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5년 9월 23일. 지구표준시각 2100시.
  행성의 수평선 너머로 울렁이는 빛이 계기가 되어 함대가 위치한 사방에서 가이아 연방으로 추정되는 군함 수천 척이 초공간에서 빠져나오자 전투 양상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리시스 제국과 연방군으로 이루어진 연합 함대는 거의 물량으로 호루스의 방위 함대를 천천히 무너트렸다.
  제 1선에 선 함대는 이리시스 제국의 주력 전투 함대였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거의 사기 같았던 호루스 전함의 무기 시스템은 언제 그랬었냐는 듯 한순간에 무력화되어 버렸다. 연방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무기. 얼핏 보면 EMP와 비슷한 점이 있었지만 이 무기는 폭발력에 비해 아군 측에 피해가 전혀 가지 않았다. 5세기 만의 조우로 제국은 연방에 많은 기술들을 제공했지만 모두를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나마 제대로 받아들인 기술 중 하나라면 WAMD 시스템이라 불리는 광역다중방어체계였다. 이는 호루스 전함의 드론 기술과는 다른 버전이다. 이 드론에는 호루스 전함의 공격형 드론과는 달리 중무장 되어있지 않았지만 대신 높은 출력의 역장 발생기와 은폐장 발생기를 갖추고 있었다. 일단 제국군 함선의 방어체계에 비하면 전세대 기술이었지만 방어 효과는 확실히 기존의 것보다는 뛰어났다. 특히 동력 효율성에 관해선 길게 논할 필요도 없었다.
  호루스의 행성 방위함대는 궤도 전체에 걸쳐서 82개의 전투함대가 위치해 있었다. 함선으로 치면 거의 7천여 척 정도. 콜벳과 같은 초소형 호위함선을 제외한 숫자이다. 아마 이것까지 모두 합치게 된다면 거의 연합 함대 숫자를 훨씬 초과하는 숫자가 될지도 몰랐다. 이 정도 숫자면 현재 연방군 전체 보유 전투함의 반을 넘어서는 규모였다. 고작 일개 행성에 이런 대규모의 함대가 주둔 중이라니….
  처음 그들이 이 작전에 대해 언급할 때에는 각 장관들은 말도 안된다고 여겼었다. 토성 궤도에서 50척도 안되는 호루스 전함에 2천여 척에 달하는 군함들이 허무하게 소모되고 말았으니까. 솔직히 토성 전투로 인해 이 일이 진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5달 전 연방 사회는 호루스 원정대로부터 입은 타격으로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특히 인근 항성계를 비롯한 모든 전투 함대가 파괴됨으로써 반정부군의 공격에 노출된 상황이었다. 그 때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난 세비어인이 아니었다면, 그땐 반정부군이 아닌 호루스에 의해 인류가 절멸했을 것이다. 때마침 나타난 세비어인이 연방에게 내민 카드는 연방군을 대상으로 한 기술력과 자재에 대한 제공이었다. 대신에 나온 요구 조건은 호루스인의 3대 식민 행성 중 하나를 장악하는데 힘을 보태주는 것뿐이었다. 그 후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안도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물론 연방 측에서는 이러한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단시간에 그들은 눈에 뛸 만큼 성장을 했다. 아마 고위직에 있는 장관들은 단순히 이 위기만 어떻게든 모면하면 된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가이아라는 이름의 인류는 뒤늦게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뿐이다.
  !
  불안정한 사념이 그의 머릿속에 멋대로 그려졌다.
  나름대로 눈에 띄지 않게 왔다고 했건만….
  셋? 아니 그보다 훨씬 많다. 아마도 고도의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겠지. 시선을 옮기자 가슴 높이까지 자란 수풀 속에서 완벽한 사격자세로 자신을 겨누고 있는 강습대원들이 보였다. 분대장으로 추정되는 하사관이 물었다.
  “소속이 어딘가? 왜 여기서 얼쩡대고 있는 거지?”
  “…….”
  딱히 대답할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조심히 총을 땅에 떨어뜨리며 위험요소가 없음을 알렸다. 하지만 하사관의 태도는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 말이 말같이 안들리나?”
