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흔의 전장 (목숨이 붙어있고 생활환경이 보장되는 한 연재는 계속됩니다.) - 08년 10월 27일 공군입대 합니다.
“조심해! 폭격이다!!”
슈우웅~~ 콰아아앙!!!
페드릭 일행은 갑자기 밤하늘이 환해지자 일제히 전진을 멈추었다. 비구름 속을 통과한 포탄들이 땅에 박기도 전에 폭발해 엄청난 양의 파편들을 흩뿌렸다. 얼핏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쏘는 것 같았지만 포탄의 착탄 지점은 마치 자로 잰 듯 아주 정확했다. 위력 또한 엄청났다. 거리를 대충 추측해볼 때 1마일을 훨씬 넘는 수준이었는데 지축이 요동칠 정도로 충격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기상 조건 속에서 저런 정확도를 자랑하는 궤도 폭격 시스템을 지원하는 연방군 함선은 몇 척 되지 않았다. 여러 요건들을 기준으로 분석해 볼 때 지금 저 위에서 궤도 폭격을 감행하고 있는 군함은 단 한척으로 줄일 수 있다. 페드릭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갔다.
“칼 어니스트. 저런 괴물 같은 인간 같으니라고….”
이런 명령을 내릴만한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위에 상황이 어떤지는 자신이 어떻게 알 수가 없었지만 그는 대충 그렇게 확신했다. 페드릭의 표정에서 공포라는 것을 읽은 벤젠은 조심스레 그를 쳐다보았다.
“대령님?”
“아, 미안. 저 녀석 생각하니 웃음 밖에 안나오네.”
“에?”
“일단 다시 가던지 허야것지? 어이 중사!”
사투리인지 뭔지 애매한 말이 끝나자 허버트 중사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여기서 400미터 가량 더 전진하면 밀림이 끝난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흠…. 그럼 2, 3팀 이끌고 2시 방향으로 가서 대기하고 있어. 시야가 좋으면 적들이 매복할 가능성은 적을 테지만 지금 여기까지 와놓고 이런 곳에서 아직까지 기습이 없는 것으로 보면 분명 내 말이 맞을 거야. 혹시나 생각지도 못한 무기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섣불리 몸을 드러내지 말도록….”
허버트 중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하들을 이끌고 가버렸다. 이제 자신과 같이 있는 대원들은 6명뿐이었다. 페드릭은 이후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계속해서 전진했다. 포격으로 인한 진동과 소리가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그들은 점점 더 전진속도를 높였다.
밀림 속에서 약 2분 정도를 가자 질리도록 봐왔던 밀림 배경이 적응이 되지 않을 정도로 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끝에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페드릭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세를 낮추며 허버트를 호출했다. 그러자 허버트는 대기 중임을 알리며 자신의 위치를 표시했다. 그들은 오른쪽 방향으로 약 400미터 지점에 매복하고 있었다.
대략 웬만한 도시의 배 이상 될법한 면적의 초원에는 계속해서 포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포탄 하나하나가 땅에 작렬할 때마다 거대한 불길과 함께 흙더미들이 치솟았다. 포탄의 위력으로 볼 때 분명 <콜로수스>의 하갑판에 달려있는 24.4인치 급 3연장 포에서 발사된 포탄이 분명했다.
“적들의 모습은 아까 이후로 단 한 번도 보이지 않네요. 대령님. 혹시 함정이라 생각하진 않나요? 일단 뭐가 보여야 싸우든지 말든지 하지….”
계속되는 포격 장면을 감상하다 지쳤는지 아이오와 벤젠이 제국어로 투덜거렸다. 어떻게 된 정신구조인지 그는 절대로 긴장을 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즐기고 있었다. 그의 말은 페드릭만 이해할 수 있었다. 나머지 대원들은 마치 기계처럼 페드릭의 명령에만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싸우고 싶으면 먼저 뛰쳐나가던가. 그리고 이 작전은 니들이 먼저 꺼낸 얘기잖아…. 지금 와서 자기 입으로 직접 함정이라고 하면 좀 웃기지 않냐?”
“…….”
