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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지오닉 프론트를 다시 쥐어 보았습니다. 목마 작전에서 '한 마리, 두 마리….' 장난치듯 아군을 학살하는 연방의 하얀 괴물에 질린 나머지 던져 버릴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지만, 꽤 전에 사 두었던 소설(전 2권, 林 譲治-하야시 조지 저-, 2001년)을 읽으면서 다시 흥미를 갖게 되었다고 할까….

  여하튼 게임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뒷이야기…. 특히 "한밤의 펜릴 부대"의 숙적인 연방군 조종사 에이가 소위와의 인연이 잘 그려져 있기에 게임을 하는 재미도 더 있었다고 해야겠지요. (여전히 연방의 하얀 괴물(악마!!)에겐 치가 떨리지만….)


  기동전사 건담에서 지온 군이라면 일단 주인공의 적이고, 악당이라고 해야겠지만, 전쟁이라는 것은 어느 한 쪽이 옳고 그르고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법이겠지요. 게다가, 자신이 직접 참여하는, 혹은 지구 어딘가에서 진행 중인 전쟁이라면 모를까 가상 세계 속에서의 전쟁이라면 아군에 못지않게 적에 매력을 이들도 많게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니 건담의 외전 작품에서는 지온군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하는 작품도 많습니다. 2001년에 반다이에서 제작한 이 게임, PS2로는 두 번째로 제작된 이 작품도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작품은 -이제까지의 작품 속에서는 소개되지 않았던- 지온군 특무 부대 “한밤의 펜릴 부대(闇夜のフェンリル隊)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입니다.
  펜릴 부대는 센서 등을 개량한 모빌슈트를 이용한 일종의 실전 테스트 부대로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게라트 소령 이하 지극히 평범한-뉴타입이 아닌- 부대입니다. 기동전사 건담의 외전이라면 블루 데스티니처럼 뉴타입 실험 등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곤 하지만, 펜릴 부대는 그 편성 자체는 독특할지 몰라도 지극히 평범한 대원들로 구성된 부대인 만큼 전술전략적으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임무들이 제공되고 있지요. 심지어 적수조차 뉴타입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물론 유능한) 조종사. 때문에, 비교적 사실적인 느낌으로 1년 전쟁의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첫 임무부터 연방 육상 전함인 빅 트레와 맞서는 건 솔직히 무시무시한 일이지만...)

  하얀 괴물을 피해 목마를 조사하는 임무는 너무 황당무계하지만 61식 전차부터 시작되는 적은 적당한 수준. 적어도 제가 해 보았던 건담 게임 중에는 가장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되더군요. 메크워리어의 팬인 저로서도 만족할 수 있는 게임이었으니 말입니다. (제작자가 “기렌의 야망”을 만든 우시무리 노리히코(牛村憲彦)씨인 만큼 건담의 설정을 잘 살리면서도 

  문제는 건담의 열성팬이 아니라면 게임 그 자체는 몰라도 내용을 즐기기 어렵다는 것일까요?

  처음부터 “우리는 제2차 지구 강하 작전 중 하나로 캘리포니아 기지 공략 임무에 참여하게 되었다...”라는 브리핑부터 시작되니 말입니다. 도대체 제2차 지구 강하 작전이 뭔지, 캘리포니아 기지가 도대체 어떤 건지 전~~~혀 제시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설명서에도 없습니다.)

  브리핑을 시작으로 하는 임무의 시스템은 꽤 잘 되어 있습니다. 배경은 전혀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금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정도는 확실히 알 수 있거든요. (브리핑을 풀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건 역시 반다이답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실제로 임무에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어느 정도 확실하게 준비하는 쪽이 좋은 것은 말할 필요 없으니까요.

  그렇게 브리핑을 거쳐 실제 전투 준비를 할 때는, 팀을 구성하고 장비를 갖추고 작전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문제는 이 단계에서도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처음에 주어진 장비 그대로 나갈 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적절한 장비를 잘 갖추는 것도 생각해 볼 일... (모빌슈트가 무적 왕짱 센 만능 병기라는 게 이럴 때 고민인 겁니다.)

  게임 자체는 비교적 재미있게 전개됩니다. 자신이 맡은 팀 이외는 컴퓨터가 자동으로 조종하지만(물론, 그때그때 명령을 내릴 수도 있음), 필요에 따라 조종하는 팀을 바꿀 수 있어 결국 모든 팀을 함께 움직인다고 볼 수 있을까요?


  뭐.... 게임으로서의 재미는 제쳐두고... 이 작품의 가장 큰 재미는 ‘1년 전쟁을 다른 관점에서 체험한다.’라는 것입니다. 원작에서도 나왔던 캘리포니아 기지나 오데사 등 익히 알려진 장소와 상황이지만, ‘사실은 이런 것도 있었다.’라는 이야기를 연출하는 매력이 있는 것이지요.
(이따금 건담이나 화이트 베이스와 마주치는 건 애교라고 해 줄까요?)

  게다가, 건담 측에서 보면 단순한 자쿠 1, 자쿠 2에 불과한 그들이 나름대로 스토리를 갖고 활약한다는 것이 매력적입니다. 나름대로 캐릭터들도 괜찮고 말이지요.


  기동전사 건담이라는 작품은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15소년 표류기’인 만큼, 드러나지 않은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걸까요? 물론, 꼭 ‘15소년 표류기’가 아니라도 전쟁 이야기는 그 자체로 다양한 내용들을 내포하고 있겠지만 말입니다.
(관련 게임만 수십 종에 이르는 스타워즈를 생각해 보면...-_-;;)


여담) 소설을 보게 되면 역시 건담이라는 세계의 설정을 좀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노력했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뭔가 뻥 같으면서도 나름대로 설명을 잘 짜맞추어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해 주기 때문이지요.
  건담에 대한 딴지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가능한 것처럼 꾸미는 쪽이 더 재미있고 좋은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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