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이의 글터
진한은 떠난다는 이야기에 뭔가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우주에 나가고 싶어한 것은 우주를 통해 더 많은 세계를 여행하고 싶었기 때문이지 이런 변방의 오지에서 신 취급 받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무언가 묵직한 돌이 짓누르는 듯한 중압감이 그를 눌러왔다.
“뭐지…?”
“진한.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파?” 휘이나가 옆에서 놀라 물었지만 진한은 말없이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멀리 저 너머에서 무슨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왔나봐.”
“뭐가?”
“제국군이 온 것 같아.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그럼! 지난번처럼 맞서서 싸우는 거야! 해치워 버려!” 휘이나의 말에 진한은 쓴 웃음을 지었다. 상대가 조무라기들이나 함대라면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기운은 분명 강렬한 투기였다. 함대나 로봇 같은 것이 뿜어낼 수 없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가 뿜어내는 적의와 살의의 덩어리였다. 그것도 굉장히 강력한 힘이었다.
“온다. 움직이지 마!” 진한은 그렇게 말하며 휘이나를 꼭 끌어 안았다. 순간 진한의 품에 안겨버린 휘이나는 당황하며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진한은 그런 휘이나에겐 신경도 쓰지 않고 기합성과 함께 기운을 뿜어내었다. 황금색의 기운이 뻗어 나가는가 싶더니만 하늘이 열리고 빛이 쏟아져 내렸다.
“꺄아아아악!” 휘이나의 비명을 덮으려는 듯 빛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는 주위를 불태워 버렸다. 아주 짧은 찰나 동안 쏟아진 빛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의 반경은 크지 않았지만 우주기지의 모든 건물이 그 영향을 받을 정도였다. 하늘로 솟은 먼지와 흙이 자욱한 구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찢어지는 듯한 폭음에 놀란 사람들이 원인을 찾는 사이 진한은 자신이 뿜어낸 황금빛의 기운을 거두어 들였다. 흙과 돌이 비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휘이나. 여기서 기다려. 갔다 올 테니까.”
“진한! 조심해!” 진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늘로 쏘아져 올라갔다. 우주복도 챙기지 않은 채로 날아가고 있었지만 위성궤도 정도에서 한두시간 정도는 우주복 없이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순식간이 구름이 옆으로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짙푸른 반공이 눈앞에 펼쳐졌다. 진한은 눈에 힘을 주어 서서히 검게 변하는 하늘을 주시했다. 멀리 무언가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대충 보아도 수십에 이르는 함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진한은 더욱빨리 몸을 날렸다. 그의 몸은 쏘아지는 검은 탄환같았다. 아무런 징후조차 보이지 않고 상대를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일격, 정확히 명중했습니다.” 우주선의 내부에서는 지상목표에 대한 궤도 타격에 대한 보고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니냐!! 빨리 녀석이 어찌 되었는지를 보고하란 말이다!” 함장이 노하여 소리치고 있었다. 그로서는 이 함대 사령관이 대단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른인지 아이인지도 알 수 없는 녀석이 대뜸 사령관으로 와서는 한 지점을 지목하더니 한 사람을 공격하라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대기권 밖에서 타격을 가하라니. 이해할 수 없는 지시였다.
“아니. 함장. 확인은 됐어. 죽었을리는 없으니까.” 스크린에 나타난 사령관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예? 하지만 그건 함포사격이었습니다.” 사람이 함포에 맞고 살아날 리는 없었다. 절대로.
“오고 있어. 준비하는 게 좋을거야. 흐하하하.” 사령관은 기쁜 듯 웃었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함체가 묵직한 울림과 함께 크게 흔들렸다.
“뭐야!? 보고하라?” 함장은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이 별에 뭔가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았다.
“에.. 엔진이! 엔진이 마비되었습니다!” 엔진실과는 연락이 두절되었다. 디스플레이 화면에 떠오른 피해상황에는 엔진이 완전히 정지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중력 기동이 불가능해진다면 다음에 남는 것은 추락 뿐이었다. 위성 궤도라고 해도 행성중력권 안쪽이었다.
“구조 요청을 해라! 이대로 추락할 수는 없어!” 함장은 주위의 다른 함정에서 견인을 해 주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사정은 다른 전함들도 마찬가지였다. 스크린에 나타난 다른 함들도 여기 저기서 불꽃을 피워올리며 하나 둘 무력화 되거나 빛과 함께 폭발하고 있었다.