  ‘설마 위상변환기술을 쓴걸까!?’
  하사관의 말과 동시에 들리는 생각. 저 자는 자신을 호루스인으로 오해하고 있다.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했건만 자신 때문에 세상을 떠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기억에서 맴돌자 그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웬만하면 혼자 행동하려고 했건만….
  철컥!
  “한번만 더 말하게 하면 발포하겠다! 네놈이 아군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당장 신원을 밝혀라! 이건 마지막 경고다!”
  하사관의 고함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현무사단 3중대 소속 델 시리우스 병장.”
  그 순간 말 한마디로 그들의 기억 속에는 델이라는 이름이 삽입되었다. 흔히들 이쪽 언어로 마인드 컨트롤이라고 하는 능력. 단순히 말로 상대방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런 소박한 개념이 아닌 말 그대로 상대방의 정신을 통제한다는 의미. 말이 통제이지 실용성은 실로 무궁무진했다. 얼마나 갈지는 자신도 예상하기는 불가능했지만 적어도 한동안은, 자신이 이들로부터 완전히 인연이 끊어지기 전까진 계속 지속될 것이다.
  지극히 오랜 세월이 그를 점점 압박해왔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순간에 세뇌가 모두 끝나자 그를 감싸던 살벌한 분위기는 순식간에 식어갔다. 진실을 알 리 없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주섬주섬 홀로그램 지도를 꺼내들었다.
  “이게 방금 궤도 위에 있는 프리깃함에서 찍은 사진인데 이 위치에서 1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령기지로 추정되는 시설이 있습니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비바람이 더욱 거세게 몰아치자 그는 정교한 장비들이 고장이라도 나지 않을까 바짝 긴장하며 장비들을 챙겼다.
  “일단 중대장님과 접촉해야돼! 1소대와 3소대는 모두 어디로 간 거야?”
  “무전 채널은 모두 블랭크입니다! 아까 수송기 몇 기가 대공포에 격추당했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정확히 어디 소속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비바람 소리에도 지지 않을 만큼 통신병이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거의 중무장한 상태로 자세를 낮추고 있는 40에 달하는 강습대원들은 소대장의 명령을 기다렸다.
  “예정 합류지점은 여기가 확실한 거지!? 레이더에서는 여기에 있는 사람들 외엔 아군이 잡히지 않는데…. 일이 생긴 건가!?”
  빠각! 콰아아아!!!
  순간 밤하늘을 밝힐 만큼 강한 광원과 함께 비바람 소리가 묻혀버릴 만큼 귀청을 찢는 폭음이 땅을 울리자 소대원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며 의심되는 구역에 총부리를 겨누었다. 일단 들린 소리로 추측할 때는 강습 중이던 기체가 초고속으로 지상에 충돌한 느낌이었다. 어느 소속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실은 델의 예상과는 틀렸다. 병사 하나가 주체할 수 없이 솟구치는 숫자에 기겁하며 소리를 지른다.
  “헉…! 모두 전투복 밀폐시켜!”
  “이런 젠장!!! 전원 밀폐하라!”
  긴급한 대화와 함께 델도 미칠 듯이 용솟음치는 한 수치에 깜짝 놀라 신속하게 착용한 전투복에 대해 완전 밀폐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직후 사신의 손짓을 연상시키는 새하얀 뭔가가 하늘에서 꿈틀거리며 그의 시야를 빠르게 덮어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빠른 속도로 땅에 퍼진 하얀 안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
  아까 그 현상은 아군기가 추락한 것이 아니었다.
  흔히들 말하는 화학탄이다. 지금 같은 기상 상태에서도 효과가 있는 신경가스의 종류는 매우 드물었다. 솔직히 말해 없다고 봐야 했다. 주로….