벤젠은 페드릭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다른 대원들도 모두 공감하는 눈치였다. 한결같은 시선 덕분에 벤젠은 조용히 쭈그려 앉아 다시 포격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페드릭은 미동하나 없이 자세를 꾸준히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미안하지만 지금 이 위에서는 수많은 군함들이 적들과 전투를 하고 있어. 지금 저렇게 지원 포격을 해주는 것만큼으로도 우리 입장에선 축복이나 다름없다고. 정지궤도순항상태도 아닌 상황에 이런 기상조건 속에서 오차 없이 정밀포격을 가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신기해. 안 그래? 이해 안 되면 더 정성들여 설명을 해줄까?”
“…싫어요.”
“그래? 싫음 말고.”
“…….”
페드릭이 말을 끝내자 벤젠은 그의 몸속에서 끓어오르듯 발산되는 뭔가를 느끼고 내심 당황했다. 자신이나 다른 에스퍼가 지니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영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 중 하나는 염력이라는 힘이 물체의 제 5의 상태인 영체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능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장비로 얼마든지 염력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 까지도….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었다. 초능력이라는 것이 단순히 염력으로만 분류되는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현재까지 알려진 모든 생물들은 미세하게나마 염력을 다룰 수 있다는 것. 벤젠 자신은 분명 특정 원소의 염력만을 다루기 때문에 에스퍼라는 호칭을 받았지만 제국의 염력학회에서는 이말고도 다른 명칭들이 존재했다. 물론 대부분은 가설에 가까운 것뿐이었으나 극소수에 해당하는 몇몇 호칭들은 과거에 실존했던 초능력자들이 직접 지은 이름이었다.
“슬슬 시작해볼까!?”
그의 말과 동시에 벤젠은 주위 분위기가 갑작스레 조용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그 어떠한 바람도 불지 않았다. 뒤이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연방 언어를 외치며 자리를 박차는 페드릭의 모습을 보고서야 그는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지상에서 약 8~90미터쯤 떨어진 상공에 무수하게 떠있는 검은 물체들.
그리고 소대원들을 이끌고 어딘가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페드릭. 분위기에 이끌려 덩달아 따라가고 있는 자신까지.
교전을 예상했었지만 주위로는 그 어떠한 무기도 날아오지 않았다. 벤젠은 하늘과 페드릭을 번갈아 쳐다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돼.”라는 말을 연발하는 벤젠에게 페드릭이 말했다.
“저기까지 10초 남았다!”
솔직히 말해 그가 자신에게 한 말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는 짧게 어딘가를 가리켰다. 대충 시선을 쫒아가 보니 작은 규모의 웅덩이가 있었다. 총 지름이 9~10 미터 안팎으로 빗물이 고여 있었다. 무엇을 토대로 계산해둔건지 자세히 알지도 못했지만 벤젠은 본능적으로 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언덕 너머에서 섬광이 번쩍이고 뒤이어 충격파가 그의 몸을 때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는 벤젠은 웅덩이를 향해 그대로 몸을 날렸다.
콰르르릉!! 쿠구궁…! 콰과광!!!
금세 무너질 듯 진동하는 천장. 페드릭은 혼절해버린 벤젠을 다리로 툭툭 치며 홀로 중얼거렸다.
“클러스터 탄두로는 백날 때려봐야 흠집도 안가겠구만. 대체 장갑을 얼마나 떡칠해놨길래 먼지하나 안 떨어지지…?”
소리나 진동만 그럴싸했지. 사실상 기지 내부로 보이는 누런색 배경의 복도는 페드릭의 말대로 구조적인 불안정성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 동네는. 분명 제국군 정보부에서 대규모의 기지 시설이라고 말한 것 같은데 주변에 적보병이나 리플렉터 비스무리한 것은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아까 그 웅덩이의 크기나 지금 자신을 비록한 여러 부하들이 겪은 경험으로 볼 때 전송빔을 응용한 수송 체계인건 확실했는데 말이다.
일단 들어오기는 했으니 임무를 수행해야 되긴 하는데….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서있는 페드릭에게 하사관 하나가 조심스레 다가와 물었다. 그는 페드릭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 대령님.”
“‘길 잃었다.’ 라는 말만 빼고 하도록.”
“음…. 틀리게 오진 않은 것 같습니다. 아까 정찰을 나갔었던 베레튼 상병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는데 이쪽으로 약 2개 소대 규모의 적 부대가 접근 중이라고 합니다. 교전 예상 시간은 약 3분 안팎이라고 합니다.”
