에 위치해 있었다. 행성 방위 함대를 전멸시킨다면 직접 행성표면으로 내려와서 현장에서 지휘할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 작전의 상황은 위나 아래나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구름 속에서 간혹가다 번쩍이는 섬광과 미량의 방사능 덕에 머리가 지끈지끈 거렸지만 그는 마음 한구석에서 뭔가 찝찝함을 느꼈다. 특히 아까 그 염력을 구현시켰던 존재의 정체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생물학적으로 지구인들은 아직 염력을 쓰기엔 무리가 있었다. 간혹 가다 예외적으로 뮤턴트나 키메라 계열의 돌연변이가 태어나긴 했지만 이들은 인간이라기 보단 오히려 저능한 동물이라고 보는 쪽이었다.
  델은 아까 그 존재가 마지막까지 보였던 위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결국 소대장에게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원래부터 전투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통증 같은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기분대로 나빴다. 쳐다보자 소대장이 악을 빽빽 써가며 언성을 높였다. 신경이 다른 곳에 가있는 동안 꽤 많은 일이 일어났나보다.
  “병장. 정신을 어디다 두는 건가! 지금 여기서 신경을 곤두세워도 살아날까 의문인데 어따가 한눈을 팔고 있나!? 지금당장 분대장 쫒아가서 대기하고 있어! 1중대 신호에….”
  구오오오!!!
  잠시 빗소리가 잠시 주춤해졌다고 인식되었다고 여겨졌을 때 땅 속에서 마치 맹수가 포효하는 소리를 연상시키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뒤이어 초원 전체가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북하다 못해 오히려 섬뜩하게까지 들리는 괴음에 대원들 모두가 당황했다. 이런 괴성은 델도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그리고 저 멀리, 초원 끝자락에서 작은 동산만한 규모의 흙더미가 천천히 솟구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뭔가가 땅 속에 있었다. 아무런 사념도 전해지지 않는 이상은 이것을 생명체라고 여기긴 힘들었다.  대원들은 하나같이 자세를 낮추며 숨죽여 상황을 지켜보았다. 약간 거리를 벌려 떨어져 있던 다른 강습대원들도 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는지 섣불리 행동에 옮기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러던 도중….
  불모지로 변해버린 초원 한가운데가 순식간에 함몰되면서 거기에서 뭔가가 하늘을 향해 보라색 섬광을 뿜어냈다.
  콰과과광!!
  인간이 들고다닐 만한 무기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델을 비롯한 거의 모든 대원들은 섬광이 일어난 발원지로 조심스레 시선을 옮겼다. 지름이 500미터는 거뜬히 넘어갈법한 구덩이. 현재 자신이 보고 있는 위치 탓에 바닥이 얼마나 깊은지는 잘 몰랐지만 델은 그 속에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바짝 긴장했다. 그리고 한 2~30초가 지났을까….
  처음 땅 속에서 울려 퍼졌던 그 굉음이 이번엔 보다 고음으로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공포로 움츠리게 했다.
  구오오오오!!!
  ‘생명체…?’
  크레이터를 연상시키는 구덩이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기괴하게 생긴 거대한 다리였다. 일반적인 포유류가 아닌 곤충을 연상시키는 다리. 그동안 경험했던 것으로 비추어볼 때 저것의 정체는 자세히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리플렉터의 거대화.
  폭풍우 속에서 대략적인 윤곽으로 볼 때는 딱 그랬다. 거기에 생전 처음 보는 광선무기도 하나 추가. 소대장은 쉽사리 사격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만약 사격명령을 내린다고 해도 저것에게는 피해를 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겠지. 고작 1밀리미터가 살짝 넘어가는 레일건으로 뭘 어쩌겠는가. 그 점에 대해서는 델도 소대장의 생각에 동의했다. 이건 더 이상 일개 보병이 간섭할만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마치 동면에서 갓 벗어난 곰의 움직임을 연상시키듯 저 거대 리플렉터는 이쪽을 향해 그 거대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통신 채널 전체에서 비명과 욕설들이 난무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괴물체의 등장에 사령부도 발칵 뒤집힌 것이었다. 채널에서 들려오는 말로 보아 궤도폭격도 더 이상은 불가능한 것 같았다. 델은 저 리플렉터의 움직임을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그저 들키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주길 바랄 수밖에….
  하지만 그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상에 박혀있는 거대 리플렉터의 다리 관절 틈새에서 뭔가가 마구 흘러 나왔기 때문이었다. 델의 입 밖으로 절로 욕설이 튀어 나왔다. 수풀을 뒤덮으며 밀려오는 은청색의 파도. 이것은 곧 있을 대접전을 예고하는 나팔소리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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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의 연재속도.
매 화마다 연계되지 않는 이상한 전개 방식.
입대 날짜가 나날이 다가옴에 따라 제 정신상태도 점점 퇴화되는 느낌입니다. 항상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__)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