“대체 뭐지? 설마 이런 곳에 우주 괴수라도 있는 것인가!?” 함장은 이를 악물었다. 서서히 떠 있을 힘을 잃은 함이 행성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상대속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탈출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함을 버려라!”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대우주 방위시스템도 없는 이런 미개한 행성에서 추락하다니. 위성궤도에 진입해서 행성을 공전하며 공격했다면 엔진이 멈추어도 수리할때까지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엔진이 파괴될 정도의 피해를 입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반중력 기동을 하며 대기권 밖에 부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몇대의 함정이 대기권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진한은 적의 수가 많은 것을 보고 총알처럼 함 내부로 치고 들어가 제일 커다란 기계를 부수고는 빠져나와 다른 함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그도 단 한척의 함정은 부수지 않고 놓아둘 셈이었다. 그걸 타고 빠져나가야 할 테니까. 눈앞에 보이는 함선들이 서서히 회피하려는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놓칠 진한이 아니었다. 멀리 도망쳐 가는 함선에 손끝에서 모아낸 빛의 구체를 만들어 던졌다. 요란한 불꽃과 함께 기체가 파손되었다.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던 제트가 멈춘 것을 보고 마무리를 지으려 하는 찰나, 목표를 향해 날아가는 진한의 눈앞이 장막을 드리운 듯 갑자기 어두워 졌다.
“!” 진한은 자신을 둘러싼 어둠에서 피하려고 도망쳤다. 아무리 뒤로 물러나도 어둠은 가시지 않았다. 진한이 몸에서 빛을 뿜어내어 주위를 밝히자 멀리 무엇인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로 다가서니 그것은 제국군의 우주 전함이었다. 다짜고짜 선벽을 뚫고 들어갔다. 그 안엔 공기가 있었기에 가쁜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뭐지? 대체 이 어둠은?” 진한은 창밖에 펼쳐진 어둠이 자신을 따라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서서히 걷히는 것을 보았다. 그 끝에는 제국군의 함대 사령관이 서 있었다.
/네 녀석. 죽지 않고 살아있었구나. 반갑기 그지없군 그래./
“모.. 목소리가? 어떻게??” 차가운 진공의 우주를 가르고 그 목소리는 진한에게 직접 전달되었다.
/하지만 죽는 게 나았을 걸. 후회하게 될거야. 그 소녀처럼 말이지./
“수영이를 어떻게 한 거야!”
/지금 남을 걱정할 때가 아닐텐데./ 그 말과 동시에 어둠이 쭉 뻗어 왔다. 진한은 재빨리 몸을 날려 제국군의 함 안쪽으로 도망쳤다. 뭔가 어둠이 날아와 제국군의 함의 외벽을 궤뚫었다. 그것은 거대한 검은 촉수 같은 느낌이었다. 진한이 기운을 끌어올려 거세게 뿜어 보았지만 그것은 그 거대한 검은 기류를 살짝 비출 뿐, 그 어둠 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흡수하다니!’ 진한은 깜짝 놀랐다. 이 검은 기류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독하게 빨랐다. 그 끝에 선 녀석은 이미 전에 만났던 그 하얀 옷을 입은 아이였다. 진한은 우주공간으로 나가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우주공간에서의 싸움은 경험이 없었다. 물론 허공에서 가속과 감속을 할 수 있는 진한에게 있어서 우주공간의 전투라고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하지만 저런 녀석과의 싸움이라면 아주 작은 부분에서 승패가 갈릴 가능성이 컸다. 진한은 함 내부의 널찍한 공간을 향해 몸을 날렸다. 식당으로 보이는 널찍한 방에 들어간 진한은 자신을 추격해 오는 검은 어둠을 향해 공격 자세를 취했다. 어둠은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방 안에 밀려들어오더니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검은 어둠이 꿈틀거리더니 그 속에서 하얀 옷의 아이가 튀어 나왔다. 언젠가 보았던 복장 그대로 입과 양손끝만을 드러낸 모습 그대로였다.
“오랜만이야. 크크.” 아이의 몸에 스며들 듯 검은 기류가 사라졌지만 진한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몰랐다. 그리고 한번 겪었듯이 그것은 결코 공격할 수도 손댈수도 없는 미지의 힘이었다.
“대체 뭐냐! 그 흉한 무공은!”
“오… 우주 최강의 투기. 우주기공을 흉하다고 말하다니. 배짱한번 두둑하구나.”
“우.. 우주기공?”
“그렇다. 너희 문신사람인이라 해도 선택된 소수만 배울 수 있는 바로 그 우주기공이지. 맛좀 볼테냐?” 그 말과 동시에 검은 기류가 채찍처럼 뻗어 나왔다. 진한은 가까스로 몸을 날려 피했다. 하지만 검은 기류는 마치 수족이라도 되는 양 꺾이고 늘어나며 진한을 추격했다.
“이것을 익히면 우주의 에너지를 직접 힘으로 삼고 공간을 가르며 시공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 네가 가진 알량한 풋내기의 기공따위는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지.” 아이의 말과 함께 진한의 주위에 검은 공간이 소용돌이치듯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이 모습은 분명 다크 페인트가 우주요새 절망의 별에서 사용했던 기술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친구들도 지금쯤은 저승으로 떠났을 것이다. 그때 사이좋게 보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그래.”
“친구라고?” 진한의 말에 아이는 싱긋 웃을 뿐이었다.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