중사는 손가락을 방아쇠에 대며 곧있을 교전에 대비하려 했다. 수적으로 상당히 불리한 전력 차였다. 하지만 자신이나 부하들은 연방에서 최정예라 불리는 특수부대원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불리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직접 체험해보진 않았지만 페드릭도 그들에 대해서는 간략 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이들 세대에선 단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던 호루스였다. 말이 최정예였지 정작 충돌하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다. 페드릭은 쓸데없는 희생은 피하고자 한참을 준비하고 있던 그들을 제지했다.
“대령님. 저희는 상관 마십시오. 이미 저희는 이들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수적으로 봐도 크게 차이가 나진 않으니 이 구역의 구조를 이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아까 접근하고 있는 게 2개 소대 병력이라고 했었나?”
“네. 그렇습니다.”
“몰살당하겠구먼….”
“……?”
조용히 중얼거리는 페드릭의 말에 중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페드릭이 아는 한 이 병력으로는 절대 적들을 이겨낼 수 없었다. 허나 그들의 무기 시스템과 그들의 행동 방식을 알 수 있다면 승률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다행히도 페드릭은 그런 것들을 조금 뒤처지기는 했지만 꽤 많이는 알고 있었다. 약간 문제라고 한다면 그것을 설명해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 그뿐이었다. 생각이 정리되자마자 페드릭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거는 나 혼자 시간을 벌테니까 자네는 부하들 이끌고 길 좀 찾아봐. 아 참! 그리고 벤젠 저놈도 깨워서 같이 가주고. 일단 대강이라도 구조가 파악되면 나한테 연락을 줘. 일단은…. 잘 찾아라.”
“예!? 다시 말씀해주십시오. 저희는 지금 이 상황에 있어서 최적의 전투 요건을 갖춘 상태입니다. 그런데 굳이 대령님 혼자 나선다는 것은 저희로썬 이해를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중사의 말에 다른 부하들도 공감하는 눈치였다. 마치 왜 자신들을 어린애 취급을 하는 거냐는 식으로 말이다.
“여태까진 내가 나름대로 따뜻하게 잘 감싸줬다만, 이젠 그게 좀 힘들 것 같다. 나는 내가 책임지는 부하들이 자긍심으로 똘똘 뭉쳐서 개죽음 당하는 꼴은 별로 보기 싫어서 말이지….”
만약 일반사람이 들었다면 화가 치솟고도 남을만한 말. 하지만 그들은 딱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처음 마디만 제외하면 모두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페드릭은 말을 이어 나갔다.
“내 말투가 이래서 미안하다만, 지금 우리들은 같은 인간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게 아니야. 분명 연방에서 너희들은 최고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그 점에선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연방보다 이미 멀리 앞서간 새들한테도 니들이 훈련을 통해 익힌 기술들이 통할 거라 생각하나? 굳이 대답을 하자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놈들은 이미 기술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인류보다 한참을 앞서갔으니까. 대략 예를 들어주자면….”
-데구르르….-
“앗! 위험….”
적이 들이닥치기로 한 예상 경로에서 뭔가가 굴러오자 페드릭은 염력을 통해 그것을 그 자리에서 위로 띄어 올렸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말했다.
“이건 신경폭탄이야. 가스로 분출해서 찌질하게 죽이는 것도 아니고 그저 요상한 섬광으로 머릿속을 치사량에 가깝게 자극하는 계열의 수류탄이지. 흠. 그리고…. 이건 3~4초 후에 자동으로 폭발한다던데….”
휘익!
기색 한번 없이 페드릭은 폭탄이 굴러온 곳을 향해 다시 날렸다. 마치 화살이 날아가듯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자 반대편 너머에서 온갖 욕설로 추정되는 언어가 난무했다.
그리고 폭발.
“대충 이런 원리지. 이제 내말 알아듣겠나? 늦기 전에 서두르라고! 벤젠이 나머지는 대처법은 알려줄거야. 어서 가라!”
외침인지 고함인지 모를 말과 함께 페드릭은 단신으로 적 병력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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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주인공이 좀 주인공 스러워지는 72화...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