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5년 9월 23일. 지구표준시각 2114시
  엘리네프 고궤도 섹터. CVX-701 <Colossus> CIC
  “어니스트 대령님. 방금 행성의 적도선 상에 도달했습니다. 각 군함이 대형을 맞추기까지는 약 2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항공갑판의 모든 공격편대는 이미 명령만 내리신다면 강습함대를 엄호하기 위해 출격할겁니다. <콜로수스>는 이미 총동원령이 완료된 상태입니다. 명령을…”
  “이그라스에 잡히는 적함의 수는 얼마나 되나.”
  “행성 궤도 상에 잡히는 적함은 최소함선 규모까지 쳐서 모두 5,200여 척 정도가 탐지됩니다. 아마 아이오와 벤젠 씨의 말 그대로 정보가 넘어간게 분명합니다.”
  어둡기 그지없는 전투정보실. 그나마 천장에서 나오는 푸르스름한 빛이 있어 주위의 사물을 분간할 수 있었다.
  “그건 우리도 예상하고 있던 일이야.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라고. 계획대로 진행하도록.”
  적함의 숫자에 대해, 그리고 이 작전에 대해 지난 3달 동안 수도 없이 생각해왔다. 다짜고짜 세비어인이 가져다 준 엄청난 분량의 정보는 연방 정부가 생각하고 있었던 개념을 단 한 번에 초토화를 내버렸고 그들은 우리들에게 뭔가를 제시하면서 협조를 요청했다. 그 뭔가는 다름 아닌 현재 연방이 운용하고 있는 모든 군함이 호루스에 맞설 수 있는 전투력을 제공하는 것과 제국군이 힘이 닿는 한 호루스 함대의 모든 움직임을 연방과 공유하는 것.
  그리고 대가는 단 하나.
  아마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정부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불과 단 한 달 만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 대령이라는 위치에서는 그렇게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칼은 대충 짐작할 수는 있었다. 일단은 이리시스 제국 측에서 거짓을 했든 안했든 간에 당시 연방군이 처했던 상황이 심각했다. 그리고 제국 측에서 말한 2차 원정설도 한몫했다. 커다란 손실을 입은 연방에선 제국이 제시한 것들이 굉장히 좋은 조건이라 여겼을 테니 말이다.
  협약 이후 제국은 앞서 제시한 거의 대부분의 조항들을 말 그대로 지켜나갔다. 점차 노후화 추세에 접어들어가던 5세대 군함들이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제국군 기술자들의 손을 거쳐 가자 새로운 성능의 군함으로 변모했다. 이 군함들의 전투 형질은 점차 대 호루스 무기로 변해가고 있었다. 지난 5달 동안 정말로 많은 일이 일어났던 것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특히 이 배. <콜로수스>는 아주 복잡한 과정의 수리 작업을 끝마치자 전보다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알티미리스 기지에서부터 칼의 머릿속에 박힌 ‘불가항력’라는 단어는 더 이상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적들과 대등한 조건에서 싸움이 가능했으니까….
  떨어져나간 항공갑판도, 함재기 기준 탑재량도, 장비효율 최적의 승무원도, 배치된 무기 상태도 지금 만큼은 모두 완벽했다. 이미 총동원령을 내린 상태에서도 칼은 전투 직전의 고요를 마치 즐기기라도 하듯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않고 있었다. 각 화기제어실에서는 거의 모든 중화기들이 활성화되어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고 양측면의 항공갑판에서는 최신예 전투기인 F/A-26d <피닉스>가 출격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S-6 <미스틱>는 이번 작전에서는 제외되었다. 성능 상에선 <피닉스>를 능가할 <미스틱>이었지만 이 기체가 워낙 고가인데다가 아직까진 신뢰도가 <피닉스>보다 뒤쳐졌기 때문에 작전사령부에서도 꽤나 귀하게 취급해주는 기체이기 때문이었다.
  각 담당사관이 보고를 했다.
  “제 429 함대. 전투대형 배치 완료했습니다!”
  “전 시스템 정상 작동 중입니다. 동력 출력기 효율 98.5%로 설계 상 최적 효율치입니다.”
  “대령님! 거리 4,0000에서 새로운 적함대 급속접근 중! 3분 30초 내로 교전 예상됩니다.”
  뒤이어 통신사관이 급히 보고한다. 아마 선두 함대에서 전문을 받은 것 같았다. 이미 극궤도에서 전투 대형을 맞춘 이리시스 제국군과 연방군의 첫 연합함대에서 이쪽이 걱정이라도 됐었나보다.
  “함대 병력을 분산시키는군. 슬슬 우리 쪽에서도 준비한다. 항공갑판에 있는 모든 전투편대 출격시키고, 함대에 연락해서 WAMD 시스템 구축시키라고 하게. 1분 내로 적측에서 돌들을 던질 테니 피해에 대비하라고.”
  칼은 계속해서 초공간에서 빠져나오는 함대에게 메시지를 보내도록 했다. 군함이 적의 공격으로부터 가장 취약할 때가 바로 초공간에서 평행공간으로 빠져나올 때이기 때문이었다. 일단 초공간에서 나오고 최소 1분간 함선의 AI가 통제하는 전산장비들은 하나라도 빠짐없이 일순간 전원이 나간다. 그런 특징 덕분에 일부 레이더나 보조추력기 같은 경우엔 거의 대부분 초공간 탈출 때의 충격에서 견딜 수 있게끔 설계된다.
  칼은 스크린 상에서 구현된 행성 엘리네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구와 별다를 바 없는 모습. 검푸른 색의 대륙과 간혹 가다 보이는 흰 줄무늬. 그리고 특이하게도 행성 표면의 반을 가까이 뒤덮어버린 기이한 구름. 확신컨대 저건 초거대 태풍이다. 지구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
  이미 강하에 성공한 병사들에겐 욕만 나올 환경이 펼쳐져 있을 테지만 여러 측면에서 상황을 바라봤을 때 어쩔 수 없이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아주 약간의 불편이야 위쪽에서 들이닥칠 위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허나….
  직접 비바람에 휘말리고 흉기나 다름없는 물벼락을 맞아보지 않는 한은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질퍽거리는 바닥, 극한의 강우량, 그리고 최악의 가시거리. 이 세 가지 요소는 완벽한 궁합을 이루며 이미 내려간 병사들을 철저하게 괴롭히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보면 어느 쪽이 더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정확하게 분류하긴 어려웠다. 적함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레이더 담당 사관이 칼에게 급히 보고한다.
  “대령님 적함대에서 이상 에너지 파동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곧 공격한다는 의미였다. 칼이 말했다.
  “대응포격준비. 호위 구축함 함장들에게 WAMD 시스템 구축하라고 해.”
  잠시 후 호위 구축함 6척이 전속력으로 나아가며 푸르스름한 역장을 퍼트렸다. 방어막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지만 이 역장은 기존의 방어막과는 격이 틀린 어마어마한 크기로 부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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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에 계속 됩니다.

오랜만에 올렸음에도 짧은 이 분량에 그저 죄송할따름입니다. 본의 아니게 또 연재속도가 일주일을 아주 기본적으로 넘기고 말았네요. 현재 에피5 결론 부분에서 살짝 막힌지라... 쉽사리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쓰기는 항상 쓰고 있는데... 흠흠...
그럼 다음 회에 찾아 뵙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소설 제목처럼 땅에서 싸우는 모습을 기대하며...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