  번쩍!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앉아 쏴 자세로 주위를 경계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옅은 농도의 구름들 틈으로 뭔가가 번쩍였다. 뭐라도 폭발한 걸까. 어쩌면 대기권에서 파괴된 연방전함이 행성의 대기권과 마찰을 일으키면서 발생한 광원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한 4~5초가 지나자. 델을 비롯한 모든 대원들은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자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호루스 행성 방위군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방금 전 일어났던 섬광의 진원지에서 음속을 훌쩍 뛰어넘는 충격파가 적란운을 거칠게 밀쳐내었다. 전투복에 자체 내장된 하드웨어에서 추정하고 있는 폭발고도는 적어도 40 킬로미터 이상. 지상에 있는 강습대원을 노린 공격이 아니었다. 저건 방공포대에서 발사된 핵탄두였다. 적어도 강하하고 있던 기체들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혔을 터….
  잠시 후 하늘에서 불안정 해 보이는 굉음들이 사방으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핵탄두에서 나온 전자기 펄스가 수송기의 모든 전자 장비를 태워버렸을 가능성이 컸다. 물론 연방제 강습기에는 이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을 테지만 강하 중인 상황에는 얘기가 심히 틀려진다.
  “소대 9시 방향으로 속보 전진.”
  기다리는 게 무의미하다고 여겼는지 소대장이 입을 열었다. 위쪽에 있는 사람들에겐 안 된 일이긴 하지만 일단 이 곳에서는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해결해야만 했다. 중대장이란 사람도 이 원칙을 잘 숙지하고 있었다면 도중에 만날 수도 있을 확률이 높았다. 아직 적의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호루스 특유의 사념도 빗소리에 묻히기라도 했는지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도 주변에 있는 대원들과 같은 사람일 뿐이었다.
  한 10분가량 움직였을까….
  어느새 숲의 경계가 끝나고 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바로 뒤만 해도 밀림이나 다름없던 상황이었….
  “산개!”
  ……!?
  한 대원의 비명 섞인 말과 함께 팍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실 끊긴 인형마냥 허무하게 쓰러지는 대원 하나.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선 깊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따다다닥!!
  슈우웅~. 콰앙!
  타다다!!
  적들은 반격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방심한 순간 4명이 전사하고 3명이 부상당했다.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어느 방향에서 쏘는지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게다가 뛰어난 대인화기 수준의 무기로부터 방탄력이 뛰어나다고 여겨지는 U-3A 슈트는 적의 무기체계에 완전히 무력한 듯 보기 흉하게 찢겨져 있었다. 대충 총 비스 무리한 것까진 알겠는데 어디서 뭐가 쏘고 있는지 더 이상 파악하긴 힘들었다. 옆에 있던 보포스 상병은 총상을 당한 이병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가 도리어 적탄에 맞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찢어진 슈트 사이로 이상할 정도로 검붉은 색의 피가 끊임없이 흘러 내렸다. 쇼크 탓인지 별다른 통증은 없었으나 그는 자신이 입은 상처가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총성 속에서 슈트의 스피커로 걱정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니 뒤질락 환장했냐!? 멋대로 일어나서 맞아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조금만 기다려라…!”
  자원입대 할때 동기였던 레드번의 목소리였다. 대략 지금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금방이라도 들쳐 업고 갈 기세로 말했다. 그리고 뒤에서 루만 소총 특유의 총소리가 그의 귀에 들렸다. 아무래도 정말 올 생각인가보다.
  보포스는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어 고개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무리였다. 하반신에 감각이 전혀 없는 걸로 보아 척추가 끊어져 버린 것이겠지. 이곳에서 이런 부상이라면 자신에겐 가망이 전혀 없었다.
  “레드번. 오지마라. 위험해!”
  “누가 할 소리. 니 지금 거 있는데가 더 위험해 짜샤! 일단 입 다물고 형님 하는 거나 구경해라.”
  쿠쾅!!
  그의 무전이 끝나기 무섭게 한 20미터 앞에서 뭔가가 터졌다. 위력으로 보아 수류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확신하기도 전에 앞쪽에서는 불 쇼에 가까운 거대한 불의 벽이 보포스의 시야를 가득 매웠다. 화염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식들을 깡그리 무시한 채 폭풍우마저 무시하며 아주 높이 타올랐다. 보포스는 이상 현상을 두 눈에 담으며 점점 흐릿해지는 의식의 끈을 놓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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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회에 계속됩니